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2-2화 : 연옥도의 무법자들.(2)
3-7. 연옥도의 무법자들.(2)
간단히 구보(경공보?)를 마친 나는 남은 오전을 계속 바닷가 바위 위에서 운기조식으로 보냈다. 순전히 영약들의 힘으로 예의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을 이룬 것은 꽤 오래 전… 아직 공청석유가 한 방울 정도 남아 있긴 했지만, 나는 그 것을 아직 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무인들의 꿈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타동하는 거… 그 단계만은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이루고 싶었다. 역시 영양가 없는 자존심일지는 몰라도 뭐든 너무 날로 먹는 건 좋지 않다는… 아니, 솔직히 나는 더 이상 쉽게 나가다가는 나 자신이 거저 먹는 데 맛들이지 않는다는 자신이 없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벌써 그런 유혹에 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암튼, 이 이상은 어떻게 든 내 힘으로 하고 싶었다.
[기준에서 12분 25초 늦으셨습니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서는 내게 몽몽이 그렇게 말해 왔다. 인체 시계(?)의 정확도… 솔직히 구게 무공의 깊이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웬지 하루의 어느 지점이 몇 시 몇 분인지 느끼는 감도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뭐… 나중 우리 시대에 돌아갔을 때, 시계 없이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그 것도 돈 버는(?) 거…려나? 나는 약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괜히 혼자 싱글싱글 웃으며 금동이가 날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운기를 계속하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점차 희노애락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접하게 된다는데… 나는 영약으로 급조된 내력이라 그런지 몰라도 운기조식을 마치고 나면 공연히 기분이 좋았다.
“금동아~! 많이 기다렸니?”
내가 부르자 물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금동이는 손을 들어 경례를 해 왔다. 훗-! 요정 몽몽 만큼이나 구여운 녀석.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내 손짓 신호를 받은 금동이가 날렵하게 바위 사이를 뛰더니 바다 위에 솟아 있는 암초 중의 하나에 올라탔다. 금동이는 거기서 끼악~ 꺅~! 소리를 질러 대며 펄쩍 펄쩍 뛰며 오도방정을 떨다가… 결국에는 물 속으로 텀벙 빠져 버렸다. 나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금동이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눈을 감았다. 거센 바람소리와 철썩대는 파도 소리가 엄청난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 속에 서 있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난 곧 그 속에서 그보다 깊고 조용한… 그만큼 소름이 쫘악 끼치는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동아, 나와!”
금동이는 비명을 지르며 암초를 잡고 물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미 바다의 난폭자, 백상어가 금동이 바로 뒤에 나타나 그 크고 흉칙하며 무시무시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후웃~!”
짧게 호흡을 토해 내며 몸을 날린 나는 거꾸로 잡고 있던 정글도에 내력을 실어 정확히 상어의 머리 부위를 찍었다. 쿠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불쌍한 백상어는 물살을 튀기며 고꾸라졌다. 이 경우 고꾸라졌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한 방에 즉사한 상어를 건져내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동안 우리가 공들여 선정한 이 낚시터(?)는 파도가 뭐든 섬 쪽으로 밀어붙이는 곳이기는 했지만, 좀 틈을 주면 다른 상어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많아서 서둘러 건져 올려야 했다. 물론… 나도 금동이도 웬만한 상어 따위(?)를 무서워하진 않지만, 가끔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 같은 백상어 놈들을 물 속에서 상대하는 건 지금의 나라도 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어쨌든 별다른 사고 없이 상어 때려잡기 낚시를 마친 후, 나는 음왓핫~!하고 흐뭇하게 웃었고 옆에서 금동이도 꺅꺅거리며 재주를 넘는 등 즐거워하고 있었다. 후… 나 진유준 정말 많이 컸다. 어렸을 적부터 꿈 속에서조차 두려워했던 바다의 살인 기계, 대양의 난폭자를 상대로 이런 짓을 하게 되다니… 흐흐… 바다 속은 지들 거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여기 연옥도와 근해는 엄연히 진유준 조직(?)의 구역이었다. 이 연옥도에서 난폭자이며 포식자는 우리 쪽인 것이다.
“어이~ 며칠 치 식량 확보 해 왔네, 친구.”
내가 어떤 만화의 꼬마 주인공처럼 상어를 머리에 이고 나타나 외치자, 동굴 앞에서 불을 피우고 있던 천우신이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좀 늦었군, 친구.”
“에이 쒸~ 위험을 무릅쓰고 죠스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빈말이래도 어디 다친 데 없느냐는 소리도 안 하냐?”
“누굴 걱정해야 하는데…? 큰 괴물? 아니면 작은 괴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천우신은 금동이가 펄쩍 뛰어 자신에게 안기자 수고했다며 그 작은 괴물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고 있었다. 뭐… 몇 개 우리가 뺏어 먹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대체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도 없는 영약들을 혼자 먹어 치운 우리 금동이는 정말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운기조식 같은 걸 할 줄 모르니 사람처럼 엄청난 내공을 쌓지는 못했지만 자연적으로 근골에 엄청난 기운이 맺혀 버린 저 녀석은 사실상 거의 금강불괴였다. 뭐, 그래서 안심하고 상어 낚시의 미끼 노릇도 시키는 거고… 또 이상하게도 우리와 저 녀석이 각각 미끼 노릇을 해 보면 저 녀석이 훨씬 빨리 성과를 보였다. 상어 눈에는 원숭이가 더 맛있어 보이는 모양이다.
“후후… 오늘은 드디어 내 비장의 양념이 완성되어 있으니, 기대하시게나 친구!”
천우신은 상어 지느러미를 자르며 그렇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나는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또 어디서 이상한 풀뿌리 하나 찾은 모양이군, 친구.”
“크흠~! 이상한… 이라니! 조금 있다 한 번 먹어 보면 알게 될 걸세, 친구.”
그 동안 더욱 편한 사이가 된 우리지만, 대화 끝에 의식적으로 ‘친구’라는 말을 넣는 것은… 사실 별 의미는 없었다. 예전에 TV에서 본 어떤 시트콤에 나오는 콤비들의 말투가 생각난 내가 무심코 가끔 장난 섞어 썼더니 거기에 천우신이 맞장구를 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그런 버릇이 생겼을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야, 우리 X됐다.’ 이러는 것이 오히려 심각한 거고, ‘이제 우리 X됐네, 친구’ 식의 말투를 쓰는 때는 오히려 장난을 치는 상황이라고 할까…?
“자아~! 한 번 드셔 보시게나, 친구!”
천우신은 잠시 후, 예의 비장의 양념을 발라 구운 상어 지느러미를 내밀었다.
“어랏-? 이거… 꽤 괜찮네?”
“그렇지? 하핫~! 이번엔 틀림없을 줄 알았다니까!”
천우신은 너무나 흐뭇한 표정으로 금동이에게도 자신의 요리를 먹여 주기 시작했다. 사실 천우신은 상당히 야전 요리에 강해서 이 빈약한 환경에서도 어찌 어찌 양념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 맛을 내곤 했었다. 물론, 대체 뭔지 모를 재료를 양념화하다 보니 다른 의미로 엄청난 요리를 만들 때도 많아서 내게 핀찬을 듣곤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성공을 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난 요즘, 우리 시대에서는 평생 맛도 못 볼 것 같았던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질리도록 먹으며 살고 있었다.
“흠… 오늘 오후에는 소화도 시킬 겸, 간만에 대련 한판 어때?”
상어 지느러미와 몇 군데의 다른 살로 배를 채운 내가 그렇게 묻자 천우신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조스 다음엔 날 잡으려고 그러나, 친구.”
“에이~ 누가 들으면 내가 더 고수인 줄 알겠네, 친구.”
“당근, 이제는 자네가 훨씬 고수이며… 대련 때는 친구고 뭐고 인정 사정 없는 자라는 건 금동이도 알걸세, 친구.”
이젠 ‘당근’ 정도의 말도 자연스럽게 쓰게 된 천우신… 적응력이랄까, 친화력이 좋다고 할까, 하여간 내가 천우신 화되는 것보다 녀석이 진유준 화되는 정도가 더 심했다.
“쯧…! 나야 못하니까 악으로 깡으로 하는 거지.”
“후후~ 그게 아니야. 지금까지 쭉 봐 왔는데도, 난 네 재능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 세상에… 생사금마도결 정도의 도법을 자기 멋대로 바꿔서 휘두르는 자가 있을까마는… 넌 그걸 해 버리고… 근데 그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거든.”
“본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그건… 동의하네, 친구.”
“…뭐라고 했나, 친구.”
“그냥… 저녁 찬은 뭐 할까…라고 했네, 그러니… 그 정굴도는 치우고 얘기하세, 친구.”
음…? 이런, 이런… 금동이 녀석, 우리가 정말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연히 끼어 들어 천우신을 편드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사실 금동이 녀석은 아직도 날 더 따르는 편이지만, 밥 먹기 전후에는 천우신 편이었다. 자연산이었던 금동이의 입맛은 이미 타락(?)하여 천우신의 요리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뭐… 이 녀석들과 지내는 게 재밌어서 좋긴 한데, 때로는 그 때문에 심각한 얘기를 꺼내기 힘들 때도 있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아? 내게 영약을 모두 양보한 거 말야.”
내가 불쑥 묻자, 천우신은 금동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던 표정 그대로 피식 웃었다.
“이 친구… 새삼스럽긴. 말했잖아. 천이단의 주인은 너무 강하면 안 된다고… 게다가 결국 동천만년영삼 한 뿌리는 먹었잖아. 그것만으로도 과해.”
동천만년영삼 세 뿌리와 공청석유… 그 중에 천우신은 동천 한 뿌리, 그 것도 내가 엄청 강요해서야 겨우 받아들였었다.
“…연옥서생이 남긴 비서… 그걸 모두 자네 손으로 불태운 것도 같은 이유인가?”
천지파멸식을 제외한 연옥서생의 비서 같은 경우 그 자체가 무공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천우신은 그 중 일부를 읽어보고는 몇 날 며칠을 물구나무 자세로(이 친구의 고민 할 때의 습관이다.) 고민을 거듭하더니 결국에는 모두 불에 태워 버렸었다.
“…그건… 어찌 보면 천지파멸식 보다도 위험한 물건들이었어. 내가 천하만민을 외치는 대단한 영웅호걸은 아니지만… 적어도 강호의 질서가 송두리째 붕괴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남겨 둘 수는 없잖아.”
솔직히 나는 연옥서생이 남긴 비서들을 보면서 ‘땡 잡았다’라는 심정이었었다. 그러나 역시 태어날 때부터 강호에 몸담고 살아 온 천우신은 그 위험성에 먼저 주목을 했던 것이다.
“애초 강호인이 아닌 넌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만… 역사 깊은 문파들의 비전절기를 파해(破解)하는 방법이 혹시라도 세상에 유출되면… 후… 정말 끔직한 일들이 벌어질 거야.”
“글세…? 약점을 찌른 파해식이 나온다면 결국 해당 파에서는 그걸 보완하는 방법도 개발되지 않을까? 자넨 아니라고 하지만… 혹시 자네는 강호라는 곳을 과보호라는 건 아닐까?”
나는 모처럼 하는 심각한 토론(?)이라 조금 심하다 싶게 딴지를 걸어 보았다. 천우신은 간만에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럴 경우 과정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야. 후후… 난 천이단 일을 좋아하지만… 주인이 될 자격은 없는 자인지도 모르지.”
항상 허허 거려서 그렇지, 이 녀석도 뭔가 속에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정도의 말도 굉장한 정보 누출일 정도로 녀석은 평소 자신과 천이단의 내막은 거의 언급하지 않아 왔다. 칫…! 분위기 썰렁해서 안 되겠다. 녀석의 과거와 천이단의 내력이 아무리 궁금해도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훗~! 그렇게 생각한다면… 천이단, 나 주게, 친구.”
내가 조금 엉뚱한 말로 항복 선언을 하자, 천우신도 슬며시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그러지 뭐. 대신 그 소녀는 나 주게, 친구.”
“나도 그러지 뭐. 응…? 뭐?”
나는 뜻하지 않은 천우신의 반격 겸 고백에 놀라 재빨리 녀석의 표정을 탐색했다.
“그 왜… 고룡포의 동굴에 있던… 난 그녀를… 원해.”
으윽~! 이 자식, 역시 고수다. 조금 쑥스러워 하면서도 대사는 왕 쑥스러운 걸 태연히 한다. 그나저나, 고룡포의 동굴을 강조한다면 그 전에 이미 봤던 대교는 아니라는 의미이므로 나는 장난기를 잃지 않고 물었다.
“오호오~ 천하의 천우신이 한 눈에 반한 소녀가 있었단 말이지? 근데 뉘 집 딸래미 일까아~?”
“뭐, 어느 집 딸이냐고 물어도… 그 집안 딸이 총 네 명인 것으로 알고 있네 만.”
흐음… 역시 대교 자매들 중 한 명이로군.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제일 큰 아이는 아니겠지~ 친구?”
“아닌 거 알면서… 거 정굴도 좀 치우고 얘기하자니까?”
“음… 미안하네, 친구.”
“어쨌거나 더 자세한 건 말하기 싫네.”
“에이~ 말해 봐아~! 나도 알아야 도와주든 말든 하지, 응? 안 그래?”
내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짖궂게 묻자 천우신은 커흠~! 헛기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서 버렸다.
“지, 지금 말하는 건 좀 그렇고…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얘기함세.”
역시 쑥쓰러운 듯 뒷머리를 극적으로 하며 재빨리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천우신을 보며 나는 그만 혼자 풋 웃고 말았다. 그래… 세 명 중 하나란 말이지…? 후후~ 역시 우리 대교의 동생들이라니까. 잠깐 스치는 만남 중에서도 칼같이 쓸 만한 놈을 점지(?)해 놓다니… 아 근데~ 대체 누굴꼬? 기본 미모 수준은 거의 비슷하다고 치고… 애교 지존 미령이? 알콜 요정 소령이? 얌전 나라 공주 소교…? 음… 거, 되게 궁금하네. 나는 당장에 천우신의 뒤를 쫓아가 다짜고짜 때려눕힌 후 가혹한 고문을 가하여 자백을 시키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애초에 급조된 짝퉁 고수인 내게 쉽게 당할 놈도 아니지만 명색이 중원 최대 정보 조직의 짱에게 억지로 자백을 받아 내기란 정치인에게 자기 비리를 딱 일 프로만 솔직히 매스컴에 밝히라고 강요하여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노릇일 것이다.
“으~ 이 독한 놈.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비녀 꽂기(?)… 등등을 가해도 불지 않다니… 불어~! 네가 필 꽂힌 애가 누구인지 제발 불란 말이야~!”
나는 엄한 상상의 나래를 입 밖으로까지 중얼거려 보다가 결국 킥킥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 이거, 정신 산란해서 오후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