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55화 : 불꽃, 바다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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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55화 : 불꽃, 바다에 지다.


5. 불꽃, 바다에 지다.

에레보스 암살단의 보스, 블랙 크라우드…………! 이름 모를 건물의 옥상에 서 있는 놈의 모습에서 내가 무심결에 ‘그림처럼’이라는 표현을 떠올렸을 만큼, 확실히 원판의 절세 미녀 같은 외모와 카리스마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가진 것 같았다. 성공한 복제라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 으 음. 어쩐다? 놈을 먼저 어떻게든 제압하고 나서 자니를 진정시켜………? 하지만 블랙은 나와 에레보스의 나름 신사적인 대결 약속을 주도하는 자인 데………… 여기서 내가 먼저 싸움을 걸기도 좀….. 망설이는 사이에 헬기가 점점 블랙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니가 날고 있는 방향을 보고 있던 블랙도 천천히 나에게 시선을 옮겨왔다. 헬기의 바람 때문에 더욱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머리 결이 어째서인지 녀석을 더 요염한(?) 자태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너………… 수하관리 똑 바로 안 하지?

으음. 행동 결정을 하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시비부터 걸었네.

‘용서하십시오, 진유준 님.’

……………쯧. 시비 건 것이 미안할 정도로 정중하게 사과를 해오는 군.

‘자니가 본래 철이 없는 편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말썽을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쳇. 쬐금 미안했던 마음, 취소. 말과 달리 여유가 넘치는 저 표정……… 역시 마음에 안 들어.

-흥. 그 말을 믿으라고? 네가 자기 수하의 심리 파악도 못하는 놈이라는 거냐?

‘못 한다기보다……… 하기가 싫습니다.”

에?

‘너무 완벽한… 화이트의 방식은 재미가 없잖습니까.’

윽…………! 이 자식, 맘에 안 들었다, 들었다 하는 놈이 네?

‘그런 의미에서 자니의 돌출 행동은 저에게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지만…………… 흐음. 제가 조직의 장이 아니었다면 조건 없이 용서해주고도 싶지 말입니다.’

결국은 ‘조직의 장으로서 배신자를 용납해 줄 수는 없다’라는 입장이고………… 쯧. 나도 이해가 되긴 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미령이가 얽혀 있으 4……

-어찌되었건 여긴 내 영역이고, 우리 아이도 잡혀 있어. 자니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단 말이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응? 의외로 순순히 동의를…………

‘제가 자니에게 준 시간은 아직 20시간이나 남아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자니를 진유준 님 뜻대로 다루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쳇. 역시 쉽게 나와 주진 않는군.

그 후에는 만약 내가 자니를 데리고 있다 해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건 자니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아니, 아니. 자니는 어쨌든, 난 나와 너의 문제를 말하는 거야. 너, 지금 날 무시하겠다고 한 거 맞지?

………굳이 시비를 거시는 걸 보니, 자니를 보호해 주겠다고 결정하신 모양이군요.’

……………솔직히, 내가 오지랖 넓은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냥 순수하게 너와 한판 뜨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넌 아무래도 장난 아니게 쎈 놈 같아 서 말이야.

난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노골적으로 살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블랙은 여전히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쌔액 쪼갤 뿐이었다.

‘저 역시 당신 같은 적수라면……… 음. 하지만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당연히……… 안 괜찮지. 젠장. 역시 난 너무 모범 청년이라서 탈이야!

‘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전 일단 뒤에서 구경이나 하도록 하죠.’

블랙의 등 뒤로 스으윽- 커다란 날개가 펼쳐지고 있었다. 거대한 까마귀처럼 검은 깃털의 날개였다. 뭐…………야, 이거. 사념으로 만든 날개…………? 헬 게이트 꼬마와 같은 능력인 건가? 게다가 진짜 새의 날개처럼 보일 정도의 현실감은 헬 게이트보다도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제기. 역시 저 녀 석은 다른 멤버들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짬뽕형(?) 괴물인 걸까? 후욱~ 가벼운 날갯짓 한 번으로 떠오른 블랙이 훌쩍 멀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날개를 가진 남자라…………! 나름 괜찮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문제는 내가 조만간 저 현대판 악마 같은 녀석과 싸워야 한다는 건 데………… 으음. 뭐, 그건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고! 나는 다시 헬기를 출발시켜 자니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며칠 뒤가 될지, 20시간 뒤가 될지 몰라도, 지금은 블랙과의 싸움보다 자니를 멈추게 하고 미령이를 구하는 일이 더 급한 것이다. 어, 근데……………. 자니의 지금 저 움직임은…… 어째 육지 쪽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지그재그로 정신없이 날던 모습도 아니고………… 이건 아무래도 정신 차리고 돌아오는 분위기……………? 내가 타고 있는 헬기는 물론이고, 자룡대주가 동원한 헬기 대여섯 기가 더 자니의 비행 방향을 계산한 요몽의 지시에 따라 모여들고 있었다. 그보다 아래 쪽의 상공(?)에선 조담놈 역시 맹렬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으며, 더 아래쪽의 거리에도 몇 대인가의 오토바이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 었다.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옷과 헬멧까지 올 레드…………! 사영 어르신의 혈의문(血衣門)……… 그 베일에 쌓여있던 살수들이 드디어 첫 선을 보이는 건 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초거대 조직을 노리고 비밀리에 양성된 살수들의 첫 미션이…… ‘보쌈 당한 문주님 딸래미 구하기’라는 건 좀 그렇지 만………… 사방에서 자신을 노리고 모여들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니는 계속 단순 궤적의 비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서히 불꽃이 사그라들며 그 안에 있는 자니와 미령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싶더니, 결국에는 해변가의 한 고층 건물 위로 착륙하고 있었다.

“천주. 곧 ‘구룡 호텔의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건물을 폐쇄하겠습니다!”

-땡쓰, 자룡대주. 아, 다른 헬기들은 이제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해.

“복명!”

헬기는 이제 우리가 탄 기체만 접근을 계속했지만, 혈의문의 오토바이 부대는 목표를 확정 짓고 빠르게 포위망을 형성하며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 나 정작 자니는 그 어떤 상황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아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교. 어째 저거…………

-으으음…….

구룡 호텔의 옥상에서는 납치범과 납치된 소녀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미령이는 자니의 품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뭐 라고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으며, 계속되는 미령이의 삿대질과 큰소리를 자니는 얌전히 고개 숙인 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나름 다행 인 분위기의 전개이긴 한데. 자니 녀석, 여러 모로 남자 망신이로구먼. 난 언제든지 뛰어내릴 수 있게 헬기를 호텔 상공으로 이동시키면서도 잠 시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언제인가부터 기가 죽은 듯 본래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던 미령이가 지금 부활(?)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멍청한 남자 같으니! 이런다고 내가 감동이라도 할 줄 알았던 거야?”

앙칼진 음성과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표정이며・・・・・・ ‘나의 사랑을 한 조각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알아서 엎드려 경배하라’는 태도가 너무나 잘 어울 리는, 본래의 작은 악녀 미령이였다.

“소교 언니 생일날, 가족들 앞에서 납치나 당하고…… 으~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이람!”

거듭되는 원망에 자니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극적이고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령이는 얼마간 쏟아붓고 나니 조금은 진정한 기색이었지만, 계속 자니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자니…… 자니 엠블럼! 당신, 내가 정말 좋아요?”

“응? 어…… 음. 그래.”

“……내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까 나와 함께 있던 남자 봤죠?”

“어, 그 남자인가?”

“그래요. 그리고…… 난 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당신을 이용했어요. 그거, 알고 있었나요?”

“………그래. 역시 그랬군. 어쩐지 그런 것 같았어.”

“흥. 아주 바보는 아니었군요.”

미령이 저 녀석, 아무리 우리가 가까이 있어도 굳이 자니를 자극할 것까지는……………

“아니야, 미령. 난 바보가 맞아.”

음? 자니, 저 녀석의 반응이 어째……… 자니는 여전히 미령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 않았 다. 하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좀더 차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오늘 미령의 하트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썽을 부린 것이 아니야. 아 물론, 미령과 함께 하늘을 날며 바다를 본 것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 었지만……”

뭔가 녀석답지 않은 분위기의 대사와 함께, 자니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현대판 혈의문 살수들이 조담놈보다 먼저 옥상으로 올라오 고 있었다. 정상적인 출입문을 열고 나타나서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도 중인 자들도 있었고, 아래층의 창문을 통해서 벽을 타고 올라오는 중인 자들 도 있었다. 모두가 레이싱 선수처럼 상하의가 연결된 유니폼(?)으로 통일된 복장이었고, 여전히 붉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성별이며 나이며 아무 것도 구분되지 않았다.

“후후. 많은…… 용감한 기사들이 출동한 것 같군. 미친 용…… 미친 불을 뿜는 미친 용으로부터 아름다운 공주님을 구출하기 위해서 말이야.” 저 녀석, 기사가 아닌….. 악역을 자처하는 건가?

“미령, 당신은 내가 오래 전에 알고 있던 그녀와 많이 닮았어. 늘 나를 야단치고, 구박하고, 보호해주며 사랑해주던…

음? 역시나 첫사랑과 닮은 소녀에게 끌리는 심리였다는 얘기………? 웬만한 소설의 전형적이고 속 편한(?) 설정 같기는 하지만, 여하간 나름 공감은 가는……………

“미령.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어. 불길에 타올라……… 재가 되어 사라졌지.”

이………… 런 얘기는 빼고.

“실험실 최고의 못난이, 아무런 특수 능력도 보이지 못하던 내가………… 처음으로 분노하여 일으킨 불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런 데………… 태워 버렸어, 그녀까지.”

“자니, 당신……”

“그 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지. 나는 무엇이든 불태워 버렸어! 내가 태어난 실험실도, 내 동료들도! 전부! 하핫! 상관없잖아? 불은 본래 그런 거 라구!”

격한 감정에 비해 크지 않은 음성이었다. 그러나 미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니의 몸에서 다시 뜨거운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자니?”

“……미안해. 난 오늘 단지…… 미령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미령에게, 그녀에게………… 내가 미치광이 불꽃이란 것을…………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불꽃이란 것을 말이야.”

저 녀석, 결국….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는 분위기지?

“세상의 누구도 날 어쩔 수는 없어! 그 남자…… 블랙조차도!”

역시… 블랙, 그 녀석에게 실질적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 자니의 자존심… 아니, 더 깊은 어떤 감정의 반발을 일으킨 것 같은…… 건, 같 은 거고! 자니의 심리 상태가 어떻든 간에, 결국 녀석이 본격적으로 날뛸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영 어르신이 키워낸 혈의문 살수들도 보통내기는 아닐 테지만, 상대는 프리메이슨의 초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초인을 죽이기 위해 뽑힌 초인 킬러인 것이다.

“모두우~ 잠까아안!”

응? 고함을 지르며 등장한 것은 조담놈이었다. 혈의문 살수들 보다 건물에 도착한 시간은 늦었으나, 혈의문이 지극히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에 비해서 조담놈은 다짜고짜 건물 벽을 타고 달려(?)올라 오고 있었다. 단숨에 옥상 위로 신형을 드러낸 조담놈이 짝퉁 정글도를 한껏 치켜 올렸다. “내가 먼저얏!”

놈의 칼이 내리쳐지는 순간, 무서운 검기가 옥상을 반으로 가를 것 같은 기세로 뻗어 나갔다.

“13호? 훗!”

자니의 불꽃이 더욱 솟구치며 검기가 날아드는 방향에 집중되었다. 카카캇, 콱! 펑! 압축된 듯한 화염의 방어막과 검기가 격돌하면서 불꽃의 파편 이 사방으로 날았다.

쳇! 열기와 검기의 여파 때문에 우리 헬기의 위치 유지가 어렵… 음. 하지만 역시…………!

나와 대교가 나서지 않은 건, 혈의문 살수들이 전투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기대대로 미령 이를 무사히 구출(?)해낸 상태였다. 과연, 제법인데…………? 저런 비상식적 공격과 방어가 오가는 와중에 한 명이 뛰어들어 미령이를 안고 옥상 밖으로 다이빙…………! 물론, 지금은 밧줄을 의지한 동료들 몇 명이 공동으로 그 살수와 미령이를 잡아 건물 밖에 매달려 있는 상태…………!

“……흣. 자니, 네 녀석도 날 기다렸겠지?”

선빵이 무산된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조담놈의 칼에는 이미 다음 도결로 이어질 기운이 충만해 있었다.

“응? 내가 왜?”

“뭐?”

조담놈이 주춤한 것은 자니의 여유 있는 태도가 가식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3호. 착각하지 마라. 지난 번에 너와 승부를 내지 못했던 건, 내가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 적당히 하라는 블랙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너 따 위 진유준의 카피는 벌써…….”

“웃기지마!”

조담놈의 살기가 급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놈의 칼에 맺혀 있던 기운이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계열이 다른 기운이 이글거 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강(陽剛) 계열의…… 아니, 노골적으로 태양마공(太陽魔功)의 기운만을 끌어올리는 건가? 최강의 불꽃 능력자와 불의 기 운으로 승부하겠다고…? 자존심 상한 건 알겠지만, 저런 식은 좀…………

“잠성결(星), 직격인(直擊印)………! 네 놈의 불보다 이게 더 뜨거울 걸?”

음?

“하하핫~! 당신 정말 바보 같아!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자니의 자신만만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조담놈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척, 척 걸음을 옮겨 자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니는 조금 전부터 한 손을 들어 그 손바닥 위에 둥근 불꽃의 공을 만들어 낸 상태였는데, 그것은 시시각각 더 응축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이 어마어마한 열 기가 저 작은 공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건가? 마치 자니의 손에 축소된 태양 이 쥐어져 있는 듯한……… 쳇. 안 되겠다! 난 더 이상 헬기에서의 편안 한(?) 관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체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헬기를 뒤로 후퇴시키며 대교의 손을 잡았다. 우린 함께 몸을 날려 두 불꽃 바보 (?)들 쪽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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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교는 너무나 정확하게 내 의중을 읽고 보조를 맞춰주고 있었다. 우린 엄청난 열기의 중심부를 피해서 적당한 지점 에 착지했고, 두 불꽃 바보들은 우리를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니의 손에서 작은 태양이(?) 후웅~ 떠올랐을 때, 조담놈의 칼도 고도 로 집중된 양강의 뜨거운 기운에 쌓여… 웃! 응축된 화염의 구가 쏜살같이 조담놈을 향해 쏘아졌고, 조담놈은 이를 악물고 화염의 구를 내리쳤다. 쿠오오! 의외로 크지 않은 격돌 소리! 화염의 구가 조담놈의 칼에 반쯤 잘린.. 아니, 화염의 구가 조담놈의 칼을 먹은 형태…………? 아니, 아니 아직은 그 어느 쪽도 아닌, 팽팽한 힘 겨루기…………?! 화염의 구가 전진하는 힘은 분명 막혔고 조담놈도 아직 건재했다. 그러나 시시각각 조담놈의 칼과 놈의 몸에서까지 치익~ 칙~ 급격한 건조와 발화로 이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조담놈의 옷에 지글거리고 녹는 부분까지…… 쯧. 역시 화력으론 밀릴 수밖에 없는 거 같은・・・・・・ 음?

“우오오옷!”

악에 받친 기합성과 함께 조담놈의 기세가 불끈 치솟으며 놈의 칼이 더욱 앞으로 밀어붙여지고 있었다. 저 화염의 구도 속절없이 갈라지는…………… 아! 다음 순간, 화염의 구가 좌우로 갈라지며 콰르륵~ 화륵~! 더욱 큰 불길로 변하고 있었다. 구가 깨지며 안에 갇혀 있던 화염이 일시에 쏟아지듯, 아 니 갇혀 있던 불의 용이 비로소 깨어나 마수를 드러낸 것 같은 광경이었다.

화르르르~

결국 불길이 조담놈을 삼켜 버렸… Ŏ ~ 젠장! 여기 까지 뜨거워 죽겠네!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는 우리도 화산 바로 옆에서 용암의 분출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용암 같은 열기에 쌓인 조담놈은 이미 한줌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자니 녀석도 이미 승부가 끝난 듯이 여유롭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핫~! 이제 당신 차례인가, 진유준? 어설픈 카피 보다 당신은 좀더…

“멍청이!”

“뭐?”

나의 경고(?)를 알아들은 건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건지 몰라도, 자니는 흠칫 긴장하며 조담놈을 태운(?) 불길을 돌아보았다. 후륵~ 여전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었지만, 뭔가 어색한 패턴으로 짧게 일렁였다.

“설마……”

쉬르르르- 한 순간, 불길이 안쪽으로 말려들며 사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화염 아래의 바닥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윽?”

자니가 다급하게 위로 뛰어 오르는 순간, 쿠왕! 녀석의 발밑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큭!”

자니는 재빨리 발밑에 화염 장벽을 만들었고, 그 장벽에 막힌 시멘트 조각들이 힘없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즉, 공격(?)한 것은 바닥의 시멘트 조 각들뿐이었다.

“헤이~ 자니!”

조담놈의 음성은 자니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죽어!”

말보다 먼저 조담놈의 일격이 자니를 향해 내려 꽂혔다. 퍼억! 붉은 양강의 덩어리가 해머처럼 자니를 찍어 누르며 옥상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콱! 쩍! 떨어짐과 동시에 바닥을 뚫고 내려가며 쾅! 쾅! 연 속으로 몇 번이고 파괴음이 들려왔다. 양강의 결정체를 끌어안는 듯한 모습으로 떨어져 내린 자니는 적어도 다섯 개 층의 아래까지 처박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새삼 감탄했다. 건물 옥상의 두꺼운 천장이 커다랗고 흉한 구멍을 드러낸 채 그 안에서 모락모락 몇 가닥의 연기를 피어 올리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잠성결의 직격인…………!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에 직격된 듯한 흔 적…………! 연옥서생 사부는………… 자신이 만든 무공을 자신이 실제로 펼칠 수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까………….? 

“큿!”

짧은 신음성과 함께 착지하는 조담놈의 기색도 어딘가 불안정했다. 놈의 전신 여기저기에서도 희미한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오고 있었으며, 머 리카락이며 눈썹이 그을려 있는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치이! 자니, 이 징그러운 녀석………! 불장난도 어느 정도라야지………”

조담놈은 예상을 넘는 열기에 질렸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투덜댔지만, 난 나름 사부(?)로서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용암 덩어리 수준의 열기를 버텨내면서 아래로 지독아(地毒)를 펼쳐 페이크를 건 것은 내공이 나보다 빵빵한 저 녀석만이 할 수 있는 짓이었어. 게다가 그러고 도 저렇게 극성에 가까운 직격인을 쓸 수 있다니…… 으으음. 역시 내가 본래의 내공을 되찾아도 파워 승부를 걸면 곤란한 놈이었어…………! 다만, 여 전히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가 좀…

-조담놈. 설마… 벌써 방심하는 건 아니겠지?

-응? 으, 어………… 그, 그야 당연하지!

조담놈은 날 뭘로 보고………라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놈은 분명 조금 전 한 숨을 돌리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화르륵~! 화륵! 작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몇 덩어리의 불꽃이 구멍 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저런 작은 불꽃 자체는 별 거 아니었다. 저게 왠지 다시 엄청난 거대 불길이 점화되기 시작하면서 나오는 불티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문제였다.

장소가 이런 건물 위가 아닌………… 충격을 줄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단단한 장소였다면, 이미 승부가 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으음. 어쨌든 그건 지난 일이고…………… 이제 상황이 또 어떻게 흘러가려나?

“후후후~”

웃음 소리였다. 자니가 직격인에 눌려 처박혀 버렸던 구멍 속에서 작은 웃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건물의 자재가 불에 타며 발생하는 회색 연기가 어느 사이에 사라져 있었고, 그 대신 더 희미하지만 섬뜩한 느낌의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이거 한 방 제대로 먹었는걸…………? 13호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후후~ 하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음성과 함께 자니의 몸이 서서히 구멍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을 휘감고 이는 불길의 색과 느낌이 뭔가 전과 달랐다. 요몽이 땀(?)을 삐질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입을 열었다.

「지금 막, 표면온도가 1,200도를 넘어섰네요. 아직은 ‘용암’ 수준이지만, 계속 상승하고 있으니………… 에고~ 저대로 가다가는 태양처럼 뜨거워질지 도 모르겠어요.」

현재 1,200도· .? 이런. ! 정말 요몽의 말대로 계속 온도가 상승한다면 대처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 불꽃 능력자의 약점은 불꽃이 직접적 인 타격에 약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자니도 열 에너지를 압축하여 어찌 방어막을 만드는 능력을 키웠던 모양이지만, 그것도 조담놈 수준의 적이 제대로 칼질할 경우에는 못 깰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니가 지금의 패턴으로 계속 온도를 올릴 경우에는 뜨거움 자체가 완벽한 방어막 겸 공격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쳇! 이따위 불장난 같은 건….”

조담놈이 칼을 왼쪽으로 돌려 그쪽 허리에 차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몸을 낮추었다. 칼이 칼집에 들어가지 않은 대신 왼손으로 칼을 쥔 오른손의 등을 살며시 누르는………… 발도의 가장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치명적인……… 일격필살의 자세…………! 자니는 지금 누가 총을 쏜다고 해 도 그게 몸에 닿기도 전에 기화되어 사라질 것 같은 상태인데…… 그걸 쾌도, 칼질 스피드로 깨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

“후후후~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13호. 네 칼이 ‘침묵의 유령’ 녀석보다 빠른지…

아니, 이젠 그래도 소용없겠지만 말야.”

“닥쳐, 자니! 잔말 말고 더 온도나 끌어 올려봐. 아직… 사우나 하는 것만도 못한 열기로 큰 소리 치지 말고.”

윽………! 저놈 또 오버한다. 조금이라도 더 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저런 객기를………… 쯧. 저런 게 조담놈다운 태도이긴……

-오라버니…………! 아무래도………… 그만 두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는 틀림없이 둘 중 하나가 죽을 거예요.

-그………게, 나도 점점 그러고 싶어지기는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나선다 해도 강제로 그만 두게 할 자신도 별로 없었다. 객관적인 전투력 수치만으로 보자면 두 놈 다, 나를 능가할 정도의 괴 물들이니 말이다. 으으음. 어쩐다?

어쩔 거냐, 진유준…………! 지금 나에게 둘 중 누가 더 조금이나마(?)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녀석이지……………? 아니, 아니….. 소위 싸나이들의 승부 에 끼어들어서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내가 두 놈을 동시에 제압하는 불가능하고…… 으~ 모르겠다. 내 진짜 깊숙하고 솔직 한 마음은 사실, 이 승부를 끝까지 보고 싶다는….


「어, 주인님! 대교 님!」

응?

「미령님이 올라오고 있어요. 혈의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려도 듣지 않고 멋대로..

뭐시라? 쾅~하는 소리와 함께 옥상 문이 열리…지 않았다. 조담놈과의 싸움, 아니 자니의 열기만으로도 현재 이 건물 옥상의 구조물 중 멀쩡한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쾅! 쾅! 쾅~!

“아이 씨!”

안쪽에서 비틀린 문을 걷어차며 짜증을 내는 미령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기만 하던 자니의 불이 주춤 멈추는 것 같았다. “안 열려! 안 열린다구! 이거 뭐야!”

짜증 섞인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자니의 불이 스륵 열기를 떨구기 시작했다. 퍽!

“앗! 아아~”

둔탁한 소리 끝에 들려온 비명(?)이 자니의 불을 급속도로 꺼트리고 있었다.

“히잉~! 아파아!”

“미, 미령!”

자니는 다급하게 문으로 날아갔고, 일격필살의 쾌도에 올인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조담놈은 그대로 무시 되었다.

“미령! 다친 거야? 물러서! 내가 문을 열………….”

콰앙! 때마침 문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려졌고, 문에 바짝 다가서 있던 자니는 얼굴을 강타 당해 코를 쥐고 주춤주춤 물러서야 했다.

-최강의 불꽃 능력자가………… 간단히 쌍코피 터졌군.

-그러…………게요? 미령이도 참…

대교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문을 연 건 미령이가 아니라 혈의문 살수 중의 한 명이었다. 발목을 접질린 미령이대신 문을 차서 열어 준 모 양인 혈의문 살수 뒤에서 미령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응? 자니? 뭐…하는 거예요?”

“아, 아니…… 그냥………”

자니가 무심결에 손을 내려 코피를 찍흘린 얼굴을 드러내자 미령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예요! 누구도 손 대지 못할 거라고 큰소리 치더니!”

“이경 방굼 미령 때무네…

자니의 코맹맹이 소리 때문에 구경꾼인 우리는 슬며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나, 미령이는 자못 진지했다.

“어쨌든, 자니! 이제 바보 짓 좀 그만해욧!”

“바보짓?”

“그래요. 이게 바보짓이 아니고 뭐예요?”

“미령. 난……”

“야!”

불쑥 고함을 질러 끼어든 것은 조담놈이었다. 놈은 계속 방심하지 않고 자세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자니! 할거야, 말 거야!”

“당신은 좀 닥치고 있어욧!”

“뭐, 뭐?”

조담놈은 미령이의 뾰족한 음성에 발끈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미령이는 조담놈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이 쬐그만 계집애까지 날…

-됐어, 조담놈. 이미 분위기는 다 파토 났잖아.

-그래요, 조담놈 씨. 동생의 무례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우리 커플까지 나서자, 조담놈은 결국 자세를 풀며 칼을 내리고 말았다. 놈은 딱 ‘나안~ 싸우다 말고 무시당했을 뿐이고. 미스 자룡 보고 싶고~ 난 자룡뿐이고~’ 정도 모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우리 역시 지금은 곧바로 조담놈을 무시할 수밖에 없겠군. 아무래도 미령이와 자니 쪽이 더 궁금하니…………

“자니……! 내 말 잘 들어요.”

미령이는 새삼 진지한 태도로 자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아니, 당신의 친구인 그녀에게, 지금 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거죠?”

자니는 대답하지 못했고, 미령이의 추궁 아닌 추궁이 이어졌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그런 일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미령.”

겨우 반문했지만, 자니 역시 미령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자니. 자니 엠블럼…………!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은 거죠? 미안하다고· 자신의 실수를, 아니………… 그때의 미숙함 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거죠?”

미령이의 말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자니는 아무런 반론을 하지 못했다.

“바보 같은 남자…………!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면 될 것을, 뭐 하러 이렇게 바보짓을 하며 말썽을 피우는 것으로 얼버무리려 하다니………! 하 여간,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 같다니까.”

“……미령. 당신은 정말……”

“닥쳐요.”

조담놈에게와는 달리 작았으나, 충분히 살기(?)를 머금은 음성이었다.

“흥! 내가 누구와 닮았다는 둥, 그딴 소리를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음. 하지만 이런 면도 그녀를………… 윽!”

정강이를 걷어차인 자니가 몸을 구부린 채 아파하며 남자망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흥! 이번 한 번만은 이걸로 용서해 주겠어요. 그리고………… 흠. 자니가 굳이 원한다면………… 에……… 누군지 정말 나와 아주 조금은 닮은 모양이니… 그, 그래요. 내가 대신 사과를 받아 줄게요.”

“뭐? 그건……”

자니가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자, 미령이는 그 시선을 피하며 애써 심통이 난 듯한 목소리를 냈다.

“바보 같이! 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내가, 그녀가 용서해 준다고 하잖아요!”

미령이 녀석, 싫다면서도 결국 자니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연인(?)의 대역을 자처해 주는군. 자니 녀석도 더욱 그녀와 미령이를 겹쳐서 보는 듯한 표정이고 말이야. 과연 녀석이 미령이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음? 자니는 문득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미령. 미령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난 역시 아직 그녀와 미령에게 사과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아까 날뛰기 시작하기 전과 비슷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표정이 달랐다. 자니는 한결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후후~ 역시 말이야, 남자는 자존심! 여자에게 자기 잘못을 사과하기 전에, 이제는 절대 아프거나 슬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필요해.” 그런 자신감 얘긴 나도 공감하지만, 그게 자기 잘못 사과에 우선해야 하는 건지는 좀…………

“미령. 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해. 나 자신의 힘은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몰라도, 그런 힘으로도 넘어 설 수 없었던 남자가 있어. 만약 그가 나의 소중한 사람을 해치려 든다 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블랙. 역시 그 녀석 얘기로 귀결되는 건가?

“날 그렇게 형편없는 놈으로 만든 남자………! 난 그 남자와 싸우기 전에는 미령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겠어.”

같은 남자로서 나름 이해가 되는 얘기이기는 한데. 음. 아무래도 미령이의 의견은 다른 것 같군.

“이~ 진짜, 바보 멍충이!”

미령이는 버럭 화를 내며, 연속으로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피하더니 결국 훌쩍 공중으로 완전히 도주(?)해 버렸다.

“하하핫! 미령! 기다려 줘! 꼭 이기고 돌아올게!”

“바보! 안 기다려! 왜 남자들은 이렇게 뭐든 싸워서 해결하려는 거야?”

웃. 왜 내가 약간(?) 찔리는 기분이…………

“하하~ 그녀였다면, 반드시 이기라고 격려해 줬을 걸?”

“닥쳐! 난 그녀가 아니야! 이 멍청한 남자! 지면 나한테 죽을걸 알아!”

“하하하하핫!”

말의 앞뒤가 일치하지 못하는 미령이의 격려(?)에 힘입은 듯, 자니는 크게 웃으며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캡틴~! 한판 붙자아!”

자니의 자신만만한 도전 선언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자니의 불꽃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고 힘차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챔피언(?) 블랙 크라우드는 이 도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블랙…………! 저 놈은 아까부터 저기 저………… 맞은 편 건물의 송신탑 아래에 서서 구경 을 하고 있었지만, 계속 그랬 듯 지금도 태연히 팔짱을 낀 자세로 날개의 깃털 하나 (?) 까닥하지 않고 있군. 부하였던 녀석의 도전이 괘씸하다고 화 를 낸다거나 하는 반응은 고사하고………… 그야말로 ‘뉘집 개가 짖나’하는 표정과 태도랄까?

“캡틴! 어때? 여기서 그냥 할까? 아니면…

“따라와라.”

드디어 입을 연 블랙의 검은 날개가 스윽 펼쳐졌다.

“명색이 암살단의 일원인 녀석이 더 이상 군중들 앞에서 쇼를 하게 둘 수는 없…

“우아압!”

블랙의 말이 끊긴 것은 자니가 기습적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기습이라기엔 너무 먼 거리! 하지만 블랙이 지금 싸움 장소를 옮기고 싶어 하는 이상, 나름 심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응? 아닌가? 순식간에 날아든 자니를 코앞에 둔 시점까지도 블랙은 피식 – 한 번 웃었 을 뿐이었다. 콰와악! 자니의 저돌적인 몸통박치기가 블랙의 복부쯤에 작렬했다. 이어, 자니는 계속 미친 듯 밀어붙이며 돌진했다. 블랙은 자니, 아 니 화염 덩어리를 안은 채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려나기만 하고 있었다. 좋아, 자니! 종합 기량이 앞선 적과는 그렇게 단순한 막쌈으로 몰고 가는 편 이………… 어, 어?

-헬기!

자니와 블랙이 한데 엉킨 채 쏜살같이 멀어지고 있었다. 방향은 다행히 시내가 아닌, 바다 쪽이었다. 나와 대교는 서둘러 헬기를 다시 불러 올라탔 고, 그런 우리에게 미령이가 소리쳤다.

“대교 언니! 유준 오빠! 그 자식, 꼭 데려와줘요! 확, 발로 차주게!”

-그, 그게…………

내가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사이에 헬기는 빠르게 미령이로부터 멀어져 갔다.

-대교. 난・・・・・・

-아무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니가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자니는 지금 오라버니뿐 아니라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거라는 것도 알아요. 미령이………… 그 아이도 내심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럴까? 하지만 그래도… 쳇! 저 자식들, 더럽게 빠르네!

나는 공연히 짜증을 내며 자니와 블랙을 보았다. 우리 헬기는 직선 비행을 하고 있는데도 놈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만 있는 것이다.

「와우~ 엄청난 스피드인데요? 아까 미령 님을 안고 달아날 때보다도 빨라요!」

자니의 풀 스피드 비행은 강적을 밀어붙이면서도 이런 수준…………? 아니면 블랙이 일부로 밀려 주는 척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가려는 걸 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요몽! 뭐하냐, 임마!

「에? 아, 죄송! 바로 중계해 드릴게요! 패티! 빨랑 데이터 보내 줘어!」

요몽 녀석, 몽몽의 지휘를 받을 때는 여기저기 잘도 참견했지만, 막상 지가 다하게 되니까 버벅대네. 빨리 몽몽이 복귀를 해줘야 하는………… 음. 이제 야 나오는 군. 요몽이 서둘러 패티의 위성 영상을 조합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니의 불에 블랙이 삼켜진 채 날고 있는 상 황…… 아, 아니 야.

「어… 화원(原)이 두 개네요?」

그래. 형태와 색이 미묘하게 다른 두 개의 불꽃이 엉켜 있어. 블랙, 이 녀석은 역시 자니와 같은 불꽃 능력까지 쓸 수 있는 거군.

「한 쪽이…… 그러니까, 자니로 추정되는 쪽이 조금 더 온도가 높은 것 같아요.」

불꽃에만 특화된 자니 쪽의 불이 조금 위인 모양이지만, 블랙이 과연 끝까지 상대의 특기로만 승부를 겨뤄 줄지는…………… 음? 어쩐지 놈들이 날아가 는 속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확 줄어들고 있어! 위성 영상으로 확인하고 얼마 지나기도 전에 우리의 시야에도 직접 보 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싸움의 현장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날기를 멈춘 후로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전부 상 대를 태우기 위한 힘으로 집중하기 시작한 듯, 두 괴물이 일으키고 있는 불은 이미 단순한 불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치 우주에서………… 막 탄생 한 신성(新星)들이 부딪치고 있는 듯한…………… 그야말로 광활한 우주에서나 펼쳐질 별들의 격돌이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만 같 았다. 수십 미터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때문에 부근 바다의 수면이 끓어오르며 엄청난 규모의 수증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헬기는 거대한 규모의 수증기 주변까지만 접근할 수 있었다.

「히잉~ 열 에너지 폭주가 너무 심해서 내부 투시가 어려워요오!」

…………대교. 이제 우리가 직접 가자.

우리는 즉시 헬기에서 몸을 날려 바다로 뛰어 들었고,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며 바다를 헤엄쳐 갔다. 놈들의 불은 어느 덧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 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바다는 더욱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놈들이 어느 사이에 수면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점점 가까워지며 내력을 눈에 집중시키니까 어느 정도는 보이기 시작했어…….이, 이건…… 설마, 자니가 승리하는……… 분위기? 붉은 화염 속에 어른거리는 두 개의 그림자 중에서 자니로 추정되는 그림자는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앞의 그림자, 절반 이하로 줄어든 날개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블랙 은 힘 없이 상체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니. 네가 이겼다. 이 블랙 크라우드, 에레보스의 캡틴을’

아…………! 지금 블랙이 항복 선언을 한 건가?

‘그러니………… 이 영광의 순간을 품고, 기쁜 마음으로 가거라.’

이, 이런 제기!

-대교!

나는 수면 위로 몸을 떠올리며 발을 내밀었고, 대교는 깍지 낀 손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주며 강력한 내력까지 보조해 주었다.

파아앗! 난 로켓처럼 단숨에 놈들의 위로 날아오르며 정글도를 치켜들었다.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 반혼참(返魂斬)! 정글도와 닮았으나 몇 배 크 기로 확장된 듯한 달빛의 칼날이 화염을 가르며 블랙을 향해 내려쳐졌다. 쿠오오오오- 불길과 바다의 수면이 거의 동시에 참수되듯 갈라지며 사방으로 불꽃이 흩날리고 물과 수증기까지 솟구쳤다. 젠장! 지금 공격으로 블랙 놈의 살수를 막았는지, 어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 난 다시 바다로 떨어져 내린 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요몽! 뭐 하는 거야, 임마!

「그, 그게……… 그게, 주인님. 아무래도…………」

이제 스캔을 방해할 정도의 열 에너지의 폭주가 사라졌음에도 요몽은 곧바로 보고하지 못했다. 마음 약한 요몽이 어물거리는 사이에 내 눈에도 상 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패……! 구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 그런 것 같군. 빌어 여전히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수증기 사이로 블랙과 놈의 검은 날개가 보이고 있었다. 놈은 분명 자니 먹을! 의 뜨거움에 밀렸던 듯, 입고 있던 옷의 종류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타고 그을린 행색이었다. 그러나 등의 날개는 새로 돋아난 것처럼 생생 하고 힘차게 펼쳐져서 놈의 몸이 당당히 공중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 놈의 한 손에 쥐어져 있는…………… 저건… 자니의…… 심장……?! 자니의 시체는 블랙의 아래쪽 수면 위에 떠 있었다. 천천히 가라 앉기 시작하는 자니를 따라 나도 바다 속으로 고개를 숙였다.

웃고…………있는 거냐, 자니. 적어도 불꽃 승부에서만큼은 블랙을 이겼다는………… 아니, 한순간에 모든 것을 걸고… 순수하게 타오를 수 있었다 는………… 그런 자신에 만족했던 거냐…………? 그래서 그렇게 웃으며………… 갈 수 있는 거냐, 자니. 최강의 불꽃 능력자, 자니 엠블럼. 녀석과 녀석의 불꽃은 그렇게 바다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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