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67화
그리고 그때, 이드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 벨레포와 레크널이 다시 시선을 바하잔에게 주며 그에게 물어왔다.
“방법이 있단 말이요?”
벨레포의 질문에 바하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 준 후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단순하게 갈 수밖에 없소이다. 이미 저쪽에서도 내 존재를 알았으니….. 외부와 내부, 양측에서 녀석을 치는 수밖에는…”
바하잔이 말한 방법은 그의 말대로 제일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고 또한 제일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세 나라 모두 지금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 더구나 그 전쟁이 한 인간의 농간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데…..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바하잔의 말대로 세 나라가 한꺼번에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과연, 제일 빠른 방법이겠군요. 하지만 그것은 세 나라 모두가 허락했을 때에야 쓸 수 있는 방법…. 현재 본국에서 그 방법을 채택할지…. 더구나 아나크렌 쪽에선 이미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해 있는 상태인데….”
방법은 간단하나 그에 따르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운 방법. 벨레포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바하잔 역시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때문에… 내가 직접 온 것이요. 나일론의 여황제께 그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말이요.”
그렇게 말하는 바하잔의 얼굴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때, 다시 레크널이 바하잔에게 의문을 표해왔다.
“그럼…. 카논 측에서도 황제 폐하를 설득해야 할 텐데…. 그쪽은 어찌 되는 것이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말이요.”
레크널의 말에 바하잔은 이미 방법을 마련해놓은 듯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것은 본국에 남아 있는 두 공작 중 프라하가 맡기로 했소이다. 또한 황제께 아뢸 증거와 여러 자료들… 그리고 증인까지 있으니 황제 폐하를 설득하는 일은 별문제가 없을 것이요.”
“그래도 상당히 어려운 방법이군요…”
레크널의 말에 바하잔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최선이오… 또한 메르시오라는 그 괴물…. 그런 존재가 5이나 더 있다고 했소… 하나로도 역부족일 판에 그런 고물이 5이나 더 있다면….. 그들만으로도 한두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오…”
바하잔의 말에 레크널과 벨레포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굳혔다.
그들도 본 것이다. 메르시오라는 괴물의 가공함을….. 그런 인물을 상대하자면 바하잔과 이드와 같은 실력자들이 없는 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럼 최대한 빨리 수도에 도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전쟁이 벌어지려 한다는 연락이 있었으니까…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어 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요…”
다시 들려오는 이드의 목소리에 심각하게 얼굴이 굳어 있던 고개가 끄덕여지고 저절로 이드에게로 고개가 들어갔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비슷한 생각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 일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드의 실력은 절대 흔히 볼 수 없는 것…… 특히 메르시오 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병사가 많아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정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뺄 수 없는 정예가 있다면 바로 이드인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드만 한 실력자를 어디서 구해 올 것인가 말이다.
벨레포는 몸을 일으켜 마차의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이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 나갔다.
“흠, 이드군…. 자네 역시 방금의 말을 들었겠지만 상황이 좀 심각하게 되어버렸으니 말이야….. 어떤가 자네, 난 네와의 계약 기간을 더욱 늘였으면 하는데….. 그것도 나와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님과 말이야…. 그것도 아니면 내가 공작님께 말씀드려 여황폐하를 직접 알현할 기회를 줄 수도 있네만.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후작의 작위도 받을 수 있을 것이야… 어떤가.”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는 지금, 벨레포가 거론하고 있는 말에 별로 강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미 무언가 부족한 것이 없으니 직위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돈이라는 것 역시 그래이드론이 있던 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이드가 평생을 두고두고 쓸 수 있을 정도여서 이드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더구나 중원에선 그냥 심산에 기거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나도 휘말려 있는데….. 그냥 부탁하시면 될 것을…’
이드가 보기에 지금 벨레포가 하는 행동이 별로였다.
돈이나 직위를 들고 나오다니 말이다.
그렇다고 벨레포를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자신 역시 중원에 있을 때 무공으로 저렇게 상대방을 움직였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니요, 어차피 저도 이 일에 말려 버린걸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 역시 부탁드리고 싶었던 건데요.”
이드는 그 말에 앞에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며 자신 역시 미소로 답하고는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그런데 세 나라가 같이 움직여야 할 텐데…. 아나크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드의 질문에 벨레포와 레크널의 시선이 이드를 따라 다시 바하잔에게로 옮겨 갔다.
“아나크렌 쪽으로는 차레브 공작이 가있소이다.
그는 나보다 더 외교 쪽에 능하니 별문제 없을 것이요.
더구나 아나크렌의 젊은 황제…. 선황의 성격대로 꽤 대담하다고 능력 또한 뛰어나다 들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 소이다.”
이드는 그 말에 아나크렌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크라인을 떠올려 보았다.
꽤 대담하고 수하를 아끼는 그……
‘저런 소리가 말을 듣고 있는 거라 보니 아마 그 밑에 궁정 마법사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많이 움직였겠군….
뭐… 그 녀석도 열심히 했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이드가 아나크렌의 황제에 대한 추억을 기억해내고 있을 때 마차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똑!!
“뭐지…”
여전히 달리고 있는 마차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벨레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의 창에 해당하는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그렇게 열려진 창문 사이로 토레스의 얼굴이 비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말을 달리고 있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토레스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마차의 안쪽을 살피던 토레스가 즉시 앞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앞쪽으로 마을이 보입니다.
오늘 쉬기 위해 중간에 들르기로 한 마을입니다.”
토레스의 말에 고개를 내밀어 내다본 벨레포의 눈에 멀리 마을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틀 동안 노숙해온 일행들을 바라마지 않던 마을…
그러나 벨레포는 그런 그들의 바람을 무참히 꺾어 버렸다.
“저곳에서는 식사만을 할 것이다.
또한 식량을 공급하고는 곧바로 다시 출발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하거라..”
그 말에 토레스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틀 동안의 노숙으로 인한 고생과 오늘 낮에 있었던 전투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편히 쉬길 바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토레스였으나 벨레포가 안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통에 말이 막혀 버린 토레스였다.
“피곤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서둘러야겠다.
모두에게도 그렇게 알리고 미리 식량을 챙길 사람을 골라두도록…”
“…예…”
꽤 힘없이 들리는 듯한 토레스의 대답을 끝으로 마차의 창문은 다시 닫혀 버렸다.
얕으막하면서도 넓은 둔덕이었다.
둔덕 위로는 잔디와 꽃 등이 깔려 있었으며 주위로 한두 그루 나 있는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쉬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둔덕의 옆으로 나 있는 잘 정돈된 대로와 저 멀리 보이는 라일론 제국의 수도는 수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런 둔덕에 갑작스런 마나의 진동과 함께 둔덕의 바닥으로 알 수 없는 원형과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빛으로 형성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제일 바깥쪽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삼각형의 마법진이 백색의 막을 형성했다.
이어 마법진을 중심으로 마나의 진동이 극에 달하며 마법으로 이루어진 백색의 막이 조각나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그 마법진의 범위 안에 일단의 인형들이 나타났다.
털썩……..털썩……..털썩……..
“괜찮아? 가이스…”
“메이라 아가씨…..”
“마법사 세 분을 모두 마차로 모셔라…. 자네는 괜찮은가?”
중앙의 40여 명을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나뉘어 서 있던 세 명의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인형들, 그러니까 가이스와 메이라 그리고 파스크를 향해 몇몇의 인원이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명령을 내린 벨레포 역시 자신의 옆에 검을 꽂고서 서 있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예…. 저는 별문제 없어요… 세 사람은요?”
이드는 땅에 꽂아놓고 있던 라미아를 빼들고는 다시 허리에 있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지금 마차로 옮기고 있는 중일세…. 아마 마나의 소모가 심했던 모양일세… 그냥 쓰러져버린 것뿐이니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그런데… 자넨 어떻게 마법까지 알고 있는 건가?”
벨레포가 신기한 것을 본다는 시선으로 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이드를 바라보는 벨레포의 시선은 무언가 경의를 보는 듯했다.
벨레포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간이 하나의 경지를 이루는 것도 평생을 그것에 매진해야 가능한 것인데…
그 면에서 이드는 지금의 나이에 오른 그 경지만으로도 경악할 일이거늘…. 검술과는 다른 마법까지 사용했지 않은가….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드가 인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벨레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틀 정도 전이었다.
하루 종일 달린 일행들은 사람들보다 말이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덕분에 일행들은 그곳에서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보다는 아니지만 그만큼 지쳐있던 사람들은 말이 쓰러진 것을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벨레포와 레크널, 그리고 바하잔은 빨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상당한 불만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드가 나선 것이었다.
이드는 마법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고, 어렵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에게 걱정 말라고 말로 그들의 말을 일축한 후 세 사람의 마법사와 함께 1시간 동안이나 마법진을 준비하고는 마법을 가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일행들은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물론 좌표는 메이라가 정했고 말이다.
그러나 벨레포의 말을 들은 이드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벨레포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법이라니… 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무슨…. 이곳에서 마법진의 중심을 이루지 않았나…..”
벨레포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까지 이드가 라미아를 꽂아놓고 있던 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니요, 저는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단지 진의 중심에서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를 유지한 것뿐인데요…”
“그게… 무슨…. 마법진의 마나를 충당했다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게 아닌가?”
벨레포는 이드의 말에 상당히 헷갈린다는 듯이 그렇게 물어왔다.
“아니요, 전 마법에 드는 마나를 특별한 방법으로 마법진에 공급했고 나머지 세 사람이 마나의 분배와 공간의 좌표 계산, 그리고 마법의 시동을 실시했죠.
제가 한 거라고는 힘쓴 것밖에는 없거든요. 마법이 아니라고요…”
“음…. 그런가….”
마법에 대해 그렇게 자세한 벨레포로서는 이드의 말에 그런가 하는 반응밖에는 없었지만 만약에 마법사가 들었다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펄펄 뛰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네 역시 힘을 썼다면 피곤할 테니 마차에 들어가 있게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출발 준비를 하도록. 목적지가 그야말로 코앞이다.”
“예!”
벨레포의 말에 일행들은 힘들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여행이 끝나간다는 기분에 서둘러 움직일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