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9-2화 : 현 시대 대교의 비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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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9-2화 : 현 시대 대교의 비밀.(2)


8-1. 현 시대 대교의 비밀.(2)

< 16년… 전? >

나는 다소 어이없어 하며 새삼 녀석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상거지 일보 직전까지 가도록 안 감고 안 씻은 상태라서 그렇지 본 바탕은 역시 잘 해야 대교와 비슷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 뭐야. 네가 그 당시에 대체 몇 살이었다는 거야? >

< 여덟 살. >

< …뭐? >

< 당신, 왜 놀라는 거지, 진유준님? >

< 아니 뭐…… >

이 말이 사실이면 현재 나의 공식적인(시간여행 시간을 빼야 하므로) 나이보다도 많다는 얘기잖아? 정말… 제기랄스럽게 끔찍한 동안(童顔)이네.

<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어쨌든 결국 그래봐야 겨우 여덟 살 때 한 번 보았을 뿐이잖아. 그 후 16년이나 지난 지금,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자신하는 거야? >

< …우리 수라문이 후계자를 찾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어. 그건 바로 대교님께 데려가 인사를 드리고… 그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을 머리 속에 새겨 넣도록 하는 것이지. 수라문에는 특정 기억을 오래도록 유지하게 하는 주술도 있지만…… >

덕방은 문득 해맑게(?) 웃으며 뜸을 들인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 내게 그런 건 필요도 없었어. 누구라도 그 분의 영혼을 한 번이라도 접하게 되면… 잊을 수… 없을 거야. 평생토록. >

말하는 사이 덕방의 얼굴에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16년 전에 만났던 대교를 다시 떠올린 것만으로 말이다.
…이걸 그냥 확 베어 버릴까? 나답지 않게 무고한(?) 자에게 살기를 품고 말았지만, 누구든 자기 여자에게 이렇게 넋이 나간 놈을 눈앞에서 보게 되면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퉁명스럽게(?) 한 소리 했을 뿐이었다.

< …어이~ 정신 좀 챙기지? >

덕방은 그제야 문득 정신이 드는 것 같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싱겁게 웃었다.

< 헤헤- 내가 항상 이래. 16년 동안이나 생각해 왔으면서 질리지도 않고 말야. >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누군지조차 개의치 않고 대교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녀석의 꾸밈없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뭐… 우리 대교가 원체 안드로메다급으로 이쁘다는 거야 모든 은하계의 미토콘드리아까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란 게 다들 자기 취향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1000년 동안이나 대대로 숭배를 받았다는 걸까…? 수라혈불이 종교적인 어떤 장치를 만들어 놓았던 걸까?

< 이봐, 덕방. 너희들 시조인 수라혈불이 우리 대교를 지키라 명하면서… 음… 그녀를 어떤 존재라고 했던 거야? >

< 어떤 존재라니? >

< 그 외… 나중에 세상을 멸망에서 구할 존재라던가 하는…… >

< 무슨 소리야? 대교님은 당신을 찾아 온 거잖아? 대교님이 나중에 세상을 구해? 그런 거였어? >

<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건 예를 든 거고… 음, 하여간 그럼 수라혈불이 대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뭐라고 한 건데? >

< 그 당시의 사마외도(邪魔外道) 최고의 여자 고수 마봉낭자(魔鳳娘子), 혹은 마중제일녀(魔仲第一女)라 불리던 여걸…! 그렇게 들었어. >

나름대로 거창하긴 하지만 역시 여신급과는 거리가 있는 소개였군.

< …그럼 수라문이 대대로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

< 간단히 말하면… ‘대교님이 진유준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우라. 수라문은 두 분 모두에게 그만한 은혜를 입었다.’ 그게 시조가 남긴 유지야. >

흐음. ‘두 분 모두에게 은혜를 입었다’라… 대교도 수라혈불에게 뭔가 큰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군. 우리 대교를 평가절하하기는 싫지만… 아무래도 오버해서 대교를 여신(女神)으로까지 숭배하는 건 이 녀석 하나가 아닐까 싶고, 다른 자들은 시조의 유지를 성실하게 받들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되었든, 사실이라면 무조건 너무나 고마운 자들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 역대 수라문의 장문들처럼 나 역시 벌써 수많은 악신, 악귀는 물론이고 온갖 귀엽고 아름다운 요정들을 만나기도 했었어. 하지만 역시… 그 무엇도 대교님의 영혼처럼 아름답지 못하고, 대교님처럼 지조 있지 못했어. >

< 대교를 칭찬해 주는 거야 나도 기쁘지만 넌 좀… 음. 그러고 보니 넌 계속 ‘대교’가 아니라 ‘대교의 영혼’을 언급하는구나. 영혼과 육체의 모습이 많이 다른 거냐? >

< …한 번도 못 봤어? 인간 영혼의 본래 모습을? >

< 그래. 나 자신이 툭하면 유체이탈… 아, 한 번은 진짜 죽었었으니까, 정말 영혼 상태까지 간 적도 있네. 하여간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인간 귀신도 가끔 본다. 하지만… 대부분 희미한 영상일 뿐이었어. >

< 그 정도의 경험을 하고도 제대로 개안(開眼)되지 않아서 잡귀들만 겨우 볼 정도인 거야? >

< …그래, 나 둔하다 짜샤. 그러니까 빨리 그 얘기나 해봐. 대교의 겉모습과 영혼의 모습이 그렇게 다르냐? >

< 당연하지! 대교님은 물론 육신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영혼이 지닌 고결한 광채는 그 차원이 틀리다구! >

< 고결한… 광채? >

< 그래. 모든 영혼들은 각각 자기만의 ‘빛’을 가지고 있어. 보통은 그걸 우리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희미하지만, 가끔은 대교님처럼 특별한 광채를 지닌 영혼도 있어. 게다가 대교님은… 그 신비한 아름다움은…… >

덕방 녀석, 또 대교교 신도로서의 뻑간 모드로 돌입하는군. 이거, 이거… 이 녀석 말을 듣고 있으려니, 나 진유준은 주제넘게 엄청 거물급 영혼의 소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죄책감(?)마저 드는군.

< …이봐. 그럼… 난 어때? 내 영혼… 말이야. >

나는 조심스럽게 묻고는 슬쩍 덕방의 눈치를 살폈다.

< 글쎄… 난 잘…… >

< 이 샤방탱탱구리야. 나는 무시하기냐? >

< …뭔지 몰라도 욕했지? >

< 알아서 생각하고, 빨리 품평이나 해 봐. >

< 쳇! 그 딴걸 목에 감고 다니는데 난들 진유준님의 영혼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어? >

아, 이런. 라혈꼬(라후의 혈족 꼬리)에 이런 부작용(?)이 있었군.

< 그 끔찍한 마족의 꼬리는 빨리 떼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천하의 나도 지금 그 것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라구. >

훗! 언제는 ‘마물 찌꺼기’ 운운하며 우습게 보더니… 음…? 그러고 보니… 명색이 대교를 숭배하는 도사씩이나 되는 녀석이 지척에 있는 대교의 기운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는데, 그것도 이 라혈꼬 때문이었나 보군.

< 덕방. 이건 내가 내 의지로 그들 삼형제와 맺은 약속의 증표야. 나 자신이 떼어 내고 싶지도 않아. >

< 쳇! 대교님은 생각 안하고 멋대로군. 라후의 혈족이 얼마나 무서운 마족

인 줄도 모르면서…… >

< …그럼 넌 너의 여신 옆에 약한 남자가 서있는 것이 좋으냐? >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교님은 당신을 찾아서…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강한 건 좋은데… 그렇지만 대교님이 많이 걱정하실 텐데…… >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자 또 중얼거림 모드로 들어간 덕방 녀석을 보고 있자니까, 실제 나이를 떠나서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었는데 말이다.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녀석이 대교에 대해서 나쁜 마음을 먹고 온 놈이 아닌 것만은 99.9%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녀석의 마음과는 별개로, 녀석이 지금의 대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이상… 녀석은 대교에게 해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 …이봐, 덕방. 네가 순수한 사람이란 건 알겠어.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건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야(나랑 대교만 빼고!). 내 생각에 넌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미화되고 왜곡된 기억 때문에…… >

나는 덕방에게 보내던 전음을 끝맺지 못했다.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뭐지…? 지금까지의 상황과 이 녀석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이 녀석이 특정 세력의 사주를 받았다던가… 여하간의 음모에 의해서 나와 대교를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덕방 녀석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그런 결론…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래도 뭔가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제기,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나는 예의 ‘불완전한 직관력’에 대한 분석도 더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몽몽과 자룡대주가 거의 동시에 같은 보고를 해 왔기 때문이었다.

[ 주인님! 대교님께서 소교님과 방을 나서려 하십니다. ]

< 천주! 대교님께서 소교 아가씨와 방에서 나서려 하십니다. >

이런, 하필 이 때.

< 자룡대주! 대교에게 잠시만 더 방에서 기다려 달라고 해. >

사실, 덕방에게 대교를 한 번 더 만나게 해 주어서 녀석의 기억을 교정시켜 주기만 하면 될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교는 지금 그녀 자신이 봉인된 기억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런 중에 갑자기 ‘영혼 가짜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공연히 대교의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 왜… 말을 하다가 말지? 그래도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가? >

덕방 녀석, 확실히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군.

< …아니. 그런데 미안하지만…… >

‘아무래도 지금은 널 대교와 만나게 해 줄 수 없어’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 주인님. 대교님께서 창가로 나오고 계십니다. ]

뭐? 나오지 못하게 하니까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건가? 이런… 커튼을 젖히고 말았다. 어? 아차. 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날 따라서 덕방도 창가의 대교를 발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대교가 보는데서 이 녀석을 강제로 보낼 수는 없고, 이 녀석 역시 지금 표정으로 보아 얌전히 돌아갈 것 같지도 않네.

응…? 덕방의 지금 저 표정은…… 조금 떨어진 거리이기는 해도,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확실하게 누군가를 식별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 거리에 있는 대교를 보는 덕방의 표정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의 그것이었다.

“이럴…수가. 설마… 설마 진짜… 진짜 대교님……?”

덕방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교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점차 걸음이 빨라지면서도 창가의 대교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녀석, 다시 보자마자 진짜를 알아 본 건가? 그렇다면 ‘가짜’ 같은 소리가 언급될 여지가 없는 최상의 진행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덕방은 집 앞에 도착해서 길가로부터 약간 안쪽에 위치한 2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의아해하며 내려다보는 대교를… 한참을 올려다보던 덕방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16년 동안의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한 덕방은 결국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 수라문의 12대 장문 덕방…! 마중제일녀(魔仲第一女), 대교님께 인사 올립니다!”

비록 떨림이 섞여 있으나 힘찬 인사소리는 2층의 대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아울러… 아득한 세월을 격해, 염원…하시던 분과의… 재회를 이룬 것을… 경하드립니다!”

이 자식… 계속 울고 있다.

“이는… 대교님의… 염원을 돕기 위해… 존재하던 수라문 역대 호법… 11인의… 11인의 기쁨이기도 하며……”

나와 대교… 우리의 일을 다른 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도와준데다… 그리고… 이토록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감격해 주니까… 기분이 참… 젠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저어……”

대교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수라문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덕방의 말에서 최소한 자신을 위한 어떤 문파라는 것을 감 잡은 것 같았다.

“일단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그리고 이리로 올라오세요.”

“아, 아닙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아, 제가 실례를 했군요. 제가 내려가겠어요. 뭐든 직접 감사드리고 싶어요.”

“가, 감사? 아닙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녀석… 왜 자꾸 자격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거지? 역대 장문들과 달리 자긴 아직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뜻인가?

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교가 창가에서 사라지자마자 덕방은 벌써 자리에 서 일어나 내 옆을 스쳐가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지만 그는 거칠게 내 손을 뿌리쳐 버렸다.

“날 잡지마! 진유준님이라도 용서 안 해!”

“뭐?”

이 녀석의 이런 반응은 명백히 오버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자책을 하는 거지?

나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덕방의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도저히 잡거나 뭐든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덕방은 미친 듯이 경공을 펼쳐 어둠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 은사마군! 누구든 미행시켜! 절대 충돌은 없게 하고! >

< 복명! >

대교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은 이미 덕방이 사라지고 은사도객(隱死島客) 중의 두 명이 그 뒤를 추적하기 시작한 후였다. 대교는 아무 곳에도 덕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그게, 너도 들었다시피, 일단은 너의 추종자…랄까? 그런 친구였어.”

“…그런데 왜 제가 내려오는 사이에 가버린 거죠? 마치 절 피한 것처럼 말이에요.”

“글세… 대교 너라기보다, 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 왠지 그런 거 같더군.”

대교는 갑작스런 상황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내 설명이 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살짝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

“미안. 얘기가 좀 길어. 사실 나도 오늘 처음 만난 녀석이라……”

어…? 가만? 처음…? …아! 그거였구나.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처음… 처음이었어. 덕방은, 그 녀석은 오늘 처음으로 대교와 만난 거였어! 치이- 어째서 그런 걸 계속 깨닫지 못했던 거지?

여기서 ‘처음 만났다’라는 건 물론 16년 전의 만남을 뺀 현재 상황을 의미한다. 나는 줄곧 덕방이 ‘주가혜로서의 대교를 만난 후에 가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라후의 혈족 꼬리 때문에 주술사로서의 영적인 능력이 제한되고 있을 때… 그런 상태에서도 녀석은 먼발치의 대교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런 녀석이 최근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도 그때는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 전에, 내가 그 동안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녀석은 주가혜라는 소녀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다면… 그 녀석은 어째서 지금까지 만나 본 적도 없는 대교를 가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지? 설마… 또 원판 녀석의 장난일까? 아니면 프리메이슨에서 직접…?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은가. 오늘 일 정도가 놈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만약 프리메이슨에서 나섰던 거라면 좀 더 완벽한 덫을 만들어서 덕방과 나를 싸우게 만들었을 거야. 제기… 그

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어째서 녀석은 대교를… 대교를…

우왁!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대교의 얼굴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몰두하고 있던 나에게 얼굴을 바싹 붙여왔던 대교가 안도했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 왜, 왜? 어, 아… 미안. 그러고 보니 내가 그만……”

“여전히 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군요.”

“미안해. 내가 잠시 좀… 음. 어쨌든 소교는?”

“아직 방에 있어요.”

“그럼 이제 내려오라고 해. 조금 전의 일은 가면서 얘기 해줄 게.”

“아뇨.”

응…? 거부하는 거 자체도 그렇지만, 고개를 젓는 대교의 표정이 웬지 심상치 않은 걸? 그리고 대교의 등 뒤에 서 있는 이들은 천의마군과 그의 의료팀이네? 아… 내가 피를 좀 흘리긴 했지?

“잠깐. 걱정하지 마. 심하게 다친 거 아냐. 지난번에 다친 상처가 조금 터졌을 뿐인데, 지혈도 이미 끝났고……”

나는 웃으며 손을 저어 보였지만, 대교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피가 묻은 손바닥을 펴 보였다.

“뭐야! 네가 다쳤어? 왜?”

놀란 내가 다그쳐 물었지만 대교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말아요. 당신 피예요.”

“내… 피?”

[ 주인님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알려 드리 지 않았지만, 그 사이 대교님은 주인님 옷에 배인 피를 만져서 확인하셨습니다. ]

내 머리 속의 순간 기억도 리와인드(?) 되고 있었다. 조금 전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싹대며 보고 있던 대교의 얼굴에서 화면이 멈추자, 거기에는 날 놀라게 하려는 장난기 대신, 너무나 걱정스러워하는… 그런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전… 당신이 선 채로 기절한 줄 알았어요.”

“에이~ 이 정도 조금 긁힌 상처에 이 진유준님이? 설마아.”

짐짓 웃으며 장난으로 넘기려 했지만, 아무래도 대교는 받아 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기… 긁힌 건 맞아. 긁은 놈이 마족 늑대라 조금 문제였기는 한데……”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당신 상처 치료가 우선 이에요. 그전에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겠어요. 알겠어요?”

나는 결국 얌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명령에 따릅지요. 아름다운 광채의 여신이시여…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생략.

잠시 후.

나는 하는 수 없이 천의마군을 따라서 대기 중이던 위장 엠블런스(겉보기에는 보통 벤) 중의 한 대에 올라탔다. 이런 정도야 언 듯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지하 무림 통합 후에는 대규모 출동이 많을 것을 예상하여 구양대주와 자룡대주의 주도하에 재빨리 구성된 지하 무림 통합군 체계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한다.

나는 주로 많은 상처가 터진 상의를 벗고 누우며 천의마군에게 말했다.

“내 자체 치유력 알지? 대충 빨리 끝내 줘.”

“…불복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천주. 좀 더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난 내가 뭔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금 뭐라고 했지?”

“대교님께서 철저한 치료 및 안정을 부탁하셨습니다.”

윽! 이 것들이 내가 공처가 타입이란 거 눈치 깠구나. 제기… 이래서야 앞으로 기강이 서지 않지.

“천의마군, 너어-!”

내가 약간의 살기를 담아 살벌하게 부르자, 천의마군이 흠칫 긴장하고 있었다.

“…잘 부탁해.”

“복명!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이 쒸~ 대교 녀석. 그냥 계속 딴대가서 기다리고 있지, 하필 이 타이밍에 또 들여다보고 있냐 그래.

다시 얼마 후.

대교와 소교를 데리고 사영을 찾아가는 예정 시간이 한참을 벗어나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터졌던 상처들은 이미 천의마군에 의해 전보다 더 완벽하게 꿰매어졌으니 이제는 전처럼 내력으로 상처를 보호하면 가벼운 칼질이나 경공 정도는 무난히 펼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팔에 링거 병 꽂고 중환자처럼(맞 나?) 누워 있어야 하다니… 쯧! 덕방, 그 자식이 아무리 짜증나게 굴어도 무리해서 월광절화결까지 쓸 것까지는 없었는데… 난 아직도 정신수양이 덜 되었나 보다. 오늘 일의 진행에서 중요한 점을 체크하지 못하고 놓친 것도 그렇고……

그렇게 나름대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갑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빨리 사영 쪽 일을 끝내고 덕방을 내가 직접 추적해서 만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 은사마군! 미행간 자들에게서는 아직 소식 없나? >

< 예, 천주! 죄송합니다. >

< 자룡대주. 내가 지시한 사항은? >

< 예, 천주. 현재 모두 진행 중입니다. 결과가 나오 는 데로 보고하겠습니다. >

으음. 결국 아직 별다른 상황 변화 없음이군.

< 몽몽…! 이럴 때는 정말 짜증난다. 이 딴 상처쯤 한 방에 고쳐 버리는 방법은 없는 걸까? >

[ 일부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

< 에효~ 그럼 얼마나 좋겠냐. …엥?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지? >

[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한 방에 고쳐 버리는’ 정도의 시스템은 불가능하나, 이론상 현 시대에 개발된 그 어떤 의료 시스템보다 최소한 4배 이상 치유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의 구축은 가능합니다. ]

오호~ 이 것 봐라?

[ 단, 이 것은 외상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근접한 기술의 소스는 모두 프리메이슨에서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 이런 제기. 그럼 넌 무슨 가능성을 말한 거냐? >

[ 자체적인 개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과 그의 데이터를 발견했습니다. ]

< 그래? 근데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

[ 그의 연구 데이터를 개인 노트북에서 발견한 것은 약 2시간 20분 전입니다. 또한, 이는 요몽과 패티의 개인 데이터 해킹 트레이닝 및 게임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일반적인 검색에서는 계속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

< 흐음… 요몽도 요몽이지만, 패티 고 녀석도 갈수록 더 쓸만해 지는 구만. >

[ 그쵸? 그쵸? 그쵸, 주인님? ]

< 후후- 그래, 요몽. 이번엔 정말 잘 했다. 가다가 돈 있음 빵 사먹어라. >

[ 우에- 또 그런 구석기 시대 유머를 하시다니! ]

< 어쩌겠냐. 군대 갔다 오면 다 이렇게 된다. >

[ …아! 그렇지! 주인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을 현실로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

< …돈 줘? 어따 쓰게? >

[ 아이- 참. 그게 아니구요! 저희에게 ‘미각 인식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구요! ]

< 미각 인식 프로그램……? >

[ 예! 꼭 좀 부탁드려요! 패티가 원하는데 몽몽 오빤 안 들어 줘요. ]

[ 아직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베타판이기 때문입니다. ]

< …뭔지는 몰라도, 몽몽이 반대하는 건 나도 허락하기 뭐한데…… >

[ 히잉~ 정말 그러시기예요? 맨날 몽몽 오빠만 편애하고… 몰라욧! ]

요몽이 감정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삐릉-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몽몽은 은발 소년 모드로 나타나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주인님. ]

< 훗~! 너에게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죄송합니다’는 거의 몽몽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했는데 말이다.

< 어쨌든, 몽몽. 이제 빨리… 그 뭐냐, 획기적인 의료 시스템 개발 및 확보나 연구해 보자구. >

갑갑하기만 했던 병실 생활은 그렇게 흥미로운 계획을 세우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모든 일은 몽몽의 개입을 모르게 진행해야 하니 결코 쉽지도 않고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다시 또 얼마 후.

드디어 우리가 탄 차는 사영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뒷골목의 3류 도수(刀手, 킬러)로 시작하여 나이 30에 삼합회의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조직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밑바닥 킬러들의 영웅. 대교의 아버지… 그리고 1000년 전에는 소교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인물, 사영.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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