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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1-1화 : 마녀의 딸.(1)


죽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대로… 고통을 자각하기도 전에……

[ …인님! 주인님! ]

몽몽이 부르는 소리가 라디오 볼륨을 천천히 높이는 것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츰 더 또렷하게… 차츰… 또렷…하게?

[ 주인님! 정신 차리십시오! ]

[ 우아아앙~! 주인니임~! ]

소년 모드의 몽몽과 그 옆에서 아예 울고불고 난리가 아닌 요정 몽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저희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주인님! ]

[ 어허엉~ 정신 차리세요~! 제바알-! ]

“어……”

목소리가… 나와준다.

“나… 아직 안 죽는… 그런…가 보네?”

[ 보이십니까? 저희 모습이 보이십니까? ]

“으응… 그래. 너희들은… 괜찮냐?”

[ 괜찮습니다. 약간의… 아니, 모든 기능이 이상 없습니다. ]

“…그래, 다행이다. 요정 몽은… 너, 콧물 나왔다.”

[ 아무려면 어때요! 으아아앙~! ]

“우, 울지 마, 임마. 나 안 죽었… 끅! 끄으으~ 으으- 제, 기… 그, 치,만… 크흐~ 죽을… 만큼 아프긴… 아프네… 빌어…먹을……”

몸을 움직여 보려 하는 순간부터 끔찍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지는 바람에 저절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통까지도 오히려 반가웠다.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생각도 들고… 살아있기만 하다면야 이런 통증쯤… 그리고 팔 다리 하나쯤 어떻게 된다 한들… 으음… 아니, 그래도 그게 아니지……?

“몽몽…! 내 팔… 특히 팔꿈치는……?”

[ …양팔 모두 일부의 힘줄에 손상을 입었지만, 단기간에 회복 가능한 부상입니다. ]

“오른쪽 다리…는?”

[ 기구 폭발 때의 파편에 의해 찰과상을 입으셨지만, 근골의 손상은 없습니다. ]

나는 계속해서 통증이 심한 순서대로 물었지만, 몽몽의 진단대로라면 대부분의 관절과 뼈에 큰 이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전신 여기저기의 찰과상과 타박상… 그리고 몇 군데의 근육 파열 정도…? 사실 모든 부위에 걸쳐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부상을 입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63빌딩의 몇 배 높이에서 맨몸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것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인 결과인 셈이다.

< 아아~ 마이크… 아니, 전음, 전음 테스트~! 들리냐, 요정 몽? >

[ 흑~! 그래요. 너무나 잘 들려요. ]

음… 전음도 되고… 진기의 유통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껄끄럽기는 하지만 특별히 어디가 막힌 것 같지도 않다.

< 근데… 왜 이렇게 움직일 수가 없는 거지…? 설마…… >

[ …안심하십시오. 전신… 혹은 일부 신체 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척추 등의 손상도 역시 극히 낮으며… 단기간에 후유증 없는 회복이 가능합니다. 현재 주인님이 움직이실 수 없는 건… 운동 신경계의 일시적인 마비 현상입니다. 이는 곧 회복… 가능한 것으로…….]

< 그, 그래…? 다행이군. >

난 한층 더 안도했다. 보통 말하듯 남자의 생명은 허리…! 자칫했으면 내 미래의 마누라가 ‘살아도 못 살아~!’를 외치는 사태가 될 뻔… 훗! 일단 살아나니까 별의별 걱정이 다 떠오르는군, 그래.

< …몽몽. 대충 알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된 건지 확실히 보고해봐. >

[ …처음부터 낙하 타이밍이… 1.8초 정도 늦었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최초 거리 오차는 약 200미터… 이후 예정 외의 낙하 자세에 의한 추가 오차 거리는…… ]

자세를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 다시 수십 미터를 더 날리고… 결국 내가 공중에서 맞닥뜨린 기구들은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훨씬 더 섬 안쪽의 또 다른 건물 옥상에 띄워져 있던 기구들이었다는데… 첫 기구와의 충돌 직전, 몽몽은 낙하력 완화와 낙하 진로 유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잠깐 갈등하다가(양쪽의 성공 확률이 똑 같았다나?) 결국 진로 유지를 택했다고 한다.

몽몽은 오키나와에서 출발할 때부터 목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공간을 모두 조사해서 만약의 경우가 발생했을 경우에 선택할 2차 낙하 포인트… 그러니까, 생존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나을 장소를 체크해 두었었다고 했다. 공사 중 쌓아놓은 전선 더미, 부드러운 물건이 든 상자가 쌓인 야외 창고… 그런 곳들에 일일이 번호까지 붙여 놓았던 건데 그중 한 곳, 예의 ‘B7’ 지점으로 가기 위해 첫 번째 기구는 통과하고 두 번째 기구에서 진로를 수정할 계산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내가 비운회월을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진로 변경이 되긴 되었지만 엉뚱한 방향이어서… 본래 옆을 통과해 갔어야 하는 건물 중 하나에 정면으로 날아간 거란다. 거기서 내가 어찌 견뎌내고 옆으로 튀어나감으로써 결국 실제 최종 낙하 지점이 된… 현재의 이곳은 또 다른 2차 포인트인 ‘B9’…!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운빨이 무지하게 작용해 준 셈이다.

[ …비운회월의 실패는 주인님 탓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성공 확률 10% 미만의 비합리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전… 아니, 처음부터 타이밍 조절 실패 확률과 오차 조정 계산에 있어… 아니, 계획 자체가 사용자 보호 기준에 위반되는…… ]

몽몽은 계속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보고를 하는 동안 점점 목이 메이는 것 같더니만 결국 버벅대기 시작했다.

[ 저는… 건물과의 충돌을 극복할 방도를… 주인님께서 묻는데도… 전… 전 아무런 대책을 제시할 수가… 그게, 저로서도…… ]

이 녀석… 봐라? 지금까지도 녀석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처음이다.

< …몽몽. >

[ 예, 주인님. ]

< 너… 정말 괜찮냐? >

[ …자체 진단 결과 기능상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

< 근데, 어째 좀… 그리고, 너 지금… 우는 거냐? >

[ 아, 아닙니다, 주인님. ]

< 아니긴 뭘. 우는 거 맞구먼. >

[ 죄, 죄송합니다. ]

[ 헤에~ 몽몽 오빠 우는 건 첨 본다. ]

아직도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홀짝대던 요정 몽 녀석이 이제야 진정이 되는지 남 참견까지 한다.

“요정 몽… 너,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 난대.”

[ 에엑-! 정말요? ]

요정 몽은 내 가벼운 놀림에 눈은 웃고 입술은 내밀고 찡그린… 종합적으로 웃기는 표정이 되더니, 그와 함께 두 손을 뒤로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가린다. 요정 몽이야 본래 저렇게 풍부한 감정과 그걸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몽몽은… 녀석은 아무리 인간적인 자아가 형성되어도 기계적인 냉정과 침착을 기본 노선으로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녀석은……

< 몽몽. 너 이번에 뭔가… 제대로 감정을 느꼈었던 모양이구나. 나처럼 암담한 상황에서의 절망… 그리고 그걸 극복했을 때의…… >

[ …인간의 감정 종류와 각각의 의미는 알고 있습니다만…… ]

< 알고 있는 거야 알지. 그래서 물었잖아. 느꼈…냐고 말야. >

[ 그,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요정 몸과 달리 저의 감정 회로에는 분명한 리미트(Limit)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뭔가… 뭔가 오류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

< …그래, 알겠다. 아무래도 넌 잠시 그 오류의 조정을… 그러니까, 좀 진정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도 어차피 얼마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야. >

소교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움직일 수나 있어야 뭘 어쩌든가 할 텐데 지금은……

[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는 이번에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

<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어, 임마. 넌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했고, 내게 최선을 방법을 제시했어. 다만… 상황이 너무 나빴을 뿐. 너와 나 모두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운도 따라주었고… 어쨌든 살았잖아. 그치? 결국 그게 중요한 거니까… 그래, 임마. 너도 지금은 좀 쉬어. 알겠어? >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따른 시간 안에 자체 점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그런 게 점검을 한다고 고쳐지는 종류의 오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누적된 몽몽의 인간화가 극도의 한계 상황을 만나 어떤 한계를 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좀 막연하지만 진정한 인간화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걸 축하해줘야 하는 건지 어쩐지는 나도 판단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 한 가지, 마저 알려 드릴 것이 있습니다. 건물과의 충돌 극복 과정에서… 주인님의 모든 신체 부위는 이론상의 인체 한계를 넘어선 압력을 받았었습니다. 그 순간을 주인님께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전신 모든 기운의 흐름과 근육 하나 하나의 힘과 관절의 이상적인 조합 형태… 즉, 진신지체(眞身之體)를 이루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

진신지체…? 아, 그런…가? 그게 진신지체였던 건가……?
얼마 전 원판에게 딱 한 번 성공시켰었던 의형수검(意形受劍)이 칼질의 이상적인 경지를 말한다면 이 진신지체라는 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이상적인… 쉽게 말해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단 한 점과 한순간에 집중시키는 경지를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무공의 기본중의 기본 개념인 것 같고, 누구나 흔히 ‘내 모든 힘을 다해 공격한다’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개념의 경지랄까…? 비화곡 성지에서 본 어떤 문헌에서는 진신지체가 구현되는 순간의 집중력에 대해 ‘육체와 영혼에 담긴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잠재력까지 남김없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도의 모든 힘이 아닌 것이다.
후우~ 무림인들 누구도… 그러니까, 나의 목표인 유운일 선배조차 평생 단 한 번밖에 성공하지 못했었다고 하는… 오늘 내가 그걸 해 냈었다는 거군.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그 절망의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겠지…? 아니… 생각해 보면 진신지체로도 그 상황이 감당 가능했다는 게 용한 건지도… 으음… 그게… 조금 전의 나는 물에 떨어져도 물이 시멘트처럼 단단해지는 효과가 나올 정도의 낙하력으로 진짜 시멘트벽에 부딪치던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글도로 벽을 찍어 몸을 옆으로 퉁겨냈다는 건… 어쩌면 난… 난 혹시 그 한 번의 진신지체로… 문헌에서처럼 내 미래의 힘까지 남김없이 소진해 버린 건 아닐까…? 본래 진신지체라는 건 그렇게 단발성이 아니지만 아직 미숙한 나로서는… 내가 지금 움직일 수 없는 건 혹시……
문득 ‘전신마비’, ‘식물인간’ 같은 불길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몽몽은 내 몸이 그럴 정도로 망가진 건 아니라고 했고 통증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만약 내가 오늘 정말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린 거라면… 제기…! 만의 하나라도 그건 안 되지! 그랬다간 앞으로 대교를 지켜줄 수도 없게 되는 거고, 오늘 당장 소교도… 그리고 또… 아까 느낀 그 감각… 진신지체로 정글도를 휘둘렀을 때의 그 기막힌 기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건 싫… 아…! 잠깐! 정글도! 내 정글도는?

“으~ 끄흑!”

빌어먹을! 무심결에 고개 조금 움직인 것만으로 또 무지막지한 고통이… 으… 그래…도… 훗~! 그래, 너도 무사했구나. 나의 정글도……!

내 오른 손에 아직도 굳게 쥐어져 있는 정글도가 늠름한 자태로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 생명을 구해 준… 그 엄청난 충격에도 당당하게 버텨 준 저 녀석… 이 순간 내게는 녀석이 세상의 그 어떤 미소녀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현재까지의 분석으로는 특별한 손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곧 구성조직 단위의 정밀 검사를…… ]

< 정밀 검사나 마나! 이상…없을 거야! 그럴 거야! >

암, 그래야지!

[ 그런데… 조금 전부터 자룡대주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 오고 있습니다만… 연결시켜도 되겠습니까? ]

< 아, 자룡대주? 당연히 통화해야지. 그녀도 걱정 많이 하겠…… >

어? 가만…? 살아난 거 기뻐하다가 깜박했는데……

“천주님? 천주님! 대답하세요!”

“야, 이~! 이…….”

끄으으으으~ 욕 나오려는 거 참자니까, 혈압이… 으으~

“천주님? 대답하세요! 무사하신 겁니까?”

“으~ 자룡…대주! 당시인!”

“아아~! 무사하셨군요! 전 정말……”

“다, 닥치고! 아깐 대체 왜 날 방해한 거야! 엉?”

난 나도 모르게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열받음에 의해 진기의 유통이 흐트러지고 있었지만 그 반면 몸의 감각은 급격히 돌아오기 시작했고, 오른 손이 먼저 정글도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들어 올려졌다.

이 노무 여자~!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면 그냥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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