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8-1화 : 소녀의 질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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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8-1화 : 소녀의 질투.(1)


3-9. 소녀의 질투.(1)

연옥도의 간판 바위에 새겨진 천우신의 편지 앞에서 또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 …주인님…? 주인님! 어디 계십니까? ]

나는 몽몽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 …아! 미안! 미안하다, 몽몽! 여긴 너도 함께 있었었지, 참? >

[ …함께 라는 말씀은… 현재 그만큼 가까운 장소에 계시다는 의미입니까? ]

< 어… 그것도 그렇고 예전에도… 암튼, 금방 갈게! 미안! >

나는 그제야 서둘러 해저 동굴로 헤엄쳐 들어갔다.

아까 얼핏 확인했을 때처럼 동굴은 동굴답지 않게 꽤 밝은 편이었다. 본래 간판 바위 뒤에는 동굴 같은 게 없었지만 섬이 가라앉을 때 생긴 모양이고, 천장 쪽에 틈이 있어서 그 쪽으로 조명처럼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만족하듯 숨져있는 거대한 상어의 모습은… 비록 놈이 이틀에 걸쳐 날 고생시키긴 했어도 어느 정도 숙연한 기분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사방에 쌓여 있는 저건… 상어의 이빨들…?

음…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면 특정 장소로 가서 죽고 그런 코끼리 무덤에는 상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식의 얘기는 들은 적 있지만 ‘상어 무덤’은 금시초문인데… 혹시 연옥도 출신 상어들만의 전통인 걸까?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쨌든 확실히 무덤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나는 더 나름대로 경건한(?) 마음으로 상어의 명복을 빌어 주고… 그런 후에야 놈을 해부하여 몽몽을 끄집어냈다.

< 반갑다, 몽몽. 하루 만이지만. >

[ 저도 그렇습니다, 주인님. ]

[ 와앙~ 너무 해요! 왜 이제야 구해주시는 거예요~! ]

< 미안하다, 요몽. 일이 자꾸 꼬여서… >

[ 치이~ 요몽은 또 뭐예요! 뭣보다… 저 상어는 이미 죽었는데… 그런데도 주인님이 바로 안 오셔서 얼마나 더 무서웠는지 아세요? 히잉- 몰라욧! ]

< 그, 그게 그 것도 역시 사정이 좀… 하여간 진정해라. 미안하댔잖냐. >

예상대로 침착한 몽몽과 달리 요몽 녀석의 원망과 항의는 제법 강했다. 그러나 기체의 에너지가 보충되기 시작하고 내가 이 곳이 어디라는 것도 알려주자 그 간의 감정은 빠르게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 예에? 여기가 바로 그 연옥도라고요? 와아~ 빨리 나가서 보여 주세요, 네? ]

< 안 그래도 나 역시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싶어. >

[ 제가 장악한 인공위성으로부터 수신되는 위치 데이터로 추정은 하고 있었지만, 확인할 수가 없어서 계속 궁금했었습니다. ]

< 나도 계속 설마 했어, 몽몽. 해신묘를 지나오긴 했지만 거기서 이 곳도 상당히 먼데… 설마 상어가 정확히 이 곳으로 올 줄은 몰랐으니까. >

[ 본래 해당 어종의 서식이 많은 곳이기는 했지만… 이 곳의 상어에게 저희가 먹힌 것은 매우 드문 확률의 사건입니다. ]

< …뭐, 인간들은 이런 사건을 보통 ‘인연’의 힘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로 설명하곤 하지. >

[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논리입니다만, 지금은 저도 현상의 규명보다는 저장된 데이터와 현재의 지형을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

결국 몽몽 녀석도 연옥도 생활 멤버였기에 나름대로 추억이란 게 있는 셈이었다.

< 아, 그리고… 이제 형태 변화도 가능하냐? >

[ 예. 동굴 안 임에도 태양력이 적지 않아 순조롭게 에너지 충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 좋아. 그럼 오랜만에 팔지 모드로 가자. >

몽몽은 즉시 팔지 형태가 되어 내 손목으로 돌아왔고, 나는 그렇게 예전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동굴, 아니 상어 무덤을 빠져 나왔다.

[ 어머~? 진짜네? 저건 연옥도의 간판 바위잖아요? ]

< 그래. 바로 그거야. 그리고… >

[ 와아- 천우신님의 메시지가 남아있어요! 감동적이에요! 알콩달콩! ]

< …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감동이 좀 식는 것도 같다만… 음, 암튼… >

나는 산책하듯 해저 연옥도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몽몽은 본래의 연옥도를 현재의 지형과 비교 분석하는 것 같더니 곧 영상을 겹쳐서 보여주었다.

[ 헤에~ 저기, 저 곳은… 그래요. 제가 자주 금동이와 놀던 곳이에요! ]

응? 저 산등성이를 말하는 건가? 저긴 내가 가끔 낮잠을 자던 곳인데… 이제 보니 이 녀석… 내가 잘 때 주로 금동이에게 모습을 드러냈었던 모양이군. 금동이의 교육을 몽몽에게 맡기기는 했었지만, ‘자주 놀던 곳’이라니…

< 저-기 저기쯤은 연옥서생 사부의 동굴이었던 자리 같은데… 거긴 없어진 것 같다. >

[ 맞아요. 그리고 저기 저 협곡은 주인님의 사냥터 중 하나였던 곳 같아요! ]

< 그래. 그러니까 저 바위 아래 공터가 바로 우리 숙소였었고 말야. >

[ 와우! 정말 전부 똑같아요! 멋져욧! 원더풀~! ]

< 요정몽… 내가 감탄사 내보낼 틈을 안 주는 구나. >

[ 헤헤~ 죄송! 하지만 전 정말 감동 중이라고요! ]

< 후후- 나도 그렇다. 이렇게 너희들과 함께 보니 더욱 그렇고 말야. >

[ …지형의 일치율이 너무 높습니다. 죄송하지만 인위적인 공사의 흔적이… ]

< 알아, 몽몽. 간판 바위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모든 장소가 자연적으로 이렇게까지 보존되었다는 건 말도 안되지. GM이… 그들이 최대한 복원해 놓은 걸거야. >

[ 호오- 어쩐지. 그럼 저 위의 대형 선박도 그들이겠네요? ]

< 당근이지. >

[ 화산 폭발 때문에 바다 밑으로 사라진 선조의 섬을 발굴해 복원하고 있었다니… 흐응~ 정말 낭만적이고 멋진 비밀 결사네요. ]

< 내 생각도 그래. 꼭 친구의 후예들이 아니더라도… 정말 맘에 드는 친구들이야. >

나는 최근 만났던 G.M.의 현 시대 멤버들을 떠올려보았고, 그 중 특히 소령이를 생각하며 다시 간판 바위 쪽으로 돌아왔다. 천우신이 당당하게 ‘부인’이라고 새겨 놓은 소령이… 녀석은 자신이 아주 오래 전 이곳의 안주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 웅~ 이상해요. 왜 소령님만 환생하고 천우신님은 가까이에 환생해 있지 않을까요? ]

< 글쎄… 나도 그 점이 아쉽고… 지금도 어딘가 그 친구가 환생해 있기를 바래.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상한 건 아닐 거야. 난 몽몽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본래는 전생에 인연이 있는 사람과 다시 만나더라도 모르는 게 정상이고… 만나서 얽힐 가능성 자체는… 훗~! 그보다 이 친구 편지 봐라. 왠지… ‘환생 따위 안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행복했다’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냐? >

[ 과연,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음… 그러면 소령님은 뭔가 조금 모자라게 행복했었다는 말씀? ]

< 응? 얘기가 그렇게 되나? 설마 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글쎄- 내가 타임씨도 아니고… 세세한 일들을 어떻게 다 알겠냐. >

[ 하긴… ]

< 다만,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 소령이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자매들 간의 인연이 더 끈끈한 건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해. >

[ 에구, 인간들 간의 관계는 알면 알수록 의외로 복잡한 거 같아요. ]

< 글쎄, 뭐… 음, 그보다 참! 몽몽! >

[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

< 해신묘가 본래 전자 장비들을 못 쓰게 만드는… 그 뭐냐, 기운? 아니, 하여간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였냐? >

[ 현재 시대의 전자 장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자성(磁性) 물질이 탐지되기는 했었지만,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

< 그래…? 근데 해신묘 근처 해역에서부터 내가 탄 배의 기기며 모든 것이 이상해지더라? >

[ …제가 다시 해당 지역을 스캔해 보면 확실해지겠지만,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그런 현상을 일으킬 만한 광물질이 다량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장소를 지날 때 감지된 전자파 등을 분석한 바로는 이 역시, 인위적인 현상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 인위적인… 아, GM! 그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장비, 그러니까 방해전파 같은 걸 발생하는 장비를 해신묘에 장치해 두었을 거라 이거지? >

[ 그렇습니다. ]

< 흐음~ 그랬었군. 그럼 설마 그 짙은 물안개도… 아, 아니지. 그건 옛날부터 그랬었지? >

[ 그렇습니다. 이 곳의 맨틀층이 먼저 분열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 곳의 지면은 안정되었던 것 같지만 현재까지도 지하의 마그마가 수온을 상승시켜 외부의 차가운 물과 만나는 해역에서 그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 과연, 과연… 연옥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천연의 요새라 이거군. >

[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곳은 현 시대에서 제가 측정한 장소 중 가장 행성 에너지 집중도가 높습니다. ]

< 그래. 예전보다는 좀 못한 것도 같지만… 그래도 거의 근접한 거 같아. 상어 놈과 싸우고 매달려 오고… 별 짓 다하며 내력을 소모했는데도 지금은 벌써 원상복구, 정말이지 여러모로 과거의 연옥도로 돌아온 기분이야. >

[ …주인님. ]

< 응, 왜? >

[ GM 요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방향은… ]

고개를 돌려 몽몽이 말한 방향을 확인해 보니, 수면에 얼마 전까지 없었던 소형 배의 바닥이 보였고, 그로부터 몇 명의 인간들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하나, 둘… 세 명인가? 흐음~ 모터보트 앞 대가리만 잘라서 손잡이를 붙여 놓은 듯한 1인용 수중 장비…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수중 모터사이클…? 음, 하여간 그런 걸 몰고 빠르게 이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군.

< 몽몽… 넌 일단 핸드폰 모드로 바꿔라. …아, 너 혹시 여기 와서도 구조전파 보냈냐? >

[ 예. 조금 전 상어의 생체 기능이 정지 된 후에도 소식이 없으시기에 하위체로의 송신 시도와 함께 발신했었습니다. 잔류 에너지의 한계로 발신 시간은 5초, 메시지는 ‘here’였었습니다. ]

< 그래? 그걸로 잘도 위치를 잡아서 수색에 나섰군 그래. 음… 하긴, 여기는 GM의 본부 바로 아래이니… >

[ 후후~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안 통하는 곳도 있네요. ]

< 암! 누구 친구 후예들인데! >

흐뭇한 마음으로 몽몽 남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GM 본부의 수색대원 세 명이 십여 미터 바깥까지 내려왔다.

거기까지는 매우 빠른 속도였지만, 급격히 속도를 줄이는 폼이 어딘가 어색한 것으로 보아 이런 해저에 잠수 장비도 없이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한 것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내가 몸을 돌려 움직이며 자신들을 올려다보니 더욱 놀라는 것 같고…

< 반가워, GM 여러분. >

으음~ 기껏 예의 바르게 포권까지 하며 전음을 날렸는데 다들 입에서 부루룩~ 거품을 뿜어내다니…

< 나는 진유준이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연락도 없이… >

쯧~! 인사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 명 모두 허둥지둥 방향을 돌려 위로 달아나 버리기 시작하다니… 뭐야?

뭐 저리들 놀래? 이 정도 깊이는 맨몸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꽤 있지 않나?

과민한 반응이 내 쪽에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천천히 그들을 쫓아 올라가 보았다.

수면까지 부상해서 고개를 내미니 다들 혼비백산하여 한 명은 제풀에 바다에 빠지고, 한 명은 총을 겨누질 않나, 또 한 명은 보트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등… 하여간 난리가 아니었다.

“이봐들, 난 과거의 유령 같은 게 아니라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야.”

난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지만, 그들이 진정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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