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3-3화 : Dr. J의 딸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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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3-3화 : Dr. J의 딸들.(3)


6-5. Dr. J의 딸들.(3)

약간의 사소한 트러블은 있었지만 결국 별다른 일 없이 도착한 오키나와 공항에서, 나는 다시 미리 대기 중이던 헬기에 올랐다. 그리고 향한 곳은 얼마 전에 소교를 구출하기 위해 홍콩으로 갈 때 왔었던 옛 미군 기지였다. 당연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건 우리가 탈 특별기… 초음속 비즈니스용 제트 여객기 (SUPERSCONIC BUSINESS ZET TRANSPORT)… 가칭, 화이어 드래곤(FIRE DRAGON)이었다. 일명 미스 화룡(火龍)! 그리고 그 앞에는… 그 미스 화룡의 개발 총 책임자라는 미스 제이, 자룡대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천주.”

음… 다행히 지난밤의 후유증이랄까… 대교와의 일 때문에 날 원망하는 기색은 별로 보이지 않는 군. 아직은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늘부터 절 대신하여 천주를 보좌할 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자룡대주의 뒤에서 대기 중이다가 앞으로 나서는… 잿빛 정장 차림에 까무잡잡한 얼굴의 저 여자… 지난번 어사조 후보자 명단에 있던 그 인도계 여자로군. 어깨에 매고 있는 저 가방은 어째 보통 여자들이 쓰는 것과는 좀 다른… 아, 노트북인 모양이다. 컴퓨터 전공이라고 했지?

“자룡대 부대주, ‘페트라 왕’이라고 합니다, 천주. 대주님을 대신해 최선을 다해 천주를 보좌하겠습니다.”

“…반가워. 앞으로 나도 잘 부탁해.”

인사하는 폼은 지극히 정중해서 나도 별 생각 없이 답례했지만, 이 여자…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어째 좀 부담스럽기도 하네. 하지만 뭐, 수하의 눈빛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사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자룡대주와 페트라 뿐이 아니었다. 가짜 원판과의 전투 때 만났던 전황마군 (戰徨魔君)은 물론이고 그 때까지 미쳐 합류하지 못했던 어사조 멤버들도 거의 전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모두의 인사는 가면서 받도록 하지. 일단 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미스 화룡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하은이를 따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이거 정말 굉장해요! 우리 DP의 특별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미스 화룡이 본격적으로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카디가 숨김없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좋아 봤자, 내 건 아니다. 자룡대주의 빽으로 빌려 탄 거지, 뭐.”

“후후. 그래도 대단해요. 솔직히 지하무림이란 곳이 이렇게 영향력이 클 줄은 몰랐어요. 우리 DP에 비하면 오합지졸일 거라고 생각했었… 아, 죄송해요.”

“아니, 됐다. 적이 우릴 우습게 알면 알수록 우리에겐 더 유리한 법이니까.”

나는 여유 있게 받아주며 이 미스 화룡의 실제 제작 진의 보스 ‘브라운 박사’ 쪽을 보았다. 그는 전과 달리 자룡대주가 없는데도, 아니 그녀가 오히려 그녀가 없어서 일까? 계속 별다른 말도 없이 내게 시선을 돌리 지도 않고 있었다. 내가 자기 동료인 자룡대주에게 섭섭한 대우를 했다 고 해서 앙심을 품고 뭔가 음모를…라는 생각도 얼핏 들기도 했지만, 에이- 설마…

나 혼자 품고 있던 아주 약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스 화룡은 여전히 ‘과연 마하 2.7의 환상 여객기!’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태평양을 횡단해 주었다. 몽몽이 LA 부근의 상공이라는 걸 알려 주고, 이어서 브라운 박사가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고 말했을 때는 오키나와를 떠난 후 불과 4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크흐흐…”

문득 들려온 소리에 돌아보니 브라운 박사의 낮은 웃음소리였다. 그는 비행 내내 조용했었던 것과 달리 화사음흉한 표정으로 웃으며 기계 장비들을 점검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흐흐흐흐~ 드디어 풀타임 가속 실험에 성공했군. 중요한 포인트의 장비들 1차 점검은… 이상 무…! 흐흐- 물론 좀 더 정밀 점검을 해 봐야겠지만… 아, 그렇지!”

브라운 박사는 마치 공포 영화 속의 미친 과학자처럼 음산한 표정으로 나를 비롯한 승객 모두에게 묻기 시작했다.

“다들… 몸에 이상은 없으신가? 약간 메스거운 정도 말고… 피를 토할 정도면 얘기해 보시오.”

그, 그러니까… 어째 상당히 심한 실험의 몰모트가 된 기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사히 L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것도… 하은이가 탄 일반 여객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하아~ 당연히 이런 걸 원했던 거긴 하지만… 막상 진짜 하은이보다 먼저 도착해 버리니까 좀 실감이 안 나네.”

난 공항 로비를 천천히 거닐며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카디는 웃음을 앞세우며 말했다.

“우후후~ 전 정말 재밌었어요. 음속을 돌파하고도 계속 더 가속할 때의 그 짜릿함이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바깥 세상의 실제 경험이 적은 티가 난다고 할까? 하은이라면 한 마디 감상 멘트도 없었을 법한 일에 일일이 감탄하고 있었다. 아니, 초음속 여객기를 탄 건 웬만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탄할 만한 경험이려나…?

“…그보다, 니네 비밀 연구소는 대체 어디냐?”

“거긴… 아직 알려 줄 수 없다고 했잖아요.”

으음. 얼결에 대답이 나오게 하려 했더니 안 통하는 군.

“일단 동행을 허락한 이상 목적지를 알아도 널 떼어 놓고 가진 않는다고 했는데… 어지간히 날 못 믿는 모양이구나.”

“못 믿어요. 성실한 오빠는 믿지만, 친절한 오빠는 믿지 못하죠.”

뭐야… 내가 자길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건 확실히 가능성 높은 판단이긴 하지만, 나란 놈은 그래도 약속을 우선하는 성격인데 거기까지는 아직 분석이 안 된 모양이군.

“…뭐, 맘대로 생각해라. 굳이 네 안내를 받지 않아도 곧 도착할 하은이와 함께 가면 될 테니까 말야.”

“아아- 정말 배짱 좋게 언니와 동행하려는 거예요? 연구소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아무려면 어때, 그 연구소 대빵이 내 이모부인데.”

“에효- 그건 그렇지만, 그 전에 오빠는 우리 DP의 적이잖아요. 마스터가 제거 명령을 내린!”

“…제거는 아니고. ‘싸우라’는 명령이었을 걸?”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달라. 꽤 많이.”

카디는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설명해 주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계속 천천히 걸으며 공항내의 지형을 숙지한 다음, 문구류를 파는 매점에 잠깐 들러서 준비물(?)을 구비한 후에야 하은이가 나올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런 다인종 국가의, 더구나 국제공항에서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건 별로 주목받을 이유 안될 텐데… 왜 지나치는 이들이 한 번씩 힐끔거리고 지나가는 거지? 역시 변장을 해도 눈에 띠는 카디때문… 아, 그렇지. 지금 내 옆에는 보디가드 겸 전령으로 은사마군과 새로 보좌관이 된 페트라까지 함께 있구나! 으음… 하긴, 확실히 나라도 다른 누군가, 딱히 별 볼일 있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이런 미녀들을 셋이나 거느리고 다니면 한 번 더 쳐다 볼 수밖에 없을 것 같군. 남자 어사조들은 모두 사방으로 산개하여 대기시키고 여자들만 데리고 다니는 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역할 문제지 의도적으로 이러는 건 아닌데… 설마 나중에 대교가 보고 질투를 하는 건 아니겠지?

“…바람둥이!”

으윽! 대교가 차갑게 질타하는 환청이 다 들리다니. 난 벌써 이렇게까지 경처가(?)의 조짐을 보이는… 어…? 아닌데? 방금 그 소리, 대교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환청도 아니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쌓여 있었군요.”

에…? 이, 이 녀석은…… 난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미령이를 잠시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미령이의 옆에서 또 다른 녀석, 아니 녀석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짜안-! 우리도 왔어요오~!”

그래. 미령이가 왔으면 미령이와 셋트, 소령이 너도 왔겠지. 소,미령 셋트의 부록(?)인 금동이 녀석이 소령에게 안긴 채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도 당연한 거고… 음. 근데 이 녀석들이 어떻게……

“크흠! 흠~!”

더욱 뜻밖의 인물이 두 녀석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다가 헛기침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 장발의 청년은……

“채, 챈? 자네까지……?”

“예. 오랜만입니다, 진하사님. 이번엔 저도 함께입니다.”

본래 맘에 드는 친구인데다 천우신의 후예라고 생각하면 더욱 정이 가는 인물 재키 챈, 그였다. 그는 물론 무지 반가웠고, 내가 서울로 올라 갈 때 소령이와 미령이는 금동이를 데리고 지들 본부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다소 섭섭했었는데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나니, 그 역시 반갑다. 그렇기는 하지만……

“반갑긴 한데… 니들,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고, 또 왜 찾아 온 거지?”

내가 묻자 미령이부터 시작해서 소령이, 그리고 챈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대답했다.

“당신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우리의 정보망을 얕보지 말아요.”

“게다가 우리도 초음속 비행기가 있지 뭐예요오. 그거 타고 피유웅~ 왔지요!”

“아… 물론, ‘구경’을 위해서지요.”

응…? 아무래도 챈의 말이 ‘요점’인 거 같지?

“구…경?”

“그렇습니다. 저희들조차 아직 DP의 모든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성향은 천년 전의 비화곡, 규모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 저희들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과 진하사님이 싸운다면… 음. 당사자 앞에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사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쳇. 누가 그 친구, 천우신의 후예가 아니랄 까봐!”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하며 웃고 말았다.

“좋아. 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구경을 하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나는 다시 본래 가려했던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소령이 품에 있던 금동이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오더니 재빨리 내 어깨로 뛰어 올라왔다. 다소 허전했던 어깨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GM일행과 뜻밖의 재회가 있은 후, 약 6, 7분 정도가 지났을 때. 그제야 국제선 출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소 정신없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의 흐름이 거의 줄어들었을 때쯤, 그제야 출구 안쪽에서 하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몽몽…! 아직… 없냐? >

[ 예, 주인님. 적어도 이 출구 부근, 누군가를 마중 나온 듯한 사람들 중에는 수상한 자가 없습니다. ]

으음. 혹시나 했는데… 아무래도 이모부, 닥터 제이는 딸래미가 간만에 방문한다는 데도 공항까지 마중 나오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군. 하은이는… 음, 하은이 역시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지도 않고 있는 건가? 아예 다른 생각에 빠진 채 걷고 있는 듯 출구 바로 옆에 서있는 나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오히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DP의 요원들이 먼저 우릴 알아보고 놀라는 군.

“어이~ 정하은!”

나는 소리쳐 녀석을 부르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흠칫 걸음을 멈춘 하은이는 그제야 나와 내가 들고 있는 커다란 종이를 발견하는 것 같았다.

환영! 이쁜이 정하은!

녀석은 문구점에서 구입한 종이에 내가 써놓은 글귀를 가만히 보고 서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따, 따라오지… 말랬더니… 뭐야… 그 유치한 문구는……”

“뭐가 유치하냐, 임마! 그, 뭐… 글씨는 좀 개발새발인 거 인정한다만… 아, 암튼!”

나는 종이를 거두며 녀석에게 짐짓 물었다.

“…잘 다녀왔니?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온 감상은?”

“…잘 다녀왔어. 반가운 분들… 만나서 기뻤구.”

“후후- 고향에는 너무나 멋진 킹카 오빠도 한 명 있다고 하던데……”

“…몰라. 못 봤어, 그런 오빤.”

“어, 야아-”

비로소 녀석이 조금 웃었다. 그런데……

“이야아~ 이거 전혀 몰랐는 걸?”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음성.

“이곳 로스엔젤레스에 하은이의 남자 친구가 있는 줄은……”

우리로부터 불과 5, 6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하는 말이었다.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에 대충 감다만 것 같은 머리, 후줄근해 보이는 흰색 가운을 걸치고 그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는 저 모습은… 마치 며칠 동안 밤샘을 하다가 실험실 구석의 간이 침대로 눈 붙이러 가는 공대생을 보는 것 같았다.

“아…빠?”

예상대로 하은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하은이를 바라보며 다가오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이런, 이런… 오해였군. 이제보니 진유준군 아닌가.”

이어 그는 ‘군대갔던 옆집 길동이가 제대했대’라는 정도의 소소한 잡담을 하듯 태연하게 덧붙였다.

“…DP의 모든 특수 부서에 비상이 걸려 있게 만든… 아니, 그보다… 하운군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문제의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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