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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15권 15화 – 드래곤과 드라군의 차이

드래곤과 드라군의 차이

말토리오 산맥을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울창한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는데, 복장이나 전체적인 분위 기로 보아 사냥꾼들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숲 속의 작은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전진하고 있었기에 속도는 상당히 느린 것이었다. 이때 제일 앞에서 걸어가던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말했다.

“젠장, 엄청나게 광활하군. 이봐!”

“옛, 단장님.”

“그 흉폭한 드라군(Dragoon)이 있다는 곳이 여기가 맞기는 맞는 거야?”

단장의 질문에 부단장 겸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미노시가 즉시 대답했다.

“옛, 여기가 틀림없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저쪽 마법사들이 우리 쪽 마법사들에게 좌표 설명을 정확히 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공간 이동을 마친 지점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쯤 북상했으니 슬슬 드라군의 서식지에 들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미노시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단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드라군의 서식지면 발자국이라도 하나 눈에 띄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정찰 보낸 놈들은 아직 안 돌아왔나?” “글쎄요. 올 시간이 넘었는데 말입니다.”

단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 설마… 벌써 드라군하고 싸움이 붙은 것은 아니겠지? 지원 부대를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놈이 숲 속 깊숙이 도망가면 찾기도 힘든데 말이야.” 이때 미노시가 왼쪽 숲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쪽에서 옵니다.”

미노시의 말을 증명하듯, 숲을 헤치고 10여 명의 기사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오크 다섯 마리를 잡아서 길쭉한 장대에 묶어 가지고 오는 중 이었다. 그것을 본 미노시는 가장 앞장서서 오는 사내에게 벌컥 화를 냈다.

“이봐! 뭐 하다가 이렇게 늦은 거야?”

그 말에 맨 앞에서 걸어오던 사내가 등에 지고 있던 장대를 내리면서 말했다. 그는 노미란 이름의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검객이었다. 또한 어떤 상황에 서도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보통 정찰대 혹은 전위 부대를 이끌고 선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다가 보니까 포동포동한 피그 대여섯 마리가 겁도 없이 달려들잖아. 잘됐다 싶어서 잡아 왔지, 뭐.”

노미의 대답에 미노시는 한꺼풀 꺾인 어조로 질책했다. 그만큼 노미가 잡아온 오크는 아주 맛있는 별식이었던 것이다.

“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위험한 드라군의 서식지니까 조심했어야지.”

말을 마친 미노시는 단장의 허락을 받은 후 모두에게 식사 준비를 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어디에서 몬스터가 출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들 중의 몇 명은 경 계를 서야만 했다. 오크들을 통나무에 꿰어 불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통구이를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훨훨 타오 르는 불 위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저마다 입맛을 다셨다. 오크 통구이는 아주 맛있는 별미들 중의 하나로 용병단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이쪽 대륙 놈들은 음식 아까운 줄을 모른다니까. 식량이 남아도는지, 그 많은 피그들을 잡아 놓고도 그냥 버리다니 말이야. 안 그래?”

단장의 말에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다쿠다가 지글거리는 오크의 넓적다리를 탐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음식 함부로 버리면 벌 받는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단장님?”

다쿠다의 말에 단장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런 후 그는 알카사스 놈들의 괴상한 행동에 짜증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맞아, 전투가 끝난 후에 배도 고프고 해서 피그 다리통 하나 잘라 구워 먹으려는데, 자식들이 영 못 먹을 걸 먹는 것처럼 구역질난다는 듯 쳐다보잖아. 에이, 재수 없는 자식들.”

이윽고 고기가 다 익은 듯하자, 정찰을 담당했던 노미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단장님, 고기가 다 익은 것 같은데 빨리 먹지요.”

그는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의 넓적다리를 잡자, 행여 딴 놈이 잡을세라 재빨리 자신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그 반대편 다리를 움켜잡았다. 그런 후 다소 여 유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 술 가진 거 없나?”

“위험한 드라군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겠다니, 제정신이야? 아차 실수하는 날에는 아무리 자이언트에 타고 있다고 해도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나! 나도 예전에 한 번 방심했다가 그놈한테 물려서 자이언트의 발목이 박살 난 적이 있어. 그놈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힘도 엄청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식사나 해라.”

단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부하를 질책한 후 넓적다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아르티어스의 레어에서 한쪽 눈두덩이가 퍼렇게 변색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던 어스무스 그랜딜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마법 경보음을 듣 고 놀라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얼스웨이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예, 공작 전하. 적들이 어르신의 영토 안으로 침입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있는 상황판에 따르면 영토 외곽에서 폭넓게 포진하여 올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큰일이군. 빨리 가 보세.”

“예.”

레어 밖으로 슬쩍 나가서 정찰을 한 후 그들은 적들의 규모와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에 의견 일치를 봤다.

“아무래도 브로마네스 어르신께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들보고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는데……. 허~참, 난감하군.”

어제 브로마네스가 찾아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는 오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고 앉더니 양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꼭 아이들이 벌을 받는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브로마네스를 보고, 그가 드래곤이라는 사실도 잊고 키득키득 웃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때 그 둘은 브로마네스한테 그야말로 비 온 뒤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던 것이다. 그 후 브로마네스는 방 하나를 정해서 그곳에서 그 짓을 하면서 엘프들에게는 그 방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랜딜 공작 은 문 가까이까지 슬그머니 다가간 후 조용히 불렀다.

“저, 어르신.”

용기를 내어 불러 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불렀다.

“어르신!”

곧이어 짜증이 가득 담긴 브로마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뭐냐?”

“침입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레어가 떠나갈 듯 노기에 가득 찬 브로마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망할 녀석들! 네놈들이 처치하면 될 거 아냐! 좀도둑 몇 놈 가지고 또다시 나를 귀찮게 하면 너희들을 먼저 파묻어 버릴 테다.”

그랜딜 공작은 기겁을 해서 물러났다. 그런 후 얼스웨이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힘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그 지옥과도 같은 고통 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놈들과 싸우는 편이, 어르신께 맞는 것보다는 낫겠지?”

“물론입니다, 공작 전하.”

“그럼, 가자.”

“옛.”

이윽고 그 토실토실하던 오크들이 전부 뼈다귀로 바뀌었을 때, 단장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드라군 사냥은 정말 오랜만이군. 드라군은 사냥하기는 아주 힘들어도 고기 맛은 아주 끝내 주지. 자네들은 먹어 봤나?”

주위를 천천히 살펴본 후 단장은 말을 계속 이었다.

“이런 피그 따위는 드라군에 비하면 정말 먹을 것이 못 돼. 아마 그 때문에 드라군이 거의 멸종당했는지도 모르지.”

그 말에 미노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그놈들이 드라군의 사체를 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12미터짜리 드라군 한 마리를 잡으면 고기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우리들한테 조금 주는 것도 아 까워서 하나도 안 주겠다고 하다니, 쩨쩨한 놈들.”

미노시가 투덜거리자, 노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설마, 본국에도 거의 멸종됐는데, 여기에 그렇게 큰 놈이 남아 있겠어? 10미터만 되도 수지맞는 거라구. 하긴 드라군 고기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절대로 못 잊지. 그것만 해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 가죽하고 뼈는 얼마나 귀하냐? 게다가 여기는 마법사들이 많다니까 그것으로 무기나 갑옷 따위를 만들어서 고가에 팔 수 있을 것 아냐?”

부하들의 잡담이 계속되자 단장은 약간 짜증스러운 듯 말했다.

“야야, 그건 놈을 잡았을 때 얘기고……. 일단 드라군을 포착하면 무엇보다 확실하게 한 번에 잡아야 한다. 놈의 발은 정말 빠르거든. 상처만 입히고 놓치면 아예

추격을 포기해야 하지. 내 경험에 의하면 놈의 발을 묶는 것이 이 사냥이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거야. 너희들은 드라군이 나타나면 내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돼.”

이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작은 덩치의 라누마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는 매우 행동이 재빠르고 전투 실력이 탁월했기에 동료들 사이에서 돌격대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언제나 전투가 시작되면 가장 앞에서 싸웠는데도 아직까지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단순히 빠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단장, 여기서는 드라군이 보물도 모으는 모양이죠?”

단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말했다.

“글쎄… 하기야 대륙이 다르니까 그런 변종이 있을 수도 있겠지. 사실 별의별 데빌들이 다 돌아다니는 곳이니까 말이야. 여기 와서 싸워봤잖아. 이쪽 대륙의 데빌 들은 덩치는 우리 쪽과 비슷하고 생긴 것도 마찬가지지만, 그 힘이 두 배는 되는 것 같더라. 거기에다가 수만 마리씩 여러 종류의 데빌들이 뭉쳐서 다니니까 상대하 기가 아주 까다로웠잖아? 그걸 보면 이쪽 데빌들은 뭔가 좀 다른 모양이지.”

라누마는 설마 하는 듯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물을 모은다면. 설마, 테로돈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죠? 하하.”

서로 간의 오해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은 드래곤을 테로돈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저쪽에서 말한 드래곤을 자신들이 말하는 드라군이라고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 드라군이라는 것은 이쪽 말로 렙터라는 초대형 파충류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하하, 당연하지. 어떻게 감히 테로돈을 자이언트 가지고 잡을 생각을 한단 말이냐? 이봐, 드라군이라고 한 것이 확실하지?”

단장도 불안감을 웃음으로 흘리며 호쾌하게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못 미더웠는지 미노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테로돈은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드래곤이라고 하더니 이쪽에서 못 알아들으니까 엄청나게 거대한 도마뱀이라고 했잖습니까? 이봐, 너도 그때 들었잖아. 그 녀석 발음이 좀 안 좋아 서 그렇지 드라군을 드래곤으로 잘못 발음한 걸 겁니다.”

“그래? 자, 이제 잡담은 그만 하고 전진하자.”

“알겠습니다, 단장님. 자, 모두들 짐을 챙겨라. 이동한다.”

모두들 전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붉고 푸른 빛 덩어리들이 엄청난 기세로 주위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지면에 닿은 즉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두들 그 폭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피하기 바빴다. 그런 가운데 행동이 재빠른 라누마와 미노시가 타이탄을 꺼냈다.

“이봐, 놈들은 몇 명 안 되는 것 같다. 미노시! 자이언트로 빨리 앞에서 막아.”

“맡겨 주십시오, 단장님.”

미노시가 타이탄으로 동료들의 앞을 가로 막았을 때, 라누마는 이미 단장의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앞으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단장은 미노시가 앞 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세밀히 전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곧이어 그는 자신들을 향해 공격 마법을 퍼붓고 있는 상대를 발견했다.

“어? 귀가 뾰족한 거 보니 저거 샬로테 아냐? 왜 샬로테가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그 말에 미노시가 타이탄에 탄 채 답해왔다.

“글쎄요, 혹시 저것들 숲의 파수꾼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니까 몇 마리 남지 않은 드라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러는 게 아닐까요?”

“에이,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별것들이 다 사람 고생시키는 군.”

“저도 돌진할까요? 상대는 몇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라누마 혼자서도 충분해. 혹시 저것들 외에도 있을지 모르니까 자네는 자이언트에 탄 상태로 경계 태세를 유지해.”

“옛.”

하지만 라누마는 엘프를 단 한 명도 해치우지 못한 채 돌아왔다. 산꼭대기까지 재빨리 돌진해 올라갔지만, 상대는 어디로 튀었는지 흔적조차 모호할 정도로 모습 을 감춰버렸던 것이다.

“젠장.”

타이탄을 돌려보낸 후 투덜거리면서 라누마가 털레털레 걸어오는데, 방금 전 엘프가 사라졌던 곳에서 또 다른 근육질의 잘생긴 금발의 사내가 엘프들과 함께 모습 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미노시가 말했다.

“단장님, 아무래도 저놈들… 혹시, 경쟁자가 아닐까요?”

“경쟁자? 아하, 그러니까 저놈들도 드라군 사냥을 하기 위해 여기 왔다는 말인가?”

“예, 안 그러면 갑자기 우리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저놈들은 우리들을 내쫓고 드라군을 독식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새로 나타난 상대를 보자 다쿠다가 앞으로 쓱 나섰다. 그는 크로우 용병단원들 중에서 가장 키가 컸고, 또 머릿속까지 근육질일 정도로 우람한 몸매를 과시하는 사 내였다. 그는 저쪽에 자기처럼 엄청난 근육질의 사내가 있다는 것을 본 순간 치밀어 오르는 호승심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건들거리면서 상대를 도 발했다.

“이봐, 네놈도 힘 좀 쓰게 생겼는데, 나하고 한판 할 용기가 있냐? 응?”

거리가 워낙 떨어져 있었기에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금발의 사내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렸다.

“젠장, 뭐라고 하는 거야? 빌어먹을 놈들. 인상을 봐서는 분명 내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잠시 혼자 씩씩거리던 금발의 사내가 갑자기 주먹을 꽉 쥐자 우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외쳤다.

“이리로 올라와라. 내 지옥이 뭔지 가르쳐 줄 테니.”

다쿠다는 상대가 건방지게 뭐라고 씨부렁거리며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자식, 올라오라면 내가 못 올라갈 줄 알아?”

다쿠다는 잠시 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장은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단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그 육중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 로 산꼭대기를 향해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곧 이어 시작된 육중한 사내들끼리의 육박전. 힘으로는 금발의 사내가 조금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기술 쪽은 다쿠다 가 한 수 위였다. 한동안 탐색전을 벌이던 다쿠다는 이윽고 빈틈을 잡고 그 육중한 근육질의 주먹으로 금발 사내의 면상을 직격했다.

“퍽!”

상대를 얕보고 있던 금발 사내의 머리가 충격 때문에 확 튕겨질 듯 젖혀졌다. 그리고 곧 그림으로 그린 것 같던 잘생긴 그의 코가 찌부러진 것이 보였고, 거기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금발 사내는 슬쩍 코를 만져 보다가 손에 붉은 액체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이런 벌레 같은 자식! 죽여 버리겠다.”

곧이어 금발 사내는 손에서 희뿌연 오라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도저히 근육과 뼈로 이뤄진 손으로는 만들기 힘든 동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퍼버벅!

한동안 북 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금발 사내가 엄청난 힘으로 다쿠다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동안 다쿠다를 두들겨 패던 그는 이미 기절해 있 는 다쿠다를 발로 차서 산 밑으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 올라오고 있는 용병 기사들을 향해 엄청난 마법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위로 돌격했던 기사들이 재빨리 뒤로 도망쳐 내려왔다. 단장은 한심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전장의 사신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은 우리가, 한낱 마법사 한 놈 때문에 쫓겨 내려온다는 말이냐?”

그 말에 노미가 옆에서 발끈한 듯 대답했다. 아무래도 단장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상대는 엄청난 마법사입니다, 단장. 여태껏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녀봤지만, 저렇듯 폭발적인 마법 공격을 가해 오는 놈은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산꼭 대기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이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멍청하기는, 모두들 자이언트를 꺼내라. 아무리 마법 공격이 강력하다고 해도 자이언트의 철갑을 뚫겠느냐? 모두 돌격하라!”

여기저기에서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광폭한 웃음을 터뜨리며 마법 공격을 가하고 있던 금발 사내도 약간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40여 대 가 넘는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마법사라면 위압감부터 느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욱 기고만장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그가 서 있던 산 정상은 푸른빛에 뒤덮이고 말았다.

“저게 뭐냐?”

모두들 갑자기 일어난 괴이한 사태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곧이어 그 광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존재. 5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장대한 체구의 레드 드 래곤이 빛 무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럴 수가! 테로돈이다! 모두들 피해라.”

단장의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 위로 돌진해 올라가던 타이탄들은 드래곤을 발견하자마자 기겁을 하고는 모두들 재빨리 뒤로 돌아서 아래쪽으로 사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맹렬히 돌격할 때의 폭발적인 기세와는 달리, 온통 흩어져서 도망치는 그들의 표정은 겁에 질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여유 있게 바라보던 레드 드래곤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몸이 완전히 부풀어 오를 때까지 숨을 들이쉰 레드 드래곤은 그 정점에서 입을 쩌억 벌리며 폭발적으로 숨을 토해 냈다. 입속에서 시뻘건 광채가 맺히는가 싶더니, 한순간 어마어마한 붉은빛의 다발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뒤쪽으로 쳐졌던 타이탄들부터 엄청난 열기에 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이 보였고, 곧이어 그 모습조차도 검붉은 화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엄청난 대 폭발.

모든 것이 끝난 후 산 정상에는 금발의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화산이 대 폭발이라도 일으킨 듯 주위는 온통 잿더미로 화해 있었고, 여기 저기에서는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산불이 났는지 검붉은 연기가 화염과 함께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반쯤 녹아 버린 타이탄의 잔해가 방금 전에 있었던 말도 안 되는 붉은빛 다발의 위력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한참 동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 을 감상하고 있던 그는 찌부러진 코를 쓱쓱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래도 시야가 확 트여서 좋긴 하구먼. 젠장, 그런데… 아르티어스에게는 뭐라고 변명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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