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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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성 에너지의 집중도가 높고 불순성분이 적어
급속하고도 지속적인 에너지 축적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청석유(空淸石乳)와는 달리
이 공청석유(空靑石乳)는 해독제(解毒劑)로써,
예상치 못한 여독(餘毒)을 대비해 복용시켜야 합니다. ]
제기, 한자 하나가 다른 걸로 그렇게 차이가 심하단 말야?
에구구.. 간만에 몽몽에게 큰소리 한 번 쳐보나 했더니..
나는 괜히 쪽 팔려서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럼.. 이건 언제쯤 먹일까..?”
[ 식후 30분 후에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감기 약이냐..?
톡!톡!톡!
“대교야!”
대교는 어제 일을 기억했는지, 우물거리던 것을 황급히 삼키고 대답했다.
“..넵! 곡주님!”
그려.. 역시 나한테 만만한 건 얘 밖에 없는 것 같다.
“식사하고 나서 좀 있다가 소화 어지간히(?) 되거든 이거 먹어. 여독을 없애주는 거니까 잊지 말고…”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소녀가 곡주님의 기대에 못 미쳐 어찌해야할지…”
약병을 두 손으로 받아 드는 대교의 표정이 자못 처연했다.
나에게는 마봉후의 무공에 매료되어 그리 되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 아이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를 하다 주화입마에 빠진 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별로 될 것 같진 않았지만, 나는 자애로운 미소가 내 입가에 그려지도록 애를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 대교 넌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내 예상대로 넌 매우 재능이 뛰어난 소녀야. 난 말야..”
비상! 비상..!
입을 열고 몇 마디 하는데, 머리 속에 경고등(?)이 켜지더니 이어 다음과 같은 시물레이션이 펼쳐졌다.
..난 대교에게 다가가 대교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 주며 말한다.
네가 반드시 마봉후의 대를 잇는 것은 물론이고
왕 년의 그녀보다도 뛰어난 내력과 기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넌 화천루주를 쓰러트린 비화곡의 영웅으로 거듭 날 것이며 아름답고 고강한 소녀 영웅으로 나와 함께 강호를 풍미할… 어쩌구 저쩌구…
그래, 몽몽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지능을 갖춘 내 ‘이성(理性)’의 경고대로 지금의 감정을 이어 진행하면
난 또 대교에게 어제처럼 ‘느끼한 대사’를 지껄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감(?)에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일어섰다가 그냥 앉기도 뭐해서 힘내라고 어깨나 두드려 줄까 하는 생각으로 대교에게 다가갔다.
대교는 어쩐지 쭈볏 거리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날 올려다보았다.
마치 야단 맞을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표정 같더니만, 내가 손을 들자 찔끔 놀라는 표정이 된다.
음.. 그러고 보니 좀 아까 난 이 아이의 맨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나게 친 일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한 무공 하는 애가 뭐 그런 걸 무서워해?
참 내.. 지금의 순진한 표정을 보면 아까의 매혹적이고 성숙한 몸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나는 무심결에 풀썩 웃고 말았다.
“짜-아~식-! 하다보면 실수 할 때도 있는 거지. 뭐 그리 기가 죽어서 그래?”
나는 무게(?)가 사라진 목소리로 말하며 어깨를 몇 번 다독거려 주고..
내친김에(?) 머리도 쓰윽 쓰윽 쓰다듬어 주었다.
내 어린 조카들에게 하듯…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조급해 하지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잘 될 거야. 알겠지?”
“..예, 곡주님..”
“좋아, 그래야 착한 소녀지!”
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대교의 등을 철썩! 내리쳤다.
“꺄악-! 고, 곡주님..?”
나는 잽싸게 달아나며(?) 외쳤다.
“하하핫!! 미안- 장난이야, 장난…”
방심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 여자아이다운 비명을 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를 내지도 못하며 난처해 하는 대교의 표정….
우히히-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나중에 또 장난쳐야지…
대교가 복수(?)하려고 쫓아올 리는 없었지만 나는 숨어들 듯 영약창고로 들어갔다.
당근, 말밥… 대교에게 줄 ‘영약’ 챙기러 온 거다.
나는 몽몽의 지시대로 몇 가지 영약을 찾아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담긴 작은 옥함의 뚜껑에 쓰인 한자는 나도 아는 글자였다.
소환단(小還丹)이라…
무협지에서 항상 주인공이 날름 해버리는 궁극의 영약인 소림사의 대환단(大還丹)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몽몽에게 묻기도 뭐하다.
[ 소환단은 대환단과 함께 소림사의 비전술(秘傳術)로 조제된 영약입니다.
대환단과의 비교치는 약 20/1입니다. ]
이런 제기… 이번엔 맞았는데 괜히 망설였다.
흠, 어쨌든 소림 비전의 영약이라.. 여긴 정말 별의 별 것이 다 있군.
근데…..
‘비전’이라면 말 그대로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게 전해진다는 건데,
그런 것이 이 곳에 있다는 건…
“몽몽… 이 곳의 영약 중에서 다른 문파나 의술인들의 비전술로 제조된 영약이 몇 가지나 되지?”
[ 총 763종입니다. ]
에..? 그렇게 많아?
“아, 그래.. 사마외도 말고 정파 쪽만 하면?”
[ 정사마의 구분이 모호한 인물까지 포함하면 총 82종입니다. ]
이 곳의 인간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최소한 ‘조폭’이다.
얌전히 얻어 오거나 사왔을 거 같지는 않고..
그럼 최소한 그 정도 횟수의 유혈극이 벌어진 결과로 이 영약들의 주인이 바뀐 것이겠지?
웬지 기분이 묘해진다.
영약은 물론이고 이 곳의 물건들의 다수가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온통 다른 인간들의 피로 얼룩진 보물들…
후..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어서 무거운 감정을 털어 낸 다음 약들을 챙겨 석실을 나섰다.
복잡한 생각, 복잡한 감정은 좀 나중에 떠올리자.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까…
대교는 그 사이 식사를 마쳤는지 근처 바위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오자 눈을 뜨고 일어서려 했다.
“어.. 내가 수련을 방해했나?”
대교는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모아 포권했다.
“아닙니다. 그저 기혈의 유통을 한 번 확인해 보았을 뿐입니다.
주회입마에 빠진 저를 신기의 금침술로 이렇게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시다니…”
흠… 별로 한 것도 없이 칭찬과 감사를 받으려니 좀 쑥스럽군.
“아, 뭐 그 정도야.. 하여간 일단 다시 앉아봐.”
나는 대교를 앉히고 나도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 앉았다.
“여기 내가 가져온 영약들은 니가 삼일에 걸쳐 복용할 약들이야.
음.. 내가 매일 오겠지만 혹시 내가 못 내려오는 날이 있더라도 지금부터 일러주는 순서대로 약을 먹고,
그것을 니 내공으로 만드는 거야. 그리고 알지..? 무공의 기본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거,
오늘처럼 무리하지 말고 차분히 해. 알겠어?”
“소녀, 곡주님의 하늘같은 배려와 금과옥조를 가슴에 새기고 수련에 힘쓰겠습니다.”
개뿔이 금과옥조는 무슨…
흐…
내가 무공의 武자도 가끔 헷갈려서 틀리게 쓰는 놈이라는 걸 알면 이 애는 어떤 표정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