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99화
[ 조금 전의 웃음소리에는 pme91,97 계열의 에너지가 포함되어 인체 신경계의 혼란과 성욕의 이상 증대가 시도되었습니다. 음공(音功)에 섭혼술(攝魂術)과 음공(淫功)을 복합한 형태입니다. ]
퍼억-! 우당탕! 퍽! 쾅!
몽몽의 자발적인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내게 강시 비슷한 포즈로 다가오던 사내들이 일제히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여행 출발하기 전에 ‘살인’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둬서 그런지 흑주는 다가오는 사내들에게 몇 번 손을 쓰기만 했는데, 일장을 맞고 날아간 사내가 그 뒤의 사내들과 부딪치고 하는 바람에 선실 안은 순식간에 비명과 신음소리로 소란스러워져버렸다. 그때, 바깥으로부터 사내들의 고함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파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간이 섞여 들려오는 비명소리… 난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선실 문으로 다가갔다.
“위험하니, 나오지 마십시오. 아가씨.”
선실에서 갑판으로 나가려면 계단 몇 개를 올라가야 하는데 그 계단의 중간쯤에 서있던 사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사영이 전방을 경계하며 뒷걸음질로 내가 있는 문으로 내려오는 걸 보니 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지만, 다행히 문가에서도 바깥의 난리를 대충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갑판은 농구장 2개 크기 조금 못될 듯한 정도 넓이였는데 뱃머리 부근에 한 명의 흑의녀(黑衣女)가 서있었고 아까 갑판 위에 있던 사내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떼거지로 그 여자에게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자는 머리엔 삿갓을 쓰고 그 아래로 현재의 나처럼 두터운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용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몸매가 날씬하고 싸우는 동작이 날렵한 것이 무척 보기에 좋았다.
여자 한 명에 남자들 수십 명이 합공을? 이런 비겁한! 사영 저 여자를 도와줘…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저 여자가 좀 전에 웃은 거예요?”
“아, 저 여자는 아니고… 환희소소공(歡喜笑笑功)을 썼던 음혼귀모(淫魂鬼母)는 지금 선원들을 협박해 배를 서둘러 강 가운데로 모는 중인 것 같습니다.”
“음혼귀모…? 며칠 전의 독수사갈과 함께 비인사기 중의 한 명인 그 음혼귀모?”
이런…! 아직 누군지 보이진 않지만 웃음소리가 재수 없다 했더니만 음란하기는 비화곡주에 못지않고 사악하기는 독수사갈을 능가한다는 여자, 음혼귀모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뱃머리에서 싸우고 있는 저 여자가 바로 ‘모살부취(母殺父取) 모용란’인 듯 합니다.”
엥? 저 미녀(로 여겨지는)가 비인사기 중의 짱이라고 할 수 있는 모살부취란 말이야? 나는 조금 놀라 새삼 갑판의 사투를 지켜보았는데… 과연, 문서 자료와 소문대로 굉장한 여자인 것 같다. 상대가 아무리 하수라 해도 그 수가 수십인데도 아주 여유 있게 상대하는 것 같은 걸?
“천하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손속은 제법 무섭구나.”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이 여유가 있었으면 그 남자를 패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으로 몇 개의 사람 팔과 머리가 날았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웬지 슬슬한다 싶었던 묘용란의 검이 가차없이 사내들을 베어가기 시작했는데, 우이쒸-!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별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그 많던 인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과 솟구치는 핏줄기… 이 시대에 와서 사람 죽는 꼴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난 대량 살상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오바이트가 쏠릴 지경이었다.
“사… 아니 무대가, 이렇게 되면 우리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지는 거 아닌가요? 음… 그리고 여기서 살생을 막는 것이 나중에 신수성녀를 대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애써 태연을 가장한 내 말에 사영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음, 그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사영은 그 자리에서 살짝 도약하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사내들 무리의 뒤에 내려서고 있었다.
“모두 물러서시오! 내가 상대해 보리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기가 죽어있던 사내들은 깊은 내공을 포함한 사영의 외침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 때 모용란도 공격을 멈추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살아남은 사내들은 무사히 선실 앞까지 물러설 수가 있었다.
“본인은 무송이라는 보잘 것 없는 자요. 귀하의 검술을 보니 모용세가(慕容世家)의 고수인 것 같은데 잠시 견식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소?”
상대에 대해 다 알면서 시침 딱 떼고 그 자신의 정체도 예의로 포장하는 사영.
“알고 보니 무대협이셨구려! 그 살인 요녀에게는 예의도 아깝소이다.”
“모용세가라니 당치않소. 아까 선창까지 요녀들을 추적하던 고수들이 바로 모용세가의 고수들이었소.”
“그렇소. 저 년이 바로 비인사기 중의 한 명인 모살부취인 것이오.”
자신의 등 뒤로 도망친 사내들의 악의에 찬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영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현재 내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뒷모습에서 이들을 비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저 내 기분일 뿐일까?
“…본녀는 저 쓰레기들이 말한대로 비인사기 중의 일인인 모살부취요. 결코 모용세가의 식구는 아니나 배운 게 그것뿐이니 그로써 응하리다.”
그제야 사영에게 답하는 모용란의 음성… 내가 알고 있는 35세라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인간 취급도 못 받을 정도로 사회적 이단의 여자와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의 남자는 잠시 서로를 탐색하듯 노려보고 서있었다. 뜻밖에 성립된 빅 이벤트라고나 할까? 대교와 장청란의 가상 대결을 지켜볼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모살부취(母殺父取) 모용란… 이 특이한 여자는 다른 비인사기들과는 출신부터 다르다. 출신 사문이나 심지어 본명조차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삼 인과 달리 그녀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명문 검가(劍家)인 모용세가 출신이다. 더구나 13세 때 이미 강호의 일절이라는 모용세가의 독문절기를 모두 터득했을 만큼 무예에는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여인이라는데, 본래 약 18년 전 그녀가 17세까지는 그 명문가의 재녀로서 미모는 당시의 천하제일미, 무공은 차세대 인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는 여인인 것이다.
그런 화려한 과거 때문에 그녀의 현재 신분에 더욱 처절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현재 그녀를 칭하는 ‘母殺父取’는 모친을 살해하고 부친을 성적으로 유혹했다는 희대의 패륜을 의미하는 별호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악행으로 비인(非人)으로 분류된 삼 인과 한 방에(?) 같은 부류가 되어 버린 그녀는 비록 경력은 짧으나 무공만큼은 그 중 최고…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한다.
처음 그녀가 그런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것이 알려지자 가문의 수치를 지우기 위해 모용세가의 고수들이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녀의 손에 모용세가의 고수들은 물론이고 무림맹에서 파견된 고수들까지 희생되는 일로 번졌고 결국 무림맹은 대대적인 추적대를 결성하기도 했다는 데, 뜻밖에도 누구도 그녀를 죽일 수 없었고 도리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만 발생했다고 한다.
비인사기의 일인이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8년을 모용가와 무림 고수들의 연합 추적과 살수를 견뎌온 초특급거물 여성 범죄자… 음… 이런, 가만히 따져보다 보니 조금 불안해지네? 설마 사영이 깨지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