황제의 검 – 155화 : 무한계로 진군하는 제왕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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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검 – 155화 : 무한계로 진군하는 제왕의 군대


무한계로 진군하는 제왕의 군대

메타트론을 따르는 어둠의 천사들 중 절반은 루시퍼의 곁으로, 나머지는 제왕에게로 가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움직임이나 의사 표현도 없이 묵묵히 그들 곁을 지켰을 따름이다.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는 둘 다 너무도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메타트론의 명령에만 이행하는 어둠의 천사들에게 둘의 존재는 존중해야 할 대상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아직은 메타트론의 명령이 없었다. 지금껏 그들이 잠잠한 이유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렸다.
제왕은 쿠사누스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짢은 표정을 하고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만 있었다. 쿠사누스들 간에 상당한 논쟁이 벌어졌다. 의견 대립은 현재의 국면을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였다.
어둠의 천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같은 회의장에 있었다면 쿠사누스들은 좀더 부드러운 어휘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불만이었다. 그들에 대한 불만은 궁극적으로는 메타트론에게로 이어져 있다.
66명의 쿠사누스들 중 하나가 제왕이 되고, 나머지 65명이 여전히 쿠사누스로서 제완을 보좌하고 있었다. 제왕들은 제압되었고 처형되었다.
남은 수는 이제 열둘. 그 중에 하나가 무한계로 들어가 있음을 이들도 알고 있었다. 무한계를 비롯한 영계의 상황을 이들은 철저하게 파악해 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대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눈과 귀를 자청한 대적자들에 대한 믿음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들 역시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는 그런 관계였다.
쿠사누스들은 대적자들에게서 보고 된 사항들을 검토했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이 적기라는 것.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왕이시여, 명심하소서. 루시퍼는 메타트론의 아들입니다. 루시퍼와 우리가 싸우게 되면 과연…… 메타트론이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현재 메타트론이 영계에 나타났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영계를 복속시키고 루시퍼를 제압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시행하겠나이다.”
쿠사누스들은 제왕을 향해 기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떨쳐 일어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제왕에게서는 그들이 원하는 어떤 대답도 나와 주지 않는다. 그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쿠사누스들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메타트론을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저들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까? 그의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어둠의 천사들과 루시퍼도 부담스런 존재들이거늘 굳이 내가 이런 시점에서 메타트론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를 필요가 있을까? 그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가 정말로 메타트론을 존경하거나 신뢰해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반응한 것뿐이었다. 현실은 냉엄하다. 힘이 없으면 이룰 수 없고 지켜낼 수 없다.
메타트론 앞에서 그는 여전히 약자였기에 그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어둠의 천사들이 자신의 곁으로 와 있다. 그가 받는 심적 압박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이대로 끌려간다면 난 영원히 그의 속박에서 못한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실은 바로 그런 불안이 미래로 확정되는 것이었다.
메타트론과 싸워 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위와 영광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의 종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쿠사누스가 말했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전력은 예전 제왕들이 다스리던 시대보다도 더 월등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군대는 물러서지도 패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력을 기울이면…… 천궁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지는 신에게 반역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메타트론은 신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그와는 어차피 결별해야 합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 어둠의 천사 하나가 안으로 쑥 들어왔다. 너무도 급작스런 등장에 쿠사누스들은 경계의 빛을 지우지 않는다.
몇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싸울 듯한 태도를 보인다. 제왕이 말했다.
“어쩐 일이오?”
“그대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왔소. 지금까지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대들의 행동에 제약하지 않았고 참견하지 않았소. 마계와 루시퍼님과 싸운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오.
허나, 그대들이 우리의 주를 대적하겠다면 상황을 달라지겠지. 그분의 명령이 없는 한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만…… 그대들이 먼저 도발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징계할 수 있게 되오.
섣부른 선택은 자멸을 불러 올 것이니 부디…… 심사숙고하기 바라오. 이 말을 하기 위해 왔소.”
쿠사누스의 눈빛이 강렬해지고 있었다. 한때 전 영자들을 지배하고 다스렸던 자신들이다. 영자들 중 최강이라는 자존심은 지금도 여전했다. 어둠의 천사가 한 경고는 쿠사누스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메타트론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다.
그들은 심중에서 하나의 결단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둠의 천사와 루시퍼와 메타트론을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성급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처럼 가벼운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인 제왕 마르시온을 믿는다. 그가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것이다. 제왕은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어둠의 천사가 말했다.
“경고는 단 한 번뿐이오.”
그리고 단호하게 돌아서는 어둠의 천사를 향해 제왕이 입가에 가득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잔잔한 읍성으로 말했다.
“너희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느냐? 메타트론의 수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너희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날…… 너희들 타락한 천사들 정도로 보았다니…… 메타트론의 판단인가?”
어둠의 천사는 놀랐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메타트론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지지 않는가?
어둠의 천사는 돌아서지 않고 가만있었다. 좀더 확인해야만 할 일이다.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중했다.
“나는…… 제왕이다. 메타트론의 제지가 없었다면 차원계는 오래전에 내 손 아래 떨어졌을 것이다. 그가 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를 인정하지 않겠다.
내 의지를 말하겠다. 너희들 타락한 천사들은 지금 즉시 내 군대에게서 떠나라. 내 경고를 무시하고 남아 있는 자는 하나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어둠의 천사는 돌아서서 제왕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둘은 그 상태를 한동안 유지했다.
쿠사누스들은 올게 왔다는 듯이 비교적 담담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제왕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어둠의 천사가 말했다.
“방금 당신의 태도를…… 우리를 대적하는 것으로…… 메타트론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되겠소?”
“그대 마음대로 판단하라,”
“어리석은…… .”
“가라.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거침없는 언사였다. 어둠의 천사는 제왕과 쿠사누스들을 한차례 훑어보며 으스스한 음성을 토해놓고 사라졌다.
“지금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둠의 천사들은 더 이상 제왕의 군대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메타트론과 나와의 끈은 사라졌다. 내 쪽에서 끊어버렸으니 그가 노하겠지.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를 사로잡을 함정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그는 내 생각보다 강하다. 그를 이겨 반드시 세상을 내 지배 아래 두겠다.‘
제왕은 곧바로 쿠사누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진격할 준비를 서둘게 했다. 첫 목표는 하룬. 마계를 등 뒤에 두게 된다는 것이 좀 찜찜한 일이긴 하지만 마계와의 결전은 최후로 미뤘다.
그리고 제왕은 쿠사누스 하나를 비밀차원으로 급파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메타트론이 주는 부담과 두려움을 벗어버리게 된 배경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들에게 가서 전하라. 난 더 이상 메타트론의 명령을 듣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라고…… 그렇게 일러라. 그러면 그들이 네가 할 바를 알려주리라.”
비밀차원과의 합작. 메타트론을 상대하기 위해 숨겨둔 비장의 수가 드러나고 있었다. 제왕의 심중에 웅크리고 있던 야심이 매우 적나라한, 흉물스런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삶이 직면하는 결정에 뚜렷한 소신을 지니고 있기는 힘들다.
이도 저도 옳다는 양시(兩是)나, 모두가 그르다는 양비(兩非)의 입장은 그래서 가장 손쉬운 선택일 수 있다.
무엇이 좋다, 싫다라는 감정은 그 어떤 것보다는 순수하며 근원적인 감정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편견으로 가득 찬 직감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판단하다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이런 결과가 초래되는 걸 피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서 찬찬히 살필 여유를 습관적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파천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모든 순간의 선택이나 결정에 신중을 기해 왔다. 다시금 주어질 선택의 순간이 아니었기에 어그러진 결과를 돌이키기 위해 희생해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려 해왔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혀 의외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인생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던가. 그래서 더욱 뜻을 굳게 세우고 즉흥적인 판단을 피하려 애써 왔었다.
주변에서 보기에 그는 지나치게 소신이 뚜렷한 자였으며 주관이 확고해 보였다. 모든 현상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배후의 인과 관계를 살피려 애썼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결론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를 지탱시켜 온 자신에 대한 신뢰와 불굴의 의지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의 성과와는 관련 없이 부동한 것 이었다.
그런데 그는 최초로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가 미워해야 할 대상도 사랑하는 대상도 자신이라는 근간을 바탕으로 관계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루시퍼나 메타트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초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스스로 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 파천은 흔들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표시되거나 표현되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지지해온 사슬을 잃어버린 부표처럼 어딘지도 모를 좌표를 헤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깊어질수록 천사를 따라 생명의 뜰 깊숙이 접어들수록 그 심정은 더해 갔다. 그는 멈춰야만 했다. 이대로 확신 없는 결행을 계속해 나가기엔 그의 흔들림은 위험 수위에 육박해 들고 있었다.
파천은 천사를 따르던 움직임을 그대로 멈췄다.
나타나엘은 파천이 더 이상 따라붙지 않자 의아한 표정이다. 그가 말했다. 천사의 음성은 너무도 감미로워 마치 잘 조율된 현을 연속적으로 퉁기는 듯하다.
“왜 그러시나요?” 파천은 지친 음성으로 겨우 이렇게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내게…… 시간을 주시오.”
천사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다.
‘생략된 시간이 그를 힘들게 하는가 보구나.’
나타나엘도 파천의 본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의 운명에 편승된 복잡한 인연들을 짐작하지 못했다. 오직 파천 자신만이 자신을 온전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신이 야속하구나. 그때 소멸 당했으면, 아니면 끝내 몰랐다면 이런 혼란은 겪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다 해서 일치되는 건 아니다. 현재의 파천은 제삼자의 새로운 기억이 자신에게 덧씌워진 것과 같았다. 생생하게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판단 가능한 내용들은 그를 괴롭히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신은 파천이 그것을 모른 채, 아무런 배경 없이 광명을 얻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파천의 이러한 갈등은 그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존재, 모두에게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 메타트론과 용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 천사들에게……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 내가 분명 신에게 운했었다. 모든 걸 포기한 상태에서…… 그들을 경험하고 싶었을까?’
그는 예전의 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조차.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할 일도 변함없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당당할 수 없다. 내 친인들과 사람들과 저 모든 영적 존재들에게 당당하게 내 의지를 주장할 수 없다.’
파천은 이번 생이 처음이다. 그 전에 그도 사람이었다. 단지 신과 같아지려 했을 따름이지 그 안에 있는 기억들은 분명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첫 사람과 마지막 사람의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었다.
“가죠. 어차피 가야 할 길…… 망설인다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파천은 스스로 져야 할 짐을 당연히 지고 있으며 끝까지 수행해 보이리라 다짐했다.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 스스로 거두겠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말자. 아무것에도 욕심내지 말자. 단지…… 빚진 것을 갚아야 하는 내 책무일 따름이니.’
파천은 천사를 따라 다시 나섰다. 그는 무심해 보였다. 모든 감정이 죽어버린, 생명이 다한 고목과도 같이 두꺼운 껍질 속에 모든 걸 감춰버렸다. 그의 어깨가 더할 수 없이 초라해 보인다.

제왕의 군대가 소리 없는 진군을 시작했다. 한 덩이 구름처럼 뭉쳐서 흘러가는 그들의 움직임은 어떠한 파공성도 흘리지 않았으며 그 흐름조차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은 밀 하고도 신속했다. 그들은 곧장 하룬으로 들이 닥칠 셈이었다.
비밀차원으로 간 한 명의 쿠시누스를 제외한 64명의 쿠사누스들과 제왕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군대는 최강이라 불려도 될 듯싶었다.
제왕은 하룬을 먼저 정복한 뒤에 마계를 방비하겠다는 복안을 지니고 있었다. 후에 메타트론을 상대함은 비밀차원과 공조하리라는 심사였다. 그들의 힘을 직접 얻어낼 수는 없겠지만 도움을 얻을 방법은 많았다.
그런데 왕왕 세상일은 마음만은 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하룬으로 향하는 진영의 후면을 빠르게 따라 붙는 자들이 있었다. 뒤에서부터 몰아친 바람은 꽤나 거셌다.
“마계 놈들이 우리 뒤를 따라붙고 있습니다.”
쿠사누스의 보고를 한쪽 귀로 흘리며 제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력을 반분한다. 절반은 하룬으로 진격하고 나머지는 마계의 진격을 지연시킨다.”
그리고 제왕은 다시 진격 명령을 내리려 했다.
“저 앞에…… .”
쿠사누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제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들이.’
이제 보니 마계는 앞에서도 진을 치고 있다. 이동 경로를 예상하고 미리부터 와 있었다는 얘기다. 제왕은 비웃음을 흘렸다.
“먼저 승부를 결하자는 뜻인가? 루시퍼가 몸이 달았군.”
곧 이어 대마신 중 하나가 제왕의 군대가 머문 곳으로 왔다.
그는 제왕에게 와 루시퍼의 말을 전했다.
“마왕께서 당신을 정중하게 초대하셨습니다.”
대마신 브리트라는 제왕을 살폈다.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를 가늠해보고자 함이었다. 단지 바라봄으로 대충의 무게감은 감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상대가 그 정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왕을 판단해보려던 브리트라는 내심으로 젓고 말았다.
‘이건 괴물이로군요.’
루시퍼에게서 느꼈던 위압감을 브리트라는 또다시 느끼고 있었다.
제왕은 뜻밖의 제안에 잠시 뜸을 들였다. 다짜고짜 공격을 해와야 루시퍼답다. 그런데 초대라니.
‘루시퍼가 이렇게도 신중해 하는 이유가 뭔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들 중에 그를 불안케 하는 자라도 있나?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좀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만나보자.’
그의 판단은 신속했고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루시퍼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가자.”
그는 쿠사누스 셋만을 대동하고 진영을 벗어났다.
마계의 중앙군을 지나 루시퍼가 있는 곳까지 가며 제왕은 마계의 전력과 자신의 군대를 비교해보고 있었다.
‘수는 마계가 많으나 내 군대가 더 강력하다. 그런데…… 저놈들이 눈에 거스리는군.’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중앙군인 마황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마계전사들이었다.
시꺼먼 마신갑을 두 눈을 제외한 전신에 두르고 있는 마계전사들에게서는 산 자의 생기라고 느껴질 만한 어떤 기운도 포착되지 않았다. 무겁고 두터우며 칙칙한 스산함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마계 마황 루시퍼와 제왕이 만났다. 둘은 서로의 뛰어남에 감탄했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종 부드러운 미소를 상대에게 보이며 여유를 부렸다. 적진에 쿠사누스 셋만 대동하고 나타난 제왕의 배포를 대하며 루시퍼는 그가 인간 중 큰 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왕은 상대의 의중을 알고자 핵심을 파고들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끼리 먼저 자웅을 결하자는 의도인가?”
루시퍼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해석하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고 싶ㄴ지만 그래서는 안 도리 것 같다.”
“그런 뜨뜻미지근한 대답을 듣자고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그런가? 그럼 알려주지. 너희들이 직접 얘기하라.”
어둠의 천사들 중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자였다. 자신의 이름마저 버린 타락한 천사는 제왕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왕에게서 쫓겨난 자들에게서 그의 분명한 태도를 들은 상태였으니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대의 군대와 마계의 힘은…… 또는 다른 차원계의 전력 역시 모조리 소멸한다 해도 상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전면전으로 가 최종적으로 루시퍼님이나 대마신들, 그대들 쿠사누스가 사라져 전력 손실이 오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제왕은 어둠의 천사에게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근심을 읽었다.
“무엇 대문이지?”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섣불리 발설할 수 없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가지만 기다려 다오.”
“하하하하하.‘
제왕은 루시퍼가 보자고 하기에 혹시나 상호불가침의 협약이라도 맺자는 줄 알았다. 아니면 하룬을 굴복시킨 뒤에 결전을 치르자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룬을 공격하지 말아달라니. 그것도 어둠의 천사를 내세워서.
“못 들은 걸로 하지. 난 그대들이 하룬을 치겠다고 해도 말리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 한 번은 경합을 벌여봐야 할 상대이니까. 어느 쪽이 우선순위가 되든 마찬가지겠지. 너희들이 먼저 치겠다면 물러나 줄 수 있다.
그런데…… 하룬을 공격하지 말아달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현재의 상태에서 메타트론이 온다면 내게 하등 유리할 게 없다. 그 전에 너희와 결말을 내기 위해소라도 하룬을 속히 정리해야지. 안 그런가, 루시퍼?
뜻밖이야. 겨우 이런 얘기 따위를 들려주려고 날 불렀다니. 좀 치졸하군.”
“공격하는 걸 뭐라 하는 건 아냐. 너 제왕은 나와 다르다. 그들을 깡그리 쓸어버릴 참이 아니더냐?”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나의 새로운 통치를 선언하기 위한 본보기가 필요하다. 하룬을 소멸시키면 나머지 영자들은 내 지배를 당연시하게 될 터. 그 이후 네가 다스리는 마계와 마지막 싸움을 하게 되겠지.
그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라. 가만있으면 오히려 득을 볼 텐데 왜 이리 보채는지를 모르겠군.”
루시퍼가 더 한층 싸늘해진 어조로 말했다.
“네 군대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겠다. 그리고 지금의 하룬이라면 네 뜻을 이룰 수 있겠지. 그러나 네 군대의 전력 손실도 만만치 않을 거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네 생각보다 강하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좋아, 그렇다고 해두지. 문제는 그게 아냐. 어쩌면, 만약이긴 하지만 어둠의 천사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너와 우리들 그리고 영계까지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제왕은 방금 루시퍼가 어떤 내용의 말을 했는지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어둠의 천사가 입을 연다.
“그대는 분명 비밀차원과 손을 잡으려고 하겠지? 어쩌면 벌써 특사를 보냈는지도 모르겠군.”
“……”
제왕은 긍정하지 않았다. 루시퍼는 현재의 상황을 소상하게 밝혀 갔다.
“이들…… 어둠의 천사들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나와 너는 큰 실수를 할 뻔 했다. 나 또한 비밀차원과 모종의 밀약을 했던 적이 있었지. 한 가지 묻자. 제왕, 그대는 비밀차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제왕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막상 그들에 대해 언급하려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 메타트론님이 가장 싫어하고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이다. 비밀차원의 지배자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건 그들이 용을 미혹시켜 신을 떠나게 했던 자, 그 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 중 하나였다. 그의 능력은 당시의 내 아버지 메타트론이나 용에 비해 월등했다고 들었다. 그런 자들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제왕은 버럭 화를 내며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존재들. 하등 우리와 다퉈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데로 내 관심을 돌려 초점을 흐리려 하지 마라.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수가 많다 해도 그들이 이곳 차원계로 직접 들어올 일은 없다. 너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후후, 과연 그럴까? 아니, 그들은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어오지 않았던 거야. 처음 모든 일의 시초가 되었던 그자도 들어왔었고, 아바돈도 그들이 키운 하부 조직이지 않은가? 그들은 끊임없이 이 세계에 관여해 왔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이 세계를 침범하고 소멸시킬 수도 있다. 그런 능력이 그들에겐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무서우니 설마 힘을 합하지는 건가?”
“아니, 난 지금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거야. 그들이 이 세계를 침범한다는 건 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결국 신과 천궁과도 싸워야 함을 의미하지.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들에게도 신은 두려움의 대상이니까. 그런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어둠의 천사가 뒤를 이어 말했다.
“신은 그들을 용납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싸워야 할 제일 적으로 규정하고 계신다.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들 중 누구라도 당신은 이길 수 있으나 그들 모두라면 가능성이 없다, 라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생령인 파천. 그가 얻고자 하는 광명은 그들 어둠의 무리들과는 상극의 힘이다. 신은 그들을 용납했지만 인간인 파천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가 광명을 얻는다면 그들은 존재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이 세계를 침범해 올 것이다. 광명을 지닌 파천과 우리 주와 이 세계를 멸하기 위해서 올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걸 막으려 하는 신과도 싸우려 하겠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주께서는 마계와 너희 군대가 싸우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징후가 보이면 즉각 막아서라 하셨고 그럴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시키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우리들이 루시퍼 님과 너에게로 반분해서 갔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싸움을 시작하려하고 있다.
파천이 광명을 얻고 그들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이 우리 세계를 침범했을 때 그 힘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와 루시퍼님과 대마신들, 너희들 쿠사누스들 그리고 무한계의 강자들까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에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다. 파천이 광명을 얻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 그래서 모두가 그 이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라면 네 뜻대로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이 직접 침범해 들어오는 일은 없을 테니.”
‘하지만 그때는 메타트론님의 능력이 완성된다. 파천이 광명을 얻는 걸 실패하면 완성된 주님의 능력은 전 차원계를 상대로 할 수 있을 정도. 너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거지. 주께서는 그 힘으로 영계를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고 그 힘으로 비밀차원을 괴멸시키고 그 힘으로 신과 새로운 타협을 이끌어내실 거다.’
제왕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둠의 천사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많았다. 굳이 거짓을 말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상태가 그들 입장에서 아쉽거나 불리한 점은 없었다.
‘그들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의 능력이 가공한 건 사실이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소멸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의 지혜나 능력은 분명 경계해야 할 정도인 건 사실이긴 한데…… .
지금껏 나왔던 완전자들도 광명을 얻는다지만 그들은 모두 이 세계를 떠났다. 하지만 파천이 광명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힘으로 이 세계에 관여한다면. 일리가 있다.‘
이때 루시퍼가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새로운 말을 했다.
“지금 하룬은 완전하다고 볼 수 없지. 메테우스와 카란을 비롯한 봉인한 놈들이 아직 합류하지 않은 시점이니 말야. 만 그때까지 내 아들에게 전쟁을 수행하라 했다. 긴장감 없는 싸움만큼 맥 빠지는 일도 없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은가? 치더라도 이왕이면 힘이 갖춰진 뒤에 쳐야 마땅한 승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진정 영계를 지배하고자 한다면…… 그정도 능력은 기본이야.”
제왕은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좋다. 일단은 그럼…… 믿어보도록 하지. 설마하니 이래 놓고서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니겠지?”
괜히 해본 소리였다. 어둠의 천사나 아바돈이라면 모를까, 루시퍼는 그 정도로 치졸하지는 않다.
둘의 극적인 합의를 하룬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계의 제왕의 군대가 진격해오다 멈췄으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정도만 파악하고 있었다.
하룬의 사령부는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하룬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 나쁠 게 없었다. 제왕의 군대나 마계 어느 쪽도 현 전력으로 감당하기 벅찬 건 마찬가지였다.
로메로는 점차 초조해져 갔다. 그의 최초의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한 아바돈의 전멸에서부터다. 그는 이제 어느 것도 장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제왕의 군대가 무한계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마계의 공격을 받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대치하고 있던 아바돈과 마계가 먼저 싸우게 되는 행운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로서도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마지막 비장의 한 수를 던져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형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루시퍼와 제왕 사이에 연합하는 상황이 가장 최악이라 보았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연합을 했다면 벌써 하룬은 함락되고도 남았다.
로메로는 현재의 한시적 평화와 안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했다.

“제왕의 진군이 멈춘 것도 예상 밖이었고 마계가 잠잠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한, 두 번쯤은 격돌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 간에 이미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을 지도 모릅니다.”
루딘의 비행매소를 떠났던 그노시스 헤이룬이었다. 그는 장막 앞에 엎드려 있었다. 장막 뒤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염두에 둬본 적이 없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왕이시여.”
“그들을 싸우게 해야 한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다. 대책을 수립하고 작전을 세워라. 그들 간이 아니어도 좋다. 하룬과 마계든, 제왕이든 서로 싸우게 하라. 어차피 파천은 광명을 얻지 못한다. 결국 영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사라져야 한다.”
“굳이 섣불리 움직여 우리 쪽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게 좋을 듯 합니다.만…… . 기다리다보면 결국엔 싸우게 되지 않겠습니까?”
“잊었느냐! 메타트론, 그가 완성되면…… 골치 아파진다. 그 전에 한 놈이라도 줄여놓아야 해. 비밀차원에서 제공되는 힘은 한정되어 있다. 완성된 메타트론이라면 나도 장담 못한다. 그 전에 혼란을 기도해야 한다. 우리 전략을 노출시키지 않는 선에서는 그들 간에 충돌을 유도해라.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네, 알겠습니다.”
“카발라와 논의하면 방법이 생길 거야.”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비밀차원에서 다른 연락은 없었나?”
“파천이 광명을 얻게 된다면 곧바로 메덴을 장악하라는 지시만 내려온 상태입니다.”
“메덴을?”
“네.”
“파천이 광명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진정 그렇게 생각한단 말인가?”
“일말의 가능성이겠지요.”
“그가 광명을 얻으면 우리로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지만…… 어찌 보면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
“무슨 말씀이신지…… .”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 그들의 힘이라면 광명을 얻은 파천과 메타트론, 수호자와 용 등, 영계의 절대자들과 충분히 상대가 될 거야. 어쩌면 모두가 공멸할지도 모르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럼 우리는 즉각 비밀차원과 연락을 끊고 완벽하게 잠적한다. 그럼 결국 이 세계의 절대자들과 비밀차원은 공멸하거나 최소한 남은 자들도 치명적인 상태겠지. 그때 내가 나서서 남은 자들을 제거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운이 좋아 광명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세상에서 날 두렵게 할 힘이 있겠느냐! 그들의 말대로라면 광명으로 소멸된 기억도 회복시킬 수 있다고 했었다. 나를 따르는 자들의 기억을 모조리 회복시킨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헤이룬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소멸된 기억의 회복은 단순히 과거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그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축적된 힘을 되찾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현재 하급자의 영자들이라도 소멸된 기억을 회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도 광명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것이지.”
“그럼 파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알게 되겠지. 허나 광명을 얻었다는 건 완전에 가까워졌다는 의미. 그런 그가 그런 짓을 하지는 않지. 신이 그렇듯 그도 그자신의 성품에 어느 정도는 제한을 받게 될꺼야. 질서와 균형을 어지럽히는 혼란을 기도하는 짓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난 다르지.”
헤이룬은 생각했다.
‘광명이야말로 세상을 움켜쥘 최상의 보물이란 말인데…… 나라고 해서…… 그런 행운을 가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노시스 헤이룬의 내심에도 욕심이라는 놈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음을 마령의 본주는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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