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2화 : 극악(極惡) 마병기(魔兵器) 출현
어쨌든 생각해보면 내 수제 K-2도 탄생 과정과 위력만 보면 이 시대의 신병이기와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병이기도 따지고 보면 그 귀하고 다루기 어려운 재료와 초일류 장인의 기술이 만나 그게 하늘의 도우심, 즉 우연의 확률에 의해 조화되어 태어난… 이 시대 일반 병기들과 비교해 상당히 반칙적인 병기 아닌가. 내 수제 K-2도 공장에서 한 번에 척하니 뽑아낸 부품들이 아니라 신병이기로 분류되는 명검들처럼 수많은 시도 끝에 운 좋게 탄생한 명품 부품들이다. 물론 그 운 좋은 확률을 높인 건 하늘과 함께 몽몽이라는 미래 로봇이 제공한 첨단 기술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뭐… 그렇게 스스로 마구 당위성을 갖다 붙이며 K-2를 신병이기류 마병기파로 등극시키는 작전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좀 해보았지만 당장 뚜렷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결국 그 생각 자체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도 예상 이상으로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식사 후 다시 재개한 바둑돌 PRI를 금방 익숙해진 태도로 도와주던 대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어, 곡주님.”
“응? 왜?”
“지금 하시는 훈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만……”
“그냥 이 놈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뭐. 이게 발사되는 순간 그 반동이 굉장히 심하거든. 그걸 최대한 몸으로 흡수해야 명중률이 높아지는 거고, 이렇게 빈총인 상태에서 격발 순간 총열 위에 놓여진 바둑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세를 훈련해야……”
습관적으로 줄줄이 설명을 했지만 눈치로 보아 대교도 이미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빈총이니 격발이니 총열이니 하는 용어들에 대한 추가 설명 요구도 없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문득 조금 불쾌해졌다.
‘식사 후 약 30분 정도를 일어서지도 않고 나름대로는 빡세게 훈련을 했건만 방아쇠를 당기는 족족 바둑돌은 매정하게 땅바닥에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 나 둔하다. 에효~”
‘그래도 나 왕년엔 저격수였어~! 이 몸이 문제란 말야 이 몸이~!’라는 외침을 삼키고 쓴웃음을 짓고 있자, 대교는 황급히 두 손을 저으며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를 반복했다. 대교에게서 예전처럼 말 한마디 실수해 놓고 곱게만 죽여 달라고 비는 오버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조심스런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소녀의 어리석은 소견이겠지만 들어보시겠습니까?”
“으응… 뭔데?”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닌 신병이라면 아주 먼 거리, 그러니까 적이 반격을 꿈꿀 수도 없는 곳에서 적을 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쓸 수 있다면 굳이 곡주님의 육체만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이런 걸 만들어서 보조를 하면……”
대교가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스윽 그려 보인 것은 보통 M60 같은 기관총이나 저격용 소총의 고정에 쓰이는 양각대였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와 그녀가 그린 양각대를 번갈아 보았다.
‘순간적으로 나 몰래 미래의 무기 세일즈맨이 날아와 대교에게 20세기의 무기 팜플렛을 쭉 보여주며 “하나 사실우?”라고 묻는 광경이 떠올랐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고, 하여간 나로서는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막대 형태의 물체를 Y자 거치대 같은 것에 걸쳐 안정감 있게 사용해 보자는 식의 발상 자체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대교의 경우 생전 처음 보게 된 무시무시한 신병이기 아닌가. 그걸 보면서 차분하게 응용사용법을 생각해냈다는 점이 대단한 것이다.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도 그걸 실행하기가 어려워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 자체가……’
“용서하십시오. 무지한 소녀가 함부로 나섰습니다.”
“어, 아냐. 굳 아이디어였어.”
“굳 아이……”
“그건 됐고. 하여간 고맙다. 잘했어.”
내가 과장된 태도로 칭찬하며 등을 토닥여 주자, 기뻐하면서도 약간 미묘한 표정을 함께 떠올리는 대교.
‘아무래도 얘가 요즘 내가 자길 어린애 취급하는 태도를 보이면 좀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
암튼, 좀 전까지의 내 감탄은 좀 오버였던 것 같지만 장기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본다고 하는데, 적어도 대교가 뛰어난 훈수꾼인 건 확실하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사실 서서 쏴는 고사하고 엎드려 쏘는 것도 버벅대는 현재의 육체적 조건에서 어깨 견착과 함께 왼손 파지도 불안정한 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왼손 파지 대신 양각대를 이용하는 방법을 정작 나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나는 군 생활 내내 K-2에 양각대를 달아 써본 적도 없었고 저격수였을 때도 무식한(혹은 가난한) 우리 부대는 저격 사격을 K-2로 서서 쏴를 기준으로 훈련 및 측정을 했었다. 당연히 양각대는 액션 영화 속에서 람보가 들고 설치던 걸로 유명한 M60 같은 기관총에나 다는 거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었던 건데… 거참, 나도 스스로는 자신이 꽤 다양하게 상황 해석을 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고정관념 탈피는 쉽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양각대 추가 제작을 결정하긴 했지만, 그게 만들어지는 동안 놀고 있을 마음은 없었다. 임시로나마 나뭇가지로 Y자 형 거치대를 만들어 오게 한 후 영점 사격을 다시 시도했다. 확실히 결과가 나아져서 얼추 탄착군이 형성되었고, 나는 드디어 감격적인(?) 실거리 사격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습관대로 100사로(100미터 거리의 표적), 200사로, 250사로 세 군데에 20발을 쐈다. 그 결과는 사로 순서대로 6, 3, 4발씩 명중.
첫 실거리라는 것으로 위안하며 재사격에 들어간 결과는 5, 2, 4. 한숨이 절로 푸욱~ 나왔다. 부대에서처럼 18발 밑으로 개 취급당하는 경우를 되새겨 보지 않더라도 자존심에 생긴 흠집의 고통만으로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오후 내내 PRI와 사격을 반복한 후 복귀한 나는 예상대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창밖에 뜬 보름달을 우러러보며 우오오~ 울부짖을 정도로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지만, 결국 밤늦게까지 PRI를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새벽녘에야 잠들 수가 있었다.
사격은 곧 정신력이라는 개념이 뿌리 깊게 자리한 나였기에 지금까지의 다른 일들에서처럼 원판의 육체 탓만을 할 수는 없었다. 총도 몽몽의 실제 사격시 성능 측정 결과 20세기 K-2에 뒤지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천하의 진유준이가 20발 중 최고 13발이라는 명중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보인 원인은 제대 후 빠질 대로 빠진 군기, 정신상태가 문제라는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대에서의 첫 사격 이후 그전까지 고민하던 모든 일을 잊고 사격에만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사격 훈련 시작 14일 후.
20발 사격에서 평균 18발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후로부터 또 며칠 정도 더 지난 때였다. 원판의 몸도 점점 K-2에 익숙해져 가는지 10일 전 만들어진 양각대를 부착하지 않고도 평균 17발 정도는 나올 정도로 어느 정도 안정된 사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므로 그때부터는 오히려
“이게 진짜 나 진유준의 사격이지. 암!”
그런 생각으로 뿌듯함에 가득한 상태였다.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다음엔 자유 이동 표적을 만들어서 연습한다거나 몽몽의 가상 현실 기능을 이용해 가상의 적군과 실전 훈련을 해야겠다고 전의에 불타던 나를 조금이나마 정신 차리게 한 건 한 발의 수류탄이었다.
사격장과 마찬가지로 내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수류탄 투척장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가벼운 긴장과 흥분 속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도 달라붙었지만 고개를 저어 털어 내고…
안전클립 제거, 안전 핀 뽑고… 투척!
흙으로 쌓아 만든 방호벽 뒤로 재빨리 몸을 낮추는 짧은 사이에 나는 문득 내 옆의 대교가 이번엔 어떤 표정이 될지가 궁금해졌다. 사격장에서와 같은 귀여운 모습으로 놀라는 모습을 기대하며 그녀의 긴장으로 굳어진 옆얼굴을 흘끗거리는 순간, 내 예상을 뛰어 넘는 어마어마한 폭음과 충격파가 전신을 강타했다.
휘청~! 기울어지는 내 몸을 대교가 받아 부축했고 나는 쪽팔림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잠시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모의 탄으로 연습했던 대로 충분한 거리로 투척한 것 같은데도 2미터 높이의 방호벽을 넘어 후두둑 소리를 내며 흙과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총소리나 총알의 위력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수류탄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서처럼 가까이서도 조금 놀라는 정도로 들어줄 만한 수준은 절대 아니고, 근처에 떨어져 터져도 잘만 뛰어 피하면 살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수준의 폭발물도 아니다. 그걸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곡주님! 곡주님~! 괜찮으십니까? 곡주니임~!”
당황하여 정신없이 불러대는 대교의 목소리에 간신히 반응하여 괜찮다며 억지 웃음을 보였지만 이미 대교는 정신없이 수하들을 부르고 있었다. 수류탄 투척 전에 느꼈던 불안감의 정체가 그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 사격과는 달리 실제 수류탄 투척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모의 수류탄을 벙커 속에 던져 넣는 훈련은 지겹도록 했지만, 실제 수류탄을 사용한 건 많지도 않았거니와 그때의 투척 장소는 지금과 같은 맨땅이 아닌, 위험도를 줄이기 위한 이상적인 장소… 즉, ‘깊은 물 속’이었다.
스스로의 경험치에 대한 착각과 그 경험 상황과 현재 상황의 차이점을 깨닫지 못하고, 더구나 군대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풀어진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 대가라고 할까? 나는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대교의 눈물을 스스로 자처하고 만 셈이었다.
십여 분 후 투척 장소를 직접 돌아볼 때쯤에는 웅웅거리던 머리 속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기분은 더욱 바닥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땅바닥에서 흉측하게 큰 입을 벌리고 있는 흙 웅덩이 주위로 박살 나고 타버린 나무 조각들이 아직도 작은 불꽃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여전히 내 옆에 선 대교는 물론이고 보이지도 않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다 달려온 비연대와 혈랑대 대원들의 얼굴에도 짙은 공포의 빛이 어려 있었다.
초강력 신무기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잘 보여 주었다는 계산적인 생각보다는 그저 이들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라는 미안함이 앞섰다.
그렇게 수류탄에 뒤통수를 맞은 나는 K-2 사격의 재미에 빠져 잊고 있었던 신무기 제작의 본래 의미를 다시 심각하게 되새겨 보게 되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 훌륭한 위협용 방어무기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몇 개만 만들어 본 거지만, 역시 수류탄은 너무 위험한 살상 무기라는 걸 실감한 나는 결국 나머지 수류탄은 모두 폐쇄해 버리기로 했다. 나중에 추가로 만들까 망설이던 더 강력한 무기도 영원히 망각 속에 묻어 버릴 결심도 했다.
에구, 내가 미쳤지. 개인방어 수단으로 ‘그런 것’까지 생각했었다니……
수류탄 투척 실험 이후 며칠이 더 지나 그 살벌한 한 방의 위력이 그 전의 K-2에 대한 소문과 함께 비화곡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쯤이었다. 나는 K-2를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할 묘안을 생각해냈다. 20세기 살상 무기의 사용에 대한 새삼스러운 부담감 때문에 망설임이 길긴 했지만, 이미 만들고 알려진 거 확실히 마무리를 짓자는 생각에 결국 강행하기로 했다.
사실 묘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좀 그런 것이, 이번에도 또 몽몽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몽몽이 설계도를 제공한다고 해도 이 시대 기술로는 K-2가 내 손을 떠나 있을 때 자동으로 동작하는 기능을 추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몽몽 녀석이 직접 나선다면 얘긴 틀려질 것이다.
“몽몽… 너, 전에 네 기체를 분리하여 네 작은… ‘분신’을 만들 수 있다고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