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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101화


사실 나는 남자이지만, 그런 입장에서도 역시 저 여자
는 싫다. 겉보기에는 30대의 나이에 상당한 미모지만 실제
나이는 불명, 여러 가지 데이터로 추정되는 나이는 약 60대…
각종 주안술(駐顔術)에다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 같은 금기의 수법을 써서 이룬 젊음인 것이다.
실제로는 할머니가 주책 맞게 다른 청춘남녀의 정혈을 빨아들여 저렇게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도 맘에 안 들지만,
내가 저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전에 대교가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강호를 돌아다닐 때 미혼향을 사용하여 그녀를 어찌 해보려고 했던 그 더러운 놈…
음혼색불이 바로 저 여자의 제자인 것이다.

“아가씨는 아직 경험이 없어 보이는데… 어때요? 이 언니에게 오면 천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자기가 무슨 마돈나나 샤론스톤이기라도 한 것처럼 멜라꼬리한 음성에 도발적인 자세…
그런 음혼귀모의 뻔뻔한 수작에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나 역시 당장 흑주나 사영에게 강물에 던져 버리라고 시키고 싶지만, 훗~!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담에 또 만나게 되면 시행하기로 하고… 오늘은 약을 좀 올려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음혼귀모에게 배시시 웃어 주며 모용란을 가리켰다.

“저런… 어쩌죠? 저는 이 언니가 더 마음에 들어요.”

순간, 움찔 굳어지는 음혼귀모와 모용란. 뭐… 의미는 다르겠지만 둘 다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흐흐흐… 겉으로는 뽀샤시(?)하게 웃으며 모용란 쪽으로 걸어갔다.

“자, 잠깐! 난 그런 취미는 없어.”

모용란은 정말 곤란해하는 음성과 태도였고 한 손은 허리의 검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렇고 그런 의도로 다가오면 베어버리겠다는 건가? 무슨 비인사기가 이래?
오히려 보통 사람 이상으로 순진한 여자 아냐?

“무슨 취미요? 전 그저 언니의 그 면포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래요.”

“내… 면포?”

“예, 계속 궁금했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바람에 날리지 않고 얼굴을 가릴 수가 있지요?”

“아, 그건… 이렇게 면포 끝을 이중으로 한 다음에 거기에 두껍게 꼬은 명주실을 넣고…
다음엔 이렇게 뒤로 묶는데……”

모용란은 자신의 면포를 조금 들어 보이며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서 바람에 날리지 않는 면포 제작 기법을 배웠다.
그게 끝난 후에는 사영과 대결할 때 내가 느꼈던 의문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저, 아까 말인데요. 모용언니가 쓴 상소검우(爽梳劍雨)라는 초식…
그때 우리 무대가는 왜 모 언니의 검을 직접 막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후후… 그건 틀림없이 그가 나의 다음 수, 그러니까 검이 맞닿게 되면 내가 비연작파(飛燕雀破)나
천근미침(千斤梶針) 같은 수를 쓸 의도였다는 걸 알아본 거예요.”

“천근미침…? 잘 모르겠어요.”

“역시 무공을 모르는군요. 천근미침이란……”

진짜 이 누님,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부끄러운 최악의 죄인들’이라 평가받는 비인사기 맞아?
싸울 때는 좀 살벌했지만 근본은 별로 나쁜 성격 같지 않고 오히려 무지 친절하고 상냥한 여자 같기만 한 걸?
흠… 그런 생각이 든 나는 한동안을 계속 모용란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슬쩍 눈치를 보니 음혼귀모는 다정한(?)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질투는 나는 데 상대가 모용란이라 감히 게지기는 못하겠고 갈등만 때리는 모양이다.
그 꼴을 보니 재미는 있는데… 한편으로는 좀 어이가 없기도 하다.
레즈비언의 질투라니, 여자 흉내 내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는데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싶었다.

“…아가씨는 이제 그만 일행에게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예?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언니가 맘에 든다고 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으니까.”

“후후- 그런 건 나도 알겠어요. 하지만 나 같은 여자와 얘기하면 동생에게 좋지 않아요.”

음… 그러고 보니 음혼귀모는 그렇다 치고 선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이 쪽을 주목하며 인상을 긁고 있군 그래.
어… 근데 대화 도중 언제부터 모용란이 나보고 동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다른 사람과 이런 대화를 해본지가 오래라 내가 실수했어요. 동생은 이제 돌아가서 다시는 나와 아는 체 하지 말아요.”

“음… 좋아요. 오늘은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까.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 주세야 해요?”

“아아-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동생은 강호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모르는 모양인데,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져요.”

“뭐, 그 점에 대해서도 또 얘기했으면 해요. 아참, 다음에는 꼭 언니 얼굴을 보여줘야 해요. 궁금하니까.”

“동생은 도대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모용란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선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깐!”

돌아보니 모용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어, 뭐야. 모용란이 스스로 면포를 떼어낸다…?

“다음에 또…라는 건 없어요. 그러니 지금 내 얼굴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녀의 대사는 자못 처연했지만,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드러난 그녀의 미모는 내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오옷~! 과연 왕년의 천하제일미……!

“흥-! 소매는 평소 날 비웃더니 이제 보니 나와 같은 취미를 숨기고 있었군.”

질투심이 가득한 음혼귀모의 음성이었다.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 나이에서 일단 밀리지, 미모 딸리니 게다가 명색이 자신이 선배인데 무공도 상대가 안되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매라 해도 이번엔 나도 양보할 수 없지. 저 아가씨는 반드시 내가 차지하고 말 거야.”

음혼귀모의 결의에 찬 외침에 모용란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차갑게 코웃음만 한 번 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무시해 버린다.

아아- 소위 대본소용 무협지라면 남자 주인공 주위에 여자가 들끓어 여난(女難)을 겪는 일이 고정 패턴(?)이긴 해도… 난 어째서 여자인 척을 하고 있는데도 여난을 만나는 거지? 나 혹시 진짜 이상한 무협지에 출연한 캐릭터 아냐? 으… 갑자기 골치가 아파진 나는 웅성거리는 사내들을 무시하고 다시 선실 안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쨌건 모용란과 음혼귀모는 지금 모용세가를 중심으로 한 추적대를 따돌리는 것이 급선무일 테니, 음혼귀모도 당장 헛짓거리 하진 않겠지?

“아가씨… 미모로 음혼귀모와 모살부취를 이간질시키시다니, 과연 대단하십니다. 게다가 과거 철혈의 미녀라고 불리기도 했던 모용란과 벌써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시다니.”

따라 들어온 사영이 옆에서 웃음기를 담아 말을 걸어온다. 이 아저씨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느 사이 또 능글 모드로 돌아왔나 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요. 그보다 무대가 보시기엔 어때요, 저 모용란이란 여자?”

“음… 알고 보니 연상 취향도 있으셨군요. 하긴 과거라고는 해도 천하제일미로 불리던 여자이니……”

“밥 먹기 싫어요?”

“아, 그, 글쎄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듣던 것과는 다른 여자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저와의 대결에 있어서도 암수를 배제한 정통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고… 음, 역시 현재 모용란을 주목하시게 된 다른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이 아저씨… 약점(?)을 잡아야 정상이 되다니, 도대체 어느 쪽이 본래의 모습일까?

“직접 싸워보고 느낀 무공의 수준은 어때요. 무대가와 비교한다면……”

“서로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어서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저의 하수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렇죠…? 저 정도면 꽤 아까운 인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거야… 하지만, 제가 알기로 오래 전 비인사기는 비화곡에서 조차 받아들이길 거부한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비화곡 나름의 명분을 내세워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순전히 조직의 자부심에 입각된 결정인 것 같았다. 뭐, 달리 표현하자면 종로거리를 지배하며 협객을 자부하던 김두한의 ‘우미관’쯤 되는 정통(?) 건달 조직이 뜨내기인데다 어린이 유괴, 부녀자 강간…이런 저질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무시하는 식이었다고 할까?

“그건 그래요. 하지만 만약 저 모용란이 알려진 대로 모살부취의 패륜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모용란을 직접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 아닙니까?”

“그녀를 만난 건 분명 처음이지만, 실은 예전부터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어요. 여러 가지 살펴볼수록 비인사기 중에 모용란이란 존재는 어쩐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분명히 그녀는 다른 비인사기와 출신이 다르다고는 해도 지난 18년간 계속되어 온 무수한 살인은 결코 그들에 못지 않은… 음…? 그러고 보니……”

“뭔지 알겠죠? 그녀가 왜 다른지.”

가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과연 사영, 대교 자매들의 아버지라는 것이 실감난다. 조금 힌트를 주니까 바로 요점을 파악한 것이다.

“흠, 그래서 과거의 사건에 의심을 가지게 되셨군요. 그렇다면 향후 어쩌실 생각인지요?”

“그건 아직… 그녀가 탐나는 인재라고는 해도 지금은 챙길 여유도 없고 또 확실한 사항도 아니니, 이번 만남을 기억해 두기나 해요. 음… 나중에라도 그녀에 대한 일은 무대가에게 맡길 생각이에요.”

“알겠습니다.”

대충 그 정도로 사영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벽을 향해 누워 버렸다.

아까 맛이 갔을 때 선원들이 쓰는 이불을 가져왔다고 했고 그 위에 누워 있으니 바닥의 냉기도 별로 느껴지지 않고 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누운 채 모용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음… 이번 강호행을 대비해 이런 저런 강호의 사건이나 인물들 자료를 보던 중 비인사기에 관한 것도 꽤 봤었는데, 처음엔 그녀가 저지른 패륜 때문에 상당히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여러 가지 출처의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다 보니 웬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한 며칠 집중적으로 검토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그녀는 다른 비인사기와 달리 저지르는 범죄에 특성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비인사기의 면면을 내 식대로 정리해 보자면……

I. 음혼귀모.
무공수위 : B급(혈랑대 백인장 수준으로 추정). 단 각종 사이한 음공이나 독, 환술(幻術) 등 잡기에 능하며 지능이 높고 잔머리의 화신인 관계로 무공 이상의 요주의 대상.
범죄성향 : 수십 년에 걸쳐 강호의 선남 선녀들을 유혹 또는 강압적으로 납치하여 그 정혈을 갈취,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 보통의(?) 요녀들과 달리 남자와 여자 양쪽을 다 탐하는 변녀(변태여자).

II. 독수사갈.
무공수위 : B급. 명호에서 나타나듯 독에 능통함. 독에 관한 한 매우 학구적(?)인 자로써 오랜 세월의 연구 끝에 칠절지독 같은 자신만의 독특한 독을 다수 만들어냈고 당근 해독제도 오직 그 만이 가지고 있으므로 요주의(나 빼고) 인물.
범죄성향 : 독을 연구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 실험을 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용함. 내키는 대로 사람을 납치해 다가 온갖 독을 실험하는가 하면, 역시 같은 이유로 몇 개의 마을에 독을 풀어 전멸시키는 등 태평양전쟁 때 일본 관동군 만주 제731부대(일명 마루타 부대)가 저지른 생체실험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추정.

III. 탐동음마(貪童淫魔).
무공수위 : A급(비화곡 간부급 수준으로 추정). 무공이 뛰어난 대다 타고난 괴력을 갖춘 인물로써 100근(약 60kg)에 가까운 낭아봉(狼牙棒)을 휘두른다고 함.
범죄성향 : 명호 그대로 어린 소년, 소녀를 탐하는 변태. 10살 이하의 어린 미동들을 수집(?)하는데, 정혈을 갈취한다거나 하진 않지만 데리고 있다가 나이를 먹으면 죽여 버린다 함.

IV. 모살부취 모용란.
무공수위 : 특A급(비화곡 현역 간부와 장로들 사이로 추정). 현 모용세가의 가주인 비검(飛劍) 모용성 보다 한 수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임.
범죄성향 : 모친을 살해하고 부친과 야합하는 패륜을 저지름. 사건 직후 부친마저 살해하고 도주. 도주 과정에서 자신을 추종하던 모용세가와 각파의 젊은 고수들 30여 명을 살해. 이후 18년에 걸쳐 추적해 온 모용세가와 무림맹에서 파견된 고수들을 다수 살해. 비인사기에 적대적인 다수의 사마외도 고수들을 살해.

대충 이 정도이다. 죽인 사람 숫자라면 원판 극악서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문제는 각 각의 특성이 오히려 원판을 앞서는 더러운 자들이라는 점이다. 원판은 그래도 같은 남자를 건드리진 않았고, 10살 이하를 탐하지도 않았고 독을 실험해도 대부분 지 몸에 했다. 물론 근친상간도… 음, 이건 본래 일가 친척이 없어서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인가? 뭐… 하여간 원판 변명해 주려고 데이터를 뽑아 본 건 아니고 다른 비인사기와 모용란의 차이를 알자는 건데, 자료를 가만히 보면 모용란은 처음의 그 패륜 사건 이후에는 자신만의 패턴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색욕을 밝히 이성을 유혹한 사례도 없고 살인한 것도 추적자들이라던가 먼저 덤빈 자들을 죽인 거지 자기가 굳이 찾아가 죽인 사례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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