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91화
“그런데 이상하지? 분명히 모르카나는 곰 인형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곰 인형이 혼자 움직였어….”
사사삭…. 사삭….. 수군수군……… 소곤소곤…….
이드는 아침 식사를 위해 샤벤더 백작 등이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에 서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이드가 가까이만 가도 비켜나며 수군거리는, 조금 이상한 분위기에 조금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사실 어제, 격렬하고 거창했던 전투를 치렀던 주요 인원 이드와 프로카스, 차레브, 이렇게 세 사람은 격전지에 남아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과는 달리 일행과 샤벤더 백작과 함께 먼저 돌아왔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덕분에 이드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런 분위기, 존경과 경외가 담긴 듯한 그런 분위기를 처음 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성의 복도를 걷던 이드는 싱긋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훗… 생각해보니 저런 눈빛 처음은 아니네… 중원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
순간 이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드의 머릿속으로 라미아의 목소리가 울려 들려왔다.
[햐~~ 그럼 이드님이 원래 계시던 곳에서도 들었었다면… 이드님이 계시던 곳에서도 꽤나 눈에 띄셨나 봐요… 헤헷..]
라미아가 주위에서 몰려드는 존경과 경외의 시선이 자신의 주인이자 영원히 영혼을 함께할 존재인 이드에게 향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 완전히 남편 칭찬 들은 아내처럼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그런 라미아의 물음에 답하는 이드 역시 전혀 어색함 없이 매우 오래되기라도 한 듯한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얼굴에서는 무언가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듯한 그런 미소가 내걸려 있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 예로 지금 주위의 병사들과 기사들의 눈에는 말괄량이 소녀가 장난칠 거리를 생각하는 듯한 짓궂지만 귀여운 미소로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런 병사들 중에는 어제의 이드의 모습과 지금의 부드럽고 소녀틱한 모습이 매치되지 않아 애먹는 머리 용량이 적은 사람도 몇몇이 끼어 있지만 말이다.
‘조금… 아니, 꽤나 많이 눈에 띄잖아… 여기서도 그렇지만 내 나이에 비해 지금 이루고 있는 경지가 있으니까… 게다가 처음 집에서 밖으로 나갔을 때는 내 수준에 대해 전혀 몰랐었거든… 덕분에 꽤나 재미있는 일이 많았지만 말이야. 키킥… 지금 생각해도 웃긴 일도 있단 말이야… 쿠쿠쿡….’
그렇게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이 쿠쿡거리며 웃어대는 이드의 모습에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며 이야기해 달라고 라미아가 졸라댔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비쳐진 이드의 웃음은 무언가 장난칠 계획을 완성하고는 만족한 웃음, 바로 그것이었기에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뒤로 슬금슬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원 시절의 추억에 한참 빠져 있는 이드로서는 그런 그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설마 알았다 하더라도 이쪽으로는 조금은 둔한 듯한 이드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라미아가 말해주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원에서의 일을 가르쳐 달라는 라미아의 말을 애써 흘려들으며 중원에서의 기억을 뛰엄뛰엄 생각하며 걷던 이드를 그 상황에서 끄집어내는 조금은 거친 느낌의 목소리가 있었다.
“허허….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구먼… 이제 오는 것을 보니, 자네가 제일 늦었다네.”
그러나 말의 내용과는 달리 늦은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한 말투의 주인공은 보통 크기의 두 배에 이르는 술병을 한 손으로 주둥이 부분만 잡은 채 식당 앞에 서 있는 샤벤더 백작이었다.
샤벤더 백작은 비록 이드가 라일론에서 오기는 했지만 나이도 어린 데다 작위도 없었기에 편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앞서 이드로부터 양해를 구하고서 말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작위가 없다 하더라도 어제의 전투를 본 이상 이드를 단순히 일행에 같이 따라온 ‘아이’로 보기만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모습으로만 따진다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귀여운 아이’지만 말이다.
“헤헤… 아침에 조금… 게다가 다른 생각할 것도 조금 있고 해서요. 그런데 그러는 백작님은요? 백작님도 약간 늦은 것 아닌가요?”
단 몇 마디로 자신이 늦은 것을 조금 늦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드였다.
“아… 아니, 나는 이 녀석을 가리러 갔다 온 것일세… 꽤나 오래된 녀석이지만 어제의 자네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이 녀석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샤벤더 백작이 내미는 술병에는 술의 이름과 원산지, 그리고 만들어진 년도가 완만하고 부드러운 글씨로 써져 있었다.
“부오데오카…. 120년이 다 되어 가는 녀석인데… 거 꽤나 독할 텐데, 아침부터 무리하는 것 아닌가요?”
비록 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드이긴 하지만 120년이나 묵은 술이 절대 가볍게 마실 정도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중원에서 거지 영감의 호로병에 든 40년 묵은 화로주(樺露酒)가 단 한 모금으로 자신을 가볍게 쓰러뜨린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였다.
“걱정 말게…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그렇게 오래 묵어도 독하지가 않아. 오히려 부드럽게 변해가지. 맛도 일품이고 말이야…. 자자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세나…”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식당 문을 향해 뒤돌아서는 샤벤더 백작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앞서 가던 백작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이드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자네….”
“네?”
“…아니네,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낫겠지. 들어가세나…”
이드는 백작이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려 하자 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 백작의 말은 이드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그런 말투였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백작님… 무슨 말씀이세요?”
“별일은 아니네만… 오늘 식사하는 사람 중에 자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네…”
“예…?”
이드는 백작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물론 아나크렌에 아는 얼굴이 몇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렇게 다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이드의 모습에 백작이 이드의 어깨를 끌었다.
“자, 자… 직접 보면 알 테니 들어가세나. 그 사람도 자네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하니, 잘못 본 거겠지. 그만 들어가세나.”
그렇게 말하며 이드를 끄는 백작이 식당의 문을 열 때였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이드의 머릿속으로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봤던 붉은 갑옷의 기사와 어제 전투 때 간간이 눈에 들어왔었던 붉은 갑옷들…
“화염의… 기사단??”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백작에게까지 충분히 들릴 정도의 중얼거림이었기에 백작의 고개가 절로 돌려졌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알았나… 자넬 찾은 사람이 화염의 기사단 단장인데… 자, 들어가게.”
이드가 간단한 대답도 하기 전에 백작에게 이끌려 들어간 식당은 어제도 들어왔었던 곳으로, 식욕을 돋우는 듯한 분홍색과 시원한 느낌의 푸른색이 조화된,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순한 느낌의 식당이었다.
그런 식당 한가운데로 20여 명은 널찍이 앉을 정도의 길다란 식탁과 그 위로 많은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앉은 사람들, 그들 중 한 명이 이드들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군더더기 없이 빠릿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어선 인물은 아침 식사시간이건만 붉은 갑옷을 걸친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는데, 이드를 보고는 반가운 듯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교관님이셨군요.”
붉은 갑옷의 기사의 ‘교관님’이라는 말에 이드 역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그의 이름을 저절로 중얼거려 버렸다.
“바이… 카라니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