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31화 : 모래 지옥 II. (1)
1. 모래 지옥 II. (1)
사막을 모래의 바다라고 했던가?
나와 대교는, 진짜 밤바다처럼 운치 있으면서 색다른 매력도 넘친다는, 사막의 밤풍경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싸움을 잘 끝내고나서, 낭만적인 데이트 시간을 가질 기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젠장! 오늘 온 사막에는, 이것저것 다 빼고 ‘색다른 것들만 우글대고 있는 거 같네. 리치몬드가 뭐랬더라? 샌드 킹? 난 얼마 전에 ‘헬게이트, 아담’녀석이 사념으로 만들어낸 ‘모래 상어’들을 겪어 보긴 했지만, 지금 저 모래 바다를 뛰노는(?) 괴물들은 모래 상어보다 몇 배 더 징그러운 물고기 형태였고, 크기는 열 배가 넘는 것 같았다.
모래 위로 뛰어 오르며 노는(?) 놈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깔때기형태 싱크홀 안쪽의 개미지옥 괴물 중에도, 머리 부분만을 비죽이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놈들도 있었는데, 거미 같은 육식 곤충의 형태를 가진, 만만찮게 흉물스러운 놈들이었다.
-대교. 미안! 우리 데이트에 또 괴상망측한 벌레들이 나타나고 말았네.
-후후. 제 걱정은 마세요. 저렇게 크니, 오히려 벌레 같지가 않네요.
-그런가?
문득, 서울의 한강에서 데이트를 하던 도중, 뜬금없이 출현했던 ‘한강의 괴물’을 대교가 단칼에 요절냈던 일이 떠오르는군. 하지만, 그래도 역시 벌레는 남자가 여자 앞에서 잡아 줘야 제 맛(?)………….
-아, 그런데, 저 괴물 벌레들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되겠네요.
응? 그게 무슨, 아! 이런, 이런! 이 세심한 센스쟁이 아가씨 같으니!
대교의 시선은 피비에게 향해 있었고, 피비는 자신의 벌레 괴물들을 바라보면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대교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은, 리치몬드가 저 괴물 벌레들을 설명할 때, 키운다’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었다.
“피비! 저 놈들은 최근에 소환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시간을 들여서 키워낸 건가?”
“그래요. 30년 전에 ‘알’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키워왔어요.”
으음. 확인도 안 해보고 무조건 놈들을 때려잡았으면, 분위기 썰렁해질 뻔 했군.
“그럼 당신이 쟤들을 물러나게 하면 되겠네.”
“그, 평소라면 그렇지만, 지금은 저 아이들 상태가 좋지 못한 거 같아요.”
피비는, 자신의 애완괴물(?) 떼거지 너머의, 어딘가를 노려보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체어 킹, 피쉬 킹, 모두 흥분해 있는 걸 보니, 살리나가 저 아이들에게 ‘마린씨슬’이라는 독초를 먹인 거 같아요. 만약 그런 거라면, 저도 몰라 볼거예요.”
흠. 역시 그냥 넘어가주진 않는구먼.
“그 독초의 효력은 얼마나 길지?”
“먹인 양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0시간은 지나야해요.”
“피비! 그 정도 시간을 기다려 줄 수는 없어. 매퍼 가문은 물론이고, CIA도 언제 더 본격적으로 나설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피비는, 결국 입을 다물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30년이나 키워왔다는 괴물 벌레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절절이 배어나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벌레 박멸’을 포기해야했다.
“제군들! 저 괴물들이 보기엔 저래도, 여기 이 피비가 오랜 세월동안 사랑으로 돌봐주고 키웠으며, 쟤들도 피비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반려괴물’인 모양이야! 그러니까 우리 모두, 저 귀여운(?) 녀석들을 가급적 해치지 말고 지나가 보자구!”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정글도를 내려뜨렸다. 그러자, 나의 어벤져스 사막 원정대 멤버들도 각자 취하고 있던 전투태세를 풀기 시작했다. 피비가 날 돌아보며 뭔가 할 말이 생긴 표정이 되는 것 같았으나, 공연히 감사의 말이라도 듣게 될까봐 슬며시 외면했다. 이번에는 솔직히 순수한 마음만으로 피비를 배려해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에요. 저 모래 괴물들과 싸우게 되었다면, 묵정(墨)이 너무 흥분해 버려서, 저도 진정시키기 어려웠을 거예요.”
소희였다. 소희는 꺼내들고 있던 ‘요괴 활 묵정’을 다시 활집에 넣고 있었는데, 묵정은 싸우지 못하게 돼 분하다는 듯, 징징~ 호전적인 울림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초대 손님 중에서는 저 요괴 활이 가장 호전적이었네. 대교의 청명에게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요기를 뿜어내던 녀석인데, 매퍼 가문과의 싸움에서는 저 묵정의 진면목도 볼 수가 있겠군. 그런데, 불무도 일행과 매퍼 가문의 빅매치를 홀가분하게 추진하려면, 우선 도널드 놈 문제부터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처리해야겠지?
“리치몬드! 저 샌드 킹인지 하는 놈들, 눈은 잘 안보이고, 진동이나 냄새로 사냥감을 감지하는 스타일이겠지?”
“응. 잘 아네.”
“훗. 지하에서 노는 놈들은 다 그렇겠거니 한 거야. 어쨌든 그럼, 공격 수단은 어때? 그것도 생긴 대로(?) 인가?”
“뭐, 대체로 그래.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촉수’를 조심해야해. 이십 걸음 넘게 뻗을 수 있고, 끈적하고 강해서, 그걸로 큰 소도 끌어당겨 잡아먹을 수 있지.”
뭐야. 벌레보다는 파충류에 가까운 놈들이었나? 아니, 저렇게 별꼴인 놈들을 일반적인 상식으로 분류하는 건 의미가 없으려나?
800년 넘게 묵은 불사의 마법사, 리치몬드양께서는 ‘별꼴이야 세계의 지식이 풍부해서, 오래지않아 나를 비롯한 사막 원정대 전원이 ‘샌드 킹’이라 불리는 모래 괴물들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이제 각 팀별로 능력껏, 이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거다.
-천주!
음. 이 불만과 불량기(?)가 느껴지는 전음은, 이 인간, ‘천음마군’의 전음이로군.
나는 DP의 론 중령이 탈영까지 해가며 ‘론 매퍼’로서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홍콩에서 대기 중이던 천음마군을 호출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천음마군은 신나게 이 사막 원정대에 참가했던 것이다.
-천주. 저 애완용(?) 괴물들은 그렇다 치겠는데, 설마 계속 이렇게 싸울 일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인간, 빨리 싸움이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군.
-조금만 참아. 내 판단으로는, 곧 제대로 싸울 일이 생길 거고, 그 때는 아마도………………
천음마군은, 내 시선을 따라 우리측 웨어울프들의 대장인 ‘크루버’와 부하 웨어울프들쪽을 보게 되었고, 나는 비죽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소한 저들 급, 혹은 그 이상의 늑대인간들과 싸울 일이 생길 테니 말야.
-오오~ 그렇습니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천음마군은 비로소 얼굴을 풀고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몇 미터 가기도 전에 스르르~ 사라졌다(?). 투명화 능력을 가진 소녀, ‘‘소냐’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가 천음마군에게도 능력을 걸었던 것이다.
천음마군을 따라 온 CR들은 ‘투명 소녀 소냐’, ‘초진동 소녀 가야’, 그리고 겨울의 여왕 나타샤와 같은 계열의 냉각 능력을 가진 소년, ‘비에이’, 이렇게 세 명이었지? 이 녀석들이야, 뭐.
후우우웅~
예상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하얀 눈보라가 발생하더니, 서서히 날아올랐다. 투명화 된 천음마군 일당들을 태운(?) 눈 회오리는, 약 먹고 ‘지롤’중인 샌드 킹들의 한참 위쪽 허공을 유유히 날아서 통과하기 시작했다.
“유준 오빠! 우리도 갈게요!”
미령이였다. 녀석은 두 손으로 양쪽에 소희와 토르의 손을 잡고 불꽃을 일으켜, 화려한 이륙을 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 야, 토르! 넌 혼자서도 날아갈 수 있잖아! 왜 미령이한테 빌붙는 거냐!”
“오우~ 못 본체 해줘, 캡틴! 여긴 충전할 곳이 없잖아! 전기를 아껴야 한다구!”
아차, 그랬구나. 토르의 최대 약점은 자가 발전이 쉽지 않아서, 방전되면 외부 전기를 끌어다가 충전을 해야 하는 건데, 여긴 사막이라 그럴 수 있는 설비가 없어.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이건 토르 활용에 치명적인 빨간 불이로군.
나는, 토르의 고질적인 배터리(?) 문제 해결을 고민해보며, 다음 팀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이번에는 시그마와 산드라 커플 차례였고, 둘은 각각 자신들의 생체 도시락(?) 엘사와 안나 자매를 거느리고 있었다. 시그마는 산드라의 손을 잡으며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로드!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죄송은 무슨. 어여 가, 시그마.’
파팟!
뱀프 일행은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그리 멀지않은 곳에 다시 팟,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사라졌다가, 좀 더 전진한 장소에 등장했다. 그런 식으로 짧은 워프를 반복하면서 뱀프 일행은 순식간에 샌드 킹 구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은 장거리 워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저렇게 단거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저건 저거대로 무섭다고 할까? 뱀프들이 저런 식으로 이동해서 다가오면, 우리나라 공포 영화 ‘여고괴담’의 귀신이 쿵! 쿵! 무서운 효과음과 함께 나타나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어.
물론, 그건 평범한 인간의 경우이고, 샌드 킹들은 뱀프 일행이 자신들 사이를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샌드킹들의 공격 가능 범위 바깥의 허공으로 날아서 통과한 두 팀에 이어서 뱀프 팀도 간단히 샌드 킹 구역을 통과해 버리자, 이번에는 ‘신의 전차 길모르’가 앞으로 나섰다.
“길모르. 당신이 선두에서 다른 병력 모두를 안전하게 이끌 수 있을 거라고 했소?”
“이론상으로는 그렇소.”
길모르는, 자신의 뒤쪽으로 모여 서있는 병력들을 돌아보며 태연하게 덧붙여 말했다.
“단, 첫 번째 실험이니, 두려운 이는 빠져서, 다른 방법을 찾아도 좋소.”
으음. 나와 대교는 처음부터 따로 갈 생각이라서 상관없지만, 다른 병력들은 모두 어느 정도 갈등하는 기색이 보이는군. 하지만 ‘두렵거든 빠져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빠지기 어려워하는 눈치도 빤히 보이네. 남자들에게 특히 잘 통하는 수법에 걸린 거라고 할까?
간단한 말로 실험 지원자(?)들을 확보한 길모르는, 빙긋이 만족스런 미소를 그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길모르의 뒤를 따르게 된 다국적이자 다종족 병력들은 총 열세 명이었다.
우선, 대장 늑대 크루버와 그를 따르는 웨어 울프들로 이루어진, 웨어 울프 부대가 총 열 명. 대규모 병력 수송이 어려운 헬기로 사막에 오게 되면서, 본래 병력의 일부만 차출해 올 수밖에 없었지. 소대장급으로 엄선된 만큼 소수라도 꽤 듬직한 병력들이긴 한데, 지금은 어쩐지 길모르 선생님의 인도를 얌전히 따르는 제자 무리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먼.
크루버 소대와 함께, 길모르님의 영도를 따르고 있는 두 명의 청년. 그들은 불무도의 유인호와 배정훈 사형제였다. 불심 청년 유인호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그의 연상 사제인 배정훈은 약간 들뜬 듯 하면서도 긴장된 표정이었다.
뭐, 저 친구 정훈이 가장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 저런 거대 모래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사막을 늑대인간 무리와 함께 걷게 된 사람입장에서는 말야. 그에 비해 길모르님의 마지막 열세 번째 제자(?), 조담 녀석은 뭐가 불만인지 뚱한 기색으로 걷고 있을 뿐, 일말의 긴장감도 없어 보이는군. 아, 혹시 자룡대주가 후방 지원조로 빠지며, 자길 따라와 주지 않아서 삐진 건가?
나와 대교가 조담 녀석을 보면서 웃고 있자니까, 리치몬드가 슬며시 다가왔다.
“유준. 저 남자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아, 길모르? 저 사람은, 다양한 패턴의 진동을 만들어 낼 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능력을 활용해서 샌드 킹들을 속이려고 하는 걸 거야.” 내가 예상하는 패턴은, 샌드 킹들이 겁먹고 달아나 버릴 정도로 ‘샌드 킹보다 크고 강력한 괴물이 이동할 때 발생할법한 진동’을 만들어 내거나, 샌드 킹들이 자신들의 동료로 착각할 정도로 샌드 킹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진동을 흉내 내는 것, 그 두 가지 패턴이었다.
으음. 길모르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이들을 지휘해서, 유지하고 있는 대형의 형태와 길모르가 발산하기 시작한 초진동의 여파로 모래 위에 그려지는 거대 형상을 보니, 아무래도 첫 번째 예상 패턴쪽인 거 같, 오~ 역시 그렇군!
본래 뵈는 게 없고, 약까지 먹고 지롤중인 샌드 킹들이라도 자신들보다 크고 강력한 무언가에게 사냥당할 위험은 무서운지, 피쉬 킹인가 하는 물고기형 샌드 킹들이 먼저 화들짝 놀라는 기색과 함께 좌우로 갈라져 도망치고 있었다. 안전하게 확보된 모래의 바다 위를 여유롭게 걸어서 통과하고 있는 ‘길모르와 열세 제자(?)’의 모습은 왠지 특정 종교의 홍보 영상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이제 저들 중에서 열세 번째 제자인 조담 녀석이 어떤 형태로든 배신을 땡겨서, 길모르를 위험해 빠트리는 상황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어.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뜬금없이 막장으로 치닫지는 않을 거 같네. 조담 녀석은 유다로서의 임무(?)를 망각하고 그냥 계속 나름 점잖게 길모르를 따르기만 하고 있고, 예의 개미지옥 속의 체어 킹인지 하는 괴물들도 일제히 모래 속으로 숨어 버리고 있네. 아이~
시시해라(?).
나는 솔직히, 약간의 액션씬 정도는 기대했다가 살짝 실망했으나, 결국 길모르 일행은 아무런 문제없이 괴물 관문 통과를 클리어 해 냈다. “호. 제법인데? 유준, 당신은 대단한 마법 종족을 많이 거느리고 있군.”
리치몬드 녀석, 다른 누구보다 길모르에게 흥미를 보이는군. 길모르의 능력이 유독 튀어서 그런 거라기보다는, 길모르의 스타일에서 ‘동질감을 느껴서 그렇겠지? 사실 마법사가 바로 중세의 과학자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지.
「헤에~ 시원한 액션씬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평화롭게 잘 통과해서 다행이네요.」
나와, 비슷한 속내가 드러나는 감상평을 한 요몽이, 나와 대교에게 새삼스런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후~ 이제 주인님과 대교님 차례인데, 부담되지 않으세요?」
-부담? 왜? 뭐가?
「주인님의 ‘쫄따구’들이 다들 저렇게 깔끔하게 미션을 클리어 했잖아요. 그런데 정작 주인님께서 실수로 샌드 킹들을 자극한다거나 해서, 소위 개싸움을 벌이시기라도 하면 체면이……… J
-짜쉭이, 뭔가 일이 꼬이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는구나.
「헤헤. 그럴 리가요. 전 다만 걱정을 해드린 거예염.」
-됐다. 네 녀석의 기대를 저버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후딱, 싱겁게 클리어 해주마.
나는 선언을 마침과 동시에 대교의 손을 잡았다.
-대교! 간만에 ‘원앙해비(鴛鴦偕飛)’다!
대교의 기쁨이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순간, 이미 우리 커플의 신형은 하나의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쏘아져 있었다.
쐐애애애액!
한순간에, 공기와 소리의 벽까지 뚫는다는 느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사라져버렸다.
-스톱! 스탑!
다급한 전음을 날리며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대교와의 일심동체 모드는 신형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하는 동작도 수월하게 해주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해 본 것은 처음이라서, 나는 물론이고 대교도 어느 정도 얼떨떨한 기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짐짓 태연하고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이제 우리 바로 앞에 늘어서 있게 된, 우리의 쫄따구들 앞에서 뽀다구 커플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대교는 아직 우리의 초음속(아마도) 경공을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관객들로부터 몸을 돌려, 우리가 돌파한 루트를 확인해 보았다.
휘유~ 출발지로부터 여기까지 일직선 도로처럼 움푹 패인 모래사장의 모습도 그렇고, 그 라인을 따라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수평의 회오리바람 때문에, 마치 보이지 않는 터널이 생겨버린 듯한 광경이로군. 이거야 원. 나와 대교가 해놓고도 실감이 잘 안 나네. 샌드 킹 녀석들도 길모르 때보다도 멀찍이 튀어 버린 거 같아.
대교가 나와의 합공을 위해서 오랜 세월 연구해서 완성한 심법, 원앙해비. 그걸 함께 펼치는 공공보법에 적용해 본, 일종의 시운전인 셈이었다. 세상에는 별의별 숨은 강자들이 많아서, 앞으로도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을지 몰라도, 대교와 함께라면 정말 ‘최강 무적의 커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후훗. 어떠냐, 요몽, ‘빠른 놈한테는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이 맞는 거 같지?
「으~ 뭐예욧. 비주얼은 정말 멋졌는데, 마무리 멘트가 썰렁하잖아요!」
-큼. 뭐, 그럴 거 같아서 너한테만 했다. 어쨌든, 너도 비주얼만 보면 괜찮았다 이거지?
「그러믄요! 마치 두 분이 진짜 초음속 제트기가 되어서 충격파를 남기며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역시 대교님 짱!」
끝에 가서 나는 빼고, 대교만 짱이라는 것이 살짝 거슬리지만,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흠. 아직도 남아있던 리치몬드와 피비가 이제야 오기 시작하는군. 리치몬드도 소위 비행 소녀이고, 피비와 함께 날아오고 있는 거니까, 이제 샌드 킹 미션은 그야말로 완전히 끝난 셈이야.
-리치몬드. 피비에게 물어봐 줘. 뱀프 무덤 지킴이들은 이게 다냐고.
“그건 내가 대답해 주지. 무덤에 도착하기 전이나 그 안에…………….”
에? 리치몬드가 왜 텔레파시를 안 쓰고 말을 하는 거지? 소리는 곧 진동이고, 쟤들은 아직 샌드 킹의 영역에… 웃?
-리치몬드! 위험!
나의, 다급한 전음 경고는 한 박자 늦었다. 느닷없이 모래 속에서 뻗어 나온 촉수 몇 개가 피비와 리치몬드를 덮쳤고, 두 소녀 모두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모래 속으로 끌려들어가 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