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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08화


팡! 팡! 팡!…

이드는 앞으로 내뻗어지는 주먹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쳐 반탄되는 것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드의 눈앞에 존재하는 공간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이 머무르는 다른 방향과 같이 중간에 시선을 차단하는 물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신강기라도 쳐져 있는 듯이 내지른 주먹이 반탄되다니…

“거, 기분 묘하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꼭 수정강기(水晶剛氣)를 때린, 그런 기분이야…”

하지만 이드는 이내 1kk 정도 떨어진 거대한 외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수정강기보다 더욱 투명했다. 아니, 아예 눈에 잡히지도 않았다.

수정강기의 경우에는 시전자의 주위로 펼쳐지는 강기와 공기층의 미묘한 변화로 강기 너머로의 모습이 약간 흔들리거나 비뚤어져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너무도 완벽하게 반대편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었다.

내력을 끌어올려 대기에 실어 보면 바로 앞에서 저번 혼돈의 파편들에게서 느낀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아리송한 기운이 느껴지긴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잠시 전면을 주시하던 이드는 곧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두 명을 바라보았다.

두 명, 이드는 이곳 카논의 수도 발라파루까지 오는데 일리나와 세레니아만 동행하고 온 것이었다.

라울에게 수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들은 이드는 그날 밤 시케르 영지를 찾아 차레브의 편지를 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수도로 향한 것이었다.

물론 일란과 그래이들을 비롯한 일행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떨어트려 놓고 말이다.

일란을 비롯한 일행들 역시 그런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라일과 칸들을 통해서 적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는 일행들로서는 함부로 나서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드 혼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곳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혼자서 다녀 본 일이 없고, 거기다 길도 모르는 이드였기에 세레니아가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그 사실에 세레니아의 존재를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던 일란들을 제외한 라일이나 토레스 등의 세레니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몇몇의 인물이 자신들은 데려가지 않으면서 어떻게 연약한 세레니아를 데려 가느냐는 말을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세레니아의 무력 시범에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뭐… 개중에 세레니아의 검술을 본 몇몇의 남자들의 어깨가 처지다 못해 손이 땅에 질질 끌리던 모습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반발하는 두 존재가 있었으니 카리오스와 일리나였다.

카리오스야 세레니아가 약하게 드래곤 피어를 흘려 내는 것으로 혼혈을 집을 필요도 없이 끝났지만 문제는 일리나였다.

이드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따라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 라미아의 투덜거림이 이드의 머리를 두드린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물론 중간에 세레니아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이라서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아마, 한 가지 일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드래곤 피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걸요. 그냥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리나도 같이 세레니아를 타고 수도로 출발했고 점심시간이 조금 되지 못해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레니아가 보기엔 어때요?”

“… 제가 보기엔…. 결계… 같아요. 단, 마법진을 이용한 복잡한 그런 결계가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가 가진 힘을 이용한 고급의 결계 같아요. 보통의 결계와는 그 용도와 활용도를 시작해서 질적으로 다른 결계죠.”

이드는 세레니아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것과 함께 그래이드론의 기억들 중에서 결계에 관해서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 지금 세레니아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세레니아와 함께 이드를 바라보고 있던 일리나가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봐야겠죠. 이 앞에 쳐져 있는 게 결계인 것만을 확인하고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요.”

“그러려면 앞에 있는 결계를 깨야 될 텐데… 하지만 이건 보통의 결계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일리나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녀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존재하는 결계가 어떤 건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이드는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서는 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를 툭툭 쳤다.

“하지만 결계는 결계, 보통의 결계와 질적으로 다르더라도 결계를 형성하고 있는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때리면 부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럼요. 저 엘프는 이드님의 실력을 잘 모른다구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슬쩍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레 내력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느껴지는 야릇한 대기의 흔들림에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드가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이드와 일리나, 세레니아의 귓가를 울리는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있었다.

“결계를 형성하는 힘보다 강한 힘으로 부순다.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혼돈의 파편… 인가? 모습을 먼저 보였으면 하는데…”

이드는 상대방의 말소리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끌어올려진 내력으로 느껴지는 대기의 흔들림은 주위에 누군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기에 긴장을 풀지 않고 물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부드러운 목소리의 말에 이드는 애써 잡아 두었던 긴장감이 슬슬 풀려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아? 아차… 깜빡 실수, 헤헤… 아직 몸을 숨기고 있다는 걸 깜빡했네요.”

그리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드들의 20m 정도 앞에서 흐릿한 사람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흐릿한 형태가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그 모습이 또렷해졌는데, 4m 정도를 걷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함께 또렷하게 이드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밝은 청은발을 길게 길러 중간쯤에서 푸른색의 리본으로 묶어준 푸른 눈의 아가씨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매에 방긋이 걸려 있는 미소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호감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가볍게 걸친 듯한 푸른색의 블라우스와 가늘은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듯한 편안해 보이는 푸른색의 바지, 그리고 허리띠 대신인지 허리에 둘러 양쪽 발목 부위까지 길게 늘어뜨린 자주색의 허리띠(?)는 그냥 있어도 충분히 눈에 띄는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드와 일리나들이 모두 눈에 담았을 때쯤, 그 아가씨의 입가에 걸려 있던 방긋한 미소가 더욱 짓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시리젠이라고 한답니다. 그냥 아시렌이라고 불러 주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아, 그래요… 오?”

방긋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는 그녀의 부드럽고도 태평스러운 모습에 이드와 일리나, 세레니아는 한순간 멍해져서는 마주 인사를 해버렸다.

그러다 상대를 의식하고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혼돈의 파편 정도가 된다면 그 정도 짧은 틈에 충분히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든 이드들의 시야에 들어온 아시렌의 모습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자신들의 인사에 방긋이 웃어 보이는 아시렌의 모습.

그 모습에 이드들은 다시 한번 긴장감이 술술 풀려 나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라미아… 혼돈의 파편이라는 녀석들 왜 이래? 저번에는 곰 인형을 든 소녀더니, 이번엔 푼수 누나 같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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