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57화 : 영계연합군 예비군단 단장 라미레스
영계연합군 예비군단 단장 라미레스
하룬의 북쪽에 높게 치솟은 거봉, 페이룬트의 동굴 지대는 하룬에서도 가장 인적이 뜸한 지역이었다.
카란이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칠대부족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지혜전사단의 핵심 수뇌들이 모였다. 홀딘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즉시라도 첩자들을 색출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뇌는 가려 졌나?”
“심증이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만…… 확실한 물증을 아직까지 포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관찰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았으니 조만간 꼬리가 밟히겠죠. 아니면 이후 바꿔치기 한 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온다면 쉽게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흐음.’
라미레스는 걱정이 앞섰다. 현재 하룬의 내부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지도부가 흔들리면 제대로 된 지휘가 어렵고 결국엔 합일된 전력을 이끌어 낼 수 없게 된다. 라미레스는 부단주에게 방책을 물었다. 아난다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이 쉽게 마음을 비우지 못할 거란 점이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극심한 분열 양상으로까지 치닫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연합군 사령부도 별 대책이 없는 상태입니다. 봉인한 강지들이 돌아온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듯하고…… 결국은.”
“결국은?”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 신속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군령의 엄격함으로 통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관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을 내보이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게끔 두려움을 주는 방법이죠.
이왕이면 연합군 전체를 조절하고 감찰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 조직을 갖춰두는 게 좋겠지요.”
“두려움이란 말이지?”
라미레스는 뭔가 대칙을 세워질 듯도 싶었다. 그는 즉각 홀딘에게 명령했다.
“수뇌부가 가려지는 대로 일시에 첩자들을 제거 한다. 그리고 비공개가 아닌 공개적으로 처결하는 쪽으로 유도해봐. 그대들의 신분은 드러내지 않은 채 일부를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공개 처형한다.”
“그 말씀은?”
“그래 하룬의 현 상태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해보자는 의미다. 첩자를 색출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 홀딘 자네의 능력을 기대 해보지.”
홀딘은 탈을 손에 쥔 채 얼굴을 장난스럽게 일그러뜨렸다.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첫 번째 임무치고는 꽤나 까다롭네요. 그걸 저 혼자서 감당하는 건 왠지 억울한데…… .”
“내가 측면 지원을 해 주지.”
호천주가 물었다.
“연합군 상층부와 직접 접촉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그들이 우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니 적당히…… 둘러 대야죠. 그럼 각자 맡은 일에 전념들 하시고…… 나부터 가보겠소.”
라미레스는 일일이 세세한 부분까지 의논하고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었다. 큰 줄기만 잡아주면 부단주들 선에서 웬만한 건 결정되고 처결될 것이다.
그들은 라미레스가 사라지고 나자 부단주들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인 숙의에 들어갔다.
라미레스가 하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수뇌들은 소집되었다. 라미레스는 로메로와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상의를 마친 뒤였고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들 둘 사이에 결정된 사항은 현재의 하룬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 계책이었다. 로메로가 수뇌들에게 말했다.
“라미레스님이 예비군단을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이로써 연합군은 외형이나마…… 제대로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죠. 긴급 제안을 하겠습니다. 사령부 직할에 있는 감찰의 고유 권한을 예비군단에 일임하고자 합니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로메로의 제안은 모드를 긴장시켰다.
다른 이도 아닌 라미레스였다. 그가 감찰권 까지 지니게 되면 그 힘을 견제할 조직이 없어진다. 사령부를 제외한 7개 군단은 예비 군단장인 라미레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야마천주가 라미레스를 슬쩍 마라보더니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예비지원군의 전력이 가장 막강한 터에 그런 권한까지 준다면 그들을 우리 7군단 상위 조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충선이 나섰다.
“힘은 사용하는 이에 따리 얼마든지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라미레스님은 충분히 그 역할을 무리 없이 감당해 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령부가 감찰까지 담당하기엔 무리가 있음이 최근에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원만하고도 적절한 판단과 필요하다면 전체를 위해서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낼 수 있는 과단성도 요구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어느 차원계와도 상대적으로 연관성이 적은 라미레스님 이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일 것입니다.”
충선은 제대로 짚어냈다. 라미레스는 수련자로 무한계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마계를 떠났을 때 그가 처음 소속된 곳은 천상계였다.
그렇지만 그는 사실 어느 곳 소속이라고 볼 수도 없었으며 로메로등의 무한계 지도자들이나 선계나 천상계의 지도자들에게도 전혀 위축됨이 없는 강자였다. 게다가 그가 가진 올곧은 성격이 또한 이 일에 적합했다. 사실 그만큼 조정자의 역할에 적당한 이를 찾아내기란 힘이 들었다.
용족족장이나 불칸 등 무한계 쪽도, 충선을 비롯한 팔선 등 선계의 인물들도 찬성했다. 이번에도 걸림돌은 천상계 천주들이었다. 특히 1군단장인 야마천주의 반대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당사자인 라미레스가 있는 자리였기에 처음엔 슬금슬금 눈치를 모는 듯하더니 이제는 드러내놓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라미레스가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했다.
“나에게 주어질 권한 또한 사령부의 감시 하에 있게 되오. 그러니 내가 과도하게 직권을 남용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야마천주님의 견해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모두가 찬성하는 일에 지나치게 반대함도 이해가 가지 않소. 혹시라도…… 내가 예전에 마계 소속이었다는 것 때문이오?”
야마천주는 일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긍정하자니 보나마나 라미레스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생사를 결하자고 덤벼들 것이 분명했다. 그는 떠듬떠듬 암을 열어 갔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지나치게 한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자는 뜻이지요. 사령부로서 충분한데 굳이 예비군단에 그런 힘까지 쥐어줄 필요가 있냐는 말이지요.”
“그건 이유가 되지 않소. 사령부의 참모장인 로메로님이 이런 의견을 내기까지엔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해본 뒤에 신중하게 내린 결정일 텐데…… 혹시 천주께서는 로메로님의 이런 결정이 독단이라 생각하시는 게요?”
라미레스의 억지스런 물음에 야마천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지…… 어리석은 저로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구려. 그렇다면…… 내게 감찰권이 주어지면 천상계 천주님들께 불이익이 발생할 것이라 여기는 거요?”
사실에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었다. 라미레스가 천주들보다는 무한계 수뇌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야마천주는 대답을 기피했다. 라미레스가 로메로를 직시하며 잘라 말했다.
“할 수 없군요. 신뢰가 우선되지 않고서는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소. 예비군단을 맡는 일을 철회시켜 주시오. 난 그저…… 아무 군단이나 소속되어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전쟁에 임하겠소.”
모두가 당황할 만큼 급작스런 심경 변화였다. 로메로가 말리고 나섰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제석도 같은 말을 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대사를 그르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발 부탁이니 거절치 마시고 책무를 담당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비군단은 라미레스님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조직이거늘……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노군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소. 생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맡지 않겠다면 예비군단을 없애버리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야마천주가 시선을 받게 되었다.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운 법이다 그가 라미레스의 심기를 건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이대로 라미레스가 군단장직을 사양하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을 야마천주가 져야 할 판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으로 전개되자 야마천주도 내심 다급해졌다. 심지어 천주들 중 일부도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으니 다른 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로메로가 야마천주와 다른 천주들을 한 번에 훑어가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한 발짝씩만 양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찰권을 가진다 해도 현재와 별반 달라질 것도 없소. 생각해 보십시오. 사령부의 재가를 받지 않고서는 수뇌들에 대해 탄핵도 강등도 시킬 수 없소. 잘못이 있으면 가려내고 내부적으로 상호간 조율하는 정도의 권한이라 할 수있소. 그러니 이 정도에서 결정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라미레스가 나섰다.
“아, 그럴 것까지 없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길 떠나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연합군에 소속되어 힘을 보태는 일을 마다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군단장직을 고사하겠다는 겁니다.”
로메로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생각을 바꾸실 수는 없겠습니까?”
“뭐 정…… 그렇다면…… 부대장 정도의 직책을 주십시오.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전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으음. 본인이 이렇게 사양하는데…… 더 이상 강요할 수도 없고…… . 참 난감하군요. 혹시 따로 소속되고 싶은 군단이라도 있으신지…… .”
로메로는 라미레스의 의견을 받아들일 듯이 말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로 군단장들이 긴장했다. 라미레스를 수하로 둔다는 건 껄끄러운 일이었다. 수하보다 약한 상관은 불안한 법이다. 또한 권위도 서지 않는다. 일곱 명의 군단장들 중 라미레스보다 스스로를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문제였다. 라미레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1군단이 낫겠군요.”
1군단은 야마천주가 맡고 있다. 야마천주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일이 요상하게 꼬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로메로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이렇게 결정되는가? 야마천주는 다급해졌다.
“참모장님!”
“왜 그러십니까?”
“정말로….. 그렇게 하실 겁니까?”
“왜요?”
“안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라미레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무슨 뜻이오? 난 부대장 자격도 없는 놈이란 뜻이오? 당신 밑에 둘 자격도 없는 놈이란 뜻이오? 그런 거요?”
야마천주는 당황해 진땀을 흘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
무슨 말을 하겠는가?
‘차라리 예비군단에 감찰권을 주는 것이 낫지. 내 밑에 둔다는 건 정말이지…… .’
야마천주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저 말썽장이 무법자를 수하로 둬봐야 통제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엔 군단장의 위신은 고사하고 눈치나 보며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뭡니까? 뜻을 분명하게 하십시오.”
야마천주는 한 풀 기가 꺾여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비군단은 마계의 중앙군을 대비한 핵심 전력인데…… 또한 다른 군단을 지원해주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군단입니다. 그러니…… 예비군단은 예정대로 편성되는 것이 마땅하고…… 에, 또 적임자는 라미레스 님 뿐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령부에서 결정했으니 저는……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예비군단이 감찰권을 행사하는 것에 전 반대하지 않습니다. 네, 찬성합니다.”
라미레스는 그것도 기분 나쁜 듯했다.
“지금 절 데리고 장난치시는 겁니까? 내가 1군단장님의 장단에 이리저리 춤을 춰야 합니까?”
“그런 뜻은 없었습니다. 잔지…… 대의를 생각해 내린 결정일 따름입니다.”
지켜보는 이들은 야마천주가 라미레스에게 휘말렸으며 이 모든 게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야마천주만은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는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상대가 라미레스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어쨌든 이쯤에서 라미레스는 양보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흐음, 뭐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저로서도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군요. 누가 맡아도 맡아야 할 자리이고…… 그리고 또 나보다 마계에 대해서 잘 아는 분들도 없으니…… 예비 군단장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일을 사전에 모의했던 로메로조차 황당해했다. 라미레스가 하는 짓을 군소리 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치앙마는 한쪽에서 기가 차는 심정이었다.
“저 오만한 야마천주도…… 라미레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군. 저자를 통제할 자가 통틀어서도 없다는 것이 또다시 증명되는구먼.”
과정이야 어쨌든, 모양새가 좋았든 좋지 않았든 간에 라미레스가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예비 군단장직에 임명되었다. 그는 곧바로 준비했던 폭탄선언을 좌중에 터트려버렸다.
“예비 군단 편성은 제 임의대로 하겠습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전력은 지금 이후로 7군단에 흡수될 것이니 여러 군단장님들께서는 이점 착오 없이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메로는 궁금했다.
“미리 준비해두신 전력이라도 있으신지요?”
“네. 다행이 제게 미리부터 준비해놨던 전력이 있습니다. 비록 그 수는 3백이 조금 넘지만 최강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겁니다.
먼저…… 두 가지 일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하나는 기강 확립입니다. 전쟁에 임한 군대가 전쟁에 임한 군대가 전쟁에 돌입하기도 전에 내부적인 갈등으로 사분오열 되어 있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특정 군단을 따질 것도 없이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런 갈등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전 저에게 주어진 감찰권을 이용해 좀더 강도 높은 조사를 해나갈 것이며 분란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리원칙에 입각해 처결하겠습니다. 참모장님.“
“네.”
“제게 주어진 감찰권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 제한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지 부대장 이상의 수뇌들일 경우에 한해서만….. 사령부의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군요. 여기계신 군단장님들과 부대장들이 그런 한심한 짓들을 벌였을 리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는 씩 웃는다. 그걸 본 자들은 등골이 써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합군에 침투해 있는 적의 첩자들을 가려내는 일입니다. 이 일 또한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었고 곧 마무리 단계에 들어갑니다. 아직 그들의 수뇌에 대해서는 좀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조만간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제 수하들이 협조요청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수하들은 저를 닮아서 좀 거칩니다. 그들이 결례를 범하더라도 제게 직접 따져주시고 나무라거나 핍박하지는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하긴……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아도 설마하니 적의 첩자를 가려내는 일인데 그 정도는 묵인해 주시겠지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이 시간 부로 각 군단의 부대장들 이상은 자기 자리를 특별한 임무 수행이 아니고서 이탈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만약…… 그런 일이 제 수하들에 의해 보고 되면 전 즉각적으로 조치할 것입니다.”
라미레스의 어조는 협박에 가까웠다 거침없는 언사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 도무지 참견하고 나설 기회조차 주지 않을뿐더러 괜히 그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원리원칙에 입각해 처결하겠다고 하는데 반발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서면 첩자로 몰아버릴지도 모르지.’
치앙마의 생각이었다. 치앙마는 라미레스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을 바라보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야만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긴장하고 있었다. 라미레스에 대해 평소부터 익히 경험한 바 있던 무한계의 인물들이야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기에 당연하겠거니 여기지만 다른 차원계의 인물들은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라는 얼굴이었다.
로메로가 몇 가지 사항을 통보하고 수뇌회의는 끝이 났다.
라미레스의 말처럼 그 시간 이후로 하룬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어디서 뭐하던 자들인지도 모를 신비인들이 활개치고 다녔고 그들이 드나들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처음에 몇 명이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저항도 만만찮았지만 제압은 신속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적과 내통한 죄로 체포하겠다.”
1군단 1부대장인 지국천왕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자신의 충성스런 직계수하인 신장이 적의 첩자로 지목받은 것이다. 그것도 지휘관 회의에서 말이다.
갑지기 난입한 자들은 얼굴에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다섯 명. 하나는 은색의 탈을 나머지는 황색의 탈을 쓰고 있다. 눈 부위만 뚫려있는 무면탈은 그 자체로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 였다. 더군다나 그들의 기세가 또한 대단했다. 지국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무고한 자를 첩자로 몰다니…… 이러고도 너희가 무사할 성싶었더냐!”
지목 받은 신장은 태연한 신색으로 지국천왕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은색의 탈을 뒤집어쓴 제5대장인 홀딘이 비웃음을 흘렸다.
“무고하다고 했는가? 그건 곧 가려진다. 그러니 당신은 이만 비켜나시지.”
“뭐라고?”
지금은 비록 연합군의 부대장을 맡고 있지만 그의 신분이 천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지국에게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자가 말을 턱턱 놓고 있었으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홀딘이 다시 말했다.
“죄인을 은닉하거나 옹호하거나 도주시키는 행위 또한 반역죄에 해당한다. 1군단 1부대장은 이 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첩자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건 우리의 몫이니 혹여 납득할 수 없거든 이후 결과를 기다려라.”
“네 놈들이 진정 죽고 싶은 거냐! 아무리 생사군단이라지만 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내 수하를 체포하려거든 군단장이 직접 와야 한다.”
그새 예비군단은 연합군 내에서 생사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지목된 자는 하나도 예외 없이 첩자로 밝혀졌고 결국엔 처형당했다.
그러다 보니 생사군단은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하급자의 경우엔 그들이 뒤집어쓴 탈바가지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홀딘은 상대가 만만찮게 나옴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해하고 있군. 그대에게 그런 걸 요구할 권리도 없을뿐더러 내가 그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자는 본 군단의 조사에 의해 첩자로 확인됐다.
상관으로서 그대는 동행할 권리가 있으며 조사 과정을 지켜볼 권리도 있다. 그 이상을 요구하지 마라.”
지국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엔 분노의 일성을 토해냈다.
“네 놈들을 이대로 돌려보낸다면 나 지국의 명성에 흠집이 나겠구나. 오만한 놈들. 라미레스 군단장을 보아 참으려 했건만…… 더 이상의 인내를 요구하지 마라.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간다면…… 네 상관의 얼굴을 보아 없었던 일로 하겠다.”
이 정도면 엄청나게 양보한 것이다. 그이 말처럼 라미레스에 대한 부담이 아니었다면, 후에 치르게 될 고초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출수했을 것이다.
“답답한 위인이군. 정 그렇다면…… 그대까지 일단은…… 체포할 수밖에 없다.”
“뭐라고?”
1부대 소속의 지휘관들마져 이번엔 분노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다섯 명을 둘러쌌다. 지국이 공격하려는 수하들을 제지시켰다.
“흐흐, 좋다. 네 뜻에 따라주마. 대신…… 내 수하에게 죄가 없음이 드러난다면…… 그때는 어쩌겠느냐?”
“뭘 원하나?”
“너희들 다섯 놈의 목숨을…… 그 대가로 받겠다.”
“좋아, 주지.”
당당했다. 지국은 상대가 너무도 쉽게 응해오자 일시 불안했다.
‘설마 정말로…… 첩자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지국은 신장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한 치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심하는 지국.
그는 신장과 함께 생사군단의 5대와 동행했다.
홀딘은 그들을 한 곳으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은색 탈을 쓴 네 명이 더 있었으며, 홀딘의 수하들이기도 한 황색탈의 제5대 대원들도 여럿 보였다. 그리고 사령부 소속인 몰간이 참관인 자격으로 와 있었다.
잠시 뒤 라미레스와 로메로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참관인 하나와 부대장 한 둘 정도만 참석하건만 이번에는 상대가 꽤 거물인 하나와 부대장 한 둘 정도만 참석하건만 이번에는 상대가 꽤 거물이었기 때문에 여러 인물들이 관심을 보였다.
홀딘이 신장이 포박되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드러날 것 순순히 자백하는 게 나을 듯한데, 네 생각은 어떠냐?”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자들을 슬쩍 바라보던 신장은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첩자라니……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지 않은가? 내가 적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보여라.”
“후후, 결국 번거로움을 자초하는군.”
“고문 따위로 내 입을 열 참인가 보군.”
“그런 유치한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가 지닌 확신이면 충분하거든. 여기 끌려온 놈들 치고 제 입으로 불지 않은 놈들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
“너희들은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아바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들. 그리고 또 하나는 대적자와 관련성이 있는 놈들. 둘 중 넌 어디 쪽이냐?”
“난 천상계 지국천의 신장 친타. 그 이외의 신분이란 없다. 왜 나를 첩자로 오인했는지는 모르지만…… 넌 실수하고 있는 거야.”
“다들 그렇게 말했지.”
홀딘은 라미레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라미레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홀딘은 친타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바돈이나 대적자들에게 받은……. 저주의 미약을 복용했다는 사실. 저주의 미약을 복용했다 해서 외형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은 자들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 능력을 일시적으로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좀 특이할 뿐이지.
하지만…… 그것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이지.“
그때까지도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던 친타가 최초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매우 짧은 순간에 그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소리에 민감한 것은 오히려 득이 되는 뛰어난 능력이지만 지금처럼 적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치명적이다. 그로 인해 금방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영역대의 소리는 저주의 미약을 먹은 너희들에게 고통을 준다. 참을 수 없는 그 고통을 아직까지 견딘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자 시작해볼까?”
홀딘의 손에 그 전까지 보이지 않던 기이하게 생긴 물체가 들렸다. 투명한 날개를 지닌 작은 새와 같았다. 부리가 열려 있고 꼬리 쪽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홀딘은 계속 말했다.
“이 구멍을 통해 응집시키면 소리가 발생한다. 그 소리는 너에게만 집중될 것이다. 고통은 잠시. 너에게서는 금세 내가 발견하고자 원하는 징후가 보일 것이다.”
홀딘은 프리즈마를 구멍을 통해 응집시켰다. 부리가 더욱 넓게 열리고 투명한 날개가 푸르게 변해갔다.
홀딘은 그것을 신장 친타의 한 자 앞까지 접근시켰다. 친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만둬. 이런 소리라면 누구나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작해낸 증거라면 난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소리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내실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고함쳤다. 지국이 로메로를 보며 항의했다.
“내 수하의 말이 맞소. 저렇게 고통에 못 이겨 자백하게 된다면 그것을 어찌 정당하다 하겠소. 이건 명백한 증거 조작에 해당하오.”
라미레스가 설명해 주었다.
“그것뿐이라면 그렇겠지요. 저 고통은 미약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증폭시킵니다. 그 순간 저 자의 얼굴에 뚜렷한 변화가 생깁니다.”
지국은 빠르게 친타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으으으으.”
“꽤나 오래 가는군. 너는 확실히 다른 놈들보다는 좀더 강한 놈이었군. 하지만…… 그래봤자 네가 겪게 되는 고통의 시간만 늘어날 뿐이지.”
“으아아아.”
“고통스러운가? 자 말해봐라. 넌 어디 소속이며 그 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가?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첩자들을 모조리 불어라.”
“끄어어억. 난…… 첩자가 아니다. 난 천상계의 자랑스런…… 신장이다.”
지켜보던 지국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닌 것이 가려진다면…… 네가 받은 고통의 대가를 톡톡히 보상하게 해주겠다, 라미레스. 너도 이번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 할 것이다.’
“꺽,꺽.”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때까지도 친타에게서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입가로 허연 침과 피가 조금씩 섞여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홀딘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 확신은 오랜 기간 동안의 조사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신 그는 상대의 인내심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 놈이군. 어느 정도까지는 미약이 발효됨ㅇㄹ 막을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거늘. 이놈은 정말 대단하다.’
바로 그때였다.
“크크크크.”
친타의 얼굴이 화 붉어지는가 싶더니 눈과 코와 입 주위로 새파란 불꽃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불꽃은 점차 뚜렷한 형상을 갖춰 갔다.
“으하하하하, 죽인다. 모두 죽이겠다.”
“이제야 정체를 들어내시는군.”
“네 놈들이 이런…… 수법을 쓸 줄은 몰랐다. 흐흐, 하지만 내가 첩자인 걸 알았다 해서 달라질건 없다. 모두 죽이면…… 그만이다.”
신장을 포박하고 있는 건 루딘족이 만든 순수한 금속 메그나였다. 메그나는 영자들이 애용하는 병기를 만드는데 사용될 정도로 질기고 강한 금속이었다.
두 손과 두 발과 몸통까지 결박당한 채 그것을 깨트리려면 상당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신장들 중 그 정도로 강한 작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지국은 신장 친타가 적의 첩자임이 드러나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와 함께 한 세월이 얼마였던가. 충성스런 수하로만 알았는데 적의 첩자라니, 이 사실을 지국은 결단코 믿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모든 게 가려졌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홀딘은 여전히 태연한 신색으로 물었다.
“너는 어디 소속이냐? 누구의 명령을 듣고 있느냐?”
“아바돈의 성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내 죽음으로 너희들을 데려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영광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물든 자군.”
홀딘은 라미레스를 돌아보았다. 라미레스는 그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라미레스가 말했다.
“깨끗한 죽음을 선사해 주라.”
그리고 일어섰다.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로메로도 몰간도 일어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친타의 전신에서 거센 화염이 일어나며 메그나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의외의 일이었다.
“죽어라.”
친타의 손에서 화염은 더욱 기세를 부리며 전면의 홀딘을 덮쳤다.
“아니.”
“저, 저것.”
로메로와 몰간이 다급한 기성을 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라미레스는 돌려가던 몸을 멈추지 않는다. 그때 홀딘의 차가운 음성이 실내를 울렸다.
“애쓰지 마라. 죽음의 순간은 잠깐이니 고통도 없을 것이다.”
홀딘에게 다가섰던 화염은 자취마저 찾을 수 없고 어느새 홀딘의 손은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몰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성을 발했다.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친타의 일그러진 얼굴. 홀딘이 곁에 있는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자의 시체를 처리하세요.”
“네.”
천상계의 신장마저 첩자였다는 사실은 천주들에게 충격적인 일로 받아 들여 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생사군단은 이후에도 첩자들을 잡아들이는 걸 멈추지 않았고 그 수는 물경 3백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천상계 무한계, 선계 할 것 없이 골고루 섞여 있었으며 꽤나 높은 직급의 인물들도 상당수였다.
일이 이쯤 되자 생사군단의 행사에 반발하거나 제동을 거는 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생사군단은 단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도 없었다.
단 한 번 천상계 현천(玄天)의 천주가 수하가 잡혀가는 걸 참지 못하고 대들다 망신을 당한 것을 빼고는 모두가 협조적이었다. 물론 나중엔 첩자로 지목당한 이들을 굳이 가려내는 번거로움조차 생략된다. 첩자들이 지목당하는 순간 정체를 드러내며 도주를 감행하거나 대항해 왔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자 오히려 생사군단으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어차피 그들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는다는 건 포기해 온 상태였으니 깨끗하게 죽음을 내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걸 지켜본 자들을 통해 생사군단 대원들의 실력이 연합군 전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정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극강한 실력자들이었다. 낮춰 본다 해도 오히려 오대전사 단주들을 능가하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들의 활약 덕분인지 하룬은 안정되어갔다. 더 이상 서로 간 분쟁하거나 충돌하는 사건들도 뜸해져 갔다.
라미레스와 부단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난다가 말했다.
“이제 수뇌만이 남았습니다. 연합군 내에 침투해 있던 첩자들 중 우리가 파악해낸 자들은 모두 솎아 냈습니다. 그들 중 지휘자로 추정되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자를 가려내야 합니다.”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걸로 보아 보통 치밀한 자가 아닙니다.”
부우버의 말이었다. 그러자 홀딘과 호천주가 차례로 의견을 말했다.
“그럴 테지요. 아마도 생각도 못했던 수뇌 중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꼬리조차 잡히지 않은 자이니…… 신중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놓칠 가능성도 큽니다. 그자가 지금이라도 외부로 이탈한다면 차라리 나을 성싶은데…… .”
라미레스가 홀딘에게 물었다.
“가능성이 있는 자를 분류해 놨을 텐데?”
“수뇌들 중 행적이 불분명한 시기가 있었던 자들은 모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여러 단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확신을 가질 만 한 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은 자신이 첩자의 수뇌라고 직접 나서지 않는 한 가려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시행함도 무리가 따랐다.
“그들 모두에 대한 감시는 늦추지 말고 좀더 사태를 지켜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