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42화
숲에서 나온 일행들이 멈추어선 곳은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 밑이었다.
언덕 근처에 대충 자리를 잡은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모두 어떻지?”
한쪽에서 벨레포와 몇몇의 병사들이 서 있었다.
“사망자가 9명, 부상자 10여 명, 그중에서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자가 3명 정도입니다.”
“하~! 곤란하게 됐군…. 녀석들 상상 외로 세게 나왔어….”
벨레포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우선 여기서 쉬기로 한다. 부상자도 있는 이상 무리하게 움직이기 힘들다.”
“네….”
“그리고 자네는 부상자들에게 붕대 등을 나눠주게….”
“예, 알겠습니다, 벨레포님.”
“후~ 힘들다….. 타키난, 여기 이렇게 좀 잡아줘요.”
가이스의 말에 타키난은 팔에 길게 찧어진 검상이 난 병사의 상처를 잡아주었다.
“생명의 환희가 가득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라….. 힐링.”
가이스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손과 용병의 팔에 난 상처 부위에 붉은 빛이 일더니 사라졌다.
그러자 드러난 상처 자리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을 뿐 깨끗하게 흉터도 없이 회복되어 있었다.
“고맙군…. 이 은혜는…”
자신의 팔에 난 상처가 없어진 걸 보며 덥수룩하게 긴 수염의 사내가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뭘요…. 그리고 봉합되긴 했지만 3일 정도는 안정을 해야 완전해질 거예요. 무리하게 움직이다간 상처가 다시 터질 테니까 조심해요.”
가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길게 한숨을 쉬며 일어서서 허리를 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걸로 대충이나마 치료가 된 상태였다.
중상자들 세 명은 자신의 마법과 힐링 포션 등으로 치료하고 나머지 몇몇의 인원 역시 자신의 마법으로 치료했다.
그러나 아직 4, 5명의 인원이 남아 있었다.
힐링 포션이 남아 있긴 했으나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남겨둬야 한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치료하자니…. 그것도 힘들었다.
이미 가이스가 메모라이즈 해둔 힐링은 끝났고 서너 번의 마법은 직접 스펠을 캐스팅하고 시전한 것이었다.
덕분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거기다 다른 마법사인 파크스는 치료마법을 모른단다.
“가이스, 너도 상당히 지친 것 같은데 쉬어라. 나머지는 응급조치를 하고 내일 치료하거나 마을에 도착한 후 치료해야 할 것 같다.”
타키난이 많이 지쳐 보이는 가이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맞아, 가이스. 그만 쉬는 게 좋겠어.”
옆에 있던 지아 역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누나 쉬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할게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모두의 눈이 뒤를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이드가 살짝 웃으면서 서 있었다.
“이드……”
“이 녀석 어디 있다가…..”
“아까는 이드 덕분에 살았어….”
“그런데 네가 알아서 하다니? 이드, 넌 회복마법도 사용할 수 없잖아…”
가이스가 이드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치료를 꼭 마법이나 힐링 포션으로만 해야 하나요? 뭐…. 그냥 저한테 맡겨둬요.”
이드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지아를 잡고는 부상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가이스와 타키난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부상자들을 향해 걸어가는 이드를 보고는 궁금함이 생겨 이드가 가는 곳으로 같이 따라갔다.
이드가 도착한 곳에는 4명의 부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오른쪽에 누워있는 남자 곁에 이드가 다가가 섰다.
그 남자는 고통스러운지 이를 악물고 누워 있었다.
그런 그의 오른쪽 팔은 완전히 꺾여져 있었다.
거기다 어디 찧어진 부분이 없었지만 꺾여져 튀어나온 부분은 붉다 못해 까맣게 보이고 있었다.
“많이 아프겠다. 실프.”
이드는 환자를 보고는 실프를 소환했다.
“실프, 가는 침으로 모양을 변할 수 있지?”
이드의 말에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실프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드의 손위에 파란색의 가는 바늘이 하나 놓이게 되었다.
이드의 뒤에서 이드가 하는 걸 보고 있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정령인 실프가 저렇게 모습을 바꾸는 건 처음 본 것이었다.
“우선….. 잠시 잠이나 자라구요.”
이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는 침으로 변한 실프로 환자의 혼혈(昏穴)을 집어 잠재워 버렸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이드가 손에 든 침(?)으로 환자의 목 부위를 찌르자 환자가 잠들어 버리는 걸 보며 상당히 신기해했다.
“완전히 부러져 꺾여 있네….. 뭐 이게 다행일 수도 있지….”
이드는 팔에 뼈가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목 부근의 외관혈(外關穴)을 침으로 점혈하고 곡지혈(曲枝穴)의 안쪽을 자극하여 근육을 유연하게 늘였다.
이드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자극하여 근육이 충분히 늘어나고 유연해졌을 때 부러진 뼈를 제자리로 맞추었다.
이미 근육이 충분히 늘어난지라 뼈를 맞추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부러진 뼈를 잘 맞춘 이드는 침을 뺀 후 뼈가 부러진 자리 부근의 사혈(死血)이 고인 근육에 꽂아 피가 흘러나올 구멍을 서넛 낸 후 빼내었다.
그런 후 비노, 대저(大抵)의 몇 가지 혈을 더 자극하여 근육의 회복을 촉진시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저 사람 저렇게 놓아두고 팔에서 나는 피는 흐르도록 놔두면서 그냥 닦아 내기만 하면 돼요. 피가 멈추고 나면 붕대를 꽉 묶어 줘요…. 그럼 다음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환자에게 다가가는 이드를 보며 가이스 등은 신기해했다.
부러진 팔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데 그걸 팔의 여기저기를 만지며 쉽게 맞춰버리고 일어서다니….
가이스 등에게는 상당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나머지 세 명의 부상자들 역시 이드가 여기저기 누르고 찌르고 하면서 치료를 끝내버렸다.
어떻게 보면 치료한 걸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이드가 그렇게 마지막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저녁을 위해 따끈한 스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걸 보며 이드는 자신해서 밤에 불침번을 서겠다고 말하고는 불가까지 가서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투로 지쳐 있었지만 이드는 그렇게 지칠 것이 없었기에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 자신들의 자리에 누운 사람들은 쌓인 피로와 긴장에 금방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앉아서 모닥불에 장작을 넣고 있는 이드에게 뒤에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무겁지 않은, 무언가 비벼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발소리였다.
“이드, 같이 앉아도 되죠?”
메이라였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려 이드가 앉아 있는 모닥불 근처로 다가온 것이었다.
“물론이죠, 이리로 앉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이드는 자신이 앉아 있던 편안한 자리를 메이라에게 내어주었다. 메이라는 그런 이드를 보며 살짝 웃어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치신 분들은…”
그녀의 물음에 이드는 그녀에게서 얻어온 꿀차처럼 달콤한 허니티를 따라 한 잔을 건네며 대답했다.
“모두 괜찮습니다. 치료도 끝났고요. 세 명만 조금 심하게 다쳤을 뿐이지 나머지는 뛰어다녀도 괜찮습니다.”
“후~ 저 때문에 여러분들이 고생인 건 아닌지…”
“후~ 후룩… 그런 말씀 마세요. 어디 아가씨 잘못인가요? 다 카논 놈들 때문이지… 거기다 여기 있는 용병들이 하는 일이 이거잖아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신경 쓰다간 빨리 늙어요.”
“훗^^… 그런데 이드가 의사인 줄은 몰랐어요…”
메이라는 이드가 환자들을 치료한 걸 생각하며 말했다. 그 말에 이드는 실없이 헤헤 웃어주고는 손에 든 허니티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의사는 아니죠. 단지 조금 사람을 고치는 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그것보다 낮에 아가씨가 하신 마법… 잘하시던데요?”
이드의 칭찬에 메이라 역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드도요. 상급 정령까지 소환하다니 대단하던데요…”
그리고는 둘이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사방은 조용했다. 하늘 역시 맑아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찌했든 힘든 하루였어요.”
그런 메이라의 말에 이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야~ 이드 너 마차에 안 있고…”
“마차에서 편히 가고 싶기는 한데… 환자들이 있잖아. 세 명, 거기다가 벨레포 씨까지 같이 타버리는 바람에 비좁을 것 같아서… 그것만 아니면 편히 가는 건데…”
“…그러셔…”
“당연하지…”
그렇게 나르노와 이드가 잡담을 하고 있을 때 콜이 다가오며 투덜거렸다.
“야, 너희들은 배 안 고프냐? 벌써 점심때도 됐는데 식사도 안 주나… 아~함… 거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해 죽겠다…”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혼자서… 늙은이…”
“당연히 네 녀석도 다야. 나이가 많지…”
“다른 사람들은 쌩쌩하잖아요.”
“그거야 걔네들 사정이고…”
나르노의 말에 콜이 느긋하게 받아쳤다. 사실 콜의 말대로 벌써 정오가 좀 지난 시간이듯 했다. 그리고 일행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쉴 만한 곳에 정지했다.
각자 그늘에 자기 편한 대로 쉬고 있는데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누구 물 가진 사람 없어? 물이 있어야 스프를 만들든, 무슨 다른 먹을 걸 만들든 할 거냐… 누구 없어?”
식사를 준비하던 류나가 물이 없다고 한 말에 한 병사가 소리를 친 것이었다. 사실 물통은 어제 전투 중에 검을 맞아 다 새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새로 구할 여유도 없었다.
“너도 알잖아, 물통 부서진 거… 거기다 우리들이 물이 어디 있냐?”
“그럼 식사도 못 해, 임마…”
사람들이 그렇게 투덜거릴 때, 역시 마법사답게 머리가 좋은 가이스가 해결 방안을 찾았다.
“이드, 너 물의 정령이랑 계약해라… 하급 정령이라도 충분히 물을 구할 수 있잖아…”
그런 가이스의 말에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이 이드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그런 이드를 보며 타키난 역시 한마디했다.
“해봐. 어차피 실패해도 다를 건 없으니까… 뭐, 밥을 못 먹어 모두 기운도 없고 힘없이 있어야겠지만 그게 어디 니 책임… 윽… 머리야~!”
헛소리를 해대던 타키난은 옆에 있던 가이스에게 평소와 같이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요. 해볼게요.”
이드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드를 보며 가까이 가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관심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확실히 모두 정령을 소환하여 계약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후~ 오행대천공… 오행이라 함은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라… 오행은 서로 상생하며 수는 화를 상하고 화는 목을 상하고 목은 토를 상하고 토는 수를 상하는 것이라… 또한 서로 승하는 바, 화는 금을 승하고 금은 토를 승하고 토는 목을 승하고 목은 수를 승하는 바 서로가 없으면 그 균형 역시 깨어지는 것이다…’
이드는 마음속으로 오행대천공의 법문을 외우고 외부의 기를 살펴갔다. 기혈의 이상으로 내부의 기는 발할 수 없으나 외부의 기운을 느끼는 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정령을 소환하는 캐스팅을 시작했다.
“나 이드가 나와 함께할 존재를 부르나니, 물을 다스리는 존재는 나의 부름에 답하라…”
이드의 조용한 말이 끝나고 나자 이드의 앞으로 작은 물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작은 물이 생성되더니 그것이 회전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회전하던 물줄기가 한데 뭉치더니 파랗게 출렁이는 머리를 길게 기른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소환자여, 저와의 계약을 원하십니까…]
이드의 머리속으로 마치 물처럼 투명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속에 들리는 목소리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이드는 너와의 계약을 원한다.”
[당신은 저와의 계약에 합당한 분. 나, 물의 중급 정령인 로이나는 태초의 약속에 따라 계약에 합당한 이드 당신과의 계약에 응합니다. 주인님…]
그렇게 말하며 로이나가 살짝 미소 지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같이 웃어주고는 가이스를 향해 말했다.
“됐어요. 계약했어요…”
“대단하구나 이드….. 한번에 중급정령과 계약하다니…..”
“누나….. 물 어디다가 채우면 되는데요?”
이드의 물음에 아까 소리쳤던 병사가 한쪽에 있는 통을 가리켰다.
“저기에 물을 채우면 된다..”
“알았어요. 로이나, 저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줘.”
이드의 말에 로이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통이 있는 곳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물줄기가 형성되더니 물통을 채워 나갔다.
잠시 후 물통이 채워지자 그녀의 손에서 뻗어나가던 물줄기 역시 멈추었다.
“고마워. 이제 가봐도 되….”
이드가 웃으며 하는 말에 로이나 역시 웃으며 사라졌다.
“고맙다 이드…. 니 덕에 밥 먹게 생겼어….. 야, 빨리 준비해. 배고파 죽겠어…”
콜이 배고픈 사람답지 않게 큰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은 채워진 물로 서둘러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저기 보인다.”
“오늘은 편히 잘 수도 있겠는데….”
앞쪽에서 가던 몇몇이 저쪽 앞에 보이는 불빛을 보며 하는 소리였다.
일행은 한참을 전진해서 저녁이 어두운 지금에서야 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착하면 배부르게 먹어야지. 배고파~~”
점심때 가장 많이 먹은 콜이 배고프다고 투정 비슷하게 부리자 주위에 있던 몇몇이 가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점심때 가장 많은 음식을 먹은 인물도 바로 콜이었다.
일행들이 도착한 마을은 꽤 커 보이는 마을이었다.
마을의 이름은 대닉스.
“어~ 편하다…… 허리가 쭉 펴는 듯한 느낌이다……”
“진짜다…. 이틀 만인데…. 한참 만에 침대에 누워 보는 것 같은 이 감격…”
“야! 너희들 조용히 안 해?”
꽝!!
누워있던 가이스는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무로 된 벽을 세게 때려댔다.
어느 정도 목소리라면 이 방까지 들리지 않을 텐데, 옆방에 있는 타키난 등이 고의인지 모르지만 엄청 큰 소리를 낸 것이다.
가이스의 노력(?) 덕분인지 옆방은 금방 쥐죽은 듯이 조용해져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소근거리는 소리.
“거봐요, 형은 누나에게 안 된다니까….”
“남자가 한 입 가지고 두 말이나 하고….”
“그럴 거라면 시작이나 말지…. 으이그… 우리까지 말려들어서 맞을 뻔했잖아….”
그 말을 끝으로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완전히 끊어졌다.
“근데 그 돼지는 아직도 밑에서 먹고 있지?”
지아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허공을 보고 말했다.
그 말에 가이스 역시 조금 질린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럴걸? 그 녀석 다른 사람들은 대충 먹고 잠자리에 드는데…. 도대체 그 덩치에 그 많은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거기다 좋은 짝까지 만났잖아…. 내 생각에는 쉽게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누나…”
침대에 누워있던 이드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하긴 그렇다….. 그 사람도 아마…. 콜 못지 않을 것도 같아….”
저녁때 일행이 여관에 들었을 때였다.
식사를 하지 않은 일행들은 우선 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워낙 대 인원이다 보니 테이블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중에 한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같이 앉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식사를 주문해 다 먹고 나서도 그 사람은 여전히 먹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 중에도 역시 계속해서 먹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행은 나온 차를 마시면서 둘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의기투합이 되었는지 시킬 음식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 방으로 오르는데도 여전히 둘은 먹고 있었다.
그것도 맛있게……
“그러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해요…”
옆자리에 누워있던 여성 용병이 한소리였다.
“그만 자자….”
“음… 잘자…”
“잘자요.”
오늘도 역시 가이스 옆에 누운 이드는 식당에 있던 콜과 같이 아직 먹고 있을 그 사람에 대해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사람…..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전에 이드 역시 스님이나 도문(道門)의 도사들에게서 느껴본……
‘허무지도(虛無之道)…… 여기서도 그런 기도를 가진 사람이 있었나?….. 어떻게 느끼면 반가운데….^^ 내일은 말이나 걸어볼까?’
이드는 그 생각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임마… 그거 내 베개…..”
“나도 좀 배고 자야죠…”
“조용히 안 해? 잠 좀 자자….”
‘하~ 잘 잘 수 있으려나……’
벽을 향해 누워있던 이드는 스륵 눈을 떴다.
어느새 주위는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게다가 조용했다.
아마 일어난 사람이 별로 없나 보다.
이드는 그 상태 그대로 부시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이드에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가슴 부근에 걸려있는 가이스의 팔이었다.
이드는 손을 빼서 가이스의 팔을 치우고는 일어났다.
다른 쪽 침대에서는 지아가 엎드려 얼굴을 이드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깬 건지 눈을 뜨고 있었다.
“일어났니?”
“응, 누나도 일찍 일어났네…”
“뭐 별로… 이제 일어났거든…. 게다가 일어나기 싫어서 이렇게 있는 건데 뭐…..”
이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일어나려 했다.
일어났으니 세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더군다나 이 긴 머리는 감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히 일어나기 싫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자고 나서 일어나기 싫은 그 기분…….
그때 이드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어제 계약한 정령 물의 중급정령 로이나…. 그리고 중급정령과 계약함으로 인해 저절로 딸려오는 하급정령….
“운디네, 소환.”
이드의 말에 이드의 앞으로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정령의 모습을 한 운디네가 나타났다.
모습은 어제 나타났던 로이나가 작아지고 뒤에 날개가 달렸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이드는 살짝 웃고 있는 운디네를 보면서 말했다.
“운디네, 물로 나 좀 씻겨 줘. 얼굴하고 머리…..”
그 말에 운디네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이드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이드는 눈을 감고 숨을 멈추었다.
그러자 운디네가 큰 물덩이로 변하더니 이드의 머리를 감싸왔다. 그리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물 안에서 이드의 긴 머리 역시 회오리 치는 물 속에서 흔들렸다.
잠시 동안 그렇게 회전하던 물이 떨어지며 다시 운디네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드 역시 시원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게다가 머리나 얼굴에 물방울 같은 건 없었다.
운디네가 다 가져간 것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지아도 이드에게 해줄 것을 부탁하고 편안하게 얼굴과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두 사람 역시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나도 운디네 같은 정령이 있었음….”
지아는 상당히 부러운 듯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가만히 앉아서 세수, 목욕, 거기다 먹을 물까지…
잠에서 깬 사람들은 그대로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라 일어나서 방을 나서 1층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의 자리는 거의가 비었지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 저 사람 어제 콜이랑 쿵짝이 맞아서 식탁을 점거하고 있던 사람 아니야?”
지아의 말대로였다.
그도 이쪽을 봤는지 아는 체를 했다.
그래서 모두들 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안녕하세요.”
“네, 식사를 하시죠…”
그는 사람 좋게 말했다.
그리고 일행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귀여워 보이는 소녀에게 식사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