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9-3화 : 급청객(急請客) OR 불청객(不請客).(3)
3-4. 급청객(急請客) OR 불청객(不請客).(3)
내 작전 개시가 선언되자, 우선 대교가 먼저 비연대를 이끌고 출동했다. 비연대의 임무는 후방에 있었기에 그녀들이 출발한 후 나는 혈랑대를 이끌고 고룡포로 향했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전투화, 가슴에 매달린 수류탄과 등에 멘 K2소총, 옆구리에 찬 정글도… 그런 것들을 긴 장포의 겉옷으로 가린 채 고룡포 부근 언덕에 도착한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본적인 형세를 살폈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번화가는 대략 우리 시대 서울의 버스 한 블록 정도 크기… 여타 지방과의 뱃길 노선이 많아 번화가는 항상 시장통처럼 붐비는 분위기… 항구 바로 옆의 큰 이층 건물이 지방 관리들이 기거한다는 건물인 것 같고… 항구로부터 몇 킬로 정도 떨어진 해상의 무인도… 뭐, 대충 미리 보고 받은 대로였다.
왜인 용병들이 아직 중원을 떠나지 못한 것은 백골단이 어떤 수단을 써서 배를 구할 수 없게 했거나 낙룡파의 생존자인 우리의 살해 의뢰를 했거나, 혹은 둘 다 일 것이다. 결국 섬으로 우리를 유인해서 상대하겠다는 건데… 역시 왜인들과 백골단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선택이었을 것이다. 왜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투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고, 백골단 역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사람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자신들 외에는 추가 개입할 수 없는 장소가 좋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장소가 마음에 드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저 작은 섬이, 누구에게 지옥이 될지 한 번 보자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날 죽이러 온 놈들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차하면 다시, 그리고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남아 있던 잡념까지 몰아내고 그 자리에 독한 살기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곧 언덕을 떠나 예정대로 두 명의 백인장 만을 대동한 채 낯선 항구 마을로 향했고 마치 지나던 여행객처럼 그곳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얽혀 시끌벅적한 거리를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때로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고 웃으며… 두 시간 가까이 어슬렁거렸다. 장포 아래로 드러난 전투화라던가 내 행색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다양한 차림과 분위기의 사람들이 많은 항구 마을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다. 결국 몇 군데서 발견한, 내가 찾던 자들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직 아무 움직임이 없었지만 우리와 왜인 용병들 그리고 백골단의 치열한 상호 견제는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전날까지 보고 받은 대로라면 고룡포에 암약하고 있는 왜인 정찰대는 두 명이었고 그것들은 건물의 천장 같은 곳에 짱 박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돌아다니며 몽몽으로 스캔한 결과로는 혈랑대가 눈치채지 못한 닌자들이 세 명이나 더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거의 완벽하게 시장 통의 상인이나 일꾼으로 변신(?)해 있었다. 혈랑대가 닌자들의 잠복지 두 군데를 눈치채고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더 뛰어난 닌자들이 비웃듯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까…? 그러나 놈들은 이미 낙룡파에서 몽몽의 데이터에 등록된 놈들이었다. 그쪽은 발견 순간에 이미 게임 오버인 셈이 고…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백골단이었다.
오늘 오전에 새로 항구에 도착했다는 두 척의 배 밑창에 무수히 대기 중인 시체 같은 자들은 역시 몽몽으로 확인했지만, 그 강시 같은 전투대보다는 닌자들 못지않게 일반인들과 동화되어 어슬렁거리는 많지 않은 수의 백골단들이 내게는 더 위협적이었다. 무엇보다 저 녀석들은 우리 쪽에서 먼저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난 돌아간다. 두 사람은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부터 한 식경 정도 후부터는 내가 말하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이동해서 신호를 기다려.”
내 낮은 명령에 따라 백인장들이 움직인 후, 나는 혼자 다시 고룡포를 빠져 나와 처음의 언덕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꽤 큰 모험을 해보았던 건데… 다행히도 백골단에서는 내가 단신으로 움직여도 접근해 오지 않았다. 역시 우리와 왜인들과의 선제 전투를 우선 순위로 놓고 있다는 것일 테고, 결정적으로… 놈들이 우리가 후방에 상관마 당주가 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일찌감치 끌어들이려 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결국 언덕에서 대기 중이던 혈랑대들에게 무사히 돌아온 나는 고룡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잠시 다시 호흡을 조절했다. 겉으로야 태연히 산책하듯 거닐다 온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내내 나는 줄곧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타고 흐르는 것을 느껴야 했다. 제기… 쪽팔리게 팔뚝의 소름이 꽤나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
“…신호는?”
내가 문득 묻자 바위 뒤에 서 있던 혈랑대 중의 한 명이 ‘아직…’이란 말로 대답해왔다.
…우리 병력 중 가장 고수인 대교를 보냈으니 설사 백골단의 방해를 받더라도, 상관마 당주를 놈들의 예상보다 빨리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일 자체는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런 사태를 이곳의 백골단이 알아채는 시기,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변수였다.
“…혈랑대. 후방의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몽몽, 적의 움직임은?”
[ 아직 특별한 변화는 없습니다. 단, 거리가 멀어서 방해물로 가려진 장소에서의 움직임은 체크가 곤란합니다. ]
나는 결국 눈을 감은 채 고작해야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을 너무도 초조하게 음미하고 있었다. 백골단이 알아채는 시기가 빠를수록 그만큼 놈들에게 계획을 변경할 여유가 생길 것이고… 최악의 경우 우리와 왜인들과의 싸움 붙이기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불리해진다. 아무리 내가 모든 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기본 전력이 밀리는 것은 물론이고, 싸운 들 도망친 들… 설사 여기서의 탈출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후에 우리에게 ‘반역자’의 누명을 씌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후우… 백골단 제군들… 그렇게 되면 서로 망가지는 거라구. 부디… 부디 이대로……
“아, 왔습니다. 대교님의 신호입니다.”
혈랑대의 보고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 직후 다른 혈랑대의 음성이 이어졌다.
“헌데, 저 것은……?”
대교의 신호탄 말고도 뭔가 다른 신호탄도 보였던 모양이었다.
[ 거리에서 백골단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철수하는 듯 합니다. 본대가 탑승 중인 두 척의 선박에서는 아직 별다른 유동 병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
“됐어, 이 정도 타이밍이면 된 거야!”
나는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입고 있는 흰 장포의 앞자락을 열어 젖히며 K2를 꺼내 들었다.
“몽몽! 조준 지원!”
즉시 사격 자세로 들어간 나는 호흡을 멈춘 채 포인트 몇 군데를 연속으로 저격했다. 길 거리에 있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위치에 좌판을 벌이고 있던 놈, 건물 안이라고는 하지만 바깥 정찰을 위해 상체나 머리가 언덕 위의 내 시야에는 들어오는 놈들 둘…….
[ …주인님의 사격은 모두 적중했습니다. 이어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 측 병력의 후속 습격으로 모든 포인트의 적병 제압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직 백골단 본대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
이로써, 백골단과의 전면전 회피가 거의 성공 쪽으로 돌아선 셈이고 왜국 용병들에 대한 선제 공격은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었다. 나는 K2를 어깨에 걸친 채 천천히 언덕 아래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혈랑대들은 일제히 머리띠를 떠내 이마에 묶으며 나를 따랐다.
다시 고룡포로 돌아 간 나와 혈랑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아까 와는 다른 혼란의 풍경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질 않나 천장 위에서 시체가 떨어져 내리질 않나, 그런 돌발 사태들이 동시에 터졌고, 다른 쪽에서는 갑자기 웬 험악한 사내들이 가게 점원과(?) 싸움을 벌여 살해하는 등의 끔직한 일들이 이어서 벌어졌으니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패닉 상태가 될 법도 했다. 그러나 과연 강호라고 해야 할까…? 겁을 먹고 건물 안이며 골목길로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살상의 현장 근처에 모여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웅성대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이 뒤를 돌아 보다 나와 혈랑대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저, 저 들은, 저들은 설마…….”
그들은 내 뒤를 따르는 혈랑대들 이마의 머리띠에 새겨진 붉은 늑대 머리 그림을 주목하는 것 같았다.
“혀, 혈라… 혈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주저앉았고 이어 누군가 더 확실하게 소리를 질렀다.
“혈랑대닷! 비화곡주가 나타났다! 으아악~!”
그로부터… 불과 몇 십 초가 지나자 장터 같던 거리의 인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없었다. 음… 차가운 바다 바람만이 휘감아 돌고 있는 텅 빈 거리에 본래의 무장한 모습을 드러낸 채 망토처럼 걸친 장포를 흩날리며 서 있자니까 웬지… 좀 민망했다.
“진하사님! 명령대로 적의 척후를 모두 제압했습니다. 독각포의 지원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전투 시에는 군대 시절 호칭을 듣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미리 말해 두었더니 잊지 않은 모양이다. 암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선박은?”
“이미 백상 백인장이 선원들까지 확보해 놓았습니다. 헌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
천사표 백인장이 말한 문제란 이 항구에 주둔 중인 정부군들이었다. 늑장 출동한 관원들이 뒤늦게 우르르 나타나긴 했는데, 뭐… 천백인장이 ‘약간의 문제’라고 표현했듯 그리 위협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체 웬 놈들이냐? 백주 대낮에 살인이라니, 모두 체포해라!”
선두로 기세 좋게 달려 온 관원이 외쳤지만 마지못해 따라 온 기색이 역력한 다른 병졸들은 그저 머뭇거리며 우리 쪽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빨리 체포하라고 호통을 쳐도 계속 부하들에게 씹히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대장에게 뒤늦게 달려 온 부관인 듯 보이는 자가 뭐라 귓속말을 했다.
“그, 그럼 이자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 강단이 있는 무관(武官)이었는지 대장은 갈등하는 표정이면서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설사… 비화곡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일반인을 해치는 것을 보아 넘길 수는 없는 노릇! 무엇들 하느냐, 너희들이 먼저 내 칼에 죽고 싶으냐!”
나는 내심 조금 감탄해서 뭐라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지만… 일단 부하들이 너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명령대로 칼을 뽑거나 창을 앞세우고 우릴 포위하려던 병졸들은 우리가 뭘 어쩔 것도 없이 일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무기를 땅에 떨어트리고 주저앉는 자까지 있었다. 그들의 겁먹은 시선을 따라가 보니, 우리 뒤쪽의 고룡포 입구 방향에 구름처럼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근… 그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것은 내가 봐도 살벌한 기세의 폭풍당이었다.
“대, 대체 비화곡은 이 고룡포에서 무슨 짓을… 설마 어딘가와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건가?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흠…! 이 친구 꽤 쓸 만한 걸…? 나이는 내 또래에 불과해 보이는데 내공 수치도 높은 편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관리 특유의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도 않고…….
“난 하사 진유준이라 하는데… 현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할까 하오.”
내가 정중히 포권하자, 무관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난 이 곳의 경비 대장인 ‘조일운’이오. 아무리 세력 있는 강호인이라고 하나 이유 없이 양민을 해쳤으니 난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우선 밝히자면, 조금 전 우리가 죽인 자들은 모두 양민이 아니며… 또한 한인(韓人)도 아니오. 왜국에서 넘어 온 자들이며… 또한 최근 우리 비화곡의 중요 인물을 살해한 범인들이오.”
“그, 그게 사실이오?”
“지금은 시간이 없어 자세히 설명하거나 증거를 댈 시간도 없소. 저 시신들을 넘겨 줄테니 알아서 조사해 보기 바랍니다.”
조일운은 뭔가 더 묻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그도 얌전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폭풍당이 마치 고성능 우퍼 스피커를 한계까지 켜 놓기라도 한 듯 사방을 말발굽 소리로 진동시키며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상관마 당주의 옆에는 그를 안내해 온 소교와 비연대(사망한 것으로 된 대교는 인피면구를 쓰고 섞여 있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천우신에게 들은 대로 세 명의 백골단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전에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 백골단의 대빵, ‘마혼사조(魔魂死鳥) 한기’였다. 보통 시체 같다는 말로 대변되는 백골단의 짱답게 음산한 분위기가 일품(?)인 남자였다. 그나저나… 간만에 보는 상관마 당주와 그 뒤의 폭풍당 무사들은 고양된 감정 때문에 평소보다 배나 더 살벌하고 광폭한 분위기였고, 말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상관마 당주의 두 눈은 정말로 불꽃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폭풍당의 상관마 외다. 말 위에서 실례하겠소이다. 그 찢어 죽일 놈들은 대체 어디에 있소이까!”
후… 평소 같으면 저 인간의 폭주 모드에는 겁부터 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나도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일단 말에서 내리시오, 상관당주!”
“대체 그 놈들이 어디 있느냐 말이오!”
썅~! 너두 씹는다 이거지?
“내리라고 했다! 상관마!”
내 반말 맞고함에 순간적으로 멍해진 상관마…! 흥! 대한민국 군바리는 비록 내공이 없을지 몰라도 독기는 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그게 벼슬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복수의 우·선·권·은 내게 있다.”
잠시의 눈싸움…! 웃기지 마라 상관마. 눈싸움이라면 당신 대 선배 격인 야후장로에게도 이긴 적이 있는 나라구! 그렇게 잠시의 썰렁무쌍한 분위기가 지난 후, 결국 먼저 항복을 선언한 것은 상관마였다. 상관마가 다소 멋적은 표정으로 먼저 말에서 내리자 그 뒤의 폭풍당 무사들도 일사불란하게 내려섰다.
“이거… 곡주님의 의형제께 제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흉수들이 가까이 있다 생각하니 울분을 참기 어려워서 그만…….”
“아니, 나 역시 너무 흥분했소. 평소 아우에게 상관마 당주와 미염당주(美艶黨主)의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오.”
슬며시 미염당주 고리라 얘기를 꺼내자 상관마의 안색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도 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나와 상관마 사이에 비로소 적당한(?) 분위기의 재인사가 오가고 나자, 이번에는 마혼사조 한기도 끼어들었다.
“백골단 단주 한기라고 합니다. 음… 흉수들을 찾아내는 건 진대협보다 한 발 늦긴 했지만 다행히도 제 수하들이 이 곳에 집결할 때 선박을 이용했으니 바로 진대협과 함께 흉수들을 치러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역시 그렇게 나오시는군.
“배…? 그렇다면, 적은 바다에 있었군.”
“헌데, 우리 배는 인원이 다 찼으니 폭풍당은 다른 배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미 자신들의 배와 우리가 구한 배 외에는 폭풍당의 인원이 동시에 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배들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공작을 해 놓았으니 부리는 여유…….
“흥~! 아무렴 항구에 배가 없겠소. 이봐~!”
아무것도 모르는 상관마가 대뜸 수하를 불렀지만, 나는 그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막아섰다.
“배는 더 이상 없소. 아니 있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갈 수 없소.”
“그게 무슨…….”
“폭풍당과 백골단은 여기서 기다리란 말이오.”
“아니, 나더러 여기까지 와서 흉수들을 구경만 하고 말란 말이오?”
상관마는 다시 인상을 구겼지만 시체 짱 한기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친히 원한을 풀겠다는 뜻은 알겠소. 그러나 우리 백골단도 주인의 원한을 갚고 싶은 마음은 그에 못지않을 것이오. 더구나… 현재 진대협과 그 인원으로는 흉수들을 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진 않으시오?”
나는 시체 짱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 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아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마·지·막·부탁을 들어 줘야겠소. 내 아우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은 어디까지나 죄·인·들의 몫이오.”
“죄인……?”
상관마는 물론이고 마혼사조… 시체들의(?) 짱도 내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제 주인을 지키지 못했던 자들… 그리고 하운 아우의 천기(天氣)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도 그의 강호행을 막지 못한 나…! 그러니 설사 우리가 흉수들과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당신들 누구도 도울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오.”
“그, 그럼 처음부터 그런 각오로…….”
예상대로, 내 비장한 표정과 태도는… 적어도 상관마 당주에게는 먹히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규모이던 상관없소. 알겠소…? 누구도 이 싸움에 끼어 들지 마시오.”
시체 짱 한기는 ‘정말 동귀어진 해 주면 고맙지.’라는 생각과 ‘혹시…’라는 생각이 충돌되는지 애매한 표정이 되어 있었지만, 상관마 당주는 내 예상보다 더 감동을 먹은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외쳤다.
“아, 알겠소이다. 이 상관마! 누구도 끼어 들지 못하게 함은 물론이고, 두 눈 부릅뜨고 진대협이 의형제의 혈채를 갚는 것을 지켜보고 후세에 증인이 되겠소이 다.”
사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여기서 저 무인도 안에서의 싸움이 자세히 보일 리도 없겠고, 봐도 곤란하지만… 어쨌거나 이 귀여운(?) 단순 터프가이 상관마가 보초를 서 주기로 하는 바람에 시체 짱 한기도 더 나서기 곤란한 듯 입을 다물었으니 결국 백골단의 개입은 성공적으로 막은 셈이었다. 뭐… 상관마는 끼어 들지 못하게 할 대상을 오해하여 엉뚱하게 고룡포 경비대장 조일운을 노려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얼마 후, 우리 일행은 계획대로 모두 배에 탄 채 고룡포를 떠날 수가 있었다.
“진대협의 무운을 빌겠소이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 나와 석 달 동안 술을 마십시다~!”
축복인지, 살아 돌아오면 술로 죽이겠다는 저주인지… 하여간 그런 상관마 당주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배는 점차 항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만큼 사갈의 잔당들이 기다리는 섬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