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1-2화 : 과거에 대한 올바른 자세.(2)
8-3. 과거에 대한 올바른 자세.(2)
사영의 태연을 가장한 목소리가 실내를 맴돌면서 모두를 굳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머니…는요?”
소교였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차분한 음성이었다. 사영은 상의 주머니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더니 소교 앞의 탁자위로 던졌다.
마치 암기를 쓰듯 정확하게 소교 앞에… 젠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소교는 사진을 집어들 생각도 못하고 조용히 사진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옆에 앉아있던 대교가 오히려 사진을 들어서 보면서 낮게 속삭이듯 누군가를 불렀다.
“어머니……!”
대교의 어머니…? 그럼 사영이 바람을 핀 건 아니었 나 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여옥… 나의 처제이기도 한 그녀는… 천성적으로 잔인하고… 욕심이 많았다. 너희들의 어머니… 여옥의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동생에게 채이고 뭐든 빼앗기기만 했다고 하지. 하지만… 그 것은 물건에 한정된 것이었어. 여옥도 그녀에게서 ‘사람들의 사랑’만은 빼앗지 못했다고 하지. 성장해서는… 주성후란 남자의 사랑까지도.”
사영, 현시대 이름 주성후는 추억이랄지 악몽이랄 지… 하여간 옛일을 떠올리는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소교를 바라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옥은 계속 깨닫지 못했어. 남자의 마음이란 때로 간특한 여자의 술수나 눈앞의 색기에 흔들리기도 하지 만 결국에는 너희들의 어머니처럼 순수하고 진실 된 영혼의 여자에게 회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하여… 미쳐…버렸 지.”
사영, 아니 주성후로부터 섬뜩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교가 아닌… 동생인 소교의 탄생까지 기다렸다가 ‘훔쳐’낸 것은… 아마도 자신의 경우를 대입시켜서 였겠지만… 어떤 경우였던…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어, 그 때.”
죽이지 못한 건 아마도……
“그 때… 너희들의 어머니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동생을 죽이면 자신도 죽겠다며 매달리지만 않았어 도……”
역시 그랬군. 대교와 소교의 어머니는 그런 성품이었어. 소교는 그런 분을 닮은 거야. 당연하지…! 소교가 마녀따위의, 그 딴 여자의 딸일 리가 없었던 거야.
“…여옥 이모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알겠어요.”
대교였다. 사영은 대교가 이런 얘기를 듣고도 여옥을 ‘이모’라 칭하는 것에 놀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왜 그 때 소교를… 제 동생을 되찾지 못한 거죠? 왜 지금까지 저희들에게 숨겨오신 거죠?”
대교의 목소리에 비로소 물기가 어리며 복받히는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그리 하자고… 호칭만 달라질 뿐… 여전히 소교는 우리 곁에 있을 테니…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역시 조금 떨리는 음성을 이어가던 사영이 불연 듯 핫-! 하고 웃었다.
“정말 바보 같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착한 여자였다. 동생을 생각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사영의 시선이 비로소 소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소교.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야… 우리는 너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너의 어머니는 단지 어릴 적부터 늘 함께 해 왔던 동생이 떠나지 않기를 바랐던 거야. 너로 인해서 여옥이 감화 될 수 있을 거라고… 너라는 천사가 가족을 지켜 줄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거야.”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사영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소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군요.”
소교는 천천히 대교에게서 사진을 건네 받았다. 그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사영이 있었고 그 옆에는 새 하얀… 정말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웃고 있는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뒤에는 고운 글씨체로 ‘소교, 이 두 번째 천사를 내려 주신 신께 감사하며…’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늘 이모… 어,머,니…는 어린 제게 그러셨군요. 혹시라도 헤어지게 되더라도… 기다리고 있겠다 고… 늘 같은 자리에서… 늘… 언제까지나……”
소교는 입을 깨물고는 겨우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어,머,니…! 돌아와도 계시지 않다니……”
끝내 소교는 사진 위로 무너져 버렸다. 대교도 그런 소교를 품에 안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이런 제기…! 내가 왜 이런 자리를 만들고, 왜 따라 온 거지? 빌어먹을… 내가 과거의 상황을 만든 것도 아닌데… 썅! 졸라 죄책감 들잖아, 이거!
[ …주인님. 자룡대주의 연락입니다. ]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는 무조건 반가운 마음으로 몽드폰을 들었다.
“…천주. 경비실의 백발 노인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사라…져?”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저희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영회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니 천주께서도 주의를……”
“…그건 아닐 거야. 일단 계속 대기해.”
나는 통화를 끊고 사영을 돌아보았다.
“들으셨습니까? 오삼숙의 아버지라는 분이 모습을 감췄다는군요.”
“신경 쓰지 말게. 집안 일이니.”
“설마… 여옥에게 보낸 겁니까?”
내 말에 소교의 끊임없이 흔들리던 어깨가 흠칫 멈추는 것 같았다.
“훗~! 여옥, 그 징그러운 마녀를 없앨 수 있었다면 벌써 예전에 했을 거야. 하지만……”
사기로 만든 잔이 눈으로 만든 것처럼 사영의 손아귀 안에서 와삭- 부서져 버렸다.
“그녀는… 저 아이들의 어머니는 여옥이 끝내 소교를 데리고 달아나 버린 10년 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본래 약했던 몸을 더 지탱하지 못하게 되었 지. 그러면서… 그렇게 떠나면서도 ‘동생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언제고 소교와 함께 돌아 올 거라고’… 그런 유언을 남겼어. 하핫-! 정말이지 못 말리는 여자였 어. 정작, 정작 남편인 나는… 이… 나는!
사영은 자신의 살기를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중심을 잃고 떨어져 내리듯 줄에서 내려섰다. 이미 특수기공(?)으로 술기운을 어느 정도 없앤 나는 가볍게 따라 내려설 수 있었지만, 사영은 어느 정도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술보다는 감정에 취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소교를 향해 말했다.
“얘야…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네 친 어머니의 복수를 계속 참아야 하느냐?”
‘복수’라는 말에 다시 소교의 몸이 움찔했다.
“아니면… 네가 하겠느냐?”
잔인한 질문이었다. 대교가 사영을 바라보고 고개를 젓는 것은 그에 대한 항의일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당사자인 소교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고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사진, 가져가도 되죠?”
나로서는 예상 밖의 태도였고,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표정이었다. 사영은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던지, 이를 악물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소교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영은 그녀를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게 해주세요. 여기서… 여기서 당신께… 아버지께 안기면… 그러면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아요. 지금의… 어머니에게.”
사영의 걸음이, 소교를 향해 들어올리던 팔이 그대로 굳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되어서… 전 정말… 기뻐요. 이건 진심이에요. 아,버,지……”
소교는 사진 속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나 닮은 미소와 함께 꾸벅 상체를 숙여 사영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려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대교가 먼저 그녀의 뒤를 쫓아 움직였고, 금동이는 그제야 창문 위에서 내 앞으로 뛰어내려왔다. 금동이 녀석은 소교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자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짜식. 나와의 의리도 좋지만……”
나는 가벼운 경례를 할 때처럼 두 손가락을 세워 이마 옆에 댄 다음 그걸 내려서 가슴에 대 보였다. 천년 전의 연옥도에서 나와 천우신, 금동이… 우리 셋이 만든 수신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즐겨 썼던 수신호였다. 의미는… ‘너의 마음이 시키는 데로 행하라’.
끼이이~
안타까워하는 음색으로 한 번 울어 보인 금동이는 내가 내민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한 번 탁 치고는 비로소 후다닥 소교의 뒤를 쫓아 달려나갔다.
…쯧.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 때고 찾아가서 보면 되는데 공연히 분위기를 잡았다는 생각도 드는 군. 물론… 앞으로도 소교가 마녀와 함께 있는 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사영이었다. 그는 소교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새로운 술병을 꺼내들고 통째로 벌컥벌컥 마신 후였다.
“아내와 너무나… 지나치게 닮았어, 저 녀석은.”
“…그렇군요. 대교처럼 당신과 적당히 섞였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내 말에 사영이 순간적으로 미묘한 동요를 드러냈다. 평소의 그라면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게 힘든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마시던 술병을 던졌다. 나는 그걸 가볍게 받아든 다음, 몽드폰을 들었다.
“자룡대주. 곧 소교와 대교가 내려갈 거다. 아마… 대교는 이 곳에 남겠지만, 소교는 그대로 자신의 집에 돌아 갈 거야. 전황마군을 호위로 함께 가게 해.”
명령을 마친 후에야 나는 사영이 던져 준 술병을 기울여 한 모금을 마셨다.
“크음. 이건 좀 독한데…? 흠. 어쨌든, 아직 뭔가 더 숨기는 것이 있죠?”
“…그걸 듣기 위해 아이들을 따라가지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자네의 입을 막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불가능합니다.”
나의 자신에 찬 말에 사영은 비죽이 웃었다.
“평소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자네는 지금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는 것 같군.”
역시 눈치하나는 죽이는 사람이군. 하지만…
“그래도 하지 마십쇼. 역시 불가능합니다.”
사영의 살기가 물씬 방안을 적시며 당장이라도 살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술병과 고개를 함께 뒤로 기울여 한 모금의 술을 더 마실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술병을 사영에게 던져 주었고, 그는 그 것을 받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꼭 들어야겠나?”
“그렇습니다.”
“대교… 그 아이가 상처받는다 해도……?”
“…과거를 두려워하며 도망만 치고 살아서는 결코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를 얻을 수 없다. 대교가 한 말입니다. 저도… 과거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살기를 거둔 사영은 다시 독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인 끝에야 입을 열었다.
“16년 전… 그 때 본토의 우리 마을은… 원인도 모를 돌림병에 의해… 거의 전멸될 위기에 처했었다네. 중국 당국은 모른 체하고… 나는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그저 죽어 가는 아내를 무기력하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네. 신혼의 단꿈이… 그대로 악몽이 되었던 그 때… ‘그들’이 왔지.”
“…DP였습니까?”
“알고… 있었는가?”
젠… 장! 설마, 설마 했는데…
“말씀… 계속하십시오. 저는 다만 추측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마을 사람들과 아내의 병을 치유해 주는 조건으로 어떤 조건을 걸었는지, 그 것도 추측할 수 있겠는가?”
“…당신과 부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넘기라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들이 만들…겠다 고…”
“…후자일세.”
제기…! 원판이 다 헛소리를 했어도 그 것만은… ‘사영과 대교를 우연히 찾았다’는 말만큼은 사실이기를 바랬는데…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군. 그들을 이끌던 책임자의 이름… 분명히 그들 사이에서 ‘닥터 제이’라고 불리웠지.”
뭐? 원판이 아니라, 닥터 제이였다고?
“원판. 아니 진하운! DP의 화이트 크라우드! 그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화이트 크라우드…? 그 역시 오기는 했지. 대교가 태어나고 1년이 조금 지난 후에 말일세.”
그럼 원판의 말은 사실…? 자신이 한 짓을 숨긴 것은 닥터 제이…?! 이- 빌어먹을 인간!
“대교를 그들이… 닥터 제이가 그냥……”
차마 그가 만들었다는 말이 다시 입 밖으로 나와 주지가 않았다.
“그냥 데려온 겁니까? 아니면… 그가 관여하긴 했지만 결국 당신과 부인의……”
“…솔직히 말하자면 모르겠네. 그는 분명히 우리의 유전자가 필요하다며 샘플을 채취해 갔지. 하지만… 우리로서는 어찌 알겠는가 그가 아내의 몸에 잉태시킨 생명에 과연 우리의 유전자가 쓰여졌는지 어쩐지 말이야.”
“…잠시…만요. 잠깐 생각을 좀……”
나는 막연하게 양해를 구했지만,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눈을 감았다.
< 몽몽…! 지금 닥터 제이와 연결되겠냐? >
[ 그가 지정한 시간대별 회선이 하나 있습니다. 연결을 시도하겠습니다. ]
닥터 제이의 음성이 들려오기까지 몇 초간의 간격이 군대 신검 판정 결과를 기다릴 때만큼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음… 유준군인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 웬일…일 것 같습니까? >
“프리메이슨에선 아직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아, 이런… 자네, 사영회에 갔는가?”
< 그렇습니다. >
“…그 얘길 다 들었겠군.”
< 그렇습니다. >
“…공연히 자네와 대교 양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았네. 게다가 냉정하게 보면 일반적인 출생과 그리 다르지 않아. 단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식이 아니었을 뿐… 분명히 부모의 유전자가 합쳐져서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말야.”
< 과학자들은 차암- 좋겠습니다. 그렇게 냉정하게 인간을 풀이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
“…불쾌하게 생각할 거라는 건 알아. 하지만… 난 단지 내가 그들 부부에게서 지금의 대교 양이 태어날 가능성을 조금 더 높였을 뿐이라고 생각하네.”
< 정말… 그런 것뿐입니까? >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단일 유전자의 복제인 하 은이를 탄생시키기 전의… ‘사전 임상실험’이라고 할 수 있었지.”
< 그럴 거 같았습니다. 시기가 비슷해서. >
“날 원망하고 있는 건가?”
< 아뇨. 어떤 식으로든… 대교가 태어나게 해 줬으니까요. >
“전에도 말했듯… 난 대교 양의 탄생에 관여했는지 는 몰라도, 그럼에도 그녀의 복제에는 끝내 실패했네. 그 이유를 일반적인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 어쩌면 그녀의 영혼이 이미 필요한 육체를 얻었으므로 더 이상의 육체는 필요하지가 않았던 거였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복제하려던 육체 역시 존재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구성되지 않았던 거였고 말야. 그렇다면 결국… 내가 그녀를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신(神), 혹은 그녀의 영혼이 필요에 의해 내 손을 빌렸을 뿐인 건지도 모르지.”
< …나름대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얘기로군요. …끊겠습니다. >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떠오르지가 않아서 일단 통화를 끝냈다. 눈을 뜨자, 사영은 내가 있다는 것도, 조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사이 다시 줄에 올라가 누워 버렸군. 내게 등을 보인 채라는 건… 이제 더 할 말이 없으며 하고 싶지 도 않다는 뜻인가?
“…가겠습니다.”
대답이 없군.
“지금 얘기, 대교에게 다 해 줄 겁니다.”
역시 대답도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다.
“다음에 다시 놀러 오죠.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술은 검남춘(劍南春)입니다, 장인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