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59화 : 광명은 내 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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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검 – 159화 : 광명은 내 의지가 되었다


광명은 내 의지가 되었다

파천은 극심한 혼란 중에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은 파천을 둘로 셋으로 때로 그 이상으로 분열시켜갔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그동안 그를 지탱시켜 왔던 의지를 분리시킨 결과였다. 원령의 순수함은 합일되지 않고 저마다 제 성질을 표현해내기 시작했으며 이는 파천이 겪고 있는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하나에 머물지 않고 어디에도 집중되지 않는 의식은 내부에서 외부로 향한 시점의 방향성을 바꿔버렸다.
원령은 파천의 의지 여하에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시도해 갔다. 혼재된 관념은 파천을 철저하게 고립시켜 갔다. 대상을 규정할 수 없는 전체와의 고립이었다.
곧바로 자기 부정이 이어졌다.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은 그가 지니고 있던 의지를 포기함을 뜻했다.
광명에 대한 관심과 집착마저 더 이상 파천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파천이 떠올리는 생각들은 지극히 단편적이었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렇지만 간혹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한 의식으로 뒤섞인 관념 가운데서 동질의 성격들을 추출해 하나로 이어 가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도 자아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기계적인 의식 발현에 불과했다. 이러한 추상적인 관념들의 취합이 파천의 의지를 되살려 내지는 못했다.
‘신은 죽었다. 내 안에서 죽었다. 내 의지도 신의 의지도 소멸했다. 나를 규정할 근거가 사라졌다. 나는 환상에 불과하다. 환상, 환상, 환상이다. 잠시 있다 없어질, 실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사실 그럴 듯하게 체계를 갖추고 있는 자아라는 놈의 속임수다.
모두가 죽었다. 아니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었어.’
혼란이 극심하면 할수록 오히려 파천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었고 실제로 죽어가고 있었다.
자기 부정은 그를 둘러싼 세계를 부정해 가며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아 갔다. 그 또한 허무함으로 곧 쓰러질 것이었다.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혼란은 파천의 개입을 제외시킨 원령만의 활동이었다.
파천은 보지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죽어버린 존재나 다름없었다. 파천을 죽이고자 한다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터였다. 파천은 앉거나 서거나 뒹굴며 조금씩 생명수 가까이 다가선다. 고요히 흐르던 생명수 가까이 접근했을 때였다.
파천은 반탄되는 힘에 항거하지 못하고 뒤로 힘없이 퉁겨졌다. 그럼에도 파천은 그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도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다양한 원령의 성질들이 어떤 확고한 상태로 안정되지 못하고 서로 반발하다 선택해낸 것이 생명수의 기운이었다.
저절로 이끌려가고 퉁겨지고를 반복하고 있는 파천의 모습은 결코 살아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수백, 수천 번이나 되풀이 되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불안한 상태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원령의 의지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파천을 생명수로 근접시키고자 하는 원령의 의지를 파천은 불복할 수 없는 지고한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견고하던 원령체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파천의 원령체가 특정 지점에 닿으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생명수를 보호하고 있는 성질은 이물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힘은 지금껏 파천의 신체가 겪어봤던 그 어떤 힘보다도 월등했다.
살이 터지고 팔과 어깨 부분이 골절되었다. 얼굴이 피에 젖어 간다. 생명수를 향해 고개를 든 파천의 얼굴을 누가 보았다면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가야 한다. 저곳으로 가야 한다. 저곳으로…… 가야…… .’
이처럼 단순한 의지가 또 있을까. 육신이 상처받는 고통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파천. 그의 움직임은 점차 둔화되어 갔다. 바닥을 긴다. 짓이겨진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과 진배없다. 단순한 의지만 남고 기능마저 서서히 상실하고 있는 신체는 그 상태로도 생명수의 반발을 이기고자 애썼다.
생명수는 불완전한 원령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파천이 생명수를 건너 생명나무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원령체를 완성해야 한다. 원령 자체는 순수한 것이다. 불완전한 원령이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원령의 배열과 조화였다.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으면 원령 간에 반발력이 생겨나고 그 순간 전체로서 불완전한 성질을 대표한다. 원령체를 완성했다는 의미는 원령의 성질을 완벽하게 조율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파천은 그런 상태를 어떤 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설사 알고 있다 해도 현재의 파천으로서는 그런 의지를 일으킬 수도 없다. 그럼으로 생명수로 다가서는 파천의 행위는 무모한 것이었다.
움직임이 멈췄다. 바닥에 코를 박고 엎드려 있는 파천의 신체는 간신히 가느다란 호흡만 토해내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호흡이 멈추는 순간 파천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도전은 이렇게 마감되는 것이다. 생령으로 완전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광명을 보고자, 얻고자 했던 파천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찢어진 피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흙바닥을 적셨다. 기식이 엄엄한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는 의식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죽음 직전에서야 그에게 자비인 양 은총이 내린 것이다.
그렇지만 파천으로서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음이 더 나을 뻔 했다. 파천은 마지막 보존된 생명의 기운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좌절과 실패로 인해서 장차 인간들이 겪게 될 더 큰 불행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자책감보다도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라는 고독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고독감은 죽음이라는 한계가 주는 두려움보다도 더 잔인하게 파천의 마음을 부수고 상처 내고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을 예감했다.
‘모든 게 끝났다. 신은…… 나를 인간인 상태로 죽이고자 했었고 이제 그 일은 이뤄졌다. 내가 인간들에게 주었던 상실감을 인간으로서 겪게 한 것이다. 내 형벌은…… 이제 시작이다.
난 영원히 저주받겠지. 그리고 다시는……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 다시는…… 날…… 느끼지 못한다. 그래, 차라리 잘 된 이이야. 모든 게 제대로 된 것이지.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인간들은 낙원에서 고통도 슬픔도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 아닌가.
천사들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고, 내 동류들도 더 이상의 큰 욕심은 부리지 않았겠지. 나 하나로 인해…… 모든 게 엉망이 돼버린 거야. 그러니…… 신의 이런 결정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야.
크크크크, 애초에 난…… 신도 인간도 될 수 없었던…… 버려진 존재, 잊혀진 존재였으니까.’
그때 신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희에게도 기회는 공평한 것. 내 사랑은 너희에게도 향해 있다.”
파천은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신은 나를 버렸다. 이제 나도 신을 버리겠다.’
파천은 화들짝 놀랐다. 이제야 그는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조금 전까지도 신에 대한 미련이 있었음을.
‘대체 무엇에 그리 집착했던가? 우리들은 신에게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서로를 용납하기엔 너무도 변질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런 집착이 내 안에 있었던가?’
신에 대한 기억이 또다시 그에게로 왔다.
“너희는 시간을 순차적으로 보지만 내게는 동시적이 것. 너희에게는 영원한 것이 내게는 순간과도 같다. 내게서 난 것이 내게로 돌아옴은 당연하다.”
‘그에게서 났으니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어떻게? 모두라면…… 나도 포함도니건가? 크크, 그럴 리가 없다. 신의 계획은 언제나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것. 신은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의심하고 죄를 범한 인간들을 용서하기 위해 스스로의 품성 중 일부를 제약시켰고 분리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성품은 여전히 이 우주 안에 존재한다. 그는 징벌의 시기를, 특정한 그때를 늦췄을 뿐이다. 심판하지 않는 신이란 무의미하다.’
“저들 사람들을 보라. 얼마나 순수하고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난 저들을 통해 모든 피조물에게 내 사랑을 증명할 것이다. 저들은 잠시 방황하고 잠시 흩어지겠으나 결국엔 하나로 모일 것이다.
난 저들과 함께 하겠다. 저들과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고난을 받겠다. 저들 중에 내가 함께 있겠다.”
‘신은 인간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수한 신뢰가 그들을 더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라고 했다.’
“저들만이 날 의심하지 않는다. 저들은 날 따로 구별하지 않는다. 저들과 나는 같기 때문이지. 내 안에 저들이 있고 저들 안에 내가 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들 역시 사람이라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안에도 신이 있다고 했었다. 그럼 현재의 내 안에도 신이 있다는 말인가? 인정…… 할 수 없다.’
“너희들 역시 사람이다. 너희 안에도 내가 있다. 그런데 너희는 저들과 같지 않았다. 가까이하면 구속한다 하고 멀리하면 버렸다고 말했다. 끝내 내게서 벗어나길 원했다. 날 의심하기 시작한 너희들을 곁에 둘 수는 없었다.”
‘그건 억지요. 당신이 먼저 우리를 구별했지…… 우리가 먼저 그러진 않았소. 우리를 두고 또다시 다른 존재들을 창조한 것 자체가 그걸 확증하는 것이오.’
“끝내 모든 걸 회복할 것이다.”
‘그럴지도…… .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소. 그런 행운이. 보시오, 내 이 처참한 모습을. 당신은 저들 사람에게만 그런 기회를 허용했던 거요.’
“너도 사람이다.”
‘아니오. 사람이라는 걸 부정한 지는 오래. 우린 당신과 같은 신이 되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난 저들을 창조한 당시에 모든 걸 다 주었다. 저들에 대한 계획은 당시에 모두 완성되었다. 모두가 회복하게 되는 것은 저들이 내 형상을 본떠 지음 받았기 때문.”
‘모든 걸 다 주었다고? 형상을 본떠서…… 지었다……. 는 의미는…… .’
파천은 신이 그에게 했던 말들을 되씹으며 부정하고 또한 질문했다. 그러다가 벼락처럼 그의 정신을 헤집는 말이 있었다. 단 한 번도 특별하게 여겨보지 않은, 특별한 의미로 구분해보지 않았던 말이었다.
‘내게서 난 것이 내게로 돌아온다. 형상을 본떠서 지었다. 창조한 당시에…… 모든 걸 다 주고…… 그 당시 이미 완성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가 내 안에 있다는 의미가…… 따로 독립된 존재로…… 돕는 존재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다는…… . 설마…… 그런 뜻인가?’
파천의 죽어가던 눈빛이 생기를 찾아갔다. 마지막 열정을 태우는 불꽃과도 같이 빛났다.
‘사람들이 신을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그들이 신을 몰랐던 이유는……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신이 그들에게 자신을 감춰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나? 그래, 그럴지도.
신과 그들은 하나였다. 신이 그들 안에 있고 그들이 신 안에 있었다. 그들은 신이었던 것이다. 서로 하나였기 때문에 구별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 했단 말인가? 이런 바보 같은…… . 그럼 우리도 그와 같다면…… 신이 되고자 그에게서 벗어난 우리는…… 허허.’
일시 파천은 뭐가 뭔지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멍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다시금 지펴졌다. 여든 한자의 글자.
그건 파천이 인간 세에서 보았던 천부경의 여든 한 자였다. 그것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석삼극 무진본 析三極 無盡本…… 인중천지일 人中天地一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이는 분명 완전자 중 하나가 인간세에 남긴 경구가 분명하다. 자신의 깨달음을 인간들에게 전해주고자 남겼음이 틀림없다. 천부경의 뜻은 신의 말과 너무도 일치한다.’
파천은 천부경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일치시켜 갔다. 순차적이 아닌 거의 동시적으로 그는 바라보았고, 그 뜻은 외부에서가 아닌 그의 내부에서 다시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숨을 놓을 것 같던 파천의 신형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생명수로 다가섰다. 그토록 반발하던 생명나무로 이끌려갔고 생명나무 아래에 저절로 고요하게 좌정하게 댔다. 파천은 눈을 감은 채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천부경의 여든 한 자는 신과 우주와 인간과 만물에 대한 최종적인 선언이다. 인간의 언어로서 진리의 실체를 온전하면서도 충분하게 설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보다 더 완벽하게 담아내기는 힘이 든다. 처음과 끝의 구절은 전체의 중심을 이루며 하나로 묶여 있다. 핵심을 이루고 있는 선언이다.’

일시무일시 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하나로 시작하고 하나로 끝난다.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이다. 신에게서 시작되어 신으로 돌아가나 그 시작과 끝은 나눔이 없는 동시적인 것이다. 신에게서 만물이 나오고 만물이 다시 신으로 돌아가지만 나옴이 시작도 아니오, 돌아감이 끝도 아니다.
사람은 악한 것이 아니라 결여되었음으로 완전에서 멀어진 것이다. 신에게서 분리된 인간은 그에게로 합일됨으로만 완전성을 획득할 수 있다. 신에게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전 과정은 끝이 없는 우주의 생성과 분열과 정화와 합일이다.
그 과정 중에 신의 의지는, 섭리는 모든 것에 기초하고 있는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전체다. 그 모두는 분리된 개체로 볼 수 없는 하나다.’

석삼극 무진본 析三極 無盡本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극으로 벌어지고 갈리지만 근본은 다하지 않고 여전하다.
하늘이나 땅이나 인간으로 화했으나 근본은 동일하다. 신의 의지는 우주에 가득하고 충만된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본질은 일치되어 있다.
서로 구분함이 마땅하지 않다. 완전성은 태초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신의 선포와 도움과 행위적 속성으로, 하나로 합일되어 가는 과정이다. 삼극은 서로 관계하며 하나임을 주장하고 있다.’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신에게서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오고 인간이 나왔다. 하늘은 신의 첫 번째 형상이요, 땅은 신의 두 번째 형상이요, 인간은 신의 세 번째 형상이다.’

일적십거 무궤화삼 一積十鉅 無櫃化三

‘일이 쌓여서 십의 완전한 것이 되어도 담을 그릇이 없어 인간으로 화했다. 신의 완전성은 인간에게 내제되어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발견함으로 신에게로 귀일될 수 있다.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의미이다.
신은 자신의 완전성을 인간에게 담아두었다. 태초부터, 인간이 창조된 그 순간에 이미…… 모든 존재는 완성되어 있었다.’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하늘과 땅과 인간의 두 번째 형상 역시 사람 안에 있다. 이는 음과 양처럼 생각될 수 있는 모든 반대적 성질을 말함이며 그로서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속성의 구분일 뿐 실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인간들의 모든 불완전한 판단은 서로 상대적이다. 이 상대성은 가능성의 영역이며 확연하게 규정되고 구분되는 실상은 아니다. 상대적인 관념은 서로를 충분케 하고 돕고자 한다. 극단의 분열이 아니라 중도적 존재로서 인식해야 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지탱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간다. 영향을 주고 도와 결국엔 하나로 일치되기까지 쉼 없이 활동한다. 신의 의지가 멈추지 않는 한 이런 구분은 끊임없을 것이다.’

대삼합육 생칠팔구 大三合六 生七八九
운삼사 성환오칠 運三四 成環五七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화한 신이 합하고 조화되어 그 이상의 다른 형상으로 변하고 발전된다 하더라도 이는 동일하다. 선과 악을 나누고 음양의 이치를 따지고 육합이니 칠성, 팔괘, 구궁을 논하고 설명한다 해도 이는 이치적 구분일 뿐이다. 오히려 이치 안에서 전체를 관조하고 서로 구분되거나 덜어져 있음이 아니라 모두는 서로 질서와 조화 가운데 교묘하게 운행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불동본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신에게서 만물이 넘쳐나 만 번 가고 만 번 오더라도 쓰이고 행함이 다를 뿐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서도 신은 발견되지만 그것들을 신으로 볼 수는 없다. 하나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모두는 완전성이 결여되어 있음으로 불완전하다.
그 모두를 완전케 하는 것이 신의 의지이며 그것은 전체로서만이 완전성을 획득한다.’

본심본태양앙명 本心本太陽昻明

‘본심은 태양을 기본으로 하여 밝음을 우러른다. 여기 본심이란 숨겨진 참자아를 뜻하며 태양은 오름과 내림, 나아감과 물러섬의 성질인 양과 음 중 본래적인 양을 말한다.
음의 메타트론과 양의 수호자로 나뉘어 진 것과 같이 인간의 내면에도 이와 같은 음, 양의 기본적인 성정이 존재한다.
반대를 배제한 단순한 음과 양만으로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에 씨앗처럼 존재하는 본래적 양, 태양의 성질을 바탕으로 밝음, 즉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저절로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인간의 내면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음을 깨닫고 본심으로서 밝음을 바라고 견디고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신에게로 합일될 수 있다.
이런 실상은 참자아만이 감지할 수 있으며 그것을 깨닫는 순간 원래부터 신의 일부이자 신이었던 인간은 본질을 회복함으로 전체로 귀속된다.’

인중천지일 人中天地一

‘사람이 천지에 중립해 일로 된다. 사람 중에서 천도 지도, 신의 본래적 형상도 완전하게 복원되며 그 순간이 바로 완전에 이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절대 한쪽으로 쏠리거나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모든 만물이 연관되어 있으니 서로를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임과 내보냄에 유연해야 한다. 중도를 지킴이 마땅하다.’

파천은 그렇게 애써도 해석해 내지 못했던 천부경의 뜻이 너무도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파악이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신의 말씀이 그의 영혼 가운데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이해되며 무한히 확장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비로소 평화를 맛보고 있었으며 고통도 좌절도 그 안에서 녹아 내렸다.
태어남도 죽음도 매 한가지라는 새로운 관념이 자리 잡고 그것도 얼마안가 사라지며 무한히 비어 갔다.
‘나는 없다. 나라는 존재를 다른 사물과 신에게서 분리시키는 순간 나는 뚜렷한 한계성을 지니게 되다. 인간의 타락은 신을 구별하는 데서 시작되었고 그 구별은 전체를 전체로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구별함으로 판단하게 되고 상대적인개념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비밀차원의 사람들이나 용이 주는 지혜는 이와 같다. 구별함으로 자아가 먼저 생겨나고, 이 자아는 다른 존재를 스스로에게서 분리시켰다.
이 분리야 말로 인간에게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신의 완전성을 가려버렸고 인간 스스로가 원래부터 신의 이부였음을 망각케 했다.
인간의 삶은, 윤회는 이러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신은 인간세를 통해서 좀더 비약적인 다가옴을 기대했다. 신과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자각하는 잘못된 자아는 새로운 허상을 만들어 갔으며 이로서 죄의식이 생겨났다.
죄의식은 참자아를 바라보고 회복시키는 결단을 포기하게 한다. 신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었고 만물의 이치를 통해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고자 하셨다.
모든 진리는 사람 안에, 만물 안에 완전하게 충분하게 계시되어 있다. 신은 모든 피조물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길 원하신다. 신의 침묵엔 이유가 있다. 신의 인간에 대한 신뢰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며 결국은 신에게서 나왔으니 신에게로 돌아감이 마땅하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며 태어남도 새로 생겨남이 아니다. 완전한 소멸이란 없으며 모든 존재는 신을 완전하게 부정할 수도 없다. 모든 현존재는 중간적 과정에 불과하며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어떤 상태일 뿐이다.
좀더 높고 낮은 밀도의 차이처럼 좀더 완전에 가깝고 먼 차이일 뿐이다. 신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길은…… 신 안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며 일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우주는 나와 하나가 되고 신은 내 안에서 새롭게 재확인된다. 신의 의지가 우주 만물에 가득하듯 광명도 그러하다. 완전해진다는 의미는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파천은 시간도 공간도 제약하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을 노닐고 있었다. 그의 의식은 그 안에서 무한하게 확장되고 신과의 일치를 이루어 갔다.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과 그렇게 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의 파천의 확신은 절대적 긍정이었다.
그의 의식 안에는 더 이상 루시퍼에 대한 미움도 신에 대한 원망도 메타트론과 다른 존재에 대한 구별된 감정도 없었다. 사랑. 신의 성품이 그러하듯 파천은 이 우주에 가득한 신의 사랑 가운데 자신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그에게서 번져 나오기 시작한 사랑의 확인은 생명수와 생명나무와 그 위의 광류, 여래장을 흠뻑 적셔갔다. 그것은 놀라운 전경이었다.

메타트론과 수호자, 나타나엘은 멀리서 그 광경을 대하고서는 넋을 놓았다. 메타트론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 건…… 있을 수 없…… 는 일이야. 말도 안 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나타나엘도 수호자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생령이? 기대는 했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로 다가서자 믿고 싶니 않았던 것이다. 수호자는 자신이 지녔던 신뢰가 증명되었다는 기쁨보다도 앞일이 걱정되었다.
“광명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자가 될지도 모른단 말인가?”
여래장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또한 광명을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광명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어떤 능력이 생겨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완전자가 탄생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현상에는 익숙했다. 지금 여래장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완전자가 나오기 전의 징후였다.
“지속되면…… 파천은…… 완전자가 된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 완전자가 된다는 것은 파천이 이 세계를 떠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나 영계를 위해서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메타트론은 새롭게 현실은 인식해 갔다. 인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우리에겐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건가? 어쨌든…… 파천은 이루었다. 그렇다면…… 이후의 일을 대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파천은 완전자의 세상으로 들어서게 된다.
후후, 그것도 내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결국…… 승부는…… 수호자…… 네가 이겼다. 하지만…… 내 싸움은 지금부터다. 영계에 대한 지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그는 예상되었던 결과 중에 최악에 직면하고 있었다.
‘최악은 아니지. 파천이 광명만을 얻어서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최악이지.’
메타트론은 광류의 흐름을 눈여겨보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속되면 완전자의 세상이 열린다. 그리고 파천은 그곳으로 들어서게 되고 다시는 이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된다.’
숨죽이고 지켜보는 건 수호자와 나타나엘도 마찬가지였다.
“곧 진동이 있을 것이다.”
메타트론은 확신에 젖어 외쳤다. 수호자는 속으로 외쳤다.
‘안돼. 그러면 안 된다, 파천.’

파천이 수호자의 외침을 들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는 고요 중에 침잠해 있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태초부터 영원을 관통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존재들의 외침이 그 안에서 새롭게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원래의 그를 회복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완전한 원령체를 이뤘으며 광명을 얻었다. 광명은 신과의 일치, 우주 만물과의 일치를 통해서 갖게 되는 완전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동의하는 것뿐이었다. 완전한 세계로의 이탈. 그것은 다시 말해 자기 존재의 소멸이나 다름없었다. 구분되지 않을 뿐이지 이 세계에 내재되어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쨌든 한정된 시각으로 보자면 그는 현세에서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으며 자기 의지를 지니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루시퍼와 메타트론에게 복수하는 건 물 건너 간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 미움의 감정이란 게 없었다. 모든 인과를 헤아리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었음을 깨달았다.
현세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은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현존재들을 돕고 있으며 궁극적 목표, 완전을 회복하는 길로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 인간의 의지는 매우 중요하며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파천은 눈을 들어 만물들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신의 섭리를 헤아렸다. 그리고 침묵했다. 그에게는 마지막 선택만이 남았다. 그에게서 신은 더 이상 새롭게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현존재들 역시 마찬가지. 안타까움이 그를 먼저 일깨웠다. 그들의 감정이 올올이 살아나 그를 아프게 했다. 연민이었다. 그들에 대한 연민은 완전에 드는 것보다 더욱 그를 절실하게 이끌어낸다. 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아직은 내 때가 남았다. 저들에게로 가 상실해 버린 길을 찾아 주리라. 완전해지지 않아도 좋다. 내 할 일을 하리라.’
소멸을 거부한 자들, 그로써 완전을 상실해 버린 자들을 주목한 것이다. 파천의 관심은 이제 그의 친인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파천은 시선을 저 멀리로 두었다. 모든 만물에게로 향한 그의 관심은 특히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판단했다.
‘저들에게 광명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다. 지치고 곤한 영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들이 현세에서 당하는 특별한 환경들이 극복할 수 없는 고난이 아니라 그들을 완전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신의 의지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생명의 뜰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마계에,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루시퍼와 메타트론에게 파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는 원령체를 완성하고 광명을 얻었다. 찰나 가운데 숨어 있는 영원의 비밀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완전자가 되어 완전세에 드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관심은 완전세에 있지 않았고 현세의 인간들에게로 가 있었다. 결국엔 완전에 드는 걸 끝까지 지연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의 이 판단은 사람들에게나 영적 존재들에게나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로 던져질 것이다.

메타트론은 광류의 흐름이 예전과 다름없어지자 일시 아득한 심정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수호자는 새롭게 기대했다.
‘그가 완전자가 되는 선택을 포기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완전자가 되는 걸 포기 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들은 기다렸다 파천의 등장을 아무리 기다려도 그들 앞에 파천은 나타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일.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메타트론의 중얼거림에 수호자가 반응했다.
“알 수가 없군.”
파천이 광명을 얻었는가가 둘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거기에 덧붙여 대체 광명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나타나엘과 수호자와 메타트론은 파천이 들어간 생명의 뜰로 시선을 못박은 채 기다렸다. 파천이 그들 중에 나타났다. 그를 대한 수호자도 메타트론도 나타나엘도 일시 숨을 죽였다.
‘아, 이것은?’
메타트론은 언젠가 느꼈던, 완전자에게서 느꼈던 것과 동질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전신을 경련했다.
‘진실로…… 광명을 얻었나?’
수호자와 나타나엘은 감탄했다. 은은한 서기를 후광처럼 전신에 두르고 살풋 미소를 배어 불고 있는 파천의 여유가 그들을 들뜨게 했다.
‘얻었는가?’
‘광명은 어디에?’
파천은 세 명을 찬찬히 살펴 갔다.
그의 시선을 받게 된 메타트론이 지니고 있는 궁금증을 담아두지 못하고 토해냈다.
“얻었느냐? 광명을 얻었느냐?”
확인 절차에 불과했다. 그의 마음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의 확신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파천이 말했다.
“얻었다.”
“어디 있느냐? 광명이 어디 있느냐?”
메타트론의 흥분은 수호자나 나타나엘과는 다른 의미였다.
“광명은 내 안에 나와 더불어 있다.”
“무슨 뜻이냐?” 메타트론은 파천이 애매한 말로 얼버무린다고 판단했다.
파천은 말했다.
“광명은 내 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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