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8-1화 : 3대 마군황 후보.(1)
4-9. 3대 마군황 후보.(1)
가짜… 가짜라… 아주 원조는 아니라지만 현재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무지하게 원조에 가까운 나에게 가짜라고 한단 말이지?
< …몽몽. >
[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
< …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던 거냐? >
[ 정확히 예측했던 것이 아니라, 가능성만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또한… 제가 그런 가능성을 굳이 강조했던 것은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하무림에 대한 주인님의 기대심리가 너무 높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 지하무림에 대한 나의 기대심리가 너무 높았다…? …이런 사태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충고를 해 줘야 정도로…라는 말이지? >
[ 그렇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 …아니. 오히려 고맙다, 몽몽. 네 말대로야. 난 확실히 지하무림에 대해서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
지하무림…! 내가 처음으로 내 힘으로 얻은 수하들… 물론 몽몽의 힘도 컸지만… 그래도 무공을 익힌 후 처음으로 내 힘과 의지를 가장 많이 쏟아 부은 결과로 얻은 수하들이었다. 그래서 현 시대에서 다시 그들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는 ‘아직은 정식으로 날 인정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예전처럼 되는 건… 곧! 당·연·히·…’라는 인식만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 다.
< 그래… 인정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어. >
나는 쓰게 웃으며 조금 뻐근해지는 뒷목에 한 손을 대고 목을 움직여 보았다. 간만에 두둑, 뜨득-하는 소리와 감각을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 그래… 그렇지만… 말야. 이성적인 판단은 그래도 역시 기분은… 껄쩍, 뻑쩍지근하네, 그려. 요 며칠 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 같기도 하고 말야. >
[ 고, 고정하세요, 주인님. ]
< 훗! 됐다, 요몽. 뭐… 고정까지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
[ 우웅~ 하지만 아까 일때문인지 주인님이 화를 내실 것 같으면 어쩐지 무서워져서…… ]
< 아까 일…? 넌 지금까지 하루 이틀 나와 지낸 것도 아닌 녀석이 그 정도 가지고 뭘…… >
[ 틀려요! 전과는 틀렸어요! 주인님께선 물론…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다른 인간을 상하게 한 일도 많지만… 그렇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오늘 같지 않았어요. 이렇게 ‘즐겁게’ 다른 사람을 공격하신 적은 없었다구요! ]
< 그, 그랬…나? >
[ 그래요. 물론 친구분들이 심하게 다치셔서 그런 건 알지만… 그래도 저, 요몽은 싫어요, 그런 주인님. ]
< …쳇! 오늘은 어째 니들 둘에게 연속으로 따끔한 충고을 듣게 되는 군. >
[ 어, 물론 정말 주인님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
< 안다, 알아, 임마. 그래… 반성하마. 흔한 말이지 만… 오늘은 여러모로 나답지 않았던 것 같아. >
나는 순순히 인정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 크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요몽에 대한 그 동안의 ‘인간 존중 사상교육’이 잘 되었구나…하는 보람도 좀 느껴졌던 것이다.
< …좋아, 몽몽. 이제 구양대주에게 연락해 보자. >
[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구양대주 역시 한국에 와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흐음- 그 노인네도 나 못지 않게 신출귀몰하군, 그래. 구양대주 역시 몽몽처럼 이번 반란(아직 좀 이른 표현이려나?)을 예측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준엽이와 성원이 때문인가……?
“…여보세요, 구양대주?”
“예, 천주! 속하입니다.”
“…지금 어디죠?”
모른 척하고 짐짓 묻자, 대답이 조금 망설인 끝에 흘러나왔다.
“…천주의 뒤를 따라 한국에 와 있습니다.”
“그래요? 자룡대주에게 여기 일에 대해서 들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천주께서 무사히 친구들을 구출해 내셨다는 소식도 조금 전에 들었습니다. 저희들이 그런 사태를 미리 막아내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뒤처리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으셔도……”
“그건 됐어요. 이미 GM에게 의뢰(?)했으니 잘 처리될 겁니다.”
“그런… 천주께는 저희들이 있으니 다른 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을……”
“그야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두 사람… 부상이 심하다면 제가 직접 확인해 보아도 될는지요.”
이 노인네. 준엽이와 성원이가 심하게 다쳤다니까 꽤 몸이 달은 모양이군.
“훗~! 왜. 당신이라면 아무리 심한 부상이라도 치유해 줄 수 있다는 건가?”
“그건 함부로 장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제게 선대의 비전이 있으니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후후~ 그냥 솔직히 말하지 그래요. 이 기회에 그 녀석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그래서 은근슬쩍 둘 중 하나를 후계자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거 아닌가?”
“아, 그, 그건… 으음… 역시 속하의 속내를 꿰뚫고 계셨군요.”
“그야 뭐… 암튼, 맘대로 해요.”
“예? 그래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난 내 친구들이 지하무림의 식구가 되는 건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군황으로서도 각자의 후계자 선정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고… 그 녀석들의 친구로서도 친구의 앞길을 내 선에서 관여한다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고… 흠, 그러니 마음대로 하란 말이요.”
“…역시 사려가 깊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천주.”
사려가 깊기는… 결국 나 몰라라 하겠다는 것뿐인데 뭐.
“그 문제는 그렇게 알고… 그보다 이제 한 가지 물읍시다.”
“하문하십시오, 천주.”
“뭐, 별건 아니고… 현재 지하무림에서 날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자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 거요?”
“…그건, 곧 선조들의 귀물이 도착하면 모두 천주의 부활을 깨닫고……”
난 쯧쯧~ 혀를 차는 소리로 구양대주의 말을 끊었다.
“잘못 들었소? 난 현재 비율을 물었소만?”
“…송구하지만 아직 40%정도는……”
“그렇군.”
“설마, 무슨 불미스런 일이라도……”
나는 수화기 너머에서도 충분히 들릴 정도로 쿡,큭 웃음소리를 냈다.
“그게… 오늘 누가 내 정글도를 훔쳐 가면서 메시지까지 남기고 갔네? ‘가짜 마군황’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말야. 이 일에 대해서… 뭐 알고 있는 거 없수?”
난 별일 아니라는 투로 내뱉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오래도록 나오지 못했다. 엄청무쌍한 감도를 자랑하는 몽몽의 수화기로도 구양대주의 숨소리조차 들려 오지 않았다.
“전혀 몰랐다는 건가, 당신은?”
“…천주. 속하가… 속하가 너무나 어리석어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미연에 막지 못하고……”
구양대주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실은… 전부터 몇몇 마군들을 중심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며칠 전 천주를 직접 목도했던 터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설마 이제와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중심인물과 구체적인 목적은?”
“초사마군(貂蓑魔君)입니다. 그는… 자기 제자의 재주가 뛰어나고 영민함을 과신하여 그자를 감히 차기 마군황의 후보라 자랑하곤 했었습니다.”
초사마군…? 쳇!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천년 전의 선조 못지 않게 신중하고 사리분별이 뛰어난 인물로 봤었는데… 실은 속에 구렁이 새끼를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째… 날 인정하지 못하는데 그치지 않고 굳이 ‘가짜’를 강조했나 했더니… 그래, 그랬었군.”
얘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가소롭군.’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 싶었다. 천년 전의 초사마군은 분명 내가 동시에 상대한 수많은 지하무림인들 중의 한 명에 불과했지만, 그건 현대의 초사마군도 분명히 아는 사실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내 힘을 천년 전의 마군황에 맞추어 가늠해 보았을 거고, 그럼에도 시비를 걸어 왔다는 건… 말년에 화끈하게 노망한 번 부려보고 죽자…는 건 설마 아닐테고, 당연히 그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가 그렇게나 뛰어난 천재라는 건가? 행성 에너지의 불안정 현상으로 인해 나조차 내 력의 수급과 운용이 힘든 이 시대에서 나와 맞짱이 가능한 자를 양성해 냈다는… 그런… 건가? 쳇…!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썰렁해지네. 정말 그런 자라면 얌전히 마군황 자리를 양보하고 3대 마군황 탄생에 박수를 보내 주는… 짓은 못하지, 이 몸은!
“…구양대주! 며칠 전 모였던 신불산의 그 자리에 모두 집합시켜! 시간은 오늘 밤 12시! 열외 없음!”
“복명!”
“…내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귀물 도착 시간도 알아서 그에 맞춰. 그 때까지 도착 못하면 그냥 옛날 방식대로 간다. 모두에게 그렇게 알고 각오해 두라고 해.”
“옛날 방식…이라 하심은?”
“애초에 마군황의 증명은… 전원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 잊었나? 그리고 이번엔 한 가지 더. 나 지금 열받았으니까, 시간 안에 도착 못하는 자는 일일이 내 쪽에서 찾아간다.”
“보, 복명!”
그래… 언놈인지, 얼마나 날고기는 천재인지 몰라도… 나 진유준, 나의 피땀으로 확보한 이 자리, 결코 곱게는 못 내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