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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61화


이래저래 용병들에겐 꽤 시끄러운 여행이다.

스르르릉…….

날카로운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이드의 앞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그곳에서는 타키난이 오른손에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위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여 바라보았고, 어떤 이는 주위를 경계하며 긴장하기도 했다.

“타키난, 갑자기 검은 왜 뽑아요…?”

이드가 주위의 시선에 동참하며 타키난에게 의문을 표했다.

이드의 목소리에 타키난이 뒤를 돌아보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는 왜 그러냔 식으로 답해주었다.

“뭐야? 왜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는데… 사람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하도 심심해서 검 손질이나 좀 하려고 그러는구만…… 왜 그러냐?”

타키난은 그렇게 말하며 말 옆에 달린 주머니에서 작은 숫돌과 검은색 천을 끄집어냈다.

그 모습에 긴장한 채 주위를 경계하던 사람들은 괜히 머쓱한지 헛기침을 해대거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르노와 지아 등은 타키난을 따라 검을 뽑아 들고는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 위에서 그러기가 어려운지 지아는 몇 번 숫돌을 떨어트리더니 포기해버렸다.

‘검이라…….’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 한창 자신과 냉전 중인 라미아를 생각해 냈다.

‘제길….. 그래이드론이나…. 뭔 생각으로 검에게 그렇게 강한 인격을 부여해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결국 내 잘못이긴 하지만….’

속으로 투덜거리던 이드는 며칠 전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밤이라 조용한 시간에 별로 잠이 오지 않던 이드는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라미아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내가 분명히 자주 상대해 주겠다고 했는데….. 으~~ 이놈의 기억력….. 치매도 아니고 왜 이러지..”

이드는 달님이 내려다보는 밤하늘 아래에서 잠시 자기 비화를 하더니 가만히 라미아를 불러보았다.

“흠, 아…. 저기…. 라…미아….”

상당히 지은 죄가 있음으로 해서 조금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가 나온 이드였다.

이드의 성격상 자신이 잘못한 게 있으면 거의 저절로 상당히 저자세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

“저기 라미아? 듣고 있어?”

‘으~ 대답도 않는 걸 보니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은데…. 으~ 겁난다.’

“라미아~~”

[……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딱딱하다, 차갑다, 화났다, 접근하지 마라…..

이런 뜻이 거의 총망라되었다 싶을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드를 부르는 호칭도 맨 처음의 ‘주인님’이었다.

‘꼴깍….. 절대 쉽게는 못 풀겠어.’

이드는 순간적으로 상당한 장기전이 연상되었다.

“미, 미안해. 본의는 아니야. 너도 알잖아. 내가 이런 마법이라는 것이 없던 곳에서 온 거…. 그래서 널 인식하는 것이 좀 늦어서 그래서…. 용서해줘, 응?”

이드는 저자세로 사과부터 했다.

우선 화부터 풀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라미아의 화는 생각 외로 상당한 듯 끄떡도 않았다.

[주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정확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니….. 내가 미안하다니까. 이제 화 풀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의 명령이 없다면 돌아가겠습니다.]

“라, 라미아…. 라미아”

이드가 다시 라미아를 몇 번 불러보았으나 단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다음엔 화를 풀어주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말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처음에 들었던 말과 같은 말뿐이었다. 굳이 들자면…..

[잘못을 알긴 하시나 보죠?]

[내가 뭐 하러 이드님처럼 약한 분을 택했는지……]

[이드님이 죽으면 저는 주인을 잃게 되어 다시 침묵해야 한다는 걸 인식이나 하고 계신가요?]

[저를 사용하시면 두 배의 힘을 쓰실 수 있는데….. 절 무시하십니까?]

등등이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자신의 창조자들 중의 한 명인 그래이드론의 힘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뭐 하냐는, 능력이 안 되냐는 말까지 들었었다.

이드로선 상당히 신경 쓰이는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먼저 벌집을 건드린 것을.

게다가 만 년을 침묵하고 있었을 라미아를 생각하면 확실히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 어쩌겠는가.

“하아~~”

라미아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무슨 수로 화를 풀어주지…. 전에 누나들이 화난 것과 비슷하게 반응은 하는데….. 그보다 강도가 훨씬 센 것 같은데…… 그때 제갈 형님이 여자 화 푸는 방법 가르쳐 준다고 할 때 배웠어야 하는데…. 괜히 사화(死花) 누님이 방해해서…. 잠깐! 그런데 라미아가 사람인가? 거기가 여자였던가? 아니잖아……’

“으~~~ 모르겠다….”

“뭘? 뭘 모른단 말이야?”

옆에 말을 몰던 채이나가 이드의 말소리를 들은 듯 이드에게 물었다.

“아니예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진 게….”

“아니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그럼…”

‘그래요…. 에휴우~ 응?’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쉬던 이드는 일행의 앞쪽으로부터 서늘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짐을 느꼈다.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알았겠지만 라미아 생각에 이제서야 느낀 것이다.

그 기운에 이드가 곧바로 벨레포에게 소리치려는데 타키난들이 있던 곳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적입니다. 벨레포님!”

낭낭한 외침이 크게 들려왔다.

이드 등은 그 외침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제 일행과 동행하기로 한 바하잔이 말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는 벨레포에게 이드도 외쳤다.

“벨레포님, 적입니다. 게다가 기운으로 보아 프로카스 때와 같이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알았네, 전원 정지 각자 마차를 중심으로 전투 대형을 형성하고 마차를 보호하라.”

벨레포의 외침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바하잔이 의뢰라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았다.

저기 앞에 있는 벨레포, 레크널, 타키난 등 비록 강하진 않으나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든 인물들보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녀가 먼저 적의 기운을 알아차리다니 뜻밖이었다.

‘나와 같은 경우인가?’

바하잔은 그런 생각에 이드를 다시 보았으나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기엔 너무 어린데다 행동까지 어린 아이의 것이다. 그렇다면 저 소녀는 뭐지?’

바하잔의 생각이 그렇게 이어지는 동안 용병들이 마차를 중심으로 대형을 이루었고 그들의 앞으로 벨레포와 레크널의 중심 인물과 이드, 타키난, 가이스 등의 주요 전투 인원들이 나섰다.

그리고 바하잔 역시 그들과 같이 앞자리에 이드의 옆에 섰다.

“킬리, 앞으로 나섰던 정찰 인원들은?”

벨레포가 자신의 뒤로 서 있는 킬리를 향해 정찰 임무로 앞서간 5명의 인원에 대해 물었다.

“그것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런가, 프로카스와 같은 느낌이라고 하니…..”

바하잔은 그 말을 들으며 옆에 있는 이드를 다시 바라보았다.

저기 벨레포 등은 이드의 말에 전적으로 신뢰를 표하는 것이 이 작은 소녀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프로카스를 상대한 검사에, 뛰어난 소드 마스터 용병들, 거기다 마법사, 정령술사에 …. 이 소녀까지…. 돌아가면 정보원들을 다시 손봐야겠군…………(불쌍해라ㅠ.ㅠ) 그나저나 프라하들에게 공격이 있을 거란 말은 듣지 못했는데…. 이상하군.’

의아함을 느끼던 바하잔은 이제 타키난 등이 느낄 정도로 가깝게 접근한 적이 나타날 방향을 바라보는 일행과 함께 같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의 사이로 진한 긴장감이 돌았다.

이미 프로카스의 힘을 맞본 적이 있는 그들로서는 프로카스와 동급일 것 같다는 말을 이드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옵니다.”

이드의 말과 함께 일행의 앞으로 1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던 작은 바워더미 위로 공간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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