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2-3화 : 부활하는 비화곡(秘花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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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2-3화 : 부활하는 비화곡(秘花谷).(3)


7-4. 부활하는 비화곡(秘花谷).(3)

사고가… 아니었다고? 그럼 이모님은…

“물론 ‘그들’에게 살해당한 거지. 아니, 결국 모든 원인은 내가 제공한 셈이니… 결국 바로 내가 그녀를 죽인 셈이야.”

닥터 제이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나 역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묻지 못하고 조용히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

< …괜찮아, 몽몽. 나란 놈은… 5년 전 이모님의 사고소식을 듣고 어머니께서 대성통곡을 하실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놈이야. 그 때도 이미 10년 동안이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친척일 뿐이었으니까. >

그래…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어떤 감정이든 그런 거에 휩싸이는 건 오히려 너무 뻔뻔한 노릇이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 주인님…? 정말 괜찮으세요? ]

< …그래, 요몽. 니들이 보기엔 내가 안 괜찮아 보이냐? >

[ 그게… 저어… 어, 그래요. 솔직히 좀 뭔가… ]

< 뭐가, 뭐? >

[ 아니에요. 날 모르겠어요. ]

< 애먼 소리 말고, 넌 또 그 동안 뭐하다가 이제 나오냐? 이번에는 늑대 마신들이 무서워서 그랬던 거야? >

[ 예? 아, 아녀요! 전 다만… 어… 그래요, 패티가, 패티가 너무 무서워해서 달래 주느라고 그랬어요. 어, 패티는 주인님이 거미 로봇들과 떨어지신 후 돌아왔었고요. ]

…쯧! 반응을 보니 패티는 당연히(?) 그랬고, 이 녀석도 어느 정도(?) 무서웠었던 모양이군. 이노무 인공지능들이 빠르게 진화하는 건 좋은데… 근데 이젠 그게 좀 지나친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은발 소년 모드일 때의 몽몽과 요몽 그리고 새로 재탄생하여 합류한 패티까지, 몽몽 본체에 구성되었다는 사이버 월드에서 지들끼리는 ‘인간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격부분에 있어서 인간과 유사 한 건 처음부터 그랬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것들이 프로그램 된 것이 아닌 ‘자연스런 감정’까지 가지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혐오감’, ‘공포’, ‘사랑’… 이런 구체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 하아- 그래. 패티는 아직도 부끄러워서 나오지 않겠다니?>

그래, 그래서 아직 난 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요몽을 베이스로 좀더 어리고 얌전해 보이는 용모로 결정되었다는 얘기만 들었었다.

[ 예. 아직은요. 게다가 아까 그 마신들 때문에 놀라서 조금 전까지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어요. ]

< 나참~! 넌 대체 걜 어떻게 키운 거냐? 무슨 애가… >

잠시 잊고 있었지만, 패티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아까 몽몽이 애써 인공위성에 패티를 침투시켜 거미 로봇들을 통제하는 작전을 수행 중일 때, 그 결정적인 순간에 패티가 명령을 거부했던 건 배신이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거미가 무섭고 징그러워서’ 그랬다는 거다.

[ 죄송해요, 주인님. 전 최대한 착하고 순진하게 키우려고 한 것뿐인데… 근데 그게 약간 여린 소녀가 되어 버려서… ]

< 그게 약간이냐…? 세상에 어떤 인공지능이 거미 무섭다고 주인님을 위기에 빠트려! 응? >

[ 정말 죄송해요, 주인님. 하, 하지만 지난번에 용서해 주신다고 하시고 또 화를 내시면… ]

쯧! 그랬었다. 어찌되었든 늦지 않게 거미들 통제하는데 성공해준 공도 있고, 처음이니까 한 번 봐 준다고 했었다. 그 다음엔 하도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

< 그래, 약속했으니까 더 화는 안 내마. 하지만 너 정말 그 애 교육 좀 잘 시켜 인마. 사실 나도 너보다는 좀 조신한 애가 되기를 바라긴 했지만… 그래도 뭐든 너무 심한 건 곤란하잖아. >

[ 넵. 앞으로는 주인님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여 패티를 좀 더 강인한 소녀로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

요몽은 경례를 척 붙이더니 포릉- 사라졌다.

< …몽몽. >

[ 예!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정식 코드명 파트리시아, 애칭 패티의 육성과 교육 과정에 좀더 관여했어야 했는데 … ]

< 아니, 넌 죄송할 거 없어. 니가 갈수록 요몽에게 꼼짝 못 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 말이야. >

[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규칙에 따라… ]

< 됐네, 이 친구야. 어쨌든 그 얘긴 나중에 한가할 때 하기로 하고… 어떠냐, 이 지하기지. 스캔은 좀 해 봤어? >

[ 아, 예. 이 곳에는 저의 탐지 기능을 막는 장치가 없어서 가능 범위까지 계속 스캔 중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구역의 설비 체계, 배선 형태와 송신 전력량, 기타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추정되는 기지의 크기는 최소한 반경 2K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과연… 천년 전의 비화곡 전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지내던 본단의 크기에는 거의 육박할 정도로군.

[ 지금까지 확인된 구역은 거의 ‘생활’에 필요한 설비였으나 조금 전부터… ]

“어떤가?”

“예?”

쯧, 닥터 제이가 갑자기 입을 열어서 조금 놀랬다.

그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이 곳, 21세기형 비화곡이 어떤 것 같은가를 물었네.”

“글…쎄요. 아직은 뭐…”

“훗-! 그래. 지금 내가 걸어 온 코스에 있었던 건 모두 ‘기본 생활과 레져’를 위한 공간이었으니, 감상을 묻는 건 조금 일렀던 것 같군.”

“아뇨. 충분히 놀랍습니다.”

이모님 소식과 몽몽 남매와의 대화 때문에 자세히 확인한 건 아니지만 얼핏 봐도 대부분 그런 용도로 쓰이는 곳인 것 같았다. 특히 이채로웠던 건 ‘휴양림’ 이라는 푯말이 붙은 문이었고, 문에 설치 된 유리 너머로는 정말 숲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생활과 레져에 정서 순화…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썼다는 건, 이 곳에서 몇 년이고 나가지 않을 작정이라는 거죠?”

“정답. 나는 그렇다 치고, 오늘 이 곳에 들어 온 모든 멤버들을 위해서는 좀 신경을 써야 했지.”

“그런데 그 멤버라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아직까지 한 명도 안보이던데요?”

“음. 그들은 나중에 소개받게 될 거야. 워낙 오랫동안 비워 둔 곳이라 점검할 곳도 많거든.”

“얼마나…요?”

“10년하고도 24일. 완공되는데 소요되었던 기간보다도 두 배가 넘는 세월을 잠들어 있었던 셈이지.”

“10년…? 그런데 10년 전이라는 기계 장치들 수준이 어째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미래 과학을 과거인 현 시대에서 보자면, 이미 완성된 거라고 할 수 있지. 처음에는 구현자체가 어려웠다고 하지만, 대략 20년 정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구현이 가능해 지면서 15 년 정도전과 현재의 기계 기술에는 그리 큰 수준 차이가 나지 않아. 그리고…”

닥터 제이는 문득 말과 걸음을 동시에 멈추더니, 어느 사이 나타난 정면의 커다란 출입문을 턱짓해 보였다.

“아, 다 왔군. 이 곳이야.”

내가 파괴했던 연구소 중앙 통제실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거대한… 그러니까 결국 같은 중앙 통제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중앙 통제실이지. 아직 에너지 보급이 다 이루어지지 못해서 휴업상태이니 잠시 우리 휴게실로 쓰자구. 아, 미안!”

닥터 제이는 가장 가까운 장치 앞의 의자를 빼더니 털썩 주저앉아 반쯤 눕다시피 했다.

“후우우우~ 생각보다 힘들군. 적응에는 좀더 시간 이 걸리겠어. 이래서야 차 대접은커녕…”

“그런 건 됐구요.”

나는 나도 가까운 곳의 의자를 빼와서 앉아 그를 마주보며 물었다.

“미래여자 싸가지 진, 그 여자는 그럼 지금 어디에 있죠? 원판이 제의했던 나와의 게임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감금되어 있는 그녀를 찾아내는 게임이니 하는 것도 그렇고, 그 외의 사항… 그러니까 전에 하운군이 한국에서 자네에게 한 얘기들 전부가 자네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꾸며낸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건 저도 지금은 안… 어, 잠깐. 지금 ‘전부’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우선 그녀는 하운군에게 속아서 이 곳으로 온 것도, 로봇을 빼앗긴 것도 아니었어.”

“그렇…다면…”

“훗! 결국 하운군도 자네와 비슷한 경우였다고 하더군. 간단히 말해서 원치 않은 사고 때문에 이 시대에 있게 된 거지. 정말 과학자라고는 믿기 어려운 무책임함으로 그를 떨궈 놓은 그녀는… 그 당시에 이미 그냥 미래로 돌아가 버렸었고 말이야.”

맙소사! 원판에게 들은 얘기보다 이게 더 황당하다.

그 싸가지는 정말

“하운군은 당시 기억 중의 일부를 잃어 버려서 역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어, 어쨌든 그럼 그 로봇, 그 것도 저와 같은 경우였나요? 사라지면서 그 로봇으로 어찌 잘 살아 보라고 하면서 주고 갔대요?”

“그건 아니었어. 그 로봇… 미래 과학의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는 문제의 그걸 처음 발견하고 확보한 건 다름 아닌 우리의 적인 ‘그들’이었어. 아마도 그녀는 미래로 돌아가기 전에 어떤 사고나 실수로 그 로봇을 잃어 버렸던 것 같아.

그들이 ‘우연히’ 발견했을 당시에 그 로봇은 ‘일부가 부서져’있었다고 하더군. 다른 장소에서 옛날 중국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는 하운 군이 발견된 건 그 다음이고…”

으이구, 그 싸가지에 칠칠맞기까지 한 여자 같으니

“또한, 나중에 그 로봇 메모리 속의 데이터에 등장하는 비화곡을 모델로 지금의 DP를 만든 것도 하운군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었어. 소규모 고수들의 집단이 중원 전체의 사마외도를 지배했던 비화곡의 이야기가 ‘그들’의 흥미를 끌었던 거지.”

어쩐지… 원판이 미래 과학을 손에 넣은 채 시작했다면, 그걸 이용해서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력을 이루었는데도 ‘그들’인지 뭔지에게 꿀린다는 것이… 아니 꿀리는 정도가 간단하게 복제인간으로 대체되어 축출될 만큼 철저 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게 이상하긴 했었다. 하아~ 그래. 아무리 원판이라도 어쩔 수 없었구나.

“하운군이 결국 DP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 비화곡의 극악서생, 즉 등장하는 실존인물이라는 점과 데이터에 나온 그대로 굉장한 ‘천재’라는 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야. 물론, 더 위의 지배자에게 철저하게 통제되고 감시받는 허울뿐인 수장이었지.”

그 여자… 나도 나지만, 생각해 보면 원판 녀석이 내게 육체를 빼앗겼었던 것도 결국은 그 여자가 원인이었다. 근데 그 것도 모자라서 또 원판의 인생을 구겨놓고 갔었던 거구나.

[ 세상에…! 아무리 저희의 전 주인님이시지만 정말 너무 했네요! 그치, 몽몽 오빠! ]

요몽까지 못 참고 튀어 나왔지만, 몽몽은 아직 신중하게 언급을 회피하며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하다못해… 그의 지금 그 젊은 육체도 그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야. 복제인간 연구 완성의 가장 큰 난제… 즉, 같은 영혼이 계속 새로운 육체에 이동할 수 있는지…! 그 걸 알아내기 위한 실험체 신세가 되었던 거지.”

제기… 그 녀석의 복제가 나타나고 정작 본인은 사라졌을 때부터 녀석이 어떤 처지인지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처음부터 주욱 사연을 들으니까 그 녀석이 계속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을 지… 얼마나 한 맺힌 세월을 보냈을 지가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실감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녀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으음. 이제 그가 왜, 얼마나 자네를 기다려 왔는지 알겠는가? 그에게 있어 자네는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거야.”

“…그 녀석, 원판. 지금은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완전히 제거 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 자네에 대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금되고 다른 영혼을 가진 복제 인간으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그 복제인간이 제구실을 못하고 불과 며칠 만에 자네 손에 죽었으니…”

“아, 그건… 제가 놈을 제압한 것까지는 맞는데, 마지막에 숨통을 끊은 건 원판의 비서인 ‘란’이었어요.”

“흐음. 그랬었군. 란이 우리 쪽 사람이란 건 알지만 우리끼리도 연락이 쉽지가 않아서 모르고 있었어. 일각에서 그 복제의 사인을 좀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에 혹시나 하긴 했지.”

“어,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란이 위험하잖아요.”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란은 시체를 담은 헬기를 폭파하여 사인을 숨기려 한 모양이던데, 물론 그 정도는 조사를 철저하게 하면 밝혀지겠지.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은 복제 따위에게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걸?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네뿐이니까 말이야.”

“저요? 음… 그게 아니지 않나요? 그들이 진짜 노리는 건 제가 아닐 텐데요?”

나의 반문에 닥터 제이는 보일 듯 말 듯 만족해하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역시… 우리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군.”

“메시지… 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그들’이라고만 표현했음에도 계속 묻지 않은 건, 그게 ‘프리메이슨(Freemason)’을 지칭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역시…

“이 곳까지 오기 전에는 그냥 짐작만, 의심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 최소한 그 정도라도 감을 잡을 수 있게 해 두었지.”

“아…! 그럼 혹시 그들의 모든 지부가 전산망을 재정비한 것이… 그 일 자체가 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던 겁니까?”

“그래. 우린 몽몽의 침투 및 탐색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받아들여졌어. 하지만 자네와 몽몽은 오히려 그 것 때문에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 그 때까지 만해도 아직 원판이 몽몽의 존재를 프리메이슨에게도 숨기며 소위 ‘히든카드’로 쓰려 한다고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몽몽을 대비했다는 건 당연히 몽몽의 존재를 안다는 거고… 또, 더 당연히도… 그들이 노리는 대상은 제가 아닌, 몽몽이 될 수밖에 없죠.”

내가 이 시대로 복귀한 이후 지금까지 대교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몽몽의 정체를 숨겨온 것은 몽몽을 계속 히든카드로 이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몽몽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탐나는 존재일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몽몽을… 내가 몽몽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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