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54화 : 크레이지 파이어의 질주.
4. 크레이지 파이어의 질주.
홍콩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비행기 안에서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나와 대교는 솔직히 블랙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아니었으나, 놈은 오히려 계속 조용히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우리의 염장 러브 시추에이션 닭살 어택(?)에 도 흔들림이 없다니………… 예상보다 강적인 걸……? 근데………… 어째 블랙 보다, 저기 저…………… 눈치 없는 자니 녀석 때문 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군. 자니도 처음에는 우리 일행과 꽤 멀리 떨어진 좌석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었다. 그러나 녀석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2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뻘짓을 시작했었다. 녀석은 먼저 소미 령이들의 좌석 옆을 지나가며 자신의 존재를 그 애들에게 알리더니, 그 이후로 도 공연히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윙크를 해대거나, 멀지 않은 빈 좌석 에 앉아서 개그 팬터마임 같은 걸 하는 등………… 하여간 별별 원맨쇼를 다 하면서 미령이를 웃겨 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하아아~ 노력은 가상하 고…… 미령이도 결국 가끔 피식이나마 웃어 주는 것 같기는 해. 하지만 그 와중에 열 받은 사람이 두 명 있으니……………
-오라버니. 저 인간, 베어 버려도 될까요?
-진정해, 대교.
대교는 아까 블랙에게 화를 낼 때도 섬광분소지의 위력을 조절해서 의자만 겨우 뚫릴 정도로 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 그때보다 더 불쾌해 하며 진심으로 청명검 부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잖아? 우리 미령이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말야.
-하긴……… 우리 미령이가 저렇듯 품행이 가볍고 방자한 자에게 넘어갈 리는 없겠지요.
어쨌거나 대교가 내 허락도 없이 살수를 쓸리는 없지만…………
·유준 군. 저 놈, 죽여 버리겠네.
-차, 참으세요! 여기선 곤란해요! 사실은…………
대교보다 사영 어르신의 분노가 더 무서웠다. 하는 수 없이 자니의 정체를 알렸더니 섣불리 칼질하는 건 참으시게 된 것 같았지만, 억제하는 만큼 더 은근히 삭막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쯧. 애꿎은 일반 승객들이 영문도 모르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군. 일반인들이니 전설의 살수 가 내뿜는 살기라는 것까지야 모르겠지만, ‘비행기 안에 왠지 서늘하고 무서운 공기가 감도는 것 같다’ 정도는 느낄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자니의 오버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룡대주가 먼저 움직였다. 승무원들 중에서 몇 명은 자룡대의 인턴 대원들이었는데, 그들이 자니 에게 ‘얌전히 있어 달라’고 몇 번 주의를 주었다가 소용이 없자 보스인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음…………..? 자룡대주는 자니를 그냥 지나쳐서 바로 미령 이에게 가네…………? 그리고는 귓속말로 미령이에게 뭔가 요청을……… 자룡대주는 다시 자니에게 가더니 미령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실제 미령이의 말은 ‘아빠가 싫어하니 그만해 줘요.’ 정도였으나, 자룡대주의 편집을(?) 거쳐서 전달된 말은 ‘넌 창피한 것도 모르냐? 밥맛없고, 꼴도 보 기 싫어!’였다. 자니가 ‘그럴 리가’라는 표정으로 미령이를 봤을 때, 미령이는 자룡대주의 부탁대로 ‘고개를 끄덕인 후, 슬쩍 외면하는 동작을 해보 였고…… 훗~! 역시 자룡대주가 이런 일의 처리 요령이 좋구먼. 간단히 기가 죽은 자니는 힘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더 이상의 원맨쇼는 고사하 고 미령이 쪽으로 올 생각도 못하게 되었다. 이로서 다시 비행기의 평화와 승객들의 생명이 지켜진 셈이었다. 창문 밖으로, 이제 내게도 낯익게 느껴 지는 홍콩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비행기는 무사히 홍콩 공항에 착륙했고, 우리를 비롯한 승객들도 안전하게 내릴 수가 있었다. 우리를 제외한 승객들 중에서 몇몇 민감한 사람들이 자기 일행에게 ‘왠지 계속 불안하고 찜찜하며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 비행기 타기 싫다.’고 고백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역시 난 이제 돈 낭비라도 전용기를 써야 할 것 같은…. 음? 공항 로비로 나와 보니까 출구에서 꽤 떨어진 기둥 옆에 자니가 서 있었다. 우 리 일행들보다 서둘러서 앞서 나갔었던 녀석이 또 저러고 있는 걸 보니, 계속 미령이의 주위를 맴돌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 이제 진짜 큰일 났어.
-자니! 뒤를 봐!
내 전음을 들은 자니가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흠칫 굳어졌다. 자기 바로 뒤에 서 있는 남자, 블랙을 그제야 인식한 것이다.
-대교.
나와 대교는 자연스럽게 미령이와 자니 사이로 걸으며 미령이가 자니 쪽을 보지 못하게 했다. 굳이 숨겨 줄 필요가 있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 도 왠지… 블랙이 결국 자니에게 정체를 밝힌 모양이었다. 항상 가볍다고는 해도, 그만큼 자신감 넘치고 쾌활한 표정이었던 자니가 지금은 겁에 질려 입도 잘 떨어지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놀라고 두려워 할 줄은 알았고, 그래서 재빨리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건 그냥 얼어붙어 버려……………? 블랙, 저 놈이 대체 얼마나 무서운 능력을 가졌기에………… 대교의 유도로 모든 일행들이 먼저 공항을 나갔고, 나는 은근슬쩍 빠져서 조금 더 블랙과 자니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블랙은 배신자 자니에게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몇 마디의 말을 건넸을 뿐, 아무런 공격 이나 위협조차 가하지 않은 채 돌아서고 있었다. 자니의 곁을 떠난 블랙은 곧 출구의 내 앞도 지나쳐가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곧 저희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
블랙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떠올리다가 문득 다시 자니 쪽을 보니, 그 사이에 자니 녀석도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블랙 저 놈, 자니에 71……
“하루 더 시간을 주겠다. 돌아와라. 용서하마.”
…………… 이렇게 말했지…………? 쯧. 나름 통이 커서 배신자를 진짜 용서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블랙과 자니 양쪽의 현재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저 블랙의 원본이자 비화곡주의 원판인 화이트 크라우드 놈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제 블랙이 말한 하루가 지나면, 자니는 죽는다. 반드시’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참………..! 달리는 차 안에서도 난 계속 껄적지근한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대교가 아무리 나에게 ‘다정한 분’이라고 말해준다 해도, 난 스 스로 별로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상이 ‘다 큰 어른 남자’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 그럼에도 이만큼 기분이 거시기 한 건…… 그냥 가 능성이 있다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결과를 미리 본 듯한 느낌 때문인 건데… 젠장. 내가 왜 적 조직의 암살자 녀석까지 신경을 써주게 된 거 야…………? 아, 몰라! 내가 그런 녀석까지 쫓아다니면서 챙겨 줄 수는 없잖아! …………자니 녀석이 스스로 도움을 청해 오면 모를까…………
“아! 저기, 저기 다 왔어욧!”
음? 소령이가 반갑게 외친 것은 당연히 소교의 집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마녀 여옥’의 거대한 저택이었으나, 얼마 전(느낌상으론 몇 년 전 같기도) 나와 내 수하들에 의해 초토화되었었던 바로 그 저택 부지(?)였다.
흐음. 담과 정문은 그때도 부수지 않았었지만… 다른 건 모두 사라진 상태 그대로네. 어느 정도 보기 싫지 않게 정리를 하고 다시 잔디를 깔았다 고는 하지만, 이렇게 공원 급의 거대한 정원에 본채만 달랑 하나 서 있으니 황량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약간의 미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 긴 했으나, 마녀였던 시절의 여옥이 자처한 일이었기에 내가 다시 원상복구 해줄 마음은 없었다. 얼마 전의 여옥도 이 저택으로 복귀하면서 ‘지난 날 을 반성하는 증거로 삼겠다’는 소리를 했다고 하긴 하는데………… 뭐, 그래봤자… 자니고 여옥이고, 내 머리 속의 이런 저런 상념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군. 저 너무나 사랑스런 소교와 금동이 때문에………… 저택 앞에서 우릴 기다리던 소교와 금동이, 소금 커플(?)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기 시작 했다. 차에서 내리던 우리 일행 모두 ‘과연 누구에게…………?’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나, 결국 간택(?) 받은 건 나와 대교였다. 소교는 대교 에게, 금동이는 내 품에 안겨왔던 것이다.
후후~ 금동이 이 녀석…………! 잘 해야 십여 일 정도 만에 보는 건데도 꽤나 격정적으로(?) 반가워 해주는 구나. 물론 나도 널 다시 만날 때마다 반가 운건 마찬가지지만…… 흠. 그래도 임마. 인기 관리를 하려면 니 팬(?)들에게 골고루 신경을 써줘야 하는 거라구. 금동이의 등을 토닥거려 주며 소 미령이들을 돌아보니, 예상대로 녀석들은 입술을 잔득 내밀고 금동이에 대한 섭섭함을 표하고 있었다. 소교가 대교의 품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금동이도 슬며시 소미령이들에게 번갈아 안기기 시작할 무렵………… 여옥도 조심스럽게 우리 앞으로 나섰다. 난 그렇다 치고, 사영 어르신은………… 으음. 여전히 여옥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시가 있는 것 같군. 전처럼 대뜸 칼부림 날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영 어르신의 마음이 풀리려면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음?
…………훗. 역시 대교와 소교가 나서서 각각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끌기 시작하는군. 사영과 여옥, 형부와 처제사이면서도 오랜 세월을 원수로 지내 온 두 사람은 모처럼 가깝게 나란히 서서 함께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사영의 냉랭한 표정은 거의 변함이 없었고, 여옥이 그를 두려워하고 꺼려 하는 마음도 여전히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양옆에서 웃고 있는 딸들 대교와 소교라면 언젠가 저 두 사람의 악연도 아름답게 승화시 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아직도 여옥을 완전히 믿지 못해. 사람의 본 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말야. 하지만 이제 사실상, 아무래도 상관없지. 어차피 나와 사영이 건재하는 한… 저 여자는 평생 나쁜 본 성을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지.
난 감상적인 기분과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믹스시켜 종합적으로 좋은 결론을 맺으며 저택 안에 들어섰다. 두 번째 방문에서야 실내 구경을 하게 된 셈이었다. 호오~ 거의 백여 평은 됨직한 실내 공간이 꽉 차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와 있네…………? 하지만 예전처럼 마녀의 손님으로 홍콩, 중국 본토, 대만의 굵직한 조폭 두목들이 모인 건 당연히 아니지? 오늘의 파티 손님들은 거의 다 우리 식구들………… 아니,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더 심한(?) 조폭인지도………… 훗. 그래도 홍콩에서 꽤 유명한 ‘정의의 용사’가 한 명 섞여 있었군.
“천주! 오랜만에 뵙습니다!”
입구 바로 옆에 있던 젊고 번듯한 신사 한 명이 가장 먼저 포권으로 인사를 해왔다. 홍콩 경시청의 열혈 특공대 대장, ‘전경하였다.
“후후. 이런 자리에 와서도 직업 정신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군.”
입구 바로 옆에서 얼쩡대며 사람들을 살피는 태도를 언급하자, 전경하도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 식구들이니, 저도 오늘만은 편히 지낼 생각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마주 웃고 있을 때, 자룡대주가 모두에게 전음으로 나와 대교의 입장을 알렸다.
“어,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 아닌데…………….
“천주! 속하들이 천주와 천모의 존안을 뵙습니다!”
에구. 내가 손을 저었음에도 저 많은 자들이 일제히 포권하며 우렁차게 인사를 하다니…………! 무지 민망………… 한 건 한 거고, 흐음. 덕분에 마군, 대주 들을 비롯한 우리 식구들과 아닌 사람들이 한 눈에 구분되긴 했네. 소교는 오늘의 주인공으로서 파티의 중심 자리로 향 했고,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곧 우리 식구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낯익고 반가운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여어~ 왔군, 챈!”
내가 먼저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이자, 붉고 긴소매의 중국 전통 정장을 하고 있는 챈이 잔잔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우리 옛 비화곡 가족 일당 (?) 모두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지만, 어쩐지 미령이는 슬며시 딴청을 피우는 기색이었다.
“진대가……………! 오가사와라 제도의 사건 이후 걱정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기력이 더 충만해 보이십니다. 전 괜한 걱정을 했었던 듯합니다.”
“훗. 나야 뭐……… 음. 그보다, 챈도 그 사이 꽤 출세했다며?”
“음・・・・・・ 대단치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치 않기는…..! 내 입장에서는 챈이 한국 지부장을 그만둔 게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 대신 그 뭐냐…………
“제1구역의 2급 감찰관이요! 그거 아주 높은 거예요.”
소령이가 끼어들어 대신 말해 준, 챈의 새로운 신분은…… 말하자면, ‘아시아 지역의 지부장들 모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암행어사쯤 된다고 했 다.
“모두 진대가와 대교 님, 그리고 소교 님의 덕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군요.”
다시 정중히 인사를 하는 기색을 보니 그냥 하는 인사말이 아닌 것 같았다. GM의 배신자이며 챈의 라이벌(?)이었던 ‘다카시…………! 놈은 소교를 오 가사와라 제도로 납치했다가 결국에는 대교의 칼에 제거되었었지. 그때의 전반적인 일을 챈이 잘 처리한 것이 상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건 데………… 흐음~ 이건 다카시 놈을 밀어 주던 세력과 챈 쪽 세력의 힘 겨루기가 챈 쪽의 WIN으로 진행 중이라는 얘기가 되기도 하겠지………?
-갈수록 더 출세가도를 달릴 것 같은 남자이니……… 우리 대교 마님이 더욱 마음에 들어 하시겠군.
-…피이.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무슨 욕심쟁이 엄마 같잖아요.
-후후. 대교가 동생들에게는 엄마나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그야………… 음.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면……………
대교가 말끝을 흐리며 경계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쯧. 역시나 여옥 쪽 손님이 문제인 것 같군. 벌써 소교 주위로 모여들어 어떻게든 집적거려 보려 는 기색의……… 저 낯선 젊은 놈팽이들이, 저래 뵈도 ‘홍콩 정재계의 후기지수(後之秀)’라 이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홍콩뿐 아니라 중국 본토나 대만에서 온 자들도 있다고 했다. 사실, 오늘은 아직 어린 소녀의 생일일 뿐이며, 표면적으로 그녀는 몰락한 조폭의 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의 숨은 내력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니기에, 무수히 많은 정재계의 실력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오늘 파티 에 참석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소교가 사영회(死影회주의 친딸이라는 사실과, 나・・・・・・ 최근 지하무림을 재통합하며 등장하여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괴물 두목 마 군황까지 후원자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여기저기 다 알려졌다나…………? 게다가 우리 범세계적 조폭 일가………… 으음.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 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하여간 그런 우리 중에서 어찌 한 번 접근해 볼 구석이 있는 건 이제 소교뿐인 셈이지. 대교야 당연히 언급될 여지가 없고, 소령이와 미령이는 최고 정보 조직의 일원이라 아직 외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물론 소미령이들도 오늘 나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으니, 앞으로 어 떤 소문이 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미령이들이 소속된 조직 GM(Gold Monkeys)의 특성상, 우리 외에는 누구도 녀석들을 찾아낼 수 없을 것 이다.
여하간………….. 조용한 성품의 소교가 이런 분위기 자체를 좋아할 리가 없는데 말야. 저렇게 귀찮게 꾸역꾸역 모여드는 자들에게 일일이 응대해 주고 있는 걸 보니, 어머니 여옥을 생각해서 최대한 손님 접대에 충실할 생각인 거겠지………? 훗. 역시나, 소교의 보디가드 삼룡이 (?) 뇌룡대주는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군. 하지만 소교에게 미리 단단히 주의를 들었는지………… 2,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있어.
게다가………… 뇌룡대주처럼 막강한 보디가드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을 만큼, 우리 소교는 다른 파티의 히로인과 달랐다. 오늘, 공주 풍의 새하얀 드 레스를 입고 있는 소교의 자태는 내가 봐도 환상이었다. 보통의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접근해 온 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파티의 주인공에게 말 을 거느라 정신없는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이 소교 주위의 군중(?)은 지금 거의 다 침묵 상태이며 실수로 자신들의 몸이 소교와 닿기라도 할까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 다. 다들 처음엔 그래도 나름 자신감 있는 표정과 태도로 접근하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교 특유의 ‘보호 본능 촉발 바이러스’에 감염되 어 넋이 빠져 버렸군 그래. 후후~ 이 사람들아! 아직 우리 소교는 최근 장착한 ‘애잔 모드 슈퍼 울트라 니트로’를 제대로 발동하지도 않았어. 벌써부 터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나 들.
“어머! 어머, 세상에!”
“꺄아아~ 어쩜 좋아!”
갑자기 들려 온 여자들의 비명(?) 때문에 그쪽을 돌아보니,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인 금동이가 소란의 원인이었다. 소미령이들이 선물로 사온 모자 며 장신구를 걸친 금동이는 ‘아이템 획득으로 귀염성 수치 대폭 상승 모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훗. 여자 손님들이 아주 그냥 꺼벅 죽는구먼. 음……………? 근데 의외로 남자 손님들도 꽤……… 어? 웬 돈으로 추정되는) 봉투며 금붙이 선물을 저렇게 다들 바치지 못해 안달인 분위기인 거지…………? ・・・・・・아. ‘황금 원숭이’는 중국인들에게 특히 엄청 귀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고 했지? 흐으음~ 이거, 실속은 소교보다 금동 옹의 영험함(?)이 더 앞 서는 걸?
-오라버니.
음………… 내가 소교와 금동이의 상황을 보고 있는 사이, 대교는 미령이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군. 챈과 소미령이들은 정보 조직 요원들답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포인트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일견, 그리 나쁘지 않은 분위기지만… 왠지 미령 이가 조금 겉돌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을쎄………?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
-………….예. 제가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음………
대교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런 일에까지 제가 참견하는 건 좋지 못하겠죠?
-뭐… 딱히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대교가 괜한 수고를 하는 거 아닐까? 다름 아닌 미령이인데 말야.
하긴. 미령이처럼 영특하고 자기 것을 잘 챙기는 아이도 드물지요.
여전히 동생을 보는 시선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지만, 결국 대교는 좀더 두고 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는 듯 했다. 일단은 챈의 수명이 (?) 연장되었군. 하지만 나도 저렇게 애매한 관계를 보면 갑갑한 것이 사실이고………… 나야말로 따로 챈을 만나 술 한잔하면서 속을 떠볼까…………? 아, 그 전에 소령이를 먼저 불러서 챈과 미령이가 둘 만의 대화 시간을 가지도록, 넌 빠지라는 말을……… 으으 음. 근데, 난・・・・・・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남 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네. 무림 대소사에 일일이 다 참견하고 다니는 아줌마군황 진유준……? 쯧. 정말로 그런 얘기가 나오기 전에 자제를…………… 음?
“천주.”
자룡대주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소교가 우릴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오~ 이제 케이크를 자를 모양이군. 그럼 가족들이 모여야… 어? 저 아이들…………… 우리보다 앞서, 웬 어린 꼬꼬마들이 저렇게 많이… 아! 예향원(譽香院)…………! 거기 애 들이구나! 소미령이들의 출신 고아원이자, 얼 마 전부터는 소교가 돌보고 있다는 예향원의 아이들이었다. 꼬꼬마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스타일의 아저씨들이 실내에 가득한 것이 두려웠던 걸까? 집안 어느 구석인가에 숨어 있었던 꼬꼬마들은 예향원의 원장님 부부에게 이끌려 나오면서도 쭈뼛거리고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녀석들! 왜 이렇게 맥이 없어? 씩씩하게 나서기로 했잖아!”
조담놈이었다. 놈은 지난번에 잠깐 아이들과 놀아주었던 인연으로 이번에도 금방 어울려 버린 모양이었다.
“자아~ 내가 가르쳐준 대로 열 맞춰 순서대로… 그래. ‘소일랑’부터 차례로……………
임시 대장 조담놈의 지도에 따라, 원딩 꼬꼬마들은 나름 씩씩한(?) 태도로 돌변하여 손에 든 꽃을 하나씩 대교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수많은 축하 객들에게 온갖 미사여구와 화려한 선물을 받으면서도 담담하게 의례적인 미소를 보일 뿐이던 소교가 비로소 진심의 환한 미소를 피어 올리고 있었 다. 마치………… 수줍게 망설이던 꽃이 때가 되어 활짝 만개하듯………… 핫…………..! 내가 이렇게 순간적으로 감탄할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후후. 아니나 다를까………… 다들 정신줄 놓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군. 꼬꼬마들에게 둘러쌓여 그 녀석들이 건넨 꽃을 한 아름 안고 선 소교는, 일찍이 그녀의 어머 니가 표현했던 ‘신이 내려준 천사’그 자체였다. 더욱 많아진 가족들이 소교와 금동이를 중심으로 모인 가운데 둘의 공동 케이크 절단식(?)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팡! 펑! 파팡~ 펑! 피식~(?) 빵~! 온갖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지며 꽃가루와 리본이 날았다. 중국인 특유의 나팔(?) 소리 도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며 그야말로 요란 뻑적지근 축하 분위기가 이어졌다.
“……모두,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감격하여 겨우 입을 연 소교의 음성은 수많은 소음에 묻혀서 바로 옆의 우리들에게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딱히 누가 나서서 ‘조용히 하고 주인공의 소감을 듣자’라고 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음과 소란은 놀랄 만큼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전 정말 이런 순간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다시 제게………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여전히 크지 않은 음성에 모두가 집중하며 그녀의 행복한 표정과 눈물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소녀를 위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날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모두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그래도 먼저…………… 제가 가장 먼저 감사를 표하고 싶은 분은……”
……응? 어, 어랏? 나? 내, 내가 뭘? 약간(?) 당황스러웠다. 소교가 오늘 이렇게 유달리 감격에 겨워하게 된 근본적 원인, 그녀가 최근 겪어야 했던 충격적 사건들 대부분의 원흉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감사할 대상’으로 지목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의 평범함을 가장한……… 위태로운 서커스의 줄타기 같은 생활은………… 그래도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 덕분에 나름 안전하게 지속되고 있었지요. 그런 십여 년의 세월이…… 허무할 정도로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 건…… 바로 이분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 었어요. 그날………… 위험에 처한 저를 구출해 주기 위해………… 하늘에서 ‘추락’한…… 특이한 왕자님………!”
으, 으으음~ 에딘버러 고교 인질 사건 때를 말하는 군. 나로서는 소교와의 재회였으나, 현생 소교에게는 나와의 첫 만남이 있었던 그날………… 그래, 난 정말 제대로 ‘추락’했었지. 다시 생각해 봐도 난 그날, 참….. 쪽팔렸었어.
“그날의 그………… 너무나 멋지고 용감하며 강했던…. 왕자님은……”
고………맙다 소교야. 좋은 측면만 기억해 주어서 말야. 하지만 자꾸 왕자 운운은 좀…
“……그날 이후, 이분은 저에게 그 누구보다 가깝고 믿음직한 존재로…..”
소교의 시선이 내 옆의 대교에게로 향하더니, 두 사랑스런 자매는 꾸밈없는 미소를 교환했다.
“이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언니의… 동반자로……………! 저의 ‘형부’가 되어 주셨지요.”
크,흠! 거………… 녀석도 차암. 결론은 그건데 괜히 남들이 오해할 만한 전개로 얘기를 하고 그러냐. 으음…… 여하간, 사람들이 다들 대단한 감동의 사연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으니까 다행…………이긴 한데………! 소교는 다음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여옥과 사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 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에게만 집중해 있는 사람들과 달리, 난 지금 막 입구 쪽에 등장한 놈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자니…………! 저 녀석, 그 사이에 어디선가 그럴듯한 양복을 챙겨 입고 온 걸 보면 파티에 참석하겠다는 뜻인 건가……………? 보스인 블랙까지 출동했다는 것을 알고 쫄아서 사 라졌던 녀석이 잘도 이렇게 빨리………… 처음부터 블랙과는 상관없이 옷 갈아입으러 갔던 거라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니의 표정은 어쩐 지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다들, 그냥 두고 물러서.
자니를 가로막고 신분을 확인하려던 뇌룡대의 수하들이 내 전음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자니. 너,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여기서는 얌전히……
나의 전음이 끝나기도 전에 자니 놈의 몸에서 화르륵~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저, 저 자식! 정글………… 아, 자, 잠깐! 미안, 정글아. 잠시 더 대기. 차에서 대기 중이던 정글도를 호출하려다가 만 것은, 자니의 불꽃이 결코 공격 형 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놀라 웅성거리며 동요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니의 머리 위 허공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 생일 케이크 형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니, 이 놈이 깜짝 쇼로 우릴 놀라게 하다니……………! 으으음. 다행히 사람들은 저걸 ‘특이한 마술쇼’쯤으로 생각하는 눈치로군.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지. 소교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은 다들 나처럼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아 직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우리로서는 사람들이 갑작스런 불꽃 마술쇼(?)에 놀라고 좋아하며 박수까지 치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 었다. …… 뭐, 암 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속 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당장은 자니 녀석의 깽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으으음. 게다가 솔직히 멋지긴 멋지군. 케이크 형상을 선보였던 자니의 불꽃은 곧 그 위로 촛불이 켜지는 모습의 이중 불 쇼를 펼쳤고, 박수를 받은 답례를 하듯 연이어 다양한 형태의 화려한 불꽃을 수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허공에 수놓아진 글귀는 ‘해피 버스 데이’였다. 불꽃이 사라 지며 자니 녀석은 정말 마법사의 무대 제스처처럼 큰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당연히 실내에는 우렁찬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아직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건 나와 사영 어르신 정도……? 흐음. 이제 우리 까칠 대교까지도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걸 보면, 자니 녀석의 쇼도 이번 만은 대성공이로군. 대체 어디서 저렇게 실력 있는 마술사를 불렀냐는 질문들이 소교와 여옥에게 향했다가 곧 나에게 옮겨졌다.
“방금, 그거・・・・・・ 마술이 아니었거든요? 저 친구는 진짜 이 저택 정도는 단숨에 불태울 수 있는 녀석이니까, 다들 몸조심해요.”
나의 솔직한 고백은 오히려 ‘나름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다들 더욱 기분 좋게 웃으며 환영해 주고 있는 가운데, 마술사(?) 자니는 당 당하게 파티에 끼어들었다. 으음….. 준비된 악단이 살짝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군. 난 이런 서양식 파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 도 뭐 나쁘지는 않은 듯………… 아, 그보다…………! 소교의 첫 번째 춤 상대는………….. 훗! 역시…………! 우리 소교 양은 가장 무난하고(?)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상대… ‘아버지’를 선택하는군. 소교와 사영이 손을 잡고 가볍게 리듬을 타며 중앙으로 나가자, 사람들도 하나 둘 춤바람(?) 대세에 따르는 분위기 였다. 호오~ 사영 어르신이 의외로 노련한 댄스 솜씨를 보이며 소교를 리드하는데 ・・・・・・? 실체(?)야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매력 만점의 세련된 미중 년 포스를 풍겨 주시는구먼.
-유준 오라버니.
응? 아! 나, 난 춤 못 춰!
술 먹고 추는 막춤이나, 비교적 단순한 동작의 ‘태구노단수勞旦手)’(?) 정도라면 몰라도………
-훗. 그게 아니고요. 저길 보시라고요.
어………… 자니, 자니가 미령이에게 다가가며 손을 내미는 군. 미령이는………… 흐으음. 조 녀석, 슬쩍 챈의 눈치를 살피고는 냉큼 자니의 손을 잡네? ‘질 투 유발 작전’이라 이거지?
-가장 기본적이며 단순한 방법이지만, 동서고금 가장 효과적인 연애 기법이네요.
-그렇군.
확실히 미령이는 연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즐거운 기색으로 자니 녀석과 어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챈은 여전히 별다른 표 정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단, 계속 저럴 경우에는 역효과가 나는 셈이겠지요.
-그게……… 아직은 좀더 두고 봐야…………
-예. 더 두고 봐야겠지요.
-그래…… 그러자구.
대교는 사교적인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으나, 눈빛은 결코 웃고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어머니에 가까운 큰언니로서 사랑하는 동생의 상황이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겠지만, 어째 어느 정도의 사심(?)도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천 년 전 비화곡의 비취각주(翡翠閣主)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남자 혼빼기 전문 엘리트 미소녀 군단(?)을 이끄는 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해서 더 불쾌해 하는 거랄까…………? 믿었던 정예 미령이 가 적의(챈의) 본진을 마음을) 함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으음. 근데 이거…………… 내가 보기엔 말이지. 지금 문제는 그거 한 가지가 아닌 것 같단 말야?
나는 아까 정글이를 실내로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곧 차 안에 있던 정글이를 현재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창문 밖으로 이동시켜 놓기는 했다. 그 리고 정글이 의 본체인 정글도에는 대교의 청명검이 함께 묶여 있다.
자니, 저 녀석………! 과연 저렇게 미령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순수하게 그런 마음만으로 온 것일까……? 설사 당장은 그게 진심이라고 해도, 그 다음은……? 내일까지 녀석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 다시 조직으로 복귀해서 미령이의 가족인 우리와 대적할 것 인지, 아니면 블랙의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 있는 확률에 목숨을 걸 것인지를 말이지.
-자룡대주. 내가 말했던 거, 잘 진행 중이겠지?
-아……! 예, 천주!
자룡대주는 조담놈 때문에 예향원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와중에도 충실하게 대답해 왔다.
‘손님’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히 배치 완료되었습니다.
역시 자룡대주는 물론이고 나의 수하들 모두가 유능……
-진대가!
윽. 깜닥이야. 갑자기 챈이 끼어 들 줄은…………..
-뭔가, 챈.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에? 이 친구가 갑자기 웬 시비조로……………
-조금 전부터 진대가의 수하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더군요. 물론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자연스럽지만………… 이건 분명 ‘요인 경호’의 움직임…………! 아닙니까?
오호~ 과연 GM의 최고 유망 후기지수답군! 그걸 혼자 눈치 까고 있었다 이거지? 난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으나, 챈은 계속 평소와 달리 강한 어조 의 전음을 보내왔다.
-혹시, 미령 아가씨와 함께 있는……… 저 백인 사내가 그만큼 위험한 자인 것입니까?
·글쎄? 챈이 보기엔 어때?
챈은 왠지 대답하지 못했지만, 새삼 미령이와 자니 쪽…… 아니, 꼭 짚어 자니를 지긋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챈 씨의 눈빛이 바뀌………… 아, 하지만 이건………
과연 대교…………! 나보다는 늦었지만, 지금 용케 챈의 반응만 보지 않고 자니의 수상한 기색까지 감 잡았군.
-오라버닌, 벌써 알고 계셨던 거죠? 죄송해요. 전 미령이와 챈 씨만 신경 쓰느라 이제야…………
-음. 그건 당연했던 거고………… 그보다, 대교 네가 보기에도, 역시… 심상치 않지?
-예. 계속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눈은 웃고 있지를 않았네요, 저 남자, 자니.
-맞아. 그게… 웬만한 남자가 이런 갈등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랑하는 소녀는 아무 것도 모르게 하고 혼자 위험한 길을 가려고 들거야. 하지 만 저 녀석의 별명에는 ‘미친’이 들어가 있잖아? 결국 어떻게 나올지………… 음?
자니는 문득, 그야말로 불현듯 멈춰 섰다. 미령이도 어쩔 수 없이 스텝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니…………? 왜…………”
“알고 있어.”
“예?”
“여자의 마음이 제일 어렵지만, 그래도 알 수 있어. 미령…… 넌, 저 남자를 좋아하지?”
자니가 챈 쪽을 턱짓하자, 미령이의 얼굴이 곧바로 붉게 물들었다.
“날 이용해서 저 남자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는 것도 알아.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런 것쯤은 알 수 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자니. 난 그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미령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지, 내가 꼭 미령이를 차지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아……!”
으으으음. 비교적 통속적인 대사인 것 같기는 해도, 결국 확실하게 미령이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군.
“하지만…… 단 하루, 아니 그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 정도는 나만의 미령과 함께 있고 싶어. 이것도 지나친 욕심일까?”
자니, 저 녀석이 왜 갑자기 바보 같지 않은 대사를 연발하는 거야? 이건・・・・・・ 위험 신호닷!
“……자니. 미안. 난 자니가 생각하는….. 아, 자니?”
평소답지 않게 나약한 태도로 입을 열던 미령이도 이상 징후를 느낀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틈에 그녀와 자니의 주변은 마술이 아닌 진짜 뜨거운 불길이 휘감고 있었다. 비로소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의 가구며 커튼에 불이 붙으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전무…………! 미리 각자의 경호 대상을 배정 받은 나의 수하들이 손님들을 재빨리 피신 시켰기 때문이지.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었지만……… 결국 호출된 정글도가 내게 날아왔고, 정글도에 실려(?) 온 청명검도 곧바로 대교의 손에 쥐어졌다.
-자니! 네 기분은 알 것 같아. 나도 그래서 이 정도까지 두고 봐준 거야. 하지만 더 이상은………
쳇! 내 전음을 씹으며 불길이 더욱 강해지기만… 응? 놈과 미령이가 떠오른다? 아, 저 녀석은 전에 분명 ‘밤하늘을 날았다’는 표현을 썼었 지? 그게 정말로 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거냐? 윽! 쿠와악~! 엄청난 열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니와 미령이를 감싼 화 염 덩어리가 쏜살 같이 문 쪽으로 날았다. 콰앙! 문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분쇄되며 테두리만이 남았다. 마치 두 사람이 하나의 화염덩어리 형태 의 로켓으로 변신하여 발진한 듯한 상황이었다.
“쳇! 저 자식, 기어이!”
나와 대교도 즉각 공공보법을 발동하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자니와 미령이를 품은(?) 화염덩어리는 이미 까마득한 하늘 저편을 날고 있었 다.
“요몽!”
「넵! 추적 중입니다!」
“자룡대주! 은사마군!”
자룡대주는 이미 소형 무전기로 헬기 등의 비행체를 동원 중이었고, 지하무림 공식(?) 카레이서 은사마군도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소교! 미안”
“아뇨. 이럴 줄 알았는걸요.”
“어? 뭐?”
차에 타다말고 돌아보니, 소교는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이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오늘 설마 미령이로부터 시작될 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당신 주위로는 항상 이렇게 요란한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형,부.”
“으……응. 그게, 내가 좀 그렇긴 하지? 처제.”
“후후. 미령이… 무사히 데려올 거죠, 대교 언니?”
“그・・・・・・럼! 당근이지!”
대교가 내 흉내를 내며 대답하자, 소교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태도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차를 출발시키며 다시 돌아보니, 소교는 뇌룡대주를 불러 침착하게 현장 정리를 지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교의 입 모양으로 보아 그녀는 분명 모든 손님들을 향해서 ‘별일 아니에 요. 파티를 계속해요, 우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으음. 소교가 많이 씩씩해졌…….아, 아니지. 소교는 본래 보기와 달리 저런 면모가 있었지?”
“후후, 그럼요. 소교도 엄연히 우리 마군황 일가의 여인인 걸요.”
내………… 일가? 크흠. 이거 참…………! 나 자신이 농담 식으로 말할 때는 잘 몰랐는데………… 대교가 하는 말을 들으니까 왠지 더 실감나고 쑥쓰러우면서도 의무감이 충만해지는구먼! 그래, 난 이제 수하들 뿐 아니라 나의 일가까지 책임져야하는 가장이지. 암! 새삼 각오를 다지며 본격적인 추격이 시 작되었다.
“은사마군! 마음껏 밟아!”
레이서로서의 봉인(?)을 깨는 명령을 내린 셈이었다. 꾸와앙~! 차에서 뭐 이런 소리가 다 나냐 싶은 굉음과 함께, 나와 대교의 몸까지 뒤로 젖혀지 며 좌석 깊숙이 파묻혔다. 급가속을 시작한 차가 홍콩 거리를 미친 듯 질주하면서 저 먼 하늘 위의 불꽃 덩어리도 약간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당연히 이 정도만으로 저 하늘 위를 날아 서 튀는 놈을 잡을 수는 없지? 모든 걸 알고 대비했던 건 아니었지만…………
“자룡대주! 요몽에게 정보 받았지?”
“예, 천주! 3호 헬기가 가장 좋은 합류 지점에 위치합니다! 아, 그리고…….”
무전기 너머의 음성인데도 왠지 자룡대주가 웃고 있는 기색이 느껴졌다.
“방금 조담놈 씨도 출동 시켰습니다.”
응? 조담놈?
“음흣. 제가 ‘전부 당신 탓!’이라고 원망했더니 굉장히 흥분해서 뛰쳐나가더군요.”
조담놈 탓? 어…… 그게, 그러고 보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전에 조담놈이 자니 녀석과 한판 붙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조담놈이 자니를 해 치웠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어? 차창 밖으로 조담놈의 신형이 보였다. 일반인들의 시야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스피드로 건물들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은 마치 저공 비행하는 제트기를 보는 것 같았다. 역시… 내공과 경공 등의 기본기는 날 능가하는 놈이야. 지금은 지나친 자극을 받아서 오버하는 것도 같지만………… 뭐, 여 하간.
도로의 신호며 기본 질서를 무시한 채 달리던 우리 차 앞으로 헬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린 차를 세우고 말 것도 없이, 차와 헬기를 비슷한 선상에서 움직이게 하면서 헬기로 뛰어올라 탔다. 으흐……… 누가 보면 액션 영화 찍는 줄 알겠……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니 저녀 석…………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지? 이젠 육지를 벗어나서 바다를 날고 있어. 기본 방향은 남쪽인 것 같지만……………. 아직 아무 것도 확실한 건 없었으나, 자니의 비행에는 어쩐지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것 같았다. 밤거리를 목적지 없이 달리는 오토바이 폭주족처럼 막연하게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더 불안해. 차라리 미령이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나름 잘 살아 보겠다고 하는 식이면 좋겠는데, 이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치 예전 홍콩 영화 천장지구 속의 유덕화처럼 ‘마지막 질주’를 하는 느낌이랄까………? 저 녀석, 설마…………
「주인님!」
자니가 날아간 궤적의 한 지점, 어떤 건물 위의 옥상에 한 남자가 홀로 그림처럼 서 있었다. 블랙…………! 역시 저 녀석이겠지. ..? 자니에게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시간’을 인식시켜… 저렇게 무작정 질주하게 만든 것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