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5-2화 : 돗대의 가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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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25-2화 : 돗대의 가치.(2)


쳇…! 그래도 참아야겠지…? 어떤 상황이었든… 결국 잘못도 없는 노인네들에게까지 칼부림을 한 싸가지는 바로 나였으니까 말이다.

“…진귀하기는 진귀한 연초지요. 그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렇게 말을 흐리며 아까 사망한(?) 군용 팔팔, 이제 필터만 달랑 남은 그걸 지노와 천노 앞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노는 본래 매우 작은 두 눈을 그나마 크게 뜨며 우리 시대 담배의 필터를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이건…….”

“흐음… 지노, 자네도 이게 무슨 재료로 된 건지 모르겠는가?”

갑자기 두 사람은 그 작은 필터를 들고 열심히 탐색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천우신의 성향으로 보아 녀석을 키운 두 사람도 알 수 없는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유별난 것 같았다.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담배 필터’라는 놈을 연구 거리로 던져 준 나는, 그 사이 이 두 노인네들에게 어떻게 비폭력 어택을 가할까 연구를 시작했다. 어떻게 든 이 사람들에게도 내 돗대를 귀한 보물로 인식시키고… 그러니 쓰바 다 죽여 버… 이건 아니고… 되도록 아까의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야 하니까… 음~ 으음……

나와 천지쌍노는 그렇게 군용 팔팔의 필터 하나를 놓고 각각 다른 생각으로 머리를 짜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사이 천우신이 기름을(?) 빼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바로 상황을 감 잡았는지 잠시 앉아서 보고만 있더니 결국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천노, 지노…! 그만 항복하시지. 이 친구의 연초가 두 사람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귀물이라는 걸 인정하라구.”

대체 뭣 때문에 지가 우쭐한 건지 몰라도… 하여간 천우신은 천지쌍노에게 매우 득의한 태도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잖아. 이 친구가 아까 그렇게 화가 났어도 진짜 살수는 쓰지 않았다는 걸 말야.”

“그야 저희들에게는… 덕분에 저희들도 전설로만 듣던 삼시전결의 극성을 구경했습니다만, 하필 그 것이 도련님께 펼쳐질 줄이야…! 이 늙은이의 가슴은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그려.”

천노의 노골적인 말에 천우신은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삼시전결의 극성? 후후~ 이 친구가 진짜 마음먹고 삼시전결을 쓰는 걸 봤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걸?”

천우신은 자신의 말에 놀라는 천지 쌍노의 표정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삼시전결의 극성을 이루면 한 사람이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동시에 극쾌의 도강을 날릴 수 있다고들 하지. 허나… 난 최근 보았거든, 분명히 바다 위로 네 개의 벼락이 동시에 치는 걸 말이야.”

“서, 설마… 이 분이 이미 패도광협이 이룬 경지를 넘어섰다는 말씁입니까?”

천지쌍노는 경악에 가까운… 흔히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엑스트라들이 책임지고(?) 연출해야 하는 표정이 되어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천우신, 이 친구… 지원 사격은 좋은데 쑥스럽게스리…….

“에- 사실 난 아직 그 선배를 능가했다고 할 수는 없어. 내가 알기로는, 패도광협 선배도 분명 그 경지를 넘어섰거든.”

사실 그랬다. 전에 대교와 함께 납치되었던 동굴 안에는 그 선배가 남겨 놓은 네 개의 전결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은퇴한 후에 이룬 거라 알려지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 천우신은 결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자네가 날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던 연옥도의 바다를… 말일세.”

천우신은 새삼 모종의(?)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천지쌍노에게 금동이와 천우신을 습격한 상어 떼를 공격하던 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 고, 이야기를 듣는 사이 천지쌍노의 표정에서는 조금 전까지의 떨떠름한 기색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천우신의 얘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새삼 내게 포권을 해 왔다.

“허허허~ 이거야 원. 진대협께서 한 수, 아니 두어 수 이상 봐준 것도 모르고 이 늙은이들이 주책을 부렸군요.”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 상어들을 칠 때는 다급한 마음에… 그러니까 얼떨결에 그랬던 것뿐이고, 전 아직 멀었습니다.”

“겸손하신 말씀…! 저희가 옹졸하여 진대협의 성품을 오해했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 잘못이 더 크지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무공을 초월한 인물’이라는 천우신의 증언(?)은 무지 약발이 좋아서 천노와 지노의 태도는 백 팔십 도 바뀌어 있었다. 동시에 내게 건배를 청해 오는 천지쌍노의 약간 뒤쪽에서 천우신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한 단체의 짱다운 면모랄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얘기를 투입하여 다툼을 진압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면 조금 전까지 열심히 연구하던 ‘비폭력 어택 계획’은 최소해야겠지? 안 그래도 자꾸 비폭력이 아니라 언어 폭력에 가까운 생각만 자꾸 떠올라서 곤란했는데 말이다.

“하하~ 유준, 이제 우리 제대로 마셔 보세, 친구.”

“하하~ 그러세, 친구.”

나는 다시 천우신과 거듭해서 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이번에도 몽몽의 해독 기능을 켜놓기는 했지만 차츰 얼큰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음… 근데 어째 천노가 내 눈치를 살피며 뭔가 망설이는 것 같군 그래.

“…진대협. 이번엔 오해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전 역시 이 돗대라는 진대협의 연초가 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소이다.”

대표로 내게 물어 온 것은 천노였지만, 가만 보니 지노와 심지어 천우신도 은근히 내 답변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훗~! 역시 결국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삼총사였군 그래. 근데… 술기운 때문인지 난 문득 약간의 장난기가 함께 돌아서 다시 급속단발변신마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선 허무하달까… 그런 미묘한 감정을 표정에 담아 고개를 37도(?) 정도 좌로 돌리며 시선을 12도 위의 밤하늘로 향한… 일명 ‘고~향이 그리~워 서~’ 포즈를 취한 나는 먼 추억을 더듬는 처연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아~ 애써 잊으려 했건만……”

천우신이 눈치 빠르게 말릴 폼을 잡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계속 말을 이었다.

“우신, 잘 듣게. 본래 돗대란, ‘군용팔팔’이라는 우리 특공가의 비전이 집대성되어 만들어진 연초들 중의 하나야. 특공가에는 몇 종류의 군용팔팔이 있는데, 그 중 내가 가지고 있던 돗대는… 아마 앞으로 적어도 천 년 동안 이 세상에서 구할 수가 없을 거야.”

뭐… 지금 시점에서야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

“내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실은 돗대가 처음 만들어질 때 몇 가지 기연이 겹치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지. 우선… 돗대에 포함되어 있는 ‘빽솔’이라는 영약은 이후 우리 특공가에서도 실전되어 버렸거든.”

예전의 군용 담배는 ‘솔’이었는데, 내가 군대 들어가기 몇 달 전에 팔팔로 교체되었다.

“내 돗대는… 신비의 영약, 빽솔이 들어간 최후의 작품으로… 일명 ‘초기(超奇)군용팔팔’이라고도 하지.”

사실 군용 팔팔은 사제 팔팔과 맛이 다르다. 특히 바뀐 후 얼마 안 된 초기(初期)의 군용 팔팔들은 알맹이가 여전히 빽솔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게다가… 제조 도중 그를 담당하던 인물이 우연히 ‘도아지(到鴉志)’라는… 매우 희귀하고도 영험한 약초를 발견하여 그 또한 돗대에 넣었다고 하지.”

당시 군용팔팔 포장지를 뜯어보면 안쪽은 ‘도라지’ 담배였다. 아마도 당시 도라지 담배가 잘 안 팔려서 재고로 쌓인 걸 군대에서 가져와… 그걸 뒤집어서 재활용했었던 것 같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특공가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명품이었지. 내가 처음 강호로 나올 때, 후배들이 내 무운을 빌며 고급 고급팔팔을 전해 주었었는데…….”

실은, 씨바~ 담배를 사주고 가진 못할 망정, 챙겨 가? 그러며 막 씹었었다.

“각자 남몰래 하나씩 숨겨 가지고 있던 걸 내 놓는 중에… 돗대가 하나 있었다네.”

그러긴 커녕 내 더블 백 뒤져서 도로 빼 가려는 거, 특공수당 모은 돈을 뿌려가며(?) 간신히 막았었다. 쳇…! 제대하면서 기념으로 가져 가겠다는데, 짜식들이 치사하게…….

“돗대는…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그런 존재에게도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고, 소문으로는 실수로 돗대를 화장실에서 빠트린 자가 그 슬픔을 못 이겨 자결한 사건도 있다 하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도 돗대 때문에 친한 친구들끼리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일 정도는 다반사로 봤었지. 내가 특별히 아끼던 후배… 내게 돗대를 준 그 역시 그 전에 돗대를 지키느라 다른 상급자를 폭행한 전과가 있었어.”

으~ 말을 하면 할수록… 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뱃전으로 갔다. 밤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 상태에서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내 등 뒤로 천우신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이보게 유준. 진정하게. 그렇게 깊은 내력을 가진… 그런 보물을 내가… 하아~”

천우신이 한숨을 몰아쉬며 새삼 ‘죄인 모드’로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뱃전을 부여쥐고 부들부들 몸을 떨어야 했다. 그러나… 역시 나는 급속단발변신마공의 달인! 잠시 후 나는 다시 천우신과 천지쌍노 쪽으로 몸을 돌렸고, 이때는 이미 달관한 표정의 가짜 미소를 보일 수가 있었다.

“후~ 아무리 그런 귀한 영약이 들어갔다고는 하나, 연초는 연초… 실은 그 때의 후배들이 내게 돗대와 함께 전해 준 마음이 바로 보물이었겠지. 그래서 아까 잠시 노기를 참지 못했으나… 이제는 모두 잊을 수 있을 것 같네. 나는… 돗대 대신 자네를 얻었으니 말일세.”

우오워~ 신이시여! 방금 그게 내 입에서 나온 대사란 말입니까? 다, 닭살이… 으으~ 더 이상 못 참겠다.

“미안하네, 친구. 난 이만 쉬고 싶어졌네!”

나는 감동을 도가니에 넣어 탕을 끓이고 있는 천우신 일행을 뒤로하고 서둘러 내 선실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침상에 엎어져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끄윽~ 끄윽~ 웃다가, 웃다가… 그러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순전히 몽몽의 해독 작용 덕분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내공이 깊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간밤에 퍼마신 술의 양에 비해 비교적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응…? 근데, 금동이 녀석. 왜 일어나자마자 신경질을 부리고 난리야?

[ …간밤에 주인님이 평소와는 반대로 엎드린 자세로 잠드셨고, 금동은 주인님 등에 매달려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주인님은 본래의 취침 자세로 돌아갔습니다. ]

…알만 하군.

“짜식~! 너도 취했구나. 전에 내 몸에 한 번 깔린 후로는 등에 붙어서 자려고 들지는 않더니…….”

내가 키득대고 웃자, 금동이는 더욱 약이 오르는지 내게 베개를 휘두르는 등 개기기 시작했다.

“오호~ 짜쉭이 간만에 한판 하자 이거지?”

나는 즉시 침상 위로 몸을 날려 금동이를 덥쳤고, 금동이도 지지 않고 내게 배운 레스링 테크닉으로 반항하기 시작했다. 으음~ 역시 사이즈가 안 맞는 금동이에게 코브라 트위스트(?)는 좀 무리가…….

“유준, 잘 잤는… 응? 뭐, 뭐야!”

“응…? 아- 와, 왔어?”

나는 금동이에게 기술을 애매하게 걸던 자세 그대로 어색하게 웃었다. 천우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참. 어제 일 때문에 오늘도 우울하지 않을까 했더니… 괜한 걱정이었군, 친구.”

“후후~! 나 진유준이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할 것 같은가, 친구.”

“하긴… 자네 성품은 누구보다 담백하지.”

“아침부터 웬 비행기를 태우고 그래?”

“비행기를 태우는… 음, 그거 ‘지나친 칭찬을 하다’라는 뜻이었지?”

“뭐… 대충은, 그보다 무슨 일 있어?”

어째 태도가 좀 이상하다 싶어 바로 묻자, 천우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자, 우선 이걸 받아 줘.”

천우신이 뜬금없이 내놓은 것은 뭔가가 적혀 있는 한 장의 양피지였다.

  • 향후 천이단은 이를 소유한 자에게 단의 모든 기능을 제공하여야 하며…….

얼핏 문서의 일부를 읽은 나는 잠시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보다시피, 전에 네가 언급했던 ‘천이단 자유이용권’이야. 그… 돗대의 훼손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받아 주겠나?”

‘우오오~ 이게 웬 떡이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아야 했다. 나는 급격히 급속단발변신마공을 시전하느라 약간의 주화입마 기미까지 느끼며 간신히 애매한 표정으로나마 입을 열 수 있었다.

“이, 이러면 내가 오히려 미안한 데…….”

“음… 어차피 내 직권으로도 이 년 이상은 힘들어. 그 전에 네가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래.”

“이 년…? 그 반으로도 떡을 치겠다. 하여간… 하여간,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친구 같으니!”

“떡을… 뭐 어째?”

천우신은 또 그 특유의 학구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후.

간신히 오버하는 걸 참은 상태에서 천우신을 먼저 내보낸 나는 이 뜻하지 않는 횡재를 기뻐하느라 혼자 음뿌흐흐~ 웃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몽몽이 슬쩍 시비를 걸어왔다.

[ 주인님 시대의 군대에서 지급되던 담배는 113원이었습니다. 한 가치를 5.65… 반올림해서 6원이라고 계산하고, 그에 비해 현 시대 천이단의 정보망의 전체 이용가치는 일년에 대략……. ]

“몽몽군…! 쓸데없는 거 계산하지 마!”

내가 말을 막자, 역시 뒤를 이어 요정몽이 호르릉~ 등장했다.

[ 어쩐지… 어제 밤 돗대에 대해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신다 했더니… 후~ 정말 대단하시네요. 대체 몇 배 장사를 하신 건지… 이런 걸~ 불공정거래, 혹은 ‘사기’라고도 하죠! ]

이 녀석, 우리 시대의 ‘버거 소녀’ 말투도 알고 있었군.

“크흠… 하여간,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임마. 난 그냥 장난을 친 것뿐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운이 좋아서… 흐흐흐~”

[ 운만으로 과연 이런 대규모 사기 행각이 가능할까요? ]

“어, 야아~ 너무 그러지 마. 나도 꽤 민망하단 말야. 흐…….”

[ 민망한 분치고는 표정이 좀… 훗! 어쨌든 축하드려요. ]

요정몽 표현처럼 사기를 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흐흐 암튼, 그전까지 그토록 고민하던 ‘천이단 날로 먹기’가 이렇게 엄한 루트로 이뤄질 줄이야. 돗대야… 고맙다! 다 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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