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0-1화 : 무인도에서의 혈전(血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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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20-1화 : 무인도에서의 혈전(血戰).(1)


3-5. 무인도에서의 혈전(血戰).(1)

배 위에서 맞는 태양은 뜨거웠고, 바람은 끈적했다.
어느 사이 내 육안으로도 목적지인 섬의 바위들과 그 것들을 녹갈색으로 뒤덮은 수목들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보고 받은 대로 목적지인 섬은 육지 방향의 지형이 험하고 암초도 많아 배를 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몽몽이 찍어 준 바위 사이로 개미처럼 작은 인형(人形) 두 개가 꼬물거리는 것 같더니 곧 하나가 사라졌다.
이어 그 너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저 배는 뭐다냐.’라고 묻는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지만…
고룡포에서 근무 중이던 같은 편 첩자들은 이미 전멸하여 고룡포 공식 경비대 시체 안치실에 누워 있는 상황이니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음… 사실 난 오늘의 작전을 짜는 동안 뭔가 특별하고 기발하게 적의 허를 찌르는… 원판을 얘기할 때 흔히들 말하던 ‘신묘한 작전’에 의한 공격을 떠올리기 위해 엄청 머리를 혹사했었다.
택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원판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으로 침투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발상만 잔득 떠올리기도 했었지만…
당근, 그 딴 건 이 시대에 있지도 않거니와 내가 만들려고 해도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일도 아니었다.
그밖에 몽몽에게 저장된 병법서들을 아무리 검색하고 연구해 봐도 내 주제에 원판처럼 신묘하고 기발한 작전 같은 걸 뽑아 낼 수는 없었고…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정면 돌파와 후방 기습, 그 두 가지 정석(?)뿐이었다.
뭐, 물론… 나도 내 나름대로 거기다가 살을 붙이고 비비꼬기는 했지만 말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접근해서 지나치라고 해.”

내 명령에 따라 고룡포에서 데려온 선원들은 익숙하게 배를 몰아 내 명령대로 섬의 오른 쪽을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섬에서 유일하게 배를 댈 수 있는 곳은 육지 반대편 해안의 딱 한 군데뿐이라니 어차피 우리 병력이 쳐들어 갈 수 있는 루트도 거기 뿐이었다.
단, 그 전에 최대한 적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었다.
나는 섬의 경치를 즐기는 태도로 뱃전에 서서 내 옆의 대교를 돌아보며 빙글거리고 웃었다.

“대교… 내게 더 가까이 와. 그리고… 얼굴 풀어.”

“아, 예.”

대교는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붙으며 내가 의미 없이 손을 든 장소를 보는 척을 했다.
뭐… 섬에 있는 놈들에게 표정까지 읽힐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철저히 해 두고 싶었다.
나는 현재 출발 전의 장포보다 화려한 디자인의 겉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대교도 비연대 복장을 비화곡 초기처럼 곱고 여성스러운 겉옷으로 가리고 있었다.
뱃놀이 나온 팔자 좋은 도련님과 그 애인… 그런 정도의 설정이었지만 구체적인 건 둘째치고 일단 ‘민간인’으로 보이기를 원한 것이다.
물론 다른 병력들은 출발하자마자 보이지 않는 배 안에 짱 박혀 있는 상태이고 갑판 위에는 고룡포에서 데려온 선원들이 오갈 뿐이다.
혹시나… 하고 우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섬으로부터는 화살 한 방 날아오지 않았고 그밖에 눈치를 깐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공격 시기를 이렇게 환한 대낮으로 하길 잘 한 듯싶다.
얼마가 지나자 배는 차츰 섬에서 멀어져 내가 선원들에게 요구한 지점… 지금은 비록 멀어지고 있지만 뱃머리를 돌릴 경우 이 지역 특유의 바람과 해류를 타고 빠르게 섬의 상륙지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섬에서 충분히 멀어진 것 같자 대교는 슬며시 곁에서 떨어져 서며 입을 열었다.

“…천응 일행이 무사히 제 위치를 점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사실 내가 배를 섬 가까이 몰게 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걸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천응과 혈랑대 두 명을 지난밤에 미리 섬에 침투하도록 했는데… 배가 상륙할 장소와 반대 해안으로 침투를 하는데, 성공할 경우에도 우리가 갈 때까지 아무 활동도 시작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밤바다를 몇 킬로미터나 헤엄쳐 섬까지 가는데도 엄청 뺑이 쳤을 것이고…
도착한 후 지금까지 섬 위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장소에 마냥 짱 박혀 있느라 고생인 천응과 일행들은 조금 전 갑판 위의 우리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었다.
좋아, 친구들… 조금만 더 참으라구. 곧 화끈한 경험을 하게 해 줄테니까.

“몽몽… 수색 작전 개시!”

나는 몽몽의 기능을 스캔 기능에만 집중시키는 명령을 내렸고, 몽몽이 대답했다.

[ …모드 변경 개시를 잠시 유보하겠습니다. ]

“그래, 네 맘대로… 응…? 뭐?”

우쒸~! 뭐야, 몽몽.

[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 동안 저도 전투 상황에 집중하고 있어서 발견이 늦었습니다. ]

뭐…야? 모드 변경 전 혹시나 하여 주변을 스캔해 보니 수·상·한·인물이 하나 걸렸다고라…?
정밀 스캔 해보니 그게 바로… 으… 제기, 그 인간이 뜬금없이 여긴 또 왜 나타났다는 거야?

“진하사님……!”

선원 하나가 내가 말한 위치에 도달했다고 알려주자, 대교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시선을 던지며 항로 변경 명령을 재촉했다.
짧은 순간 머리 속으로 온갖 생각이 우르르 몰려든 상태였지만 나는 거기서 최대한 빨리 해법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슬며시 몽몽이 알려 준 ‘선원’의 시야가 대교에게 가려지는 위치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대교. 티내지 말고 잘 들어. 아무래도 이 배의 선원 중에 엉뚱한 인물이 끼어 있는 것 같아.”

“옛? 서, 설마……?”

“나도… 조금 전에야 알아차렸어. 아무래도 그 자부터 잡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죽이지는 말고…….”

대교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더니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대교는 내 앞을 떠나 선원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선원들을 불러 모으더니 예전대로 항로 변경을 지시했고 배가 섬에 가까이 갔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갑판 한 쪽에 쌓여 있는 나무 상자 몇 개를 손으로 가리켰다.

“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저걸 모두 안으로 치워요.”

대교에게 지목된 젊은 선원은 군말 없이 그 쪽으로 몸을 돌렸고 순간, 대교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 선원의 등 뒤 혈도를 찍었다. 에… 대교의 손속이 그만큼 빨랐고 예상외의 공격이었던 탓인지… 다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상황 종료였다.

“흥-! 감히 누굴 속이려고!”

느닷없이 동료를 공격하여 쓰러트린 대교가 날카롭게 외치자 선원들은 모두 겁을 먹고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아가씨. 제 조카 놈이 아가씨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선장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앞으로 나서자, 대교의 찌르는 듯한 시선이 그에게 돌아섰다.

“조카…? 정말 이 자가 당신 조카란 말인가요?”

“그, 그렇습니다. 아이고- 이, 이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선장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하자 대교는 조금 당혹해 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 사이 쓰러져 있는 선원에게 다가간 나는 찬찬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후… 그 동안 대교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정밀한 인피면구(人皮面具)라…….

“헛~!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두구 놈 얼굴이… 얼굴이…….”

선장이 대표로(?) 외쳤지만, 다른 선원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래져 있었다. 아니… 대교도 그들만큼이나 놀랐는지 벌려진 입술을 쉽게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안심하시오, 선장. 이건 은밀한 일을 하는 강호인들이 즐겨 쓰는 인피면구라는 것이고… 이자는 당신 진짜 조카와 아무 관계가 없소.”

나는 선장에게 인피면구를 건네주어 그 것이 비록 정밀한 면구이기는 하지만, 그의 조카 얼굴을 벗겨 낸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후 선원들을 해산시켰다.

“대교, 너도 놀랐나?”

“그, 그렇습니다. 설마… 여기서 이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대교는 아직도 믿겨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혈도를 쳐서 기절 시켜 놓은 남자, 천가장의 후계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나도 그래. 정말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남자로군.”

“역시 천마 노괴(老怪)의 수하… 그런 걸까요?”

“글세… 난 어째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쯧, 이 친구 정체를 알아보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일단 혈도 상태 다시 철저히 확인한 다음 아래 선실에 가두어 두도록 해.”

나는 대교가 천우신을 끌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처음부터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이성적인 상황 분석과 함께 일이 진행되는 동안 느꼈던 감각까지 다시 떠올려 보아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이젠 이 정도로 노골적인 수상함을 주장하는(?) 인물… 근데 또한 그런 인물치고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해를 끼친 점이 너무 없었다. 한 가지… 앞으로 해를 끼친다는 가정하에 그 형태를 추정해 보자면…….

“진하사님! 만약… 만약 저 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왜인들뿐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돌아 온 대교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우신의 정체가 천마 노괴의 간세라면… 그 자가 키운 다른 고수들… 아니, 노괴의 본인이 이미 이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내게 몽몽이 말한 위기 감지 능력이 있다면 그 정도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지만… 그걸 대교에게 딱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럴 경우… 진하사님은 부디,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무슨…….”

“저는 아직 그 노괴물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숨을 건다면… 반드시 한순간이라도 그를 멈출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진하사님은 반드시 곡주님의 독각포로 노괴의 숨통을 끊어주십시오.”

제기…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야 이 계집애야,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가 너에게 그런 역할을 맡길 것 같으냐?

“곡주님의 총탄으로 원수와 동귀어진 할 수 있다면 소녀의 목숨은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독각포는… 본래 내 거야.”

칫…! 웬지 감동 같은 거보다 심술이 앞선 나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꾸해 버렸다.

“그,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소녀는 다만…….”

“알아. 무슨 말인지. 그러나… 미안하지만 설사 대천 마가 지금 나타난다 해도 그 노인네는 어디까지나 내 몫이야.”

나는 뭐라 대들려는 기색의 대교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잘 들어! 만약 네 말대로 정말 대천마가 저 섬에 와 있기라도 하면… 그럴 경우는 너는 물론이고 모두 즉각 바다로 뛰어 들어 버려.”

“진하사님!”

“들으라고 했지! 너… 내가 와룡전에서 가지고 나온 상자… 거기에 있던 게 뭔지 알아?”

“…저주받은 금단의 무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최악의 경우에는 그걸 쓸 거야. 그걸 쓸 경우… 대천마고 뭐고 이 섬에 있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 해. 알겠니……?”

“그런…….”

나는 불쑥 팔을 들어 대교의 양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약속…해라.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는다! 알겠나?”

“그럴 수는…….”

“닥쳐! 네가 복수를 한다고 죽기라도 하면…! 내, 내 아우가 과연 좋아 할 것 같으냐? 응? 말해 봐!”

내가 울컥거리고 토해내는 말에 대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파르르 떨고만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대교의 애초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웬지 견디기가 어려워져서 대교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고 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적이 우리 배의 접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 가며 공격 타이밍을 재려고 했더니 공연히 내부 분열(?)로 빡 돌아서 씩씩대는 사이 이미 배는 해안가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교 너… 어떤 상황에서든 너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면… 진하운도, 진유준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명심해!”

나는 다시 한 번 못을 박은 다음, 다시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지휘관인 이상 전투를 앞두고는 냉정해져야 했다. 저 낙룡파에서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으후으… 그 사이 벌써 적의 공격 사정권(활이 있을 경우)에 들어와 버렸는데도 아직 공격이 없다…? 음… 해변가에 서 있는 두 놈의 사무라이… 몽몽이 확대해 준 저 쌍판들… 분명히 기억난다. 으… 제기… 참자 참어, 진유준. 저 놈들 뒤의 바위 뒤나 숲 속까지 몽몽의 스캔 범위에 들 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더…….

“대교. 예상 밖의 상황은… 닥치고 나서 생각하자. 지금은 계획대로 움직일 때야.”

“…알겠습니다. 소녀가 공연히… …하지만, 웬지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느낌입니다. 저는 앞으로… 더 강해지겠습니다. 곡주님을 위해서라도…….”

이쒸, 마지막 그 주문(?)은 좀 빼지…! 후… 그러나 뭐, 나도 한 편으로는 오히려 뭔가가 조금 해소된 기분이긴 했다. 처음의 각오는 그대로 이면서도 그동안 지나치게 팽팽했던 긴장이 적당히 풀어진 느낌이랄까? 어떤 형태로든 한 번 감정을 터트려 버려서 그런가…? 어쨌든… 좋아, 이대로 가자구! 겉에 걸치고 있던 장포의 허리띠를 푸는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가 그려졌다. 나와 대교가 거의 동시에 벗어버린 옷이 바다 바람에 실려 깃발처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나는 재빨리 숨겨 두었던 K2를 꺼내 들고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뒤늦게 ‘역시 적이었나?’라는 표정으로 몸을 피하려던 두 놈이 순서를 다투며 쓰러져 갔다. 스타트가 좋았다. 흑주가 떨어질 때… 낄낄대며 구경하던 놈들이었다. 나는 이어서 스캔에 걸려 있는 놈들 중 아직 몸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놈 하나를 더 사살했다. 그러나 내 공격은 일단 거기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빠르게 전원 바위 같은 곳 뒤로 짱 박혀 버리다니… 낙룡파에서 한 번 당해 봐서 그런지 적들도 K2 공격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원 상륙하되, 몸을 숨긴 후 대기해!”

총성을 신호로 우르르 갑판 위로 뛰어 올라와 있던 혈랑대와 비연대들이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앞 다투어 섬으로 뛰어 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리 쪽으로 몇 대의 화살이 산발적으로 날아 왔지만 크게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화살을 쏘려고 상체를 내미는 놈들에게 내가 즉각 사격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가 완전히 정박하여 내가 상륙용 발판을 내려가는 도중부터 갑자기 놈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외친 대교와 혈랑대 백상이 양쪽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검으로 쳐내고 있었다. 몸을 내밀지 못하자 대충 겨냥하고 마구 날리는 건지 오히려 예측하기가 어려웠지만, 나는 당장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천천히 섬에 첫 발을 디뎠다.

“모두 아직 움직이지 마!”

나는 대교와 백상의 엄호를 받으며 혈랑대들을 지나쳐 계속 적들이 포진한 숲 속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백상에게 수류탄 하나의 안전핀을 뽑아 건네주었다. 백상이 힘차게 던진 수류탄이 내가 지시한 지점에 거의 정확히 떨어졌고, 다음 순간 그 곳의 나무와 적병이 굉음과 함께 흩어졌다. 이어서 다시 두 발의 수류탄이 날아 적진을 파괴했다. 그러나 적들… 특히 지회관도 보통은 아니지 싶었다. 압도적인 화력의 공격에도 아직 당황하여 섣부른 움직임을 보이는 자가 없었다. 흥…! 과연, 한 번 당해 봤다, 이건데… 그렇다고 전황이 변할 건 없지. 이대로 내가 엄호하며 전원 진격해 들어가면 제 놈들이 별수 없겠… 윽…! 뭐야? 제기, X됐다.

“으~ 전원 후퇴!”

이제 막 스캔 범위 안으로 들어선 적의 비밀 병기를 알아본 나는 그렇게 외치며 서둘러 몸을 돌려 달려야 했다. 일제히 몸을 일으키는 우리 병력들은 돌격이 아닌 후퇴 명령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았다.

“썅! 사갈의 굉천포(轟天砲)닷! 모두 바다 속으로 대피해! 배! 배다! 배 뒤로 피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작렬하는 굉천포의 포격을 피해 바다로 뛰어 들면서 나는 목야평(沐野平)에서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기… 설마 그게 아직 남아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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