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3화 : 시간(TIME)씨의 방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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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3화 : 시간(TIME)씨의 방문.(3)


그날 저녁, 소교가 간만에 내 방 담당으로 들어왔길래 녀석에게도 슬며시 한 번 물어보았더니 소교는 웬지 조금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런 내력을 가진 검술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합공은 적을 치는데 중점을 두는데 비해 원앙삼마(鴛鴦參魔) 부부의 검공은 자신들과… 그들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누군가…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이상 가는 검공이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뭐… 마도인, 특히 여기 비화곡 소속치고는 드물게 생각하는 것까지 순정 만화 스타일의 소녀 소교의 선택답다는 생각은 든다만… 내가 여전히 자매들에게 보호받는… 그것도 ‘아이’라는 연상을 하게 되니까 더 찝찝하군.

“저, 곡주님께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원앙은 본래 부부의 상징… 저와 소령이는 그렇지 않으니 곡주님께서 뭔가 다른 이름을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너흰 자매니까 그냥 자매검이라고 하면……”

어라? 내가 너무 성의 없이 대답했나? 소교 표정이 좀 떫떠름해 보이네? 하지만 자매끼리 사이 좋은 새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헬프 미~! 몽몽. 톡!톡!톡!

“에, 그건 너무 평범할까? 그러면……”

몽몽이 눈치 빠르게 몇 가지 명칭을 늘어놔 줘서 그럴 듯한 걸로 다시 골라주려 했더니 소교는 벌써 고개를 젖고 있었다.

“평범함 속에 비범이 숨어있다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겠지요.”

그렇게 알아서 해석해 주면야 고맙다만… 근데 어째 소교답지 않게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야? 가, 가만있자… 새로운 무공 익히는 것이 애들 장난도 아닐 텐데 흑주 못지 않게 뺑이 치고 온 애한테 내가 너무 소홀히 대한 건가? 검법 이름 만들어 달라는 데도 나오는 대로 대충 말한 티가 난 듯하고, 아무래도…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지?

“자매검, 허락하신다면 앞에 사랑 자 하나를 붙였으면 합니다만……”

“응? 그거야 니 맘… 음, 그래. 우리 소교는 역시 감성이 풍부하구나.”

가볍게 허락하고 이어 짐짓 칭찬을 해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뭔가 상당히 떨떠름~한 기분을 느껴야 했고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애자매(愛姉妹)검법…! 좋은 이름을 하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취소~! 라고 외칠 타이밍은 이미 놓쳤기에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하는 소교에게 “감사는 뭘~” 하면서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이런 제귀럴…! 펼치는 에로틱 검무도 지켜보기 민망했는데 명칭까지 뭐 저딴 게 됐지? 애자매라… 아는 사람은 아는 쪽발국 제작의 그 처절한 18금(禁) 거진 포르노 게임의 이름 아닌가. 친구 놈이 애니도 무지 야하고 재밌다며 침을 흘리던 그… 에구, 소교야 너 왜 그러니. 설마 너 원앙검 익히러 갔다가 총관이 지들 부부용으로 짱 박아 논 소녀경 같은 이상한 책들에 빠져서 야한 소녀가 되어 돌아온 건 아니겠지?

“곡주님, 소녀가 무슨 실수라도……”

“응? 그럴 리가 있나. 아하하… 미안해. 내가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또 딴 생각했나봐.”

에구, 그럴 리가 없지. 저 얌전 나라 공주 같은 소교를 두고 뭔 망발, 망상이냐 진유준. 소교가 애자매 게임을 알 리가 없고, 결국 그런 거 연상하는 니가 문제다 니가… 응? 이것도 무의식중에 자아 분열한 건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타인처럼 타박하고… 에구, 타임씨 방문 이후 자꾸 이런 것이 신경 쓰이게 된 것 같다. 전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애염명왕(愛染明王, 불가의 수호신으로 온몸이 붉고 눈은 셋, 팔이 여섯이며, 머리에는 사자관(獅子冠)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고 몽몽이 그럼.)이라던가 ‘애’자가 들어가도 별로 이상한 연상이 안 되는 단어들을 떠올리며 자기 세뇌 작업을 좀 하고 있다가 문득 돌아보니 소교가 흠칫 놀라며 시선을 깔았다. 다른 애들과는 달리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일이 없는 아이인데 어째 여러 가지로 평소와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정말로 이번 애자매검법 수련 중에 뭔 일이라도 있었던 거 아냐?

“…소교야!”

“아, 예. 곡주님.”

“무슨 일… 있니, 너?”

“무슨 일…이라니요?”

“아니, 그냥… 뭔가 고민이라도 생긴 얼굴이라서 묻는 거야.”

“트…특별히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곡주님.”

있구만. 소교 나이의 소녀들의 고민이란 뻔하다고 누가 그러두만……

“후후~ 뭐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 누군지 행운아……”

“다, 당치않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우쒸-! 화들짝 놀라며 처음 만날 당시의 대교처럼 오버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내가 더 놀랐다.

“저를 포함한 소녀들 모두 언제까지나 곡주님의 소유입니다. 감히 그런 꿈도 꾼 적이 없으니 곡주님은 부디 소녀를 놀리지 말아주십시오.”

이런, 이런… 한동안 좀 잊고 있었는데, 소교가 오늘 또 비화곡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자라온 소녀 티를 내네? 으… 아무래도 흑주처럼 소교도 지 사부에게 가 있는 동안 군기가 잔뜩 잡혀 온 모양이다. 제기~ 총관 그 인간, 내가 그렇게 애들 살살 다루라고 했건만……

“음… 그냥 농담한 건데… 암튼 좋아. 무슨 고민이 있든 나중에 니 마음이 내키면 이야기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늘 말했듯 난 너희들이 날 너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야.”

“예, 곡주님. 소녀가 불민하여 그만 곡주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역시… 말투나 표정이나 최초 모드에 가깝지? 이걸 미령이 모드 정도로 바꾸려면 또 시간 깨나 잡아먹게 생겼다. 이놈의 총관, 두고보자. 웬지 몰라도 다른 간부들의 건의도 무지 많고 해서 전에 내린 부부싸움 금제(禁制)도 풀어줬건만… 다음에 또 꼬투리 잡히면 더 잔인한(?) 금제를 걸어 줄 테다.

기다렸던 소교가 저래서 좀 힘이 빠지긴 한다만 그래도 대교 자매들은 걱정이 덜 된다. 오늘도 열심히 천장에서 근무 중인 중증 극악 환자 흑주에 비하면 말이다. 흐음… 그래, 생각난 김에 내일은 당장 그 인간들이나 만나러 가봐야겠다. 타임씨… 당신이 혹시 태클을 걸지도 모르지만 난 역시 한 녀석의 인생에는 좀 관여를 해야겠소.

“…소교야. 나 내일 잠시 외출을 할 생각이니까 준비 좀 해 줘야겠다.”

“…지난번의 가경촌(歌磬村)입니까? 그럼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준비토록 해야겠군요.”

가경촌 나들이 가서 소호루(素湖樓)의 ‘이화’를 만날 때와 강호행에도 썼던… 나 진유준 본래의 모습과 닮은 인피면구는 현재 외당으로 회수되어 좀 더 정교하게 보강하는 중이다.

“아니, 가경촌 가는 것도 아니고 인피면구도 필요 없어. 대신……”

나는 소교에게 몇 가지 특별한 음식물과 술 등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지만 내일 갈 곳이 어디고 목적이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미리 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냥 조금 놀래켜 주고 싶었달까? 뭐… 녀석이 이 정도로 놀래 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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