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0-3화 : 급속 출격(3)
차츰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몽몽은 새삼 몇 가지를 강조했다.
[ 아시겠지만, 이번 경우는 오키나와에서와 다릅니다. 고도가 낮고 낙하거리가 짧은 대신 목표 지점이 협소하며 장애물이 많으므로 돌발 사태의 발생 확률도 높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지시에 따라주실 것을 바랍니다. ]
그야 당연하지. 오키나와에서의 스카이다이빙을 중거리 달리기였다고 하면 이번 낙하는 단거리, 그것도 장애물 경주인 셈이고 그 장애물들은 그야말로 스쳐도 치명적일 테니……
19, 18, 17……
[ 우선 주인님의 개인병기, 정글도를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십시오. ]
응? 정글도를 아예 손에 들고 뛰라는 건…
[ 출발 후 16-18초 사이에 목표 지점 일대에 띄워진 광고용 기구(氣球)들과 그 줄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입니다. ]
그렇군. 장애물이 예정되어 있었어.
13, 12, 11……
[ 출발 직후 자세는…… ]
10, 9, 8……
몽몽이 마무리 지시에 들어갔을 때였다.
“잠깐!”
자룡대주였다. 문이 열릴 것을 대비해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그녀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벨트를 풀려 하고 있었다.
6, 5……
“멈춰욧!”
“뭐야!”
[ 주인님! ]
응? 뭐냐? 왜? 저 여자 벨트는?
3, 2……
몽몽과 내 생각, 자룡대주의 고함소리가 어지럽게 얽혀드는 가운데, 키잉~!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한 바람에 밀린 자룡대주가 안전벨트를 채 풀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건 다행이지만! 그런데 왜?
“그만둬요!”
[ 주인님! ]
머리 속이 혼란과 갈등으로 뒤엉키는 와중에도 내 몸은 무의식중에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늦었…… ]
몽몽의 경고야말로 늦었고, 내 몸은 이미 기체 밖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왜! 왜 자룡대주가 날 막으려고 한 거지?
그런 의문이나 타이밍을 놓치게 한 원망 같은 건 1초도 되지 않아 사라져갔다. 미스 화룡의 기체 밖으로 튀어나간 내 눈앞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아까와 달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융단이 아니라 거칠게 튀어나온 빌딩 숲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람에 날리며 허우적대는 내 눈에는 육지의 모든 것이 미친 듯이 뒤집히고 요동치며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 주인님! 왼팔 각도 고정! 오른 팔 각도 상단 후방 43도! 허리! 허리를…… ]
몽몽의 다급한 지시에 따르며 간신히 자세를 바로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비행기 안에서는 작고 빨간 점처럼 보였던 기구가 순간적으로 거대해지며 괴물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 비운회월(飛雲回月)! ]
비운회월? 파괴가 아니고?
[ 아니! 삼시전결(三矢電訣)! ]
뭐? 비운회월에서 어떻게… 썅~!
나는 비운회월을 펼치기 위해 모아지던 두 발을 황급하게 벌리며 억지로 상체를 끌어당겨 삼시전결을 펼쳤다. 간신히 벌린 발 사이로 삼시전결의 전광이 뻗어 나간 순간 붉은 기구가 폭탄처럼 터져 나갔고,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통과했다.
[ 비운회월! 회피 각도…… ]
이번엔 정말 비운회월?
순간적인 의혹 때문이었을까? 공공보법 중의 하나인 비운회월을 채 펼치기도 전에 나의 하체는 두 번째 기구 속에 반쯤 파고들어 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충격을 분산시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팡-!
어이없을 정도로 상쾌한(?) 폭음이었다. 나는 내 몸 자체가 총알이 되어 기구를 관통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주인님! ]
뭐냐, 몽몽! 다음은 또 뭐?
[ 주인님! ]
< 뭐냐고! >
갑자기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갑고 거대한 벽이 눈앞으로 밀려오고 있는 모습만이 느릿하면서도 압도적으로 보여질 뿐이었다.
느리게…? 예의 죽음 직전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초월 모드…? 하지만 이번엔 전과 다르다.
충돌! 부서진다! 내 몸이! 산산이!
절망…? 그렇다. 지금까지 경험했었던 그 어떤 죽음의 위기와 다른… 그야말로 절망이다.
부서진다! 산산이! 지금! 내가! 부서진다! 내가! 산산이! 내가! 부서진다! 부서진다!
꽈악! 정글도를 잡았다. 거기엔 공포보다, 절망보다 먼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정글도를 수평으로 들어 올리며 전력으로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절망의 벽과 하늘과 온갖 것들이 미친 듯이 수평으로 달리며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부서진다…? 내가? 내가? 내가?
어느 순간, 그러니까… 나의 정글도가 절망의 벽에 꽂혀 들어가는 순간에 터져 나온 소리를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것은 칠판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한 소리를 함축한 듯 끔찍한 소리! 그러나 절망을 베는 아름답고 통쾌한 소리!
나는… 내 눈은, 정글도가 친 벽에서 튀는 시멘트 가루와 불꽃이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내 귀는, 정글도를 타고 밀려온 거대한 반발력이 내 두 손아귀, 팔과 어깨, 전신을 거의 동시에 강타하며 내 모든 관절과 힘줄이 끼익- 지르는 비명소리 같은 걸 들었다.
역시 부서진다…? 아니! 버틴다! 버틴… 아-!
투둑-!?
몇 군데의 신체가 힘을 다하는 느낌! 끝…인가?
끝내 어쩔 수 없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몸을 쥐어짜던 압도적으로 거대한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후욱- 멀어지는 절망의 벽……
나는 그제야 그 것이… 너무나 부드러운 베이지 색 건물의 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흐릿했던 사방의 풍경들도 일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눈을 돌리자 모든 것이 하나하나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깔끔하게 잘 닦여진 길, 그 길 양쪽으로 늘어선 이국적인 나무들… 다만 목표 지점이었던 강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경신법? 대체 어떤? 어떻게?
다시 튀어 오르기 시작한 생각들 중 어느 것 하나 실행할 수 없었다. 조금 전 건물과 격돌하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힘을 소진한 내 몸은 그저 힘없이 떨어져 내리고만 있었다.
푸른… 나무? 나무들 쪽? 다행? 다행일까…? 과연 나무 위라고 해서…….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돌리며 두 손으로 눈과 얼굴을 감싸는 순간, 수천 마리의 새 떼가 전신을 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타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건 느끼는 순간 끝나고.
퍼퍽-!
온 몸을 종처럼 울리는 충격과 함께 뼈, 근육, 피… 모든 것이 맹렬하게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통증도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만 세포 하나하나까지 쿠왕~ 왕~ 울리고 있다는 감각이 계속되고 있을 뿐……
나… 진유준… 사랑하는 대교의 동생이면서… 그에 못지않게 사랑스런 소교…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급속 출격… 하다가 추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