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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02화


“전 카논군은 들어라. 지금 이 시간부로 아나크렌은 더 이상 본국의 적이 아니며 우리의 둘도 없는 우방국이다.

또한 지금 이 시간부로 황궁으로부터 차레브 공작 각하의 별명이 있을 때까지 황궁에서 전달되는 모든 명령을 무시하고 차레브 공작 각하의 명령에 따를 것이다.

그리고 차레브 공작 각하 휘하에 들기 전 사령관으로서의 마지막 명령이다. 황궁으로부터 나온 모든 마법사를 생포하라… 혹여 무고할지도 모르는 자들이니 생포해라.”

정오의 태양, 사람들의 그림자를 그들의 주인의 곁으로 밀어 버리는 정오의 태양이 알려주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하루의 절반이 지났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요리라는 즐거움이자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식사를 할 시간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그런 태양 아래 있는 카논과 아나크렌의 양 진영은 오전까지의 살벌하고 팽팽한 대치 분위기를 완전히 날려 버리고는 새로운 공동의 적을 가진 동질감을 느끼며 바쁘게 대량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진영에서 그렇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성, 아침 일찍 성을 나섰던 샤벤더 백작과 아프르들이 카논의 지휘관들과 함께 돌아온 성 역시 오전과는 전혀 다른 밝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성 전체로 퍼져 나갈 듯한 향긋한 요리향이 하늘에 떠있는 태양과 함께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런 성의 한 곳에 위치한 접대실에는 이십여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으로는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인지, 늦어지는 점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인지 모를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수와 같은 이십여에 달하는 차 중, 그 맛이 약하디 약해 물 대신 마시는 사람이 있을 정도인 니아라는 차가 담긴 잔을 쥐고 있던 아수비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삼일 전까지 본영에 머물고 있었던 모르카나라는 소녀도 그 혼돈의 파편이라는 게르만 뒤에 존재하는 존재들 중의 하나라는 말씀이군요.”

차레브와 아프르를 통해 게르만과 여섯 혼돈의 파편에 대한 모든 것을 전해들은 아수비다와 파이안들이었다.

그리고 나름 경력을 자랑하는 아수비다 후작은 빠르게 차레브와 아프르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정리하고는 되물은 것이었다.

그의 말에 아프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여기 그 모르카나라는 소녀와 전투를 치렀던 이드 백작이 그 소녀가 전에 바하잔 공작을 공격했었던 혼돈의 파편 중 하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오.”

아프르의 대답에 아수비다를 비롯한 카논 측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이드에게로 향했다.

그들 역시 삼일 전 이드와 모르카나 사이의 전투를 목격했기에 이드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 중 하나인 파이안이 시선을 다시 아프르와 차레브에게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현재 그 혼돈의 파편이라는 존재들은… 수도, 황궁에 있는 것입니까?”

그녀의 말에 차레브가 아프르를 향해 고개를 돌려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게르만과 관계된 인물이고 또 본 제국과 관련된 일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네 말대로 황궁이나 게르만 주위에 있다는 게 가장 확률이 높다.”

“그럼…”

순간 차레브의 말을 들은 파이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는데, 그런 그녀의 눈에서는 누군가에 대한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같이 자리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아해했으나, 아수비다나 차레브 등 그녀에 대해 꽤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차레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건 없다. 바하잔과 내가 본국에서 나서기 전에 네 아버지와 함께 약간의 준비를 해둔 뒤였다.

거기에 프라하, 그 사람은 황제 폐하와 같이 있으니… 그들도 함부로 손을 쓰진 못할 것이다. 더구나 네 아버지가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도 아니니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

“… 네, 물론입니다.”

차레브의 말에 파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런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스런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혈육인 아버지가 적진의 한가운데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을 떨쳐버린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드를 비롯한 몇몇의 인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레브가 오전에 전장에서 파이안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은 것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딸… 그것도 친한 친구의 딸이 전장에 나와 있으니 당황할 만도 하지…’

“그런데 네가 이곳에 있다니… 지원해서 온 것이냐?”

차레브는 파이안의 표정이 풀리지 않자 조금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그렇게 물었고, 파이안 역시 그런 차레브의 맘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포커 페이스를 되찾았는데, 그런 모습에 이드는 다시 한번 두 사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직 전장에 나가 본 적이 없기에 아버지께 말씀드렸었습니다.”

“하하… 그렇겠지. 네 부탁이라면 안 들어주는 게 없는 사람이니…”

파이안도 그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드가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요.”

“응?…”

차레브의 말에 실내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상태에서 여러 시선들이 이드를 향해 돌려졌다.

“혹시 두 분 사제지간 아니예요? 분위기가 비슷한 게… 꽤 닮아 보이거든요.”

차레브는 이드의 말에 파이안을 한번 바라보고는 잘 짓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식으로 사제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처음엔 프라하의 부탁을 받아서 조금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거의 8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런데 차레브가 거기까지 말하고는 파이안을 한번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고, 그 말에 실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프라하가 잘못한 것 같구만…. 내가 아니라 바하잔에게 부탁을 했어야 하는 건데… 나에게 배워서 그런지, 여자로서는 너무 딱딱하거든…”

차레브는 그렇게 말하고 뭔가 말을 덧붙이려 했으나 자신을 서늘하게 바라보는 파이안을 보고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분위기를 바꾸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파이안의 분위기가 바뀌자 아수비다가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의 말에 실내의 모든 시선이 아프르와 차레브에게 향했다.

지금까지는 카논과의 전투가 중점적인 문제였지만, 그것이 해결된 지금은 또 다른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적은 카논의 수도, 그것도 황궁에 둥지를 틀고 있을지도 모르니… 더욱 애매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겁게 무게가 잡히고 아프르와 차레브의 입에서 무슨 말인가가 나오려 할 때였다.

똑똑 하는 문 노크 소리와 함께 샤벤더의 부관 중 한 명이 들어서며 점심 식사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렸다.

“훗, 그럼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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