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85화 : 특별한 어둠 활용법. (3)

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4부 – 85화 : 특별한 어둠 활용법. (3)


5. 특별한 어둠 활용법. (3)

나는 인상을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쪽으로 오던 산드라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난 모처럼 남자에게도 섬세한 배려씩이나 해주려고 출동하려는데, 정작 산드라는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진유준님?”

“가봅시다, 시그마한테.”

“예? 아, 하지만, 지금 시그마님은.”

“보아하니, 아직 당신 말도 안 듣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한 번 해보지. 남자 대 남자로서의 대화라는 거.”

「뭐예요오! 지금 주인님 분위기는, 남자 대 남자로서 손 좀 봐주겠다, 분위기예요!」

요몽은, 이 몸의 진심을 폄하하는 망언을 계속했지만, 결국 산드라는 시그마가 짱박혀 있는 곳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잠시 후.

내가, 산드라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곳은, 토르가 머물고 있는 선실 부근의 다른 선실이었다.

「어? 주인님. 주의하세요. 실내에 강력한 마력으로 인한 공간 왜곡 현상이 감지되고 있어요. 뱀파이어의 영역인 건 맞는데, 뭔가 전과는 달라요.」 쳇. 뱀파이어의 영역이란 건, 나의 마군황령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이건 뭐.

나는, 정글도로 단숨에 선실의 문과 시그마의 영역까지 잘라버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사내 녀석이 계속 이렇게 궁상떨고 있을래?”라고 시그마를 닦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참았다. 날 데려오기는 했지만, 문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산드라 때문이었다.

시그마가 이러고 있는 건, 애인 산드라 보기 쪽팔려서가 가장 클텐데, 여기서 더 망신을 주면 안 되겠지? 에효~ 그래. 참자, 진유준. 일단 나부터 진정하고.. 응?

「어머? 문 쪽의 공간 왜곡만 한정적으로 해제되었어요. 시그마씨는 주인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날 기다렸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느껴지는 기운에 변화가 생긴 건, 나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문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밀어보니, 쉽게 열려졌다. ‘진유준님. 부디…………?

산드라의 약하고 떨리는 텔레파시 때문에 쓴웃음이 지어졌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라? 이건 또 뭐야? 이건 기존에 알고 있던 뱀파이어의 영역과 많이 다른 거 같은데?

나는, 지금 막 흑해1호의 많은 선실들 중에서,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있는 정경은, 결코 작은 선실 안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실은 고사하고, 실내도 아닌, 드넓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같은 곳이었다.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보면 그렇지, 출입구가 사라져 버릴 줄 알았어. 문이 있던 공간이 지금은 휑한 허공이고, 전체적으로 나는 지금 어느 이름 모를 바닷가 언덕에 서있는 상황이 된 거로군.

“이봐, 시그마. 이건 환영 같은 건가? 아니면………..?

나는, 나보다 십여 미터 정도 아래쪽에 서있는 시그마에게 묻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 시그마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 박자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젠장, 그걸 깜박했네. 통역격인 산드라가 없으니, 어쩐다? 그 뭐냐, ‘피의 고리’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면, 또 내 피같은 피를 써야 하는 거야?

이곳은 환각이 아니오.’

응? 지금 이건?

‘당신과 나의 피의 고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소. 당신의 거부감 때문에, 내 쪽에서 먼저 끊어두고 있었을 뿐.’

“또 피같은 피를 쓰지 않게 된 건 좋은데, 이 피의 고리라는 건 언제까지 연결되는 거지?”

‘이정도 약한 고리는 2일 정도요.’

“그렇군, 그럼 다음 질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환영이 아니라면 대체 뭐지? 설마 당신이 산드라에게 금지해 놓은 장거리 순간 이동으로 날 어딘가로 데려온 건 아닐 테지”

‘그런 것은 아니오. 이곳은 분명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공간.’

젠장. 내가 이것도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만들어낸 허무의 공간은 밤하늘의 별처럼, 셀 수조차 없이 많소. 이 슬픈 언약의 장소가 나의 추한 비겁함을 가장 또렷하게 투영해주는, 거울 속의 …………..?

“아, 거, 쫌!”

나는 참지 못하고, 시그마의 말을 끊은 다음에 신경질적으로 외쳐야했다.

“그러니까, 이 공간이 대체 뭐냐고! 당신이 만든 거야? 아니면 불러낸 거야?”

‘실은, 나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오.’

이런 썅. 저거 그냥 확 베어 버릴까?

「주인님! 진정하세요!」

이런 내가, 나도 모르게 진짜 정글도를 쥐고 말았군.

「주인님! 주인님께서 저렇게 감성적이고, 델리케이트한 스타일을 싫어하시는 거 알지만, 그래도 좀 진정하시라고요!」

-델리 뭐? 너 때문에 더 진정이 안 된다. 몽몽!

요몽이 몽몽과 강제적으로 교체되는 사이에, 내 마음도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문득, 이 알 수 없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시그마 자신도 잘 모르는 공간이라고? 얼핏 ‘인셉션’이라는 영화가 기억나면서 여기가 혹시 ‘시그마의 꿈 속 아닌가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네. 「주인님. 현재 공간의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만, 단시간의 분석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공간이 ‘실제’하는 공간임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 몽몽의 분석도 그렇지만, 내 감각으로도 여긴 정글이나 광염 어르신의 꿈속과는 달리, 정말 실제적인 느낌이 들어. 그러니 일단, 영화 인셉션 같은 상황은 빼고 생각하자.

“시그마. 당신 말야. 우리와 처음 만나서 싸울 때, 공간을 이용한 어떤 공격을 시도하려다가 우리 라프 때문에 실패했었지? 그때도 이런 공간을 만들거나 부르려고 했었던 건가?”

‘그렇소. 하지만 공격이라기보다, 나만의 공간속으로 피하려고 했었던 거요.’

“흐으음. 당신은 이런 공간을 상당히 많이 만들 수 있는 거 같은데, 그럼 그걸 공격에 응용할 수도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여기에 내가 아닌 블랙이 있다고 했을 때, 이 공간 속에 블랙을 남겨두고 당신만 빠져나가는 거지. 그리고 블랙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이 공간 바깥에 다른 공간을, 그 위에 또 다른 공간을 계속 만들어 버리는 거야. 몇 겹의 봉인을 해버리는 셈인 거지.”

쳇. 애써 얘기해 주고 있는데, 저 썩소는 뭐야?

‘진유준. 당신이란 남자는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적을 제압하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는 모양이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러운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소.’

내가 말한 방법을 써볼 생각도 못했었군. 펜싱 실력도 그렇고, 여러 가지 재능이 넘쳐나는데다 뱀파이어까지 되었지만, 정신력 문제가 너무 심각해. ‘진유준,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소. 그러나 난 또 이렇게 나만의 공간에 몸을 숨기고 가련한 나의 사랑을 외면하고 있소. 이런 내가 너무나 증오스럽소.”

흠? 이거 봐라? 그래도, 약간의 희망은 보이는 거 같은 발언일세?

‘진유준!”

시그마는, 내 아래 쪽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날 올려다보는 자세였지만, 새삼 날 부르며 좀 더 다가오더니, 아예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전에도 밝혔듯,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소. 부디 가르쳐 주시오. 어떻게 하면 당신의 그 강인한 마음, 강철의 심장을 단 한순간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하아~ 속뜻은 그렇다 치고, 이 표현법은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네. 뭐, 어쨌든, 이 뱀파이어 남자는 지금, 나약한 심성의 자신을 바꾸고 싶으며, 그러기 위해서 나란 놈을 벤치마킹하고 싶다… 이거지? 이거 어째 더 귀찮은 일로 번져가는 거 같은데… 어쩐다? 이 수백 년 묵은 ‘소년’을 말이야. 나는, 내 앞에 무릎까지 꿇고 절실함을 보이고 있는 시그마를 보면서, 얼마간 갈등을 때려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그마는 계속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시그마, 당신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누구라도 자신의 내면을 바꾸는 건 쉽지가 않지. 그건 물론, 당신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렇소, 나도 수많은 세월 동안 노력해 보았소. 이렇게 작은 촛불처럼 나약한 나를, 찬연한 태양처럼 바라보고 따르는 산드라를 위해서라도, 나 역시 항상 태양을 꿈꿔왔소. 하지만 난 매번 비겁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초라한 몰골을 간신히 이 공간에 숨기고….? 

“그만!”

역시, 보통의 인생 상담 식으로는 안 될 스타일이야.

“당신은 그 버릇부터 좀 고쳐야 할 거 같아. 아니, 무조건 그래야 해!”

나는 일단 그렇게 선언한 후, 생각을 조금 더 다듬은 다음에 말을 이었다.

“우선, 우리 관계부터 확실히 하자. 당신이 정말 나란 놈을 배우고 싶다는, 끝내는 후회할 길을 걷고 싶다면.

에고. 그새 나도 물들었나? 표현이 나 스스로 좀 거슬리네, 어쨌든.

“그런 각오가 되어있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나를 정식으로 인정해야해.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라는 것을 말이야.”

나, 또 오버하는 거 같지? 그러나 이런 일은 어중간하면 곤란해. 다만, 나도 빠져나갈 길이 있어야 하니까, 기간은 정해두자.

“3년! 딱 3년 동안, 나는 당신의 시한부 지배자가 된다. 이거, 인정하겠나?”

시그마는, 조금 망설이는 듯도 했으나,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두 손을 교차해서 자신의 가슴에 붙이며, 이번에는 두 무릎을 다 꿇으면서 내게 조아렸다.

「안돼요! 윈드군에 이어, 시그마씨까지 주인님 손을 타면.. 윽! 몽몽 오빠!」

요몽의 썰렁한 반대 액션을 알리없는 시그마가 비장한 음성으로 맹세의 말을 했다.

‘이 순간부터, 내 저주받은 영혼과 육신은 당신, 진유준님의 소유입니다. 훗날 다시 돌려받을 때는 지금의 영혼과 육신이 아니길!’

에? 이 친구, 뭐하는 거야? 왜 지 칼을 빼 들어서 나한테 주는 거야?

‘맹약의 증거를 취하십시오.’

“저기, 난 이런 거 첨해봐서 잘 모르겠네. 뭘 어쩌라는 거지?”

젠장. 초보티 내긴 싫지만, 어쩔 수가 없네.

‘제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취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건 생략하면 안 될까? 난 당신의 그 어떤 것도 굳이 가지고 싶진 않거든?”

‘그, 그렇지만, ‘맹약의 증거가 없으면 맹약의 효력이 없게 됩니다.’

“에이~ 서로 믿고 사는 게 좋은 거지, 뭐 꼭 증거 같은 게 필요해.”

‘보통은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로 하기도 합니다만.’

“어허~ 이 사람. 아니, 이 뱀프가 왜 이래? 우리가 무슨 조폭 깍두기도 아니고, 난 그딴 거 싫어.”

‘그러시면 저의 이 머리카락이라도…………’

에이 참. 끈질기네?

“아, 알았어. 그럼 그러던가.”

‘알겠습니다.’

어느 사이 말투부터 달라진 시그마는, 자신의 칼을 다시 받아서 주저 없이 자신의 긴 금발 머리를 뭉텅 베어냈다.

“이제, 저의 이 신체 일부는, 맹약의 증거로서, 당신께서 저의 ‘로드’임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끄으음. 남자 머리카락 뭉치를 들고 있으려니까 기분 참 거시기 하네.

“크흠! 흠!”

과정의 막바지가 다소 썰렁해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하긴 해야겠지?

“좋아, 시그마, 이제 나의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어.”

‘어떠한 명령이든 기꺼이 받들겠습니다, 마이 로드’

로드? 그러고 보니, 나를 ‘로드 오브 헬’이라 부르는 데릭 허버트도, 지금 뱀파이어 S형님한테 물려서 반쯤(?) 뱀파이어가 되어있는 상태지? 쯧. 누가 보면 내가 뱀파이어 종족의 짱인 줄 알겠네.

“나의 첫 번째 명령은 지금 바로 이곳에 산드라와 대교를 오게 하라는 거야, 시그마.”

첫 명령부터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말투와 내용인가? 그런데도 시그마 이 친구, 흠칫 놀라서 굳어져 버리는군.

‘이곳에 말입니까? 로드, 이곳은 산드라에게 보이기가…………….’

“시그마! 지금부터 내 명령에, 어떤 의문이나 이의도 인정하지 않겠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로드.’

훗. 짜식. 그러게 누가 내 밑에서 군대 생활(?)하는 길을 택하래?


잠시 후.

선실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산드라와 대교는, 사이좋은 자매처럼 나란히 시그마의 공간에 입장했다. 대교가 놀라워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했지만, 산드라는 다른 이유로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시, 시그마님! 설마, 아직도 이곳을 간직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미안하오, 산드라. 한 번 지워진 공간은, 다시 살릴 수 없기에, 차마 없애지 못했소.’

흠. 눈치를 보아하니, 여긴 시그마의 첫사랑인 ‘실비아’인가하는 여자와의 추억이, 찐하게 남아있는 장소인 모양이군.

“아, 아니.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이곳은, 저 역시 실비아 언니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소중한 장소니까요.”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산드라 저 아가씨, 표정이 꽤나 복잡 미묘하구먼. 수백 년이 지나도 여운이 남을 정도의 삼각관계가 시작된 장소라면 그럴만도 하겠지? 하지만… 훗. 그런 이곳의 의미도 이제는 많이 바뀌게 될 걸?

“산드라!”

나는 그녀를 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시그마의 머리카락을 들어보였다. 산드라는 크게 떠진 눈으로, 내 손의 머리카락과 시그마의 짧아진 헤어스타일을 번갈아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세한 얘기는 시그마가 다시 해주겠지만, 일단 알아 둬. 난 오늘부터 시그마의 시한부 로드가 되었어. 이 맹약의 증거는 산드라가 보관하는 것으로

“하지.”

산드라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한 듯, 시그마의 머리카락 뭉치를 소중하게 받아들더니, 아까의 시그마처럼 두 팔을 교차하여 가슴에 대며 무릎을 꿇었다.

“마스터의 로드는, 저의 로드이시기도 합니다.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섬기겠습니다.”

에구. 신참 훈련병(?) 시그마는 그렇다 쳐도, 훈련병 애인까지 이러는 건, 많이 부담스럽네.

“시그마! 나의 두 번째 명령을 받도록 해.”

시그마는 즉각 내 앞에 섰고, 나는 그에게 히죽 웃어주었다.

“이제부터, 당신이 만드는 그 어떤 공간에도, 당신 혼자 있는 건 금지야.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로드.’

자아. 애인까지 배제하고 짱박히기 좋아하는 친구에게, 혼자 놀기를 금지시켰으니, 이제 애인과 함께 즐길(?) 뭔가를 하게 해줘야겠지?


얼마 후,

나는 대교만 데리고, 시그마의 공간화 된 선실을 빠져 나왔다.

-대교. 그게, ‘시그마 사내답게 만들기 프로젝트’가 이렇게 진행되고 말았네?

-후후, 정말 잘하셨어요. 산드라씨가 벌써부터 행복해 보여서 저도 좋았어요.

대교는 그렇게 말해주며 팔짱을 끼어왔지만, 역시 요몽이 입술을 삐죽이며 등장했다.

「주인님! 너무하세요! 시그마씨를 부하로 삼아버린 건 그렇다 쳐도, 왜 하필 그 황홀한 금발을 자르게 하신 거죠?」

-황홀은 개뿔. 그리고 내가 자르라고 했냐? 시그마 지가 먼저 뭐든 자르겠다고 하다가, 겨우 그걸로 낙찰 본 거 아냐. 그럼 진짜 손가락이나 그런 거

자르면 좋았겠냐?

「아, 아뇨. 하지만 그래도 휘날리는 머릿결은 너무 아쉬운데, 음. 지금이라도 다시 가셔서 ‘손톱’같은 걸로 바꾸면 안 될까요?」

-됐거든?

「우~ 너무하세요. 전에는 원판씨의 우아한 머리카락도 자르시더니!」

어, 그러고 보니 그랬었군.

「그리고 또, 시그마씨의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겠다는 의도는 저도 좋아요. 하지만 그게 왜, 꼭 군대식이어야 하는 거죠?」

-군대식?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뻔하잖아요. 3년이라는 기간 설정, 그리고 주인님 얼굴에는 ‘이제부터 군대식으로 박박 굴려서, 사내답게 만들어 주겠쓰~’라는 조교 표정이 빤히 보였다구요.」

이, 이 녀석 보게?

「아참! 그리고 마지막에 시그마씨와 산드라씨에게 시키신 짓은 또 뭐죠? 그거야말로 주인님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몽몽. 이 영험한 요몽 선생을, 모처에 잘 모셔라.

「아이 참! 또?」

여전히 버릇없긴 해도, 나름 영험해진 요몽 선생이 모처로 모셔지고(?) 난 후, 나는 대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 사이 우리는 갑판 위로 나오게 되었고, 파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대교, 프리메이슨의 ‘특별한 어둠’이었다는 에레보스 멤버들의 활용법이, 겨우 정리된 거 같아. 그러니, 이제 우리, 정말 맘 편히 한 잔 하자구. 갑판 위로 드리워진 달빛 속에서 대교의 고운 얼굴이 웃으며 끄덕여졌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