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88화 : NWG (Neo Wind Gat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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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88화 : NWG (Neo Wind Gate). (3)


6. NWG (Neo Wind Gate). (3)

-요몽, 이제 소교에게 안티가 사라졌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너무 유명해졌을 거 같고, 그에 따른 위험도 생긴 거 아닐까? 예를 들어, 소교의 광신적인 팬 층이 스토커가 된다던가하는 거 말야.

「당근, 저희들도 그걸 우려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위험한 스토커가 나타날 징후는 없네요.」

-위험해 보이지 않는 스토커는 있단 말이냐?

「그게, 쫌 애매하긴 해요. 몽몽 오빠가 분석하고 체크해 놓은 몇 명의 사람들은, 분명 위험한 스토커 성향을 보이거든요. 대표적으로, 에든버러 사건 직후에 계속 소교님을 ‘마녀의 딸’로만 부각 시키는 기사를 썼던 기자 한명은, 헤어진 전 여친을 스토킹 하다가 기소된 전력이 있고요. 그치만, 그 역시 현재까지는 별 문제가 될 거 같지 않다는… 판단을, 울 몽몽 오빠가 했답니다.」

이 녀석, 계속 지가 함께 뭔가 했다고 표현하다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부분에서는 몽몽만을 내세우는군.

-그런 판단의 근거를, 몽몽은 뭐라디?

「근거나마나, 그 사람 ‘얼굴 책’ 타이틀 문구가 뭔지 아세요?」

‘그녀가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것조차도…’ 라고? 허허~ 이건 이거대로 왠지 살짝 무섭네.

「이 사람과 다른 기자들은 그래도 기사거리를 찾아 소교님 주변을 얼쩡대다가 소교님의 애잔파워, 에고. 저도 주인님식 표현을 쓰고 말았네요. 하여간, 소교님께 직접 가까이 다가와 본 사람들이 이러는 건 그래도 이해가 되요. 하지만 저희들이 올렸었던 영상만을 봤던 사람들까지도 빠르게 비슷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건 정말 놀라웠어요. 그, 뭐. 결과적으로 저희들이 뭘 어쩔 것도 없이, 지금은 중화권 네트워크에서 소교님의 자취는 거의 사라져버린 상태지요.」

언뜻 들으면, 소교의 슬픔에 찬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 충동까지 일으킨 사람들 얘기가 더 대단한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얘기가 더욱 놀라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와 관련된 데이터를 지우고, 잊으려 노력한다? 기자와 수많은 네티즌들이 스스로? 하핫! 이거야 원! -요몽. 네 말대로, 내가 소교를 너무 띄엄띄엄 봤었나보다. 소교의 슈퍼 울트라 애잔 파워가 녀석의 안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야, 주인님께선 천 년 전부터 대교님의 매력에만 포옥 빠져, 대교님 외에는 뵈는 게 없으시니 그렇죠. 소교님도 참, 세상 꽃돌이들 다 놔두고, 하필 울 주인님께 꽂히실 건 뭐람.」

이 녀석, 나름 정상적으로(?) 보고를 이어가더니, 끝나자마자 까불이로 복귀해 버리는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만, 니가 그러니까, 왠지 심하게 거슬린다?

「히이~ 죄송! 주인님을 비하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울 주인님이야말로 자타공인의 숨겨진 매력 만땅의..

-됐어, 그보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소교 본인은 얼마나 알고 있는 거냐?

자신에 대한 온갖 거짓 뉴스와 악플들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해도, 일단 보았으면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를 걱정한 건데, 요몽은 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소교님은 상황을 거의 모르세요. 소교님은 요즘 세대답지 않게 인터넷을 매우 제한적으로 쓰시거든요. 사실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독서, 요리, 산책 같은 걸로만 보내시고요.」

으으음. 왠지 천연기념물 얘기 듣는 기분이로군.

-학교생활은? 그러다가 다른 애들과 말이 안 통해서 왕따라도 당하는 거 아냐?

에고. 얼결에 묻긴 했지만, 좀 오버다. 소교는 어린애가 아니고, 난 그녀의 아빠도 아닌데 말야.

「그렇지는 않아요. 동급생들과의 대화에는 소교님 나름의 요령이… 아, 티타임이 끝나는 거 같아요.」

응? 벌써?

최근 들어, 여자 분들의 친목 대화가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된 나로서는, 이번에도 최소한 두 시간이상 기다리는 걸 각오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4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방금 뇌룡대주가 현재 시간을 알렸거든요. 소교님은 아무리 늦어도 자정 전에는 잠자리에 드세요. 다음날 학업에 충실하기 위해서요.」

또 한 번, 이거야 원! 소교 관련 얘기들은 사실, 대부분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 셈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멀고먼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네.

나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새삼스럽게 소교의 자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 어떤 예술품을 봐도 무덤덤한 놈답게, 소교를 그저

사랑스런 동생 및 예비 처제 이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이젠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형부.”

내 어깨에 있던 금동이를 다시 받아 안으며, 피어 올리는 소교의 환한 표정이 문득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냥 기분 탓이려나?

“나도 그래, 소교. 이젠 틈나는 대로 보러 올 수 있을 거야. 아, 물론, 산드라의 체질(?) 때문에 오늘처럼 늦은 시간이 될 거 같지만 말이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로드. 한 분뿐이라면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에? 난 사실 말이 그렇지, 사적이고 사소한 일에까지 산드라를 동원하는 건 미안해서, 자주는 부탁하지 않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우째 산드라가 더 적극적이네?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산드라 씨.”

“아, 아닙니다, 소교님. 저 자신이 자주 찾아뵙고 싶습니다.”

소교는 다시 다정하게 산드라의 손을 잡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산드라의 창백한 안색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교 일행을 뒤로하고 게이트 안으로 돌아 온 후에도, 산드라는 약간 얼이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산드라?

‘아! 죄송합니다 로드. 다음 게이트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서두를 거 없어, 산드라. 그보다 왜 그래?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로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입니다.”

-응? 무슨 경우? 설마 소교처럼 어린 아가씨와 대화하는 게 낯설다고?

산드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쓴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희들 밤의 권족은, 순수성과 순결함을 지닌 인간을 만나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유린하고 더럽히려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고 집요하여, 과거 시그마님과 저도 많은 죄를 범하고 말았었지요.’

산드라는, 벽 너머의 소교가 보이기라도 하듯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교님의 동생 분은 뭔가 다르십니다. 너무나 가련하고 연약한 인간 소녀임은 분명한데도, 저 같은 건 감히 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아, 아니 소교님 앞에 가까이 앉아, 그 고귀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빠져있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산드라는, 다시 조금 망설인 끝에야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무엇보다, 밤의 권족이 된 이후, 인간과 대화를 나누며 저 역시 인간으로 되돌아 간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도 또 한 번, 이거야 원! 우리 소교의 하이퍼 울트라 애잔 파워는 수백 년 묵은 뱀파이어까지 역으로 홀릴(?) 수준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오컬트계에서까지 먹어주는 소교의 초월적 예술 오오라를 몰라보는, 그런 나란 놈은 대체 얼마나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내가 애매한 자괴감에 빠지는 사이, 산드라는 반대로 정신을 수습하여 날 돌아보았다. 어느덧, 오늘의 마지막 코스만 남은 상황이었다. 파츠읏!

흠. 뭘까?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워프를 반복하면서, 순간적인 공간 변화 사이에 뭔가 다른 걸 본 것 같은 느낌이 조금씩 커지네? 「짜잔!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코스, 지하무림의 총본부! 구중천 도차악!」

요몽의 호들갑과 함께, 전면의 문이 자동으로 스르르- 열려지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본래 최신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곳다운 셈이었다. “천주! 천모! NGW의 성공적인 운행을 경하드립니다!”

게이트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기쁘게 외치듯 인사를 해온 이는 자룡대주였다. 수하들 중에서 유일하게 장거리 워프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래서 계속 여기서 모든 게이트의 보고를 받으며, 나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축하든, 감사든, 우리보다는 자룡대주가 받아야할 거 같은데? 불과 일주일 동안에 이렇게 많은 윈드 게이트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건, 어디까지나 자룡대주 덕분이니까 말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몽몽 팀장의 설계를 충실히 구현했을 뿐입니다.”

자룡대주는 겸손을 떨었지만, 몽몽이 아무리 시스템을 잘 기획했어도, 자룡대주 정도의 능력자가 현장을 진두지휘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짧은 기간에 완성될만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달~렉! 달렉 집사도 주인님들의 게이트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달렉!」

달렉 특유의 기계음이 끼어든 것은, 당연히 여기가 나와 대교의 거처이기 때문이었다. 구중천의 게이트는 우리 거처의 방문자 대기실에

설치되었으니, 구중천 내에서도 최고 깊숙한 보안 구역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수고했어요, 산드라 씨.”

자룡대주가 웃으며 말을 건네자, 산드라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산드라는 비록 3년 한정 계약이라고는 해도, 시그마와 함께 마군황 직속

어사조의 멤버가 된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명확하게 자룡대주의 하급자라고 못 박은 건 아니었는데, 요 며칠 둘이 함께 붙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자룡대주가 한끝발 위의 명령권자로 정리된 모양이었다.

「주인님! 닥터 제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왔으면, 한잔하고 가지?”라고 하시네요.」

내가 몽드폰을 들어 보이며 닥터 제이로부터의 초대를 알리자, 자룡대주는 보안 점검을 다시 해야겠다고 중얼거렸고, 대교와 산드라는 소리 없이마주 웃었다.


잠시 후.

대교는, 아직도 내 연무실에서 발화능력을 수련(?)하고 있는 미령이와, 세트 메뉴 소령이를 보러갔고, 나만 닥터 제이에게로 향했다. 예의 ‘거미 격납고’를 찾아가니, 닥터 제이가 혼자 응접 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뭡니까, 이젠 매일 음주 근무하시는 건가요?”

내가 테이블 위의 작은 항아리를 가리키며 묻자, 닥터 제이는 대답에 앞서 항아리 안의 표주박으로 술을 퍼서 두 개의 잔을 채우기부터 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여유를 즐기고 싶어진 것도 사실이네만, 오늘은 어디까지나 자네를 위해 준비한 걸세, 유준.”

내가 무심결에 잔을 받아들자, 닥터 제이는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축하하네! 그리고 내 칭찬도 안주로 삼게나. 프리메이슨의 멍청이들은, 산드라같은 보물을 얻고도 제대로 활용 못했는데, 자네는 이렇게 단시간에 그녀의 능력을 개발했으니, 이번에는 나도 큰맘 먹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싶군.”

“저기, 어째 별로 칭찬받는 기분이 안 드는 건 뭘까요?”

닥터 제이는 쿡쿡 웃으면서도 잔을 비웠고, 나 역시 첫 잔만은 원샷 해 버렸다. 일주일전, 에레보스들과의 싸움을 끝내고 여기 구중천에 복귀했을 때, 나는 닥터 제이에게 블랙의 암호는 물론이고, 녀석의 죽음이 위장이라는 얘기도 해주지 않았었다. 닥터 제이도 굳이 캐묻지 않았었지만, 아무래도 이 음흉한 아저씨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지 않나 싶었다.

“벌써 꽤 드셨던 모양이네요.”

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은사도객 13호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닥터 제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는 아직 마시지 않았어. 오늘은 길모르, 그 친구와 시작했지.”

에레보스의 ‘신의 전차’였던 ‘닥터 길모르’ 그 거구의 과학자는, 현재 이 구중천에 머물며 우리 과학자 그룹에 합류한 상황이었다. 에레보스의 일원이 되면서, 꽤 오래 실험실을 떠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측 과학자 대표인 ‘승룡대주’는 며칠 함께 있어 보지도 않은 시점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천재’라고 했다나?

“닥터 길모르도 그렇고, 에레보스 멤버들 모두가 처음 들었던 얘기와 달라서 다행이었죠. 어떤 음흉콤비는 그들을 ‘특별한 어둠’이니 ‘최강의 암살단이니 하면서 분위기를 잡았었는데 말입니다.”

그 음흉콤비 중의 한 명, 닥터 제이는 다시 두 잔의 술을 채우며 비죽이 웃었다.

“에레보스가 프리메이슨 내에서도 특별한 존재들이었다는 것도 맞고, 최고의 암살단이었던 것도 맞아. 다만, 그건 블랙, 그 아이가 수장이었을 때의 얘기였지.

하긴, 블랙 녀석이 맘먹고 멤버들을 지휘하여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했었다면, 나와 대교도 감당하기 벅찼을지도 모른다.

“에레보스가 ‘기계적 암살자’들로 구성되어있던 시기에는, 정말 프리메이슨의 누구나 두려워하는 존재였었지. 그런 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현재의 멤버들로 바꿔 버린 건, 블랙 그 아이였다고 하는군. 언제든 자네와 싸우게 되었을 때, 현재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지.”

“닥터 길모르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이미 예측하고… 아니,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당신이 블랙을 유도했었던 거 아닌가요?” 내말에 닥터 제이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에레보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시기도 했었지만, 역시 거짓말쟁이 아저씨로군요.”

“훗. 새삼스레 뭘 그러나. 그리고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어. 내가 과거에 에레보스 멤버들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에레보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 현황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잖은가.”

“변명이 구차한 듯하면서도, 그냥저냥 말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니네요.”

닥터 제이는 전에 없이 술기운이 도는 상태여서인지, 키득대는 소리를 내며 또 혼자 자기 잔을 채우고 있었다.

“SWALLOW.”

아, 이런.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어? 주인님! 그거, 당분간은 아무에게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시더니, 주인님께서 저질러 버리시는 거예요?」

요몽이 튀어나와서 외쳤지만, 일단 생까고 닥터 제이의 반응을 살피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닥터 제이는 내가 블랙의 암호 메시지를 말하는  순간에는 분명 멈칫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태연하게 술잔을 비웠다.

“이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시죠?”

나는 그렇게 애매하게 물었고, 닥터 제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뭐, 모르시겠으면, 말고요.”

내가 다소 퉁명스럽게 덧붙이자, 닥터 제이는 약간 난처한 기색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수수께끼 풀이는 내가 취하지 않았을 때 했으면 좋겠네.”

쯧. 오히려 취했기 때문에 찔러 본 건데, 안 넘어오네? 분위기로 봐선, 아직 멈출 거 같지 않은데, 좀 더 취한 다음에 떠봐?

“술과 함께하는 마음의 여유, 정말이지 오랜만이었어. 아쉽게도 이제 막잔이로군.”

쳇, 또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나오는군. 근데 뭐야? 또 하나 있던 잔에 항아리에 남은 술을 전부 따르네?

닥터 제이는, 세 개의 잔을 만들고는 은사도객 13호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고 나서야 빠르게 다가와 술잔을 잡았다.

“여기 이 구중천, 인천미녀, 모두 고마웠네.”

닥터 제이는 나와 은사도객 13호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원샷했다. 나도 건배를 한 후, 새삼 그의 기색을 살폈다.

“뭡니까, 어째, 작별 인사를 하는 분위기잖아요.”

“맞아. 난 오늘, 이 오아시스를 떠날 생각이거든.”

오아시스? 우리 구중천 본부가 닥터 제이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가운 휴식처였었다는 건가? 아, 아니, 그보다!

“진짜 떠나신다고요?”

“그래,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어. 그러니…….”

닥터제이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어딘가 비장한 표정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돌아가야지, 그랜드캐년의 지하기지, ‘나의 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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