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36화 : 이길 수 없는 상대

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4부 – 36화 : 이길 수 없는 상대


6 이길 수 없는 상대

케인의 정체에 대한 힌트…………! 그것도 결정적인 힌트’라고…………? 그런 게 대체 언제 주어졌다는 거지?

나는 급하게 머릿속을 검색해 봤으나, 기껏해야 ‘프로 레슬러 케인’의 공포 영화 속 살인마 같은 이미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아니, 아니 이름이야 어차피 가명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나에게 적대적인 자들이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었던 자들 중에서 힌트가 될 법한 행동을 보였던 자가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따져 봐야 할… 려고 해도 그 많은 자들을 일일이 기억해내는 건 좀… 으음… 그렇다곤 해도 당장 떠 오르는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진짜 아니야!

내가 먼저 떠올린 인물들은 수라문(修羅門)의 후계자 ‘덕방’ 녀석과 닥터 제이가 키운 내 짝퉁 ‘조담놈’ 이었다. 둘 다 나에게 나름 원한이 있으며, 덕방의 요상한 주술과 조담놈의 넘치는 내공을 이용하면 웬만한 사람들 눈에 ‘마법’으로 보일만한 일들을 하기에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푼수떼기들이 지금까지 그런 비밀을 숨겨왔을 리가… 훗. 그럴 리가 없지. 만약 그 녀석들이 내 앞에서 그렇게 감쪽같이 연극을 했던 거라면 정말 엄청난 연기파 악당… 일 리가 없어! 내 판단이 틀렸다면 손에 장을 지지…면 뜨겁거나 말거나! 그럴 리가 없데두? 에이 쒸! 대체 내 가 누구의 어떤 뭘 놓쳤다는. 건, 또 뭐 하러 고민하고 있는 거냐, 진유준!

“…쳇. 잠시나마 날 혼란스럽게 하다니. 제법이네? 내 성격에 대 해서 꽤 연구를 하긴 한 모양이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힌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힌트고 이해고 나발이고, 뭐 하러 지금 그런 짓을 해야 하지? 이제 곧 올라가서 널 때려잡으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인데 말야.”

“후후. 과연・・・ ‘그 남자’ 말대로의 스타일이로군. 지극히 거칠면서도 핵심을 곧바로 파고드는 감각이 뛰어나. 다만 문제는, 아무리 그래도 결국 ‘‘내 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점이겠지만………….”

“됐네, 이 사람아. 다정한 대화는 좀 있다가 직접 마주보고 하자구.”

난 그렇게 선언했으나, 말하는 한편으로 바닥에 대충 퍼질러 앉았다.

“무슨…….”

“무슨 생각이나마나, 난 좀 쉬었다 갈 거야. 인질은… 아, 몰라. 그 남자도 명색이 특수부대 용사니까 얼마간은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 8미터짜리 백상어와 싸우든 어쩌든 버티고 있으라는… 당사자 데릭 아저씨에게는 다소(?) 미안한 발언인 것도 같긴 하네. 하지만 난 방금 짝뽀와의 싸움에서 소모한 체력이 꽤 커서, 잠시라도 쉬어야 인질 구출 작전의 성공률이 높아질 거라구. 게다가 인질 협상이라는건 납치범의 요구 에 끌려가기만 해선 안 되는 법이지. 암.

“…좋아. 기다려주지.”

호흐~ 거 봐. 배짱으로 나가니까 아쉬운 쪽에서 양보를 해주잖아?

“당신이란 남자, 솔직히 그리 친하지도 않은 중년 남자를 구하러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별로 흥이 안나는 건 아닌가?”

“…아니, 뭐, 꼭 그래서는 아니고… 어~ 거기, 데릭 허버트! 당신도 혹시 듣고 있다면 오해하지 말아줘. 난 그런 식으로 인질 차별하는 사람이 아 냐. 전투 간의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신도 알고 있겠지?”

…으음. ‘진유준님 말씀이 전부 옳습니다. 믿고 진득허니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이해해주는 대답이 들려왔다.고 멋대로 생각해도 될까 모르겠네. 실제론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걸 보면, 이미 상어 수족관으로 끌려갔거나 그렇지는 않았어도 좀 전에 목을 졸려서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건지

“…미아 T 샌더스’.”

응?

마법사 케인이 불쑥 입에 올린 건 언뜻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으나, 확실하게 누굴 말하는 건지는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벨 T 샌더스”

어… 그게 그러니까… 샌더스? 엑! 생각났다! 윈드의 쌍둥이 동생들!

“그 사랑스런 두 명의 소녀까지 인질이라면 그래도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이런 제기! 쌍둥이 꽃순이들은 지금 백화점에 있잖아! 근데 갑자기 어떻게 케인의 인질이 되었다는 거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였음에도 난 나도 모르게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데릭 허버트… 미안.

“몽몽.”

「…현재까지 백화점 상황에는 특별한 이상 현상이 없었으나, 즉시 재점검하겠습니다.」

뭐야, 이거. 저놈의 가벼운 말장난에 지나치게 반응해버린 건가? 아니면……….

나는 케인을 새삼 지그시 응시하며 기색을 살펴보았다. 사실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있다고는 해도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니고, 얼굴이 전부 안 보일 리가 없었다. 실제로는 눈 아래까지 어지간히 보이고 있는 중이다.

…쳇. 여전히 놈의 속내라던가 뭐든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아. 역시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상황이어서 그런가…………..? 여자처럼 붉은 입술에 어울리 지 않게 칙칙하고 거칠어 보이는 피부에 각진 얼굴 형태하며. 지나치게 무표정한 얼굴이 마치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외에는……………

「…프리온 감염자들에 의한 백화점 침투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백화점 잔류자들의 인적 구성이 공격진에 비해 현격히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 다. 그러나 현재 잔류자들을 이끌고 있는 ‘켄터키C샌더스’의 지휘 능력과 잔류자들의 적극적인 협조 패턴으로 보아 프리온 감염자의 실내 침투 허 용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잔류자들의 적극적인 협조’ 라…………..! 그 어리버리 주민들도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또한 잔류자 중에는 평균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코드명 ‘막시무스’ 가 있습니다. 그는 약34분 전에 자신의 수하들을 백화점으로 불러들였으므로 원형 프리온 감염자, 가칭 ‘MB좀비’ 및 기타 위험에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된 상황입니다.」

그래. 그런 걸 바라고 막시무스를 데려오지 않은 거였어. 이 섬의 도둑 노예들은 카포에라의 막시무스처럼 싸움 노예 출신들이 대다수라 상당한 전 력이 될 수 있거든. 물론 케인이 데릭의 말처럼 정말 마법으로 늑대인간 같은 것을 부를 수가 있어서 그런 초강력 괴물들을 보냈다면 막시무스들 도 막아내기 어렵겠지.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수상한 괴물들이 백화점에 접근하는 걸 몽몽과 요몽 남매가 아직까지 모를 리가 없는건데…………… “…이봐, 케인 인질로 협박을 하려면 인질을 확보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게 먼저 아닐까?”

“당신의 유능한 해커 부하에게 물어보시오. 화개장터 백화점이 언제부터 그들에 의해 철저하게 ‘폐쇄’ 되었는지 말이오.”

“…라는데, 요몽.”

내가 전달(?)하자마자, 케인이 보이고 있는 모니터 부근의 다른 모니터가 켜지며 요몽이 등장했다.

“어~ 그건 당연히, 제가 시스템을 장악함과 동시에 그랬지요. 확보한 거점을 적의 정보망으로부터 차단하는 거야, 기본중의 기본입지요!”

“후후훗. 그런데도 내가 지금 백화점 안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지?”

이런… 제기! 요몽이 백화점을 장악하기 전부터 뭔가를 내부에 침투시켜 두었다는 거냐?

“당신과 당신 수하들이 떠난 후, 남은 자들도 비교적 조직적으로 움직이더군. 오랜 시간정부의 우민화정책에 길들여진 자들치고는 훌륭한 편이었 지만………….”

케인은 켄터키 할배 가족과 막시무스파(?)를 중심으로 한 잔류자들의 움직임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요몽은 즉시 녹화된 화면으로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해주었다.

・젠장. 정말 다 알고 있어. 근데, 만약 나와 몽몽이 백화점에 있을 때부터 케인의 수작질이 진행 중이었다면 우리가 몰랐을 리 없겠지……? 그렇 다면 우리가 떠난후 막시무스가 자기 수하들을 불러들였을 때………? 막시무스파 싸움 노예들 중에 케인의 부히가 섞여 있다는 얘기…………? 평소처럼 입속말로 몽몽에게 얘길 해도 보안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아직 적의 능력을 전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간만에 전음을………….

으으음.

-몽몽. 켄터키 할배에게만 이 사실을 몰래 알려 줄 방법이 없겠냐?

「켄터키 씨의 지적 능력을 감안한 의사 전달 방식을 검토하겠…………」

“이쯤에서 말해두지만, 백화점의 주민들에게 섣불리 뭔가 알리려 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우쒸! 비루 내공을 허비하며 전음까지 사용했는데, 곧바로 초를 지네.

“잠시 대기, 몽몽.”

케인은 큼직한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 마법 중의 하나는 특정인과의 ‘정신 감응’ 및 ‘세뇌’………! 그러니.. 평소에는 본래의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라도 내 명령에 의해 ‘살인 마’가 될 인물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요.”

텔레파시 능력지…………? 에레보스의 어린 ‘초롱이’ …는 말도 안 되고, 헬 게이트와 함께 나타났던 ‘환영의 천사’인지 뭔지 하던 그 재수 털리는 여 자…………? 설마 그 여자가 저 케인・・・・・・…?

“만약 그래도 문제의 인물을 찾으려고 든다면…. 당연히 난 한발 먼저 그자에게 잔인한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가엾은 소녀들을 참살하라’고 말이야.”

…저 빌어먹을 쌍쌍바 같은 태도는 확실히 환영의 천사 스타일인 것 같고… 에레보스 멤버쯤 되면 여자가 남자인 척 가장하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 이 아닐 것 같기는 한데…으음…………! 그치만이 추리의(?) 문제는, 아까 원판이 분명 ‘에레보스의 임무 수행 유보’ 라고 선언했다는 점이야. 물론 프리메이슨이 거짓말로 내 뒤통수를 치려고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연 프리메이슨에서 간단히 말 바꾸기를 할 만큼・・・ 그렇게 케인이 ‘100퍼센트 확실한 카드일 수 있을까…………? 바로 얼마 전, 나에게 죽기 직전에 어린 초룡 이 덕분으로 목숨을 건졌었던 환영의 천사를 그렇게까지 믿는다고………?

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결국 쩝~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젠장. 또 괜히 머리 굴리느라 에너지 낭비했네.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난 정글도를 들어 모니터 속의 케인을 겨냥하며 말을 이었다.

“결국 내가 쉬는 꼴을 못 보겠다 이거지? 좋아……………! 나도 더는 못 참겠어. 널 당장 때려잡고 정체를 밝혀주겠어!”

“후후, 그게 가능하다면야…………….”

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16층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니터 속의 케인은 몇 가지를 덧붙여 말했다.

“인질 중에서 데릭 허버트에게 주어진 제한 시간은 1시간. 미아, 벨 쌍둥이 소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쯧. 결국 케인도 불쌍한 데릭 아저씨를 차별하는구먼. 어쨌거나 진짜 데릭을 무시하고 꽃순이들만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제한 시간은 1 시간이란 얘기로군. 남은 27층을 1시간 안에 돌파하려면 아예 첨부터………………

“또한. 지금은 보이지 않고 있는 소녀와 괴력의 형제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도록…………! 그들로 하여금 천장을 부수게 하며 온다거나 하는 편법은 허용하지 않아. 내가 배치한 자들을 당신이 직접 상대하며 올라와야 인질을 해치지 않겠어.”

쓰펄! 내 잔머리를 일찌감치 차단하다니! 이건 분명 나와 처음으로 싸워보는 자가 아니라는 얘기… 아, 아니, 어쩌면… 원판……? 그래. 짝뽀도 그 렇고, 저 케인에게도 원판놈이 미리 코치를 해줬던 것이 분명해! 그 빌어먹을 노무시키가 날 고생시키려고 아주 그냥…………!

불현듯 원판의 얄밉게 쪼개는 얼굴을 떠올리자, 안 그래도 상승 중이던 분노게이지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케인! 조건은 이제 다 말한 거냐? 앞으로도 니가 불리해질 것 같을 때마다 조건을 추가하는 치졸하고 야비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더 이상은……….”

“진짜지? 금방 ‘오해였다느니. ‘소통의 부재’니 하면서 말 바꾸기 없기!”

“…오케이.”

“사람이 자꾸 이랬다 저랬다하면 응꼬에 털 난다. 알아서 해.”

뭔가 상당히 애매한 협박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암튼!

“몽몽. 너의 서포트 기능, 모든 제한 해제.”

「옛썰. 기다렸습니다, 주인님.」

그래. 나의 진짜 강력한 파트너는 따로 있지.

잠시 후.

나는 베일에 싸인 17층의 출입구 앞에 섰다. ‘베일에 싸인 공간은 16층부터였는데, 그건 놈들이 15층 위로 일찌감치 모든 전자 시스템의 라인을 물리적으로 차단해서 몽몽도 지금까지 내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식 문서에는 어이없게도… ‘창고’라고 나와 있다지? 물론 이 섬의 모든 주민들이 당분간 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재난 구호용 비상식량 및 물품을 보관 중이라는…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한 명분을 내세웠다고는 하지. 그치만, 그런 엄청난 양의 비상식 랑을 고층 건물에 몰 아서 보관한다는 말을 냉큼 믿어버렸다는 주민들도 참………….

「3초 후, 출입문을 열겠습니다. 가칭 ‘케인의 좀비 부대’와의 전투를 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좀비 부대라……………! 17층에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었던 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군. 하지만 몽몽이 굳이 ‘케인의 좀비’라고 하는 걸 보니까, 역시 건물 밖의 프리온 감염 좀비들과는 종류가 다른 좀비들인 모양이지?

키이이잉~

엥? 뭐시여.

차단되어 있던 전자식 문이 열리며 드러나기 시작한 17층의 실체가 나를 잠시 ‘얼음’ 상태가 되게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의 좀비 부대 떼거지들이 실제 군대처럼 정렬해 있어. 대충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의 좀비들이 전부 눈을 감은 채 서서 움직 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 제법 그로테스크 하긴 하지만… 당장은 그보다…………! 여기, 이 17층… 이게 뭐니?

이곳은 16층처럼 웬만한 축구장 넓이의 공간이 통합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위로도 5층 아니 최소한 6개 층 정도를 합쳐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거대 공간에 조성되어 있는 것은…………….

웬 ‘아름다운 꽃동산……? 얼씨구.. 동산 위에 태양 디자인의 모니터까지 있네. 짝뽀나 케인이 꼬꼬마 텔레토비 팬이었나?

텔레토비스러운 건 중앙의 동산뿐이고 주변은 좀 더 화사한 꽃과 나무가 무성한 모습이며 작은 개울에 맑은 물까지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기준이 뭐가 되었든 결국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텔레토비 동산의 좀비토비들이라… 거, 취미 한번 참.”

「주인님!」

동동의 경고는 좀비토비들이 일제히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계속 기계 로봇이나 마네킹처럼 서 있기만 하던 좀비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 한 명에 게 집중되는 모습은, 은근히 섬뜩한 광경이었다.

「1차 스캔 결과, 모든 인체는 비공인 에너지체. 즉, 최근 임시 분류 중인 ‘미확인 공간’을 기원으로 한 에너지 체의 작용에 의해 ……………」

쯧. 몽몽의 보고를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군. 내 영안(靈眼)인지 뭔지도 작동(?)했는지, 저 좀비토비들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저 좀비토비들은 정말로 케인의 마법에 의해서 소환된 마계의 뭔가가 시체에 빙의 된… 그런 주술적 형태의 좀비들인 건가…..?

「…또한, 해당 좀비들은 MB좀비급의 스피드와 B급 생체 강화 전사들의 내구력과 재생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세한 수치 는…………….」

몽몽의 보고에 끝까지 귀기울일 틈도 없이, 좀비토비들이 먼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두 팔을 들어 레슬링의 파이팅 포즈 비슷한 자 세를 취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과 위압감은 도무지 좀비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젠장. 어째서 전부 동양계 인간으로 좀비를 만든 거야? 만약 노예들을 이용한 거라면 함부로 해치기가 좀…………

「주인님.」

응?


ᅳ출신지, 일본. 극렬 우익 조직의 일원. 상습적인 재일 한인 상점 테러, 약탈로 사상자 다수 발생. 한인 학생 폭행, 추행 등의 여죄를 수사 받던 중 도주하였으며, 해당 수사기관의 도주 묵인을 의심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입증되진 않았으며………….


정면의 좀비 머리 위에… 아니 다른 좀비들의 머리 위에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몽몽. 이건・・・・・・ “

「’이주민 관리용 데이터’의 사진과 비교 확인된 내용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스윽-

단 한 번 정글도가 허공을 가로로 그은 후, 정면으로 몰려오던 좀비토비들의 1개 소대쯤이 멈칫했다. 이어 그 좀비토비들의 머리가 후두둑~ 잘 익 은 과일나무의 열매처럼 떨어져 내렸다.

난 가급적 일본인들에게 내가 먼저 화를 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서걱! 서걱! 서걱!

어쩌누. 내 몸이 자동으로 이렇게…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놈들을 썰어대고 있네, 그려.

욱하는 마음에 잠시 몸을 내맡겼더니, 순식간에 좀비토비들의 조각난 신체가 사방에 떨구어졌다. 불과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나의 사방 수십 미터 내로 서 있을 수 있는 좀비토비가 없었다. 아직 남은 좀비토비들의 숫자가 몇 배나 더 많았지만, 놈들은 마치 공포에 질린 것처럼 주춤거리며 달려들 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난 얼마 전에 천지파멸식으로 사고 쳐서 조만간(?) 일본을 통째로 침몰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만은 그들에게 화내기 어려운 처지가 된 셈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놈들까지 용서해줄 필요는 없지. 암.

“뭐하니, 얘들아.”

나는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좀비토비들에게 손을 내밀며 손을 까딱까딱해 보였다.

“컴온! 아, 아니지. 몸은 일제라니까. 오라이~ 오라잇~.”

알아듣게(?) 얘기해도 안 오면 또 내가 먼저… 어, 잠깐? 어째 갑자기 전부 눈빛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은………….

좀비토비들의 두 눈에서 기묘한 광채가 발산되기 시작했으며 그와 동시에 다른 기묘한 위기감이 사방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인님! 적들의 마력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또한, 활동 중지 상태의 좀비들도 다시 마력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뭐? 머리가 잘리거나 파괴된 놈들도 죽지 않는단 말야?

재빨리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정말 좀비토비들의 잘려진 신체가 스르륵~ 움직여서 재조립(?) 되고 있었다. ‘재생력’ 얘긴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웃!

“크악!”

바로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온 괴성의 정체를 확인해 볼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물러서며 정글도를 위로 그어 올렸다. 쓰걱-퍼퍽!

기습을 노렸던 좀비토비 하나가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쳐 박혔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사방의 다른 좀비토비들도 연이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지지 않고 마주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좀비 따위가..

칵!

아무리 빨라지고………….

쓰칵!썩!

강해져 봤자……….

서컥! 컥! 서걱!

…라지만………….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갈수록 더 기계적이고 실용적인 칼질을 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워낙 많은 숫자였던 데다, 상식적인(?) 좀비라면 이미 재기 불능이 되었을 놈들도 계속 부활해서 다시 덤벼들고 있으니… 빌어먹을. ·! 대체 인질들을 언제 구하러 갈 수 있을지 큭!

쐐액!

눈앞으로 맹렬한 바람이 몰아쳐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좀비토비의 손톱, 아니 손 자체가 땅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스피드만큼이나 파워도 일반 좀비들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한순간만 늦게 피했어도… 윽?

크와아-

어느 사이, 바로 양옆으로 엄습한 좀비들의 입이 일제히 벌어지고 있었다. 리듬이 작게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콱! 콰직!

고개를 뒤로 젖히는 순간, 바로 코앞에서 이빨들이 강철의 덫처럼 맹렬하게 닫혔다.

이번에도 한 끝 차이로 겨우 겨우 피했…윽? 이, 이건?

물어뜯으려고 했던 놈들은 피한 직후에 다급하게 쳐서 밀어냈으나,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더 많은 숫자가 밀려들고 있었다. 으아악~ 이것들이 진짜!

나는 미친 듯이 전신을 회전시키며 정글도를 휘둘렀다.

스와아아아아앗~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심도가 사방으로 둥글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수면 위로 원형의 물결이 퍼 지는 형상과 같았으나, 그와 다른 점은 물결의 처음과 끝이 똑같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심도의 물결이 지나간 공간은 일견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멀쩡하게 보이던 좀비토비, 아니 모든 것들이 일제히 양단되어 무너져 내렸다.

마치 큐브라는 공포 영화의 오프닝 씬을 보는 것처럼 섬뜩한⋯ 으음.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완성도 높은 심도는 처음인 것 같은 게 아니라… 처음 맞네?

「…주인님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이후 같은 수준의 심도 구현에는 방향 선택에 신중을 기하시길 권고합니다. 조금 전에는 코드명 소냐 일행이 한층 아래에 대기 중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에고, 그건 정말 다행이었어. 그렇다고는 해도… ‘이후 같은 수준의 심도’라고……………? 물론 또 쓸 수 있다면 정말 주의해야겠지만………….

위태로운 전투 도중임에도 난 몽몽의 긴 축하와 권고를 듣고, 또 반성(?)까지 할 여유가 있었다. 그건 운 좋게 양단되지 않은 좀비토비들까지 업그 레이드판 심도의 엄청난 위력에 질렸는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공 만땅의 상태에서 펼친 월광절화결(月光切花・・・ 아니, ‘절단력만큼은 그 이상인 것 같아. 어쩌면……………

「건물 수평면의 약 75.2퍼센트까지 절단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절단각도가 90도에 가까우며, 특수 공법으로 건축된 건물이므로 추가적인 충 격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붕괴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운동장처럼 넓은 건물의 75.2퍼센트…? 맙소사! 내가 요즘 계속 추구하고 있는 바가 ‘보다 강하게, 보다 멀리, 보다 가늘게’라고 하지만, 그래 도 그렇지… 설마 현재의 비루 내공으로 이 정도까지 가능할 줄은……

“우이쒸! 까딱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난 결국 애꿎은(?) 좀비토비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특히 조금 전에 나의 코앞에서 이빨질(?)을 했던 놈들을 지목했다.

니들! 니들 때문에 내가 빡 돌았던 거라구! 내 평생 그렇게 더러운 입 냄새는 처음이었단 말이닷!”

정말 그랬어. 좀비토비의 뽀~ 아니, 하여간 놈들의 입이 코앞에서 벌어지니까… 으~ 다시 생각하니까 또 열 받는다! “몽몽! 아직 멀…….”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주인님.」

응? 드디어 몽몽이…………….

「미확인 마력과 재생 패턴 분석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적의 재생 과정을 간섭하여 교란시키겠습니다.」

음왓핫! 좋았어! 잘 죽는 좀비라면 껌이지, 껌!

비루한 내공이라도 내 목표대로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면, 쌈박질 라이프를 계속하는데 큰 지장이 없게 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공격’ 하나만큼은 확실히 그럴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목표에 근접해간다 해도 ‘최악의 궁합은 존재한다.

그래. 그리고… 그건 바로 저 좀비토비들이었어. 현재의 내가 추구하는 공격패턴. 심지어 업그레이드판 심도라 해도, 기본 형태는 ‘거미줄처럼 미 세하게 응축된 선이지. 근데 좀비토비들을 상대로는 너무 섬세하게 잘라버려서 문제가 되는 경우랄까…? 재생력이 강한 좀비토비들 입장에선 오 히려 재생하기가 너무나 편한 바람직한(?) 공격인 거지…………….

몽몽 선생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나는, 다시 걸음을 떼자마자 다음 층으로 향하는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비이이이이이~

몽몽이 뱀파이어 카라를 상대할 때 이후로 두 번째의 인공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훗. 효과 만점이구먼. 좀비토비들~ 재생은 이제 그마안~!

대규모 업그레이드 심도에 절단되었던 좀비토비들의 재생 과정이 확실하게 멈추더니 맥없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남은 좀비토비들도 뭔가 감을 잡았는지 계속 머뭇거릴 뿐 내 앞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

케인이었다. 좀비토비 동산 위의 태양형(?) 모니터에 사랑스런 아기 얼굴 대신 케인이 나와서 입을 연 것이다.

“무슨 짓을…….”

“뭐! 뭐가 불만이야?”

나는 케인을 향해 피식 쪼개 보였다.

“소냐나 BB형제를 쓰지 말라며? 그래서 걔들 빼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뭐가 또 불만인 거야?”

“지금의 그 현상・・・ 나의 계약자들을 힘겹게 하는 무슨 짓인가를… 당신 자신이 하고 있다는 건가?”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댁의 좀비토비들이 원래 부실한 거 아냐? 어이구~ 저 붙다 말고 자빠지는 거 봐라. 박카스라도 좀 먹이면서 일 시키 지 그랬어.”

시침을 딱 떼자, 케인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 남자’가 내게도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 남자는 아마도 프리메이슨의 대리로 케인을 만난 원판이겠고… 프리메이슨도 당연히 몽몽의 존재는 나와 자신들만 알고 있기를 원하고 있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당신 정도의 남자를 해치우는데 계약자들을 아낄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야.”

흐음. 케인의 음성에 비로소 감정이 섞이는 듯한 걸……………? 근데 어째 단순한 분노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주인님. 코드명 케인으로 추정되는 자의 텔레파시가 좀비토비들에게 수신되고 있습니다.」

과연… 기가 죽어 있던 좀비토비들이 다시 광폭한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하는군.

「처리의 효율성을 위해 문제의 텔레파시 수신 범위를 조율하겠습니다.」

역시 꼼꼼한 몽몽 선생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꽤 오래 제한 해왔던 전투 서포트 시스템이 전부 풀려서 의욕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군 그래. 몽몽이 말한 ‘처리의 효율성’은 좀비토비들이 연이어, 그러나 내가 처리하기 좋게 서너 마리씩 나누어 덤벼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리드미컬(?)한 칼춤을 출 수 있었다.

서걱. 서걱. 사각~♪ 사가악~♬ 사각칵~♬칵- 카악~!칵카악~ 칵~♬

룰루랄라 정글도 부림을 계속하며 출입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더 이상 남은 좀비토비들이 없었다.

더 이상 재생이 안 되는 좀비토비들의 몸체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들이 일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음~ 설마 아직도………….

꽤나 징한 ‘마계의 무언가’였다. 몸체를 포기하고 빠져나온 것들이 내 앞의 허공에 모여들더니 검은 구름 덩어리가 되며 위협적으로 꿈틀거리고 있 었다.

저 상태로 나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가…는 둘째 치고.

저 에너지체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건 물론 심도의 특성 탓도 있었겠지만. 아 무래도 소위 영력(靈刀)을 제대로 정글도에 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지…………?

“이제……”

정글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새삼 ‘지겨움과 짜증’이란 감정을 실어 보았다.

“꺼!”

일갈하며 그어 내린 정글도에 검은 구름 덩어리가 두부처럼 깔끔하게 양단되었다. 그리고는 정말 칼에 맞은 생명체처럼 부들부들 떠는 기색과 함 께 스러지기 시작했다.

오~ 이제야 제대로 영력이 실렸나 보다. 역시 영력을 이용하는 요령에도 더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긴 한데…

‘나이스 샷.’

・・・응? 뭐야? 방금 누가……………

정확한 말을 들었다기보다는 ‘들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애매모호한 느낌의 목소리를 낸 존재를 찾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보았 으나 허사였다.

「주인님?」

“어, 몽몽. 넌 방금 못 들었냐? 그게, 그러니까. 일단은 ‘여자의 음성’ 같았는데…”

「인체의 가청 음역대에 속한 여성 목소리는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난 분명 사장님 나이스 샷… 아니, 사장님은 빼고, 그냥 ‘나이스 샷’이라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는데?”


「……해당 현상에 관한 추정 보고사항이 존재하나, 현재 남은 시간은 36분 21초뿐입니다.」

젠장. 벌써 그렇게밖에 안 남았나? 좀비토비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야.

나는 정체불명의 여자 음성에 대한 궁금증을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다음 층으로 향해야 했다.

뭐, 몽몽이 ‘급한 일이 아님’으로 판단했다면 그럴 거라 믿고… 으음. 근데 이거… 다음 층은 몇 층인 거야…………? 몇 개 층을 합쳐서 17층을 만들어 놨으니까 24층이나 25층쯤 될 것 같지만. 어쨌든, 제기.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것도 꽤 일이네, 일.

내공을 잃은 후로는 체력 단련에 더 치중해온데다, 천지파멸식의 부작용으로 육체에 발생한 변화 덕분인지 아직까진 괜찮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케인이 계속 골치 아픈 괴물들로 인해전술, 아니 괴해전술을 펼치면 내 체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차라리 층마다 대형 한두 마리로 승부를 걸어오면 좋으련만……….

나는 그런 바람과 함께 24라고 쓰여진 문을 열었다. 그러나 24 층의 상황은 내 예상을 살짝 뛰어넘고 있었다. 24층이 17층보다 더 많은 층을 합쳐 서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이라 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에 불과했다.

이, 이건 내 희망 사항이 무시된 건지… 이루어진 건지…………….

“아우우우~~.”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치켜들고 특유의 하울링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저 대형 늑대인간,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의 등장까지는 예상 했었지. 하지만 그 뒤로 주욱 떼거지로 늘어서 있는 각양각색의 괴물들은 대체……………

외모만으로 보면 세계정화재단의 마신일이 만들어서 자신의 호위를 서게 했었던 식귀(飾鬼)라는 부적 괴물들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보 다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건 물론이고, 부적 같은 게 감지되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 세계의 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명백히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손님’들인 것이다.

게다가 뭐랄까, 마계에서 저런 것들을 소환했다기보다는 내가 들어선 여기 24층이 바로 마계인 것 같은 기분이…………….

새삼 긴장하여 정글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몽몽이 저 엄청난 마계 괴물들을 일일이 분석하는 동안 내가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하 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뭐야? 각층의 보스급 괴물들을 한꺼번에 내려보낸 겨?”

난 짐짓 태연함을 보이며 문 옆의 모니터를 향해 물었다. 케인은 내가 24층에 들어선 직후부터 그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낸 상태지만, 웬일인지 바 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칭찬해주려고 그래. 영화나 소설 속의 악당들은 보통 괜히 부하들을 하나씩 보내다가 망하잖아. 넌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은 모양이지?”

으음. 계속 대답이 없군. 그러려면 뭐 하러 모습을 드러낸 거야?

“크・・・ 후~ 그건…….”

응?

“내가 대신 대답해주겠다.”

라이칸스로프…………! 선두 그룹에 있는 라이칸스로프가 입을 열어 인간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 말이 맞다, 인간. 여기 있는 우리가 케인과 계약한 자들 전부이다. 케인에게 우리 모두가 필요할 정도의 적이 등장한 건 처음이라 기대가 크군.”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어딜 가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인간의 말을 하는 걸 보면 꽤 고위의 마족인 모양이지?”

“인간의 단순한 언어 따위를 할 줄 아는 것이 고위 마족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몸이 하찮은 마물이 아님은 분명하지. 난 비록……….” “저기, 라후의 혈족. 알아?”

“뭐?”

라후의 혈족이냐고 묻지 않고 그들을 아느냐고 한 건, 아무래도 내가 아는 라후의 혈족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서였다.

“그, 그분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인간!”

역시 라후의 혈족급은 아닌 모양이군.

“…가, 가만! 이・・・ 이 냄새는……?”

문득 당황한 라이칸스로프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새삼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만난 다음에 시일이 좀 지난 라후의 혈족 냄새까지 용케 맡은 건지, 최근 늘 함께 지낸 라프의 체취 때문인지 몰라도… 어디, 더 확실히 맡게 해줘 볼까?

“몽몽. 라프의 아공간을 살짝만 열었다가 닫을 수 있지?”

「가능합니다, 주인님.」

“헛!”

흠칫 놀란 라이칸스로프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다가 다른 괴물과 부딪치기까지 했다.

“…그, 그분들의 냄새……………? 하지만 그분들은 이미 오래 전에 멸족을… 아, 아니 이건 그럼・・・ 서, 설마…”

“오래 전에 멸족? ‘삼형제’ 가 버젓이 살아 있던데?”

내 말은 라프의 냄새만으로도 버벅대던 라이칸스로프에게 결정타가 되는 것 같았다.

“사, 사, 사, 삼… 형… 제…………?”

뭐…야?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경악하여 어쩔 줄 몰라 하잖아………? 같은 계열이면서도 어떻게 나보다 더 그들의 소식을 모르고 있는 거야? 그 리고… 그러고 보니까 다른 괴물들도 내 말을 듣고 상당히 동요하는 기색인 걸?

“이, 인간! 설마 네가 그분들과 계약을………….”

애써 진정하며 묻기는 하는데, 여전히 목소리가 떨리는군.

“계약이라기보다, ‘약속’을 하긴 했지. 3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말야.”

“다시 만날 약속……?”

“그래. 우린 얼마 전, 찝찝한 상황에서 싸우다 말았거든. 그래서 3년 후에 다시 한 판 뜨기로 했지.”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마계 출장소(?) 24층의 공간 전체에 깔리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 는 약속이기는 했으나, 저 이름 모를 라이칸스로프와 다른 괴물들에게는 더욱 그런 눈치였다.

“인…간. 너와 그분들… 존귀한 삼형제…가?”

“응.”

무명 라이칸스로프는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서도 나의 대답에도 거짓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는지,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그분들을 부를 수 있는 잊혀진 고대 마법이 최근 어떤 인간에 의해 부활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지만… 설사… 그게 사 실이라고 해도 그분들과 일전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인간이 있을 수는………….”

‘그들을 부른 술사 마신일이, 내가 죽지 않는 걸 원했기 때문에 그랬었다’는 말까지는… 상대가 구체적으로 묻기 전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사실, 적이 마계에서 온 괴물들이라면 라프의 힘이 어느 정도 먹혀들 것을 기대하긴 했었지. 하지만 그건 싸움이 시작 되었을 때의 얘 기고, 이렇게 다들 지래 겁을 먹고 동요할 줄은 몰랐어. 그 늑대 삼형제는 알면 알수록 마계에서도 엄청 잘나가는 분들이긴 한 모양인데… 에효~ 나란 놈은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초특급 괴물들과 대결 약속을 해놨는지……………

「주인님」

“어.”

「적들의 태도가 결정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그 사이, 케인의 정체에 관한 보고를 들으시겠습니까?」

이런, 이런…………! 그런 중요한 보고거리가 있었단 말야?

그래도 슬쩍 괴물들 쪽을 먼저 확인해 보니, 놈들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분위기로 지들끼리 뭔가 쑥덕쑥덕 상의를 하고 있는 눈치 였다.

‘에이 쒸, 알고 보니 우리들 세계의 초깡패와도 맞짱 깐 놈이래. 어쩌지?’

‘쳇! 우리도 명색이 마계 양아친데…………….’

‘새꺄. 그럼 니가 총대 맬래?’

‘그, 그게… 나도 라후파 피바다 형님들과 짱 뜬 놈이라면 좀………….’

X됐다. 괜히 알바 뛰러 인간 세계까지 왔다가 하필……………’

‘어쩌냐? 그래도 다굴엔 장사 없다는데… 그냥 깔까?’

‘마계 가리봉동 휘발유, 니가 총대 맨다면 나도….?

‘아니, 그건 마계 봉천동 쇠파이프, 너한테 양보할게.’

에이~ 선빵은 당연히 그쪽의 쌍문동 오우거 형이 말아야………….’


설마 정말로 이렇게 유치한 대화가 오고가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내용이 어쨌든 간에 확실히 금방 끝날 대화 분위기는 아니었다.

“좋아, 몽몽. 보고해. 하지만 인질 구출하는 일이 급하니까, 빨리 끝내자.”

「알겠습니다, 주인님. 우선 아까 16층에서 케인이 자신의 텔레파시 능력을 입증하여 미아, 벨 쌍둥이 자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때의 상황입니다.」

케인이 백화점 안을 직접 보지도 않고 말하는 내용과 백화점 안의 실제 상황이 다시 비교되어 보여지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별로 이상한 점은… 아, 아니 이건 뭔가 이상하긴 이상하네? 저… 몽몽이 분석한 인물들의 시간대 별 움직임대로라면… 분명 케인 이 말로 묘사한 장면을 한 사람이 전부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케인과 텔레파시로 연결된 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가정도 할 수는 있겠지 만………….

「…다음은 조금 전 아래층에서 주인님께서 여성의 목소리를 감지하셨을 때의 상황입니다. 저의 기능으로도 인간의 텔레파시 내용까지 구체적으 로 해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들었던 목소리가 텔레파시였었다고?

그런 사실까지는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거긴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고는 나도 뜻밖이었다.

…뭐시여. 워낙 미약한 텔레파시여서 분석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주파수 패턴이 케인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는 걸 확인했다고…………? 그러니 까, 케인은 일단 여자…………? 아니, 아니 그보다! 케인은… 아까 내가 좀비토비들의 에너지체를 없애버린 직후에. 나한테 사장님 ・・・ 아니. 그건 빼고! 하여간. ‘나이스 샷’이라고했단 말이지…………? 이것봐라?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했던 ‘케인의 정체에 관한 힌트’가 비로소 빠르게 조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제기! 이렇게 되면 분명히 유력한 용의자가 떠오르기는 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 그 무엇보다! 케인은 지금 그 힌트들이 주어지기 전에 먼저 ‘아주 쉽고 결정적인 힌트’ 가 있었다고 했잖아! 그런 게 대체 어디 있었다는 거야? 그 여잔 대체… 에? 가,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여 자… 좀… 그런… 타입이었던가……?”

난 마지막 키워드가 풀리는 느낌과 함께 상당히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혀야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주인님? 적들이 공격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 그래. 알았다.”

마지막 키워드와 함께 맥도 함께 풀려버린 나에게 라이칸스로프가 앞장서서 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인간! 내가 직접 싸워서 진실을 알아야겠다!”

“어~ 그려, 그려. 그러든가.”

라이칸스로프는 나의 성의 없는 대웅에 분노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미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할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슬쩍 모니터 화면을 확인 해보니 케인은 여전히 얄밉게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래층에서부터 반복된 화면의 배경과 백화점 데이터의 일치로, 케인의 위치를 확인하였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크아악!”

라이칸스로프가 포효와 함께 달려들려는 순간, 나는 라프의 아공간출구를 열게 했다.

“캬웅?”

항상 산만하면서도 느긋한 라프가 재빨리 튀어나오는 걸 보니, 자기 고향 친구들(?)의 냄새가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무, 무슨?”

살기등등하여 달려들기 직전이던 라이칸스로프가 작디작고 귀여운 새깽이 라프의 등장에 놀라서 흠칫 동작 그만 상태가 되었다. 그건 다른 마계 양아치(?) 군단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사들 하지? 그 존귀하시다는 삼형제의 아드님(?)이셔.”

라프의 성별은 아직 닥터 몽몽조차 모르지만.. 암튼.

“몽몽. BB형제와 건물 밖의 물귀신 남매(아쿠아린 형제와 세이렌 자매들 중에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을 분석해줘.”

라프가 촐랑촐랑 마계 괴물들에게 다가가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과 괴물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얼마 감상하지도 못했건만, 몽몽 선생의 빠른 보고가 이어졌다.

「이동 속도는 아래층에 대기 중인 BB형제가 가장 빠를 것으로 추정되나, 기습의 의미까지 고려하신다면 건물 밖의 아쿠아린 형제와 세이렌 자매 까지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기습이라………! 케인이 정말 그 여자라면 분명 ‘내가 이기기 어려운 상대’ 인건 분명하겠지만… 으음. 그래도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역 시 대교뿐이야. 그 여자는 대교가 아니라구!

“좋아, 동동, 기습이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