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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57화


먼저 구월화 가족들이 갇혀있는 장소를 확인하는 절차만 써놓은 것이 두루마리 두 개 분량이었다.

처음 그 곳으로 가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오직 사전 조사에만 썼던 모양이다. 그것도, 정보 전문 월영당의 협조 아래 만독당 요원들과 외당 요원들, 미염당 요원들까지 동원해서 다각도로 말이다.

조사 과정에서 이미 미염당의 미녀 요원 몇 명은 현지의 기루에 침투한 후 그곳 관리들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으며, 미염당 부당주 날나리(捺拏李, 고리라 당주 동생 고리리의 후임이라는데, 이름 웃긴 전통 이루려고 명호를 웃긴 거로 붙였나 보다.) 화미(華美)는 현지 기루의 간판 스타로 급부상, 작전 대상인 관호(官戶, 지방의 지주 겸 관리) 임실회라는 자도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찾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임실회가 애가 닳도록 날나리 화미는 온갖 핑계를 대며 수청을 거부하고 있고, 그 인간이 그동안 화미에게 갖다 바친 재물만 해도 진품 흑진주 3알, 금붙이 종류 15개, 산삼 4뿌리… 자세히도 적혀있군.

하여간 통틀어 환산하면 우리 시대 금액으로 1억이 넘는 것 같다. 화미가 그만큼 예쁜 건지 수단이 좋은 건지는 몰라도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그 정도라니, 시대를 막론하고 부패 관리의 방향 틀린 씀씀이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뭐.. 그 재물과 다른 미염당 요원들이 거두어들인 부수입(?)은 다시 만독당과 외당 요원들의 관청 침투 비용(주로 뇌물..)으로 쓰여지고도 남았단다.

어쨌든 만일을 위한 관리들 포섭도 끝난 셈이고, 외당 요원들 몇 명은 아예 뇌옥 간수로 취직해 근무 중이라니 물밑 작업은 거의 완벽한 셈이다.

현재까지는 전반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없으므로 내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구출 작전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한다.

해남파에서 음모를 주도하고 있을 장명 일당들이 구월화의 배신을 눈치채면 곤란하므로 뇌옥 안의 구월화 가족을 빼낸 후에는 그 자리에 외당의 무사들이 변장을 하고 대신 들어가 있게 될 것이다.

화미를 비롯한 미염당 요원들은 일단 거기서 아르바이트(?) 계속하면서 대기하도록 하고…

후후- 계획대로 진행되면 곧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겠군. 좋아, 좋아-!

지금까지 확인한 만독당주의 일 처리 능력으로 보아 구출 작전은 무난히 진행될 것 같고.. 내키지는 않지만 해야 할 일이 또 있지?

나는 다소 씁쓸한 기분으로 성지의 대교를 찾아갔다.

기본 내력이 충실해서 그런지 대교는 비교적 손쉽게 그 ‘축골묘용신체….’ 하여간 그걸 익히는 것 같았다.

오늘 정도면… 음, 과연~!

“어머, 곡주님..?”

대교는 요가 하듯 비비 꼬아서 공처럼 말고 있던 온몸을 풀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자세가 좀 보기 그렇긴 했다만, 하여간 엄청난 유연성이었다.

“이제 축골묘용신체발부신비기묘변형천축신공의 8할 정도는 구사할 수가 있습니다.”

“힘들지 않니..?”

“예, 그다지..”

“아니, 그 명칭 말하는 거 말야.”

“후훗~! 하긴 무공 내용보다 명칭이 더 대단한 느낌도 드네요.”

농담으로 조금 분위기를 띄워 보았지만, 내 기분은 여전히 찜찜하다. 정말 난 이 아이를 저 어둡고, 어디로 통할지도 알 수 없는 수로 속에 들여보내야 하는 걸까? 몽몽을 아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만 이 아이 역시 이미 내겐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과연.. 과연 이 아이를 난…

“곡주님, 이제 소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만…”

꼼꼼한 대교는 천장에서 야광석을 떼어내 후랫쉬 대용으로 챙겨 놓은 상태다.

“……..”

“곡주님…?”

“그래, 나 결심했다.”

“예-?”

만약의 경우 이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이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자신 없다. 그래- 사나이 진유준! 모 아니면 도다!

“잠시 후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도구를 줄 거야. 그걸 얼굴에 쓰고 있으면 굳이 호흡을 조종하지 않아도 언제까지나 물속에 있을 수 있어.”

“아-! 그런 신기(神機)가..?”

나는 대교의 눈을 피해 한 석실로 들어가 몽몽을 손목에서 떼어냈다.

<형태 변화로 산소 호흡기 역할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사용자를 바꾸는 것은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전 주인님의 생존에 필수적인….>

“알아, 안다구. 안됐지만, 내게는 너와 대교 둘 다 너무 소중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둘 다 걸겠어. 그게 내 방식이야.”

<주인님은 지금 감정이 격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용자 생존을 위해 명령 부정 모드로 들어갈 권한이 있습니다.>

“쨔샤! 그 정도 상황 분석은 나도 해. 내가 대교를 혼자 보내기 불안해서 그렇지, 지금 상황이 니가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확실한 위기 상황이냐?”

<……………>

후후- 어쨌거나 몽몽을 말로 이기니 꽤 흐뭇한 걸?

나는 SF 영화의 특수 효과 보는 기분으로 몽몽의 형태 변화를 지켜 본 후, 몽몽이 입에 쓰는 마스크 형태로 변화를 마치자 그걸 들고 대교에게 돌아갔다.

“#$%#@?”

뭐라는 건지는 몰라도 대충 나 부르는 것 같군. 그냥 웃어주자. 자… 대교야, 지금은 말도 안 통하니 입 다물고 얌전히 착용이나 하라구.

“곡주님..? 이, 이 것이 그… 아, 이러고도 말을 할 수가 있네요?”

음, 다행히 대교의 신체에 재빨리 정착한 것 같군. 금방 말이 해석되는 걸 보니… 후후~ 막상 이렇게 보니 꽤 괜찮은 그림인걸? 첨단 로봇 마스크를 쓴 대교는 마치 격투 게임의 캐릭터처럼 동양의 미에 서양식 세련미가 믹스된 미소녀 전사처럼 보인다.

“좋아, 조심해서 다녀오고…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걸 명심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무조건 그냥 돌아와. 알겠어?”

몽몽에 가려져 표정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날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웃음을 짓는 것 같다. 음… 음…? 에? 옷은 왜… 하, 하긴 뭐 알몸인 것이 물 속에서 활동하기 유리하겠지…?

커험..! 대교의 나신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쑥스럽구만. 시선 두기가 영…

“다녀오겠습니다. 곡주님.”

“어, 그래, 그래…”

인사하는 데 딴데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거참! 나 진유준 정말 많이 출세한 거다. 이런 절세 미소녀의 실물 알몸을 수시로 감상할 수 있는 호강을 누리게 될 줄이야, 서울의 친구 놈들이 알면 부러워 죽으려고 하겠지?

대교의 늘씬한 자태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가 며칠 전 넓혀 놓은 입수구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 손을 어색하게 흔들며 연못가에 서있었다.

후~ 그러고 보니 몇 달 만인 거지? 몽몽이 없는 맨 팔뚝이라… 처음엔 다소 귀찮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엄청 허전하군 그래.

어쨌든 이 때 손목이나 씻어 둘까? 가끔 벗고 씻은 적이 있긴 하지만, 음, 때가 쬐금(?) 나오는군. 가만있자, 이 작은 몇 개의 상처는… 제기, 괜히 자세히 봤나? 소름이 돋는군. 이 상처가 바로 몽몽의 촉수가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있던 통로인 것이다.

내 몸의 신경계를 직접 통제 관리해야 언어해석도 가능하고… 하여간 필요해서 그렇다고는 해도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드는군. 지금은 대교의 예쁜 피부에도 이런 상처가 생겼겠지?

후… 이런 작은 상처 같은 거야 그렇다 쳐도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야 할 텐데… 제기… 나 군대 보낸 부모님 심정이 꼭 이랬으려나?

생각해보면 참 기막힌 노릇이다. 팔자에 없는 특공대로 기어 들어간 아들 놈 면회 오셔서 걱정만 하다 가시던 분들인데, 그 아들이 이젠 면회도 올 수 없는 곳으로 날아온 형편이라는 걸 아시게 되면…

그날, 제대 신고를 마치고 더블백 메고 걷던 코스모스 만발한 그 길… 그 꿈결 같았던 길이, 으으~ 어떻게 이 비화곡으로 연결이 될 수가 있지?

그 빌어먹을 미래 여자 ‘진(성도 없고 그냥 외자 이름이란다.)’을 만난 건 제대 신고를 마치고 고작 두 시간만의 일이었다.

시외버스 정류장 찾아 걷던 시골길에서, 왠 사내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녀와 마주친 것이 내 불행의 시작이었다.

건장한 검은 양복 남자 셋이 한 여자를 추적하는 장면에서 나는 슬며시 끼어 들었었다.

제대하는 날 입원하기는 싫어서 결코 끼어들 마음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그때까지도 왕성했던 특공병의 본능(?)이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옆을 스치고 달려가는 사내의 발을 걸어버렸었다.

이어진 1 대 3 격투! 다행히도, 생각 이상으로 사내들은 약해 빠진 자들이었다. 하긴 전투화 발에 찍히고도 말짱하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만…

하여간 가뿐하게 세 명을 쓰러트린 나는, 괜찮으냐고 여유 있게 물으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그 순간엔, 제대하자마자 드라마틱하게 여자를 만나는 구만… 하고 속으로 흐뭇해하고 있었다.

헌데, 쓰러져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품에서 뭔가를 꺼내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다 큰 어른들이 무슨 장난감 총을 꺼내고 난리인가 싶었는데, 그 장난감 총은 장난이 아니었다.

번쩍! 콰쾅~!!

효과음만 가지고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장난감 총이든 빈총이든 맞기 싫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한 것이 0.1초만이라도 늦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통구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갑자기 SF 영화에서나 보던 ‘광선총’ 세례를 받은 내 기분이 어땠겠는가. 황당한 가운데 나는 도로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날려 낙법을 펼치는 생쇼를 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여자도 무기를 꺼내 반격을 했고, 약간의 틈이 생겼을 때 여자가 손목 시계(치곤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었던…)를 조작해 뭔가 하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사내들 중 한 명의 총구가 여자에게 겨누어지는 것을 본 나 진유준은, 여자를 구한답시고 몸을 날려 그녀를 안고 굴렀다.

순간, 눈앞에 흰 불꽃이 번쩍!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여자는 어둡고 습기 찬 동굴 같은 곳에서 뒹굴고 있었다. 너무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니, 놀라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당장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당신 때문에 좌표에서 벗어났잖아요!”

그게 몸을 날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대뜸 쏘아붙이는 인사였다.

“………일단 설명을 좀 해 줄래요? 무슨 일이… 발생한 거죠, 지금…?”

여자는 그제서야 길게 한숨을 쉬고는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진. 서기 2950년 생이라니까 후손도 보통 까마득한 후손이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시간 여행… 그게 그녀가 온 시대에서는 가능하긴 한데,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단다.

진은 그녀가 소속된 연구실에서 타임머신을 작동시켜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자기 말로는 ‘역사 연구’를 하고 싶은데도 허가는커녕 시간 여행이 금지되는 이유조차 발표하지 않는 상급 기관들의 횡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몰래 강행한 거란다.

중생대, 고생대 좀 돌아다니다가 두 번째로 20세기에 온 건데, 본래 시대의 추적자들을 만나 피하던 중이었다나?

다음 목적지로 가려고 타임머신에 좌표를 입력하고 있을 때 내가 달려드는 바람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알 수 없는 시대와 장소에 떨어졌다고 진은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우린 과거 중국대륙의 어딘가에 온 것 같은데… 근데, 왜 웃는 거죠?”

“하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제대하자마자 뭐, 광선총 든 미래의 추적자와 싸우고, 미래 아가씨와 시간 여행이라니… 하하! 이거야 원…”

“어쨌건 아깐 고마웠어요. 20세기 남자는 그래도 제법 기사도 정신이 있었네요?”

“그거야 뭐… 근데, 일단 돌아간 다음에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긴 어째 분위기가 좀…”

여기서 내가 ‘빌어먹을 여자’라고 하게 된 대답이 나왔다.

“지금은 동력이 너무 모자라서 두 사람이 이동할 수는 없어요.”

“……………”

“아까는 당신 때문에 연구실에서 보낸 추적자들도 흥분해 무기를 사용했지만, 실은 제가 이래봬도 우리 시대 상위 5% 안에 드는 고급 인력이라고요. 연구실에서도 내가 돌아가길 원해서 타임머신의 동력을 끄지 않고 있지만, 역시 상당히 제한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내가 시스템에 넣어 놓은 버그들이 잘 막아주고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많이 잡힌 것 같고… 아무래도 돌아가서 다시 시스템을 장악하던가, 위원회 사람들을 설득해 보던가…”

“…………….”

“후우… 당신이 끼어 들어 일이 더 곤란해졌어요. 20세기 사람까지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이 보고되면 설득이 더 어려울 텐데… 하지만 위원회에서도 틀림없이 당신을 본래의 시대로 돌려보내려고 할 거니까, 그러니까 안심하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줘요.”

“조금…?”

“그게… 여긴 계산 외의 장소라, 내가 돌아오는 시기를 정확히 말해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어느 정도 기간을 있었든, 일단 돌아가면 본래의 시간대로 돌려보내 줄 수 있어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시간의 복원력은 좌표 계산 오류를 현격하게 줄여 주니까 말이에요.”

“딴 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달랑… 더블백 하나 들고 살아남으라고? 나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생존훈련을… 하다못해 대검 한 자루도 없이 하라는 겁니까?”

“그건… 후우~ 알겠어요.”

그때 진은 짐짓 인심 쓰듯 오른손에 차고 있던 ‘몽몽’을 내게 주었다. 내 생존에 도움이 될 거라며…

그리고는 환경 적응도 빨라 보이고 매우 건강한 신체라서 안심이다 어쩌고 날 다독거리고는, 잠시 후 내 눈앞에서 번쩍! 영화 같은 데서 보던 것과 달리 멋대가리 없이 진은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 시간 여행에 대해 몽몽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봤지만, 이건 뭐 보통 복잡한 개념이 아니었다. 특히 미래의 그 발전된 과학으로도 시공간 좌표 계산은 쉽지가 않아서 몇 년 정도 오차는 다반사라는 것이다.

제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책 없는 여자였다. 어찌 되었든 자기 구해 주려다 생긴 일인데 별로 미안해하는 눈치도 없었고, 내가 따지고 들지 않았으면 ‘몽몽’도 안 주고 그냥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황당한 경험도 모자라, 내게는 현재의 상태가 되는 사건 하나가 더 기다리고 있었는데…

음..?

아, 대교가 나온다..? 하핫! 다행이다. 조금 추워 보이지만, 다치거나 하진 않은 것 같고…

아차차! 미리 수건이나 준비할 것을…!! 나는 그제야 서둘러 수건을 찾아다니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리고 오늘은 이럴 것 같아 뜨거운 차를 한 통 가져왔었지?

“괜찮니? 응? 이거 마시고 천천히 얘기해.”

“감사합니다, 곡주님.”

남자용 커다란 장포를 몇 개나 가져와 전신을 둘둘 말아 놓으니까, 장난꾸러기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감고 앉아 있는 것 같아 재미있군. 조금 파리해졌던 안색이 발갛게 돌아오고 있고…

후우- 하여간 다행이다.

“저어, 곡주님. 아무래도 입수구는 비밀 통로가 아닌 것 같습니다. 100장(丈, 약 240미터 정도) 정도 밖에 강철로 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그래…?”

“강철망을 들어 내보려다가 하마터면…”

“에..? 뭐야, 다쳤어?”

이런 제기-! 못 봤는데, 오른손 검지에서 피가 조금 흐르고 있잖아?

“빨리 말을 하지, 그, 금창약 바르자.”

“상처는 깊지 않습니다. 그리고 혈목어(血目魚)가 비록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있으나 독은 없다고 들었고…”

“뭐야?”

철망에 긁혔다는 말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 건가? 혈목어..?

< 혈목어, 피라니아로 추정. 본래 지하 어종이 아니므로 특수한 방법으로 양육된 것으로 여겨짐. >

몽몽은 이미 내 팔목으로 복귀한 상태이다. 근데 그보다 피라니아라니..! 으- 혹시나 그런 비슷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었지만, 진짜로 있었다니, 우~ 끔찍하군. 하마터면 대교가 물고기 밥이 될 뻔했잖아?

“그, 그러게 조금 이상하면 그냥 오랬잖아. 뭐 하러 철망을 열려고…”

안타까워하는 내 표정을 올려다보며 대교가 잔잔하게 웃었다.

“곡주께서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데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무섭기도 했지만… 곡주님의 마음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심신이 안정되어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짜식이, 쑥쓰럽게 자꾸 그런 대사를 하고 그래…

“제가 철망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곡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손가락을 혈목어에게 먹혔을 것입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음성..?

“그 순간, 곡주님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음성을 들었던 것은 어쩌면 제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몽몽이었군. 땡큐다, 몽몽!!
엄청난 기적이라도 만나고 온 듯 대교는 황홀해하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야 잘 끝났지만, 이제 배수구 쪽 탐색하는 건 더 내키지가 않아진다. 그 안엔 또 무슨 장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제기, 어쩐다?

“아, 그리고 이걸 보시겠습니까? 철망 부근 돌 위에 잔뜩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무공을 기록해 놓은 것 같아서 일부를 떼어 왔습니다.”

대교는 연못가에 자신이 내려놓은 돌판을 가르켰다.
끈에 매달아 가지고 갔던 월명검으로 떼어낸 모양이다. 근데 수로 속에 무공 기록이라… 아무래도 이거 ‘기연’을 얻는 패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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