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0-3화 : 사영회주(死影會主) 주성후.(3)
8-2. 사영회주(死影會主) 주성후.(3)
“내가 선두, 대교와 소교… 그리고 자룡대주를 중심으로 다른 병력들이 호법이 된다. 기본 대형은 그렇지만, 여의치 않을 시에는 각각 내가 지정하는 인물의 개별 호위로 바꾼다.”
나는 일단 대교와 소교를 바로 등뒤에 따라오게 하면서 천천히 황금 사자 거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불꽃놀이의 불꽃이 허공을 수놓고 있었고, 화려한 색색 깃발이며 장신구(?)를 매단 장대를 건장한 사내들이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란함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리 체크해 둔 사영회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까지 가려면 약 100미터 정도… 거기까지 이 난리도 아닌 곳을 통과해야 하는 거군.
<모두 총 같은 무기는 숨겨. 계속 긴장하고 적의 암습을 대비하도록. 단, 일반 시민이 다쳐서는 안돼.>
내가 생각해도 매우 껄쩍지근한 명령을 내리면서 나 역시 조금 더 긴장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저어……”
“괜찮아, 대교. 축제잖아. 천천히 구경해 주라구.”
…응? 막상 말을 하고 보니까… 그게 정답이었잖아? 내가 왜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축제를 인상 긁으며 지나야 하지…? 게다가 모처럼 대교와 함께 지내는 순간이 아닌가! 나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마음을 고쳐먹고, 걸음을 늦추며 대교를 손짓해 불렀다.
“어머?”
대교는 내가 대뜸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겨자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생각해 보니까, 대교. 아직 우리 변변한 데이트 한 번 못해봤잖아.”
“하, 하지만……”
“걱정하지마. 여기서 그리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다만……”
“다만?”
방금 지나간 장신구 좌판대의 청년이 슬며시 칼을 꺼내 들어서 내가 먼저 그 놈의 허리띠를 잘라 버렸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아냐. 하여튼 소교도 너무 의식하지 않기로 해. 저 아이도 빨리 현실을 인정해야 하잖아.”
“…그건, 알아요. 그래서 아까 차안에서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미안해서……”
“…소교에게도 곧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물론, 지금도 금동이라는 멋진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말야.”
솔직히, 너무 내 멋대로의 잔인한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처럼 어영부영하다가 소교가 더 오래 나를 마음속에 담아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축제.”
나는 슬며시 대교를 사자 탈춤 공연이 벌어지고 있는 쪽으로 돌리면서, 실수인 척 날아드는 금속 꼬챙이 같은 거 하나를 정글도로 쳐냈다. 던진 놈에게 정확히 돌아가도록.
“…대교도 처음이야?”
“아뇨. 어렸을 때 고향에서 가끔 봤어요. 아…! 저 탈춤 추는 사람, 저 아저씨 알아요! 저 아저씨가 항상 탈춤을 도맡아서……”
문득 말끝을 흐린 대교가 ‘무슨 일 있어요?’라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어깨에 두른 팔로 슬쩍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등뒤의 상황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방금 내 옆을 스치며 옆구리에 칼질을 하려고 했던 놈이 내게 혈도를 잡혀 비실대다가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 같은 거 말이다.
“아냐. 사람들이 꽤 많군.”
“예. 그리고 몰랐는데… 아버지가 고향 사람들도 많이 받아들였었나봐요.”
이 거리 전체를 사영이 조성했고 그가 제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건, 흔한 말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홍콩의 중국 반환 이전부터도 본토의 밀항자들을 많이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 역시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저건… 오뎅 튀김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먹는데……”
내가 길옆의 리어카(?) 위를 가리키자. 대교가 반색을 하고 기뻐했다.
“아! 저거 정말 맛있어요! 소교도 좋아했어요!”
대교가 뒤를 돌아보며 소교를 부르는 사이, 나는 리어카 밑의 독침(?) 발사기를 발끝으로 찍어서 부숴 버렸다. 그 다음에 오뎅 장사에게 웃음과 살기를 담아 ‘얌전히 장사나 해’라는 뜻을 전하고 있자니까, 소교가 금동이를 안고 다가왔다.
<…별일 없나, 은사마군?>
소교의 전담 보디가드는 은사마군이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천주. 다만… 사람들이 금동이와 소교 아가씨에게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어서 암습자를 체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후후- 그렇겠지. 황금사자 못지 않게 인기가 좋은 황금원숭이를 저렇게 예쁜 소녀가 안고 다니니 말야.>
<그렇습니다. 힘드시겠습니다.>
<뭐?>
<제가 비록 둔하나, 같은 여자인지라 소교 아가씨의 마음은 금방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큼. 흠… 암튼 끝까지 수고 해줘.>
<복명.>
갑자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와서 보니까, 대교와 소교였다. 오뎅 먹는 모습을 서로 놀리기도 하고 오뎅 꼬치로 칼싸움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허어- 소령이나 미령이라면 몰라도 저 두 녀석이 저렇게 천진하게 노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 걸…? …마녀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뒤늦게 느끼고 있는 걸까……?
<…저런 모습을 보면, 이러고 있는 것도 보람이 있군.>
나는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표창이며, 독침, 독가스(또는 독가루?) 등등의 공격을 암중에 막아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
은사마군은 제법 잘생겨 보이는 청년 하나의 팔을 꺽어 누르고 있으면서 반문했다.
<보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전, 제게 추근대는 남자를 격퇴 중일뿐입니다만……>
<…암튼.>
쯧. 사영, 이 양반… 아무래도 표적을 나 하나로 좁혔나 보군.
하긴, 어떤 이유에서든 무고한 자기 백성(?)들을 동원한 상태에서 공연히 다른 인물들까지 건드리면 일이 너무 커지지.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천음마군이었다. 그의 주위로는 현재 암습을 하려는 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조차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온몸으로 ‘나만 못 싸웠어! 나만! 제발 누구든 시비 좀 걸어 줘!’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살기등등하게 이글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하~ 이러는 거,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고마워요.”
실컷 군것질과 수다를 즐긴 대교가 오뎅 한 꼬치를 건네왔다.
흘끔 확인해 보니 소교도 은사마군에게 오뎅을 건네주며 ‘명부화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런 호칭을 난감해 하는 은사마군 명부화(冥府花)의 표정도 제법 귀여웠다.
[ 주인님. 주인님의 음식물에만 독극물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
오뎅을 막 입에 넣으려다 멈칫하니, 대교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 …즉시 해독 가능한 패턴으로 분석됩니다. ]
나는 결국 독극물 오뎅을 맛있게(?) 먹어 주며 힐끔 오뎅 장사를 보았다. 교활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는 내가 오뎅을 태연하게 먹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꺼내 오뎅 통 옆에 내려놓자 조금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대교와 함께 갈 길을 가면서… 왼손을 대교 어깨에 올리기 전에 그 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 꼬치를 오뎅 장사 쪽으로 날렸다.
[ …정확히 돈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습니다. 오뎅 장사의 현재 표정은…… ]
< 됐어, 몽몽. 아무려면 어때. 그보다… 나 요즘 전반적인 능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냐? >
[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생사금마도결 외에 따로 수련하시지 않았음에도 전반적인 응용 분야의 숙련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
< …이게 닥터 제이가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차츰 뭔가 느낌이 오긴 하는 것 같아. 뭐, 대부분 아직 멀었고… 특히 활은 갈 길이 까마득하지만 말이야. >
흑주와의 근접 전조차 활로 제압했던 고려무사 신정안…!
난 아까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고 그만 뒀지만 나도 계속 수련하면 그처럼 활의 고수도 될 수 있을까…? 솔직히 활이 굉장히 폼싸리 나는데… …음. 아서라, 아서 진유준. 한 우물 파는 것도 버벅대는 놈이 딴 우물은 무슨……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축제 구간이 끝나고 있었다. 사영회의 건물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자 점차 사람들 수가 줄어든다 싶더니 건물에서 십여 미터 정도의 거리가 되자, 그 곳부터는 씻은 듯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는 여전히 흥겨운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고, 따로 통제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었지…? 그런데도 여기부터는 다른 세계라는 느낌이 팍팍 전해질 정도로 완전히 독립된 분위기로군.
“…천주. 이 곳입니다.”
자룡대주가 앞으로 나서며 사영회 건물을 가리켰다.
“그런 거 같군. 근데, 자룡대주. 안색이 좋지 않네?”
“그, 그렇습니까? 부끄럽습니다.”
누구라도 축제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암습을 대비하며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건 힘들기 마련이었다. 자룡대주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다른 이들에 비해 실전을 직접 뛰는 경우가 적어서 더 긴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괜찮아. 본래 자룡대주가 정상이야. 특히 저 인간에 비하면.”
내가 턱짓한 대상, 천음마군을 보고 자룡대주는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천음마군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혼자 씩씩대며 ‘또! 못 싸웠어! 또! 니들이 사내냐? 왜 아무도 덤비지 않은 거야?’라는 표정으로 축제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교님. 대교님은 괜찮으십니까? 사실 대교님이 모르고 계셨을 뿐, 저 곳을 지나 올 때……”
“저도 알아요, 자룡대주님.”
“…예?”
“솔직히 잘은 모르지만, 뭔가 위험한 상황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불안해하면 애써 지켜 주시는 분들에게 죄송하잖아요.”
대교의 말에 자룡대주의 조금 풀어지던 안색이 다시 굳어졌다.
“자룡대주님께도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별, 말씀,을……”
자룡대주도 나름대로 대단하군. 상당한 강펀치를 맞고도 용케 동요를 감추고 있어.
흐음. 돌아서더니… 자신의 호위를 서줬던 전황마군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라고 뒤늦은 인사까지 하는 군. 전황마군이 영문도 모르고 의아해하는 건 그렇다 치고… 소교와 자룡대주도 참…! 어쩌다 나 같은 놈에게 콩깍지가 씌어서 대교와 경쟁하게 되었는지……
< 천주. >
< 음. 왜, 은사마군. >
왜냐고 물으며 돌아보았지만, 따로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사영회 건물 양옆의 좁은 골목과 반대편 건물들 사이의 골목들… 하여간 축제와는 반대편 거리의 골목이란 골목마다에서 하나 둘 젊은 양아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떼거리로 등장하는 건 그렇다 치겠는데… 모두가 손에 술병을 들고 있잖아?
하나 같이 젊은 녀석들이었고, 똑 같은 디자인의 맥주병을 들고 마시며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와 사영회 건물 사이로 그야말로 모여드는 수와 형태는 그야말로 꾸역꾸역이었다.
“…이곳은 사영회주 주성후님의 거리다.”
다 모였다 싶자, 리더인 듯한 제법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 한 말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퉁명스럽게 반문하자 놈이 조금 움찔했다.
“흥- 이 거리에서는 누구도 회주님을 귀찮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놈은 그렇게 선언하더니 손에 든 병의 남은 술을 꿀꺽 마셨다.
그리고는 빈 병을 자기 발치의 시멘트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 것이 신호인 듯, 수많은 젊은 양아치들이 일제히 병을 들어 자기 앞에 내던졌다. 수백 명이 동시에 병을 깨는 소리는 그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잔을 마셨다’는, 죽음을 각오한 비장함을 과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두들… 봤나? 아무래도 지금까지와 같은 민간인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대교와 소교를 뒤로 보내고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살인금지는 민간인에만 해당! 따라서… 이제부턴 각자 본래의 방식대로 행하라!”
나의 명령에 제일 먼저 내 옆으로 나선 것은 역시 천음마군이었다.
그러나 이제 확실하게 ‘싸움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의 정육점(?) 칼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흡족한 상황이라는 듯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과, 광호(狂虎)… 향주련(香酒聯)의 미친 호랑이다!”
사영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뒷골목의 신화인 천음마군을 알아보는 녀석이 있었다.
천음마군의 신분이 알려짐과 동시에 급격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 순간, 꽝! 한 발의 총성이 그 동요를 일시적으로 잠재웠다. 전황마군이었다.
“역시… 밤거리에서 총은 시끄럽군.”
전황마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총을 집어넣더니 허리춤에서 스릉- 시퍼렇게 날선 군용 대검을 꺼내들었다.
말이 대검이지 거의 내 정글도 수준이었다. 그의 전마부대원들 역시 거의 동시에 총을 뒤로 돌리고 전마부대 특유의 거대한 대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병 깨기 양아치들이 도발적이고 부릅뜬 눈을 하고 있다면 전황마군과 전마부대원들의 눈에는 감정이 없는 살인 기계의 냉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숙녀 분들이 보고 있어요.”
은사마군이었다. 그녀는 양손에 단검을 든,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촐한(?) 분위기로 천음마군에게 말했다.
“가급적 피가 많이 튀지 않게 처리해요.”
“…노력하지.”
뭘 어떻게 노력한다는 건지 몰라도 그는 웬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죽음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으니 우릴 통과해 봐라’고 뻗대는 젊은 양아치들에게 이 쪽도 화답한 것이다.
그거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