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7-3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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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7-3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3)


“까,불…지마. 다음…엔 이긴다. 확실히. 내가.”

천음마군은 피를 머금고 숨조차 가쁜 상태에서도 호전적인 태도만은 여전했다. 아무래도 론은 자신의 칼이 아니어서 실수로 발사 스위치를 눌렀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격전 중에 칼의 제어장치가 고장이 났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론 녀석이 알고 보면 비열한 놈이어서 다급한 순간에 의도적으로 비검을 쓴 후 모든 책임을 부하에게 돌린 거라는… 그런 의심도 안 드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론과 천음마군의 태도가 저러니 내가 나서기도 뭐해지고 말았다. 어쨌든 천음마군의 출혈 양과 색… 모든 상태로 보아 대검이 심장처럼 치명적인 부위를 상하게 한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 안심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인 건 분명한데, 계속 용케 혼자 서 있는 다 싶더니만… 결국 동굴 안에서 몇 명의 동료들이 나와 부축하자 그제야 그들에게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돕기 위해 나온 이들 중 한 명이 유일하게 내 위치를 알고 있어서 전음을 주고받을 수도 있는 은사마군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천음마군의 상세를 살피면서 차갑게 몇 마디를 내뱉었다.

“흥! 제가 그렇게 말려도 나서더니 꼴 좋군요.”

그런 은사마군에게 천음마군은 기어이 입을 열어 뭐라고 반문을 하더니, 결국 의식을 잃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은사마군을 전음으로 불렀다.

< …은사마군. >

< 아, 예! 천주! 죄, 죄송합니다. >

< 죄송하다고? >

< 석실에 가 있으라 하명하셨는데, 전 천음마군을 말리다가 그만…… >

아, 그랬지, 참.

< …괜찮아. 석실에 가 있으라고 한 건 방어가 뚫렸을 때를 말하는 거였잖아. 그보다 천음마군은 어때? >

< …의식을 잃었지만, 호흡과 출혈상태로 보아 빨리 치료를 받으면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그럼 빨리 후송해. 뒷일은… 이제 내가 나서서 맡을 테니. >

< 저, 저어… 배려는 감사하지만, 천음마군은 저희들에 맡기고 천주께서는 본래의 뜻을 계속 시행하셔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

< 뭐? >

< 말씀에 토를 달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동굴 안에서 대기 중인 3소대 소대장은 천의마군(賤醫魔君)이며 그는 항상 간단한 의료장비를 소지하고 모든 혈액형의 수하들을 대동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될 듯 합니다. >

천의마군…! 그래, 지하무림의 슈퍼 닥터에 해당되는 그를 의무병으로 생각해 오늘 부대 편성에 넣은 건 바로 나다. 하지만 솔직히 그건 군대에서 몸에 밴 습관적 편성이었을 뿐, 아무리 천의마군이라도 실제 전장에서는 저 정도 부상자까지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정말 야전에서 특별한 장비도 없이 중상자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솔직히… 천음마군은 물론이고 은사마군까지 내가 마군황에 재취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자기 뜻을 먼저 내세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 …알겠다. >

그래. 적어도 오늘만은 모두의 뜻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 천의마군에게 전해. 말썽꾼 천음마군에게 아주 아픈 치료를 해주라고 말야. >

< 보, 복명! >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음마군이 은사마군에게 건넨 말… 내공을 청력에 집중해 간신히 들을 수 있었던 그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 나는… 천음마군. 하늘과 술잔을 기울일 자! 너는… 어떤가, 은사마군? 너의 기다림은 천주께 수많은 지하무림인의 하나로 기억되기 위함이었나?

하아~ 정말이지 과거에나 지금이나 튀기를 좋아하는 말썽꾼…! 하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곤란한 수하인 셈이다.

“진,유,준!”

잠시 때아닌 감상에 빠진 나를 깨우듯 론이 목소리를 높여 날 불렀다. 눈을 떠보니 론은 두 팔을 앞으로 둘러 팔짱을 낀 채, 아예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의 방향은 언뜻 동굴 속을 향한 것 같았지만, 어쩐지 한참 위의 날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천음마군이 당할 때 내가 살기를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난… 이제 손을 뗀다! 당신이 어떤 작전을 쓰고 있는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뭐?

“하지만… 그 것은 나 개인의 의지! 마스터의 명령은 명령이니… 작전은 중지되지 않는다.”

뭐…야, 저 인간. 대체 어쩌자는 거지?

“고이즈미 준이치! 고이즈미 소령!”

“옛! 본 고이즈미 소령, 론 중령님의 명령을 받습니 다.”

뒤쪽에 서 있던 동양계 블러디 울프 한 명이 론의 호령에 바짝 군기가 든 태도와 함께 앞으로 나선다. 이름을 보니 일본계이고, 어째 꽤 유명한 사람과 비슷한 이름인 것 같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제부터 귀관에게 작전권을 일임한다! 마스터의 명령을 수행하라!”

“옛썰~! 작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계급은 한끝발 차이지만 어지간히 론을 겁내는 듯, 잔뜩 군기가 든 모습이다. 하지만… 론에 비해서 왜소해 보이는 것 뿐, 잘 보면 다른 블러디 울프 이상의 다부진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도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어쨌든… 론 녀석, 아무리 다른 자에게 작전을 계속하게 한다고 해도, 자긴 정말 멋대로 원판의 명령에서 손을 뗄 생각인 건가? 저 녀석은 대체……

“2, 3중대는 후방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랏! 1중대 병력은 포위망을 굳히고 4중대는 동굴 주변의 탈출 의심 구역을 체크……”

…역시 론처럼 무대포는 아니로군. 하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우리 작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오늘 같은 작전에는 론과 같은 정통파를 상대하기가 더 곤란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잘 된 셈이다.

“…화기반, 앞으로!”

어…? 갑자기 로켓포를 소지한 놈들을 부르네? 이거, 이거… 어쩐다? 동굴 입구가 막히는 것도 내 작전에 더 유리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석실이 있는 동굴이 심하게 손상되는 건 좀……

“멍청이!”

작전권을 일임한다고 했던 론이었다. 그의 차가운 말에 고이즈미 소령이 흠칫 긴장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론이 손가락으로 퉁긴 돌맹이 같은 것이 고이즈미 소령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다.

“으윽-! 로, 론 중령 님!”

얼굴을 감싸며 상체를 숙인 고이즈미 소령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론은 그런 고이즈미 소령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 겁쟁이 방식 말고, 제대로 못하겠나?”

“로, 론… 중령…!”

아- 고개를 든 고이즈미 소령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피를 보자 이성을 잃고 론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은 듯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다.

“작전권을… 제게 일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네 놈이 겁먹은 원숭이 흉내를 낼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야.”

어이- 론. 그런 소리하면 우리 금동이가 섭하지.

“론 중령…님! 아무리 우리들이 당신의 직속 부대가 아니라고 해도, 아니 그러니 더욱 이런 식은 용납 못 합니다!”

오늘 온 놈들이 론의 직속 부대가 아니라고…? 어쩐지 처음부터 전체적인 분위기가 삐걱댄다 싶더니만……

“용납… 못하면?”

“다, 당장 마스터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 봐.”

“다, 당신 정말……!”

점입가경…이랄까? 어느 틈에 고이즈미 소령의 손에 대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론은 그런 상대의 반응을 비웃으며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케이시 대위!”

론의 호명에 그의 등뒤에서 또 다른 블러디 울프 한 명이 선뜻 앞으로 나섰다.

“우리 13중대에서 오늘 날 따라 온 건 귀관 뿐인가?”

“그렇습니다, 중령님. 다른 병력들은 중령님의 부재 중 ‘도홍’ 대령님께 임시 이관된 편제에서 아직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후후후~ 이제야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알 것 같군.”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도홍과 론 사이에 블러디 울프 지휘권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쨌든, 좋아! 케이시 대위, 우리 13중대, 매드 포스(mad force)에서는 상관에게 항명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귀관이 보여 주도록!”

“옛썰!”

짧고 절도 있게 대답한 케이시 대위. 그러나 이 짙은 갈색 머리의 백인 남자는 자신의 그런 태도는 론에게 뿐이라는 듯, 곧바로 약간 건들대는 태도로 고이즈미 소령 앞으로 나선다.

“그러고 보니… 제게는 오히려 상관이시군요, 고이즈미 소령님.”

“흥! 알긴 아는 거냐?”

고이즈미는 그렇게 내뱉으면서도 힐끔 다른 블러디 울프들을 돌아보았다. 도움, 내지는 최소한 협조나 응원을 바라는 심정인 듯 했지만… 다른 블러디 울프들은 그 어느 쪽도 편드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기는지, 고이즈미의 안색과 눈빛이 더욱 비장함을 띠기 시작했다.

“후훗- 고이즈미 소령님. 지금은 정보 장교일 뿐이지만, 한때는 저 도홍 대령님에 필적한다는 소리도 들었었다죠? 그 솜씨를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케이시는 말만 그럴 뿐 별로 긴장한 빛도 없이 성큼성큼 고이즈미 소령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도홍은 나와 몇 수를 나누었을 때 조금도 뒤지지 않는 능력을 보여줬던 남자다. 그런 도홍과 필적했다는 고이즈미 소령, 론의 직속 부하이며 어딘가 다른 블러디 울프와 달라 보이는 케이시 대위의 배틀…! 분명히 흥미로운 대결이었지만……! 뭐…냐, 저 것들. 지금 나와 지하무림 앞에서 장난해?

나는 차츰 맥이 빠져서 슬며시 쭈그리고 앉아 버렸다.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나의 의도대로 시간을 끌어주고… 그래서 원판이 현장으로 찾아 올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건 좋은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지 싶었다. 뭐… 내가 원판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저 론은 원판의 조직관리에 있어 최대의 고춧가루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우리 천음마군은 애교가 넘치는 수준이랄까…? 으음… 암튼,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이번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의 결과는 지하무림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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