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8-3화 : 천가장(天家莊)의 후계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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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8-3화 : 천가장(天家莊)의 후계자.(3)


내심 아차 싶었고, 대교도 뜻밖이라는 표정이었지만… 으… 이미 내뱉은 말이다.

“에… 조금, 아니… 아예 많이 좀 받아 와.”

나는 내친김에 그냥 밀고 나가자 싶어 오히려 그렇게 덧붙여 버렸다. 살짝 내 표정을 탐색하는 것 같았던 미령이가 혈랑대 두 명과 함께 술을 추진하러 나갔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령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내 손짓을 따라 얌전히 내 근처에 앉을 뿐이었다.

“저기… 소령아. 그, 호초…라는 녀석과 많이 친했니?”

내가 다소 주저하며 호초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순간, 동굴 내 모든 병력들의 눈동자에 조명이 파팍 켜지는 것 같았다…라는 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소령이는 그 큰 눈이 더욱 크게 부릅떠지며 입술과 손끝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에구, 내가 너무 섣부른 질문을 했나?

“아, 난 다만… 네가…”

“진대가, 비연대 부대장 소교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전에 없이 적극적인 눈빛으로 끼어드는 소교… 대교도 아니고, 소교… 왠지 좀 불길한 걸?

“소령은 분명 비연대 이전에 호초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송구하지만 여기 비연대 대장과 저, 모든 비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랄까… 대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섭섭함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구먼.

“그런 배덕자도 몰라본 저희들의 아둔한 눈이 그런 비극을 초래하였으니, 추궁하시려면 저희들을 모두…”

“소교.”

“예.”

“…비연대에서는 같이 술 마시면서 추궁하니?”

“예…?”

“난, 그냥 소령이가 너무… 아니… 뭐, 되었다. 어떤 이유로든, 이런 시국에 술이라니… 내가 못 미더워 보이기는 하겠지.”

“아, 아뇨.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손짓으로 소교의 대사를 막았다. 내 행동을 잘못 해석해서 지 동생 변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이해하겠다. 근데… 기본적으로, 저 얌전한 나라 공주 소교가 이런 게김성을 보이다니… 으으~ 이게 나 진유준의 현 주소란 말이지?

얼마 후. 소교의 발언과 내 썰렁한 대응 때문에 분위기 엄청 다운되어 버린 동굴 안으로 술 단지가 몇 개 공수되어 왔고, 나는 옵션으로 딸려 온 사발 하나로 혼자 술을 퍼서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커흐~ 좋다. 현재 기분은 둘째치고 좋은 건 좋은 거지, 암.

[…주인님의 현재 신체 회복 단계는 소량의 알코올 섭취도 가능합니다. 다만, 부작용의 장시간 지속이 염려되므로 저의 적극적인 간섭에 의한 알코올 분해 작업 병행을 권고합니다.]

“음, 그게 말인데… 오늘은 내가 먼저 부탁할 참이었어. 몽몽. 잠시 후부터… 계속 좀 부탁해.”

[저의 간섭이 있다 하더라도, 인체의 알코올 분해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리한 시도는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럽지요. 몽몽 선생.”

에구… 처음엔 소령이 좀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째 좀 살벌한 일로 번질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흐~ 하도 오랜만이라 그런가, 한 사발에 벌써부터 짜르르-하니 느낌 좋구먼.

“진…하운! 너희들의 주인이자, 내 좋은… 아우! 그런 진하운의 원한을 갚는 이번 일… 그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명령한다. 비연대 수석 무사 소령!”

내 거친 목소리에 놀라, 순간적으로 예전의 군기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간 소령이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했다.

“옛! 하명하십시오.”

“…술 마셔!”

“예, 옛…?”

“기분 더러울 땐, 술 퍼마시고 잠시 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아우가 얘기하지 않던?”

어리둥절한 가운데, 난처한 표정으로 언니들에게 도움 요청의 시선을 보내는 소령이… 음, 전후 상황은 그렇다 치고 일단 조금은 본래의 모습이로군. 결국 대교도 고개를 끄덕이자, 할 수 없이 술잔을 받은 소령이가 주저주저하며 잔을 비웠고 나는 나도 다시 한 잔을 원샷한 다음 또 소령이에게 잔을 내밀었다.

“왜 그래…? 너 술 세다고 들었는데, 편히 앉아서 몇 잔 더 마셔.”

소령이야 술을 잘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말술 중의 말술이라, 나도 전에 얘와 마시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던 아픈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음… 오늘은 본래의 튼튼한 내 몸이고, 고성능 알코올 분해기까지 일찌감치 작동시켰으니… 괜찮겠지?

그런데… 막상 위로의 술자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뭔가에 쇼크 먹고 실의에 빠진 여자아이를 좋은 말로 잘 위로해 준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이 술만 자꾸 권하는 이상한 짓을 계속했고, 소령은 소령대로 처음의 긴장한 모습이 사라져가며 예전처럼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처럼 ‘어머, 너무 맛있쪄~!’ 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냥 맹물 마시듯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저건 저거대로 꽤 무섭군.

어… 이런,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술 한 단지가 바닥을 드러내 버렸다. 나도 거의 같이 건배하긴 했지만… 음… 역시 소령이는 주당계의 샛별이며 알코올 나라의 요정… 아니… 그보다 이러다간 그저 미성년자 음주 권장이라는 범죄만 저지르고 끝나는 꼴인데, 이제라도 뭔가 위로의 말을 찾아야… 응…? 어째… 쟤 표정이 변했다…?

“호초… 이… 못된 계집애…”

드디어 먼저 입을 열었군.

“저도… 곡주님 좋아한다고… 그래 놓고는…”

에… 적당히 주화장창(酒和長蒼)이란 내공법으로 취기를 조정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웃-! 지금의 원샷에는 왠지 살기가…?

“언니, 언니… 나… 그 계집… 죽일 거야… 그럴 거… 야!”

소령이가 갑자기 자기 팔을 붙잡아 오자 소교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령이…잇! 너 안 돼…! 내가… 내가 할 거얏…!”

옆에서 다소 애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미령이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글고…”

이젠 대교에게 한마디 할 차례 아닌가 했는데… 에구, 날 본다. 어, 어…? 왜 그런 요상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거지? 음, 술 또 달라고…? 일단 주긴 준다만…

“…곡…주님…!”

윽! 이 녀석 설마 내 정체를… 에… 설마 그건 아닐 테고… 엄청 취하긴 한 모양이다. 원판과 내 얼굴을 착각할 정도면…

“…곡주…님… 우리 예에쁜… 곡주님… 헤헷~!”

음… 이젠 더 주면 안 되겠다.

“소령이보다… 소교 언니보다 더, 더~ 예쁜~”

아, 뭐… 주정하면서 내게 매달리고, 심지어 가슴에 안겨 오는 건…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니… 커흠… 이거 보는 눈들이… 음… 이거 어떻게 수습한다…?

“우리… 미령이처럼… 장난꾸러기… 대교 언니보다… 다정하고… 예쁜… 우리… 곡…주님…”

으- 왜 다들 말리지도 않고… 끄허험…! 이러다간 내가 이걸 노리고 술자리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사겠다. 에구, 일단 떼어 놓고… 어…? 소령이 얘…

“소령아, 그게 말이야. 난 곡주가 아니…”

팔에 힘을 주어 소령이를 품에서 떼어 내던 나는 녀석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순간 문득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소령이는 울고 있었다. 그 귀엽던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트린 채, 생전 처음 따라가 본 시장 골목에서 엄마 손을 놓쳐 버린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울고 있었다.

“나… 난 괜찮아. 네 잘못이 아냐, 임마. 네 잘못이…”

“죄송해요… 죄송해요… 곡주님 으와아아앙~”

소령이는 기어이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오래도록 녀석의 등을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오래도록 울다가 지쳐 겨우 잠든 소령이를 지 언니들에게 돌려준 후, 나는 다시 한 사발의 술을 들이켰다. 으… 위로는 고사하고 위태했던 다이너마이트에 기름 붓고 불붙인 결과가 나온 것 같아 무척 심란했다. 제기, 기왕 망가진 거… 계획대로 분위기 애매해진 다른 녀석들에게 무력, 아니 주력(酒力) 시위(?)나 해야겠다.

“자 이번엔, 혈랑대 제군들…!”

나는 아직 오픈하지 않은 술 단지를 직접 따며 혈랑대들을 불렀고, 백인장들을 시작으로 한 명 한 명, 동굴 안에 있는 열다섯 명 전원과 돌아가며 건배를 해버렸다. 커어~ 취한다. 거 뭐냐… 무협지 같은 데 보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주량 센 걸로 영웅호걸 급수를 평가하는 장면이 많던데… 확실히, 지금 날 바라보는 혈랑대들의 시선에 ‘존경’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감탄’의 기색을 떠올리게 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모두들, 잘 들어. 오늘 내가 마시는 것은 내 아우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번엔 모두 동시에 건배를 하는 거다. 잔이 없는 자들은 각자 만들어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즉각 각자 대나무 수통을 꺼내 드는 혈랑대와 비연대 대원들.

“…좋아. 모두들… 이 술을 너희들의 곡주가 흘린 피로 생각해라. 알겠나~?”

나도 취했나 보다. 오버다 오버!

“너희들의 곡주는 너희들 모두를 아끼고 있었다. 곡주의 혈채를 갚는 것만큼이나, 너희들 자신도 아껴라! 이제 곧 사갈의 잔당을 소탕하고 난 후에도… 갈 길은 멀다. 혈기를 누르기 어려울 때는 진짜… 최후의 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해라! 알겠나? 피는 피로써 갚는 거다!”

“존명~!”

뭐, 뭐냐, 뭐냐~? 말이 앞뒤가 좀… 으… 그래도 존명이라니, 이 사람들아 대체 뭘 기준으로… 에효우~ 나도 소령이 짝 나기 전에 그만 마시거나 시간차를 좀 두어야겠다. 몽몽… 최대한 부탁해~!

“진대가…! 이번엔 제 술 한잔 받으시겠습니까?”

음, 대교…? 그래, 아무리 그래도 대교하고는… 그런데… 응…? 소교…? 웬일로 소교도 지가 먼저 잔을 내미네? 설마 그 사이 알코올 요정 소령이에게 모두 전염되기라도 했나…? 어… 미령이도 대기 중…? 헛~ 남은 세 명의 비연대 여자애들도…? 자, 잠깐, 잠깐! 혈랑대에~ 너희들은 또 왜에~ 몽몽~ 살려줘어~!


다음 날 아침.
난… ‘그렇게 마시고도 난 끄떡없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억지로 선잠을 깨워 악으로 깡으로 산책을 나왔다. 술 대신 상쾌한 아침의 산공기를 삼키고 있으니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에구구~ 간밤에도 몽몽의 해독, 아니 해취…? 하여간 이제까지 몽몽이 내 몸에 개입한 일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간신히 정신을 챙길 수 있었는데, 이번엔 숙취 끝까지 몽몽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았다.

제기… 그동안 이 녀석들, 엄청 빡 돌고 스트레스 받아서 술은 땡기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참고 있었나 보다. 왜국 용병들 감시와 동굴 주변 보초로 빠진 병력들 말고도… 나 대체 몇 명하고 대작을 한 거지…?

뭐… 그래도 나름대로 보람이 있기는 했다. 대교 자매들은 내가 낙룡파 이후 누구보다 심하게 맛이 가 있던 소령이에게 신경 써 준 것을 감사하는 눈치였고… 조금 전 내가 동굴을 나오기 전에 얼핏 보았던 모습… 대교와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소령이의 표정으로 보아 어떤 형태로든 조금 회복되기는 한 것 같았다. 내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보다는 한 번 실컷 울어버린 게 도움이 된 거겠지만서도…

다른 혈랑대들의 경우는… 음… 잘 모르겠다. 그동안 극악…일 때는 소령이 말고는 내 앞에서 주량 자랑하는 간 큰(말 그대로 군.) 인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 무협지에 나오는 ‘주량 = 호걸량’ 이란 등식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여하간 이미 지난 일이니 앞으로 일이나 걱정하자… 라는 결론을 내린 후, 나는 오전 내내 다시 동굴 안에서 홀로 작전 회의를 가졌다. 일단 기본적인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자면…

  1. 대천마는 비화곡주 어리버리 극악이 사라진 후 두 달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비화곡 전체를 말끔하게 장악하지는 못한 듯함.
    이유는 라이벌인 혈신(血神) 명관약 장로와 그 일파의 세력이 비화곡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그만큼 크다는 것. 물론, 반역을 하려면 혈신 장로 처리가 정석이었겠지만, 이번에 대천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직접 날 치러 왔던 걸 보면 오랜 반역의 뜻에 비해 다소 성급하게 실행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는 추정 가능.
  2. 그래도 대천마의 정권 장악은 시간 문제.
    서열상, 당장의 곡주 대행 권한도 대천마에게 있으며, 비화곡 내외의 추종자들도 대천마가 많이 앞선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임.
  3. 사갈과 대천마의 연관성은 현재 증거가 전혀 없음.
    < 증인이 나지만, 증인을 증명해 줄 만한 증로봇(?) 은 그 존재 자체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움. >

음… 3번 같은 경우는 좀 애매하긴 했다. 사실 내 영혼 교체에 대해 내세울 증인은 몽몽 말고도 대교… 성지의 아수라 백작 등등, 꽤 많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설사 대교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 내가 곡주였다는 걸 밝히고 증명한다 해도 그건 ‘결정적인 물증’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내가 곡주였다는 걸 주장할 근거는 전부 다른 사람들과 사이의 기억인데… 그건 곡주가 의형제인 내게 말해 줄 수도 있는 문제이니 결정적이지 못하고… 곡주인 나와 진유준인 나(또 헷갈린다.)의 마지막 만남 이후의 사건들을 알고 있는… 대교를 비롯한 지난번 강호행 멤버들은 낙룡파 사건 때문에 현재 모두 ‘곡주 호위 실패’로 인한 처벌 대상… 즉, 피고인에 속하는 터라, 증인의 자격이 없는 셈이다.

뭐… 일단 그런 걸 주장함으로써 대천마의 빠른 권력 장악에 고추 가루를 치는 것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대천마가 얌전히 “그래 맞아. 내가 범인이다. 잘못했수…!” 그럴 위인이겠는가? 아니, 대천마가 설사 “내가 범인 맞다. 그래서 꼽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큰일이다. 필시 비화곡… 아니 전체 사마외도가 난장판이 되어 흔히 말하는 대혈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에효~ 거기다가… 만약의 경우, 그 웬수도 아닌데 웬수 같은 수라혈불(修羅血佛)… 그 인간이 또 나타나서 증인으로 채택되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 이전에 나만 아작 나는 거다.

“뭐…? 저 인간 영혼이 진하운 곡주의 영혼이냐고…? 뭔 소리래? 난 첨 보는 놈(영혼)이구먼.”

그 인간이 이래 버리면… 으… 한 번도 모자라 또 죽어…? 안되지이~ 암. 차라리 수라혈불을 내가 먼저 쓰윽…
끄흠… 제기, 역시 어영부영하다 내 쪽에서 먼저 죽어봐서 그런가…?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수라혈불 암살을 떠올리고 말았다. 게다가 어째 쉽게 충동이 지워지지도 않고… 으으~!

차라리… 차라리 그 인간이 내게 뭔가 잘못을 했으면… 아니, 가만… 수라혈불도 대천마의 추종자거나 고용된 거였다면…? 오래 전부터 원판에게 엄한 주술을 가르쳐 준 것도 대천마의 사주…? 그리고 지난번에 갑자기 나타난 건 대천마가 보기에 내가 최근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뭔가 확인해 볼 셈으로 수라혈불을 불러들인 거였다면…? 으음… 으으… 이건 너무 비약인가…? 그랬다면 날 죽일 때 수라혈불과 함께 나타나던가 그랬을 것 아닌가. 진유준아, 진유준아… 너 왜 이러니!

나는 나와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없는데도 일단 ‘화근이 될 만한 존재’, 수라혈불에 대한 ‘살의’가 하도 끈적거려서 한참을 애써 떼어 내야 했다. 나 이러다간 아무래도… 까닥하면 정말 원판 되지 싶다.

간밤의 술 파티 여파에다 새삼스러운 위기감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 내가 간만에 짜가 팔팔을 피워 물었을 때였다. 동굴 바깥의 동정이 어째 좀 이상하다 싶더니… 대교가 난처한 표정으로 들어와 뜻밖의 보고를 했다.

“저… 어쩐 일인지 천가장의 공자께서 우리 찾아 왔다고 합니다. 중히 알릴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응…? 천가장의 천우신…? 그 친구, 어제 딴 데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보다, 그 친구 뭐야? 이 동굴은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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