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13화
그리고 잠시 동안 방어 일변도의 검법을 펼치던 이드와 라미아는 무언가 해결 방안을 본 듯 방어 일변도의 검법을 바꾸어 메르시오를 급박하게 밀어붙이며 세레니아에게 전음을 날렸다.
“세레니아 잘 들어요. 조금 있다가 제가 신호하면 뒤쪽의 결계를 공격해요. 보통의 공격이 아니라 아주 막강한 공격이어야 해요. 아마 10클래스 이상의 마법이나 브레스 정도의 공격력이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제가 다가가는 대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줘요.”
그런 전음성과 함께 이드는 세레니아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은빛의 강력한 오초의 무형검강(無形劍剛)을 쏟아내며 메르시오를 아시렌이 있는 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메르시오의 대응도 있었지만, 이드가 워낙 강하게 나왔고, 처음 때와는 그 힘의 차이가 거의 두 배 이상 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하고 밀린 것이었다.
그리고 뒤로 조금씩 밀려나가던 메르시오와 아시렌 사이의 거리가 어느 지점에 이르자, 라미아에게서 뿜어지던 무형검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쳐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라미아를 검집에 집어넣고 허공으로 몸을 뛰우는 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함께 이드의 전신으로부터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은빛의 빛 무리가 일어나 일대를 순식간에 은빛의 세계로 물들였다.
“12대식 광인멸혼류(光刃滅魂流)!!!”
아아아앙…
100m 이상 떨어진 사람의 귓청이 쩌렁쩌렁 울릴 이드의 기합성이 지나가고 나자, 은빛의 세계에 기이한 소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메르시오의 주변을 채우고 있던 은색의 빛들이 맑은 소리와 함께 반월형의 칼날(刃)로 변해 메르시오와 아시렌의 주위를 빽빽하게 채워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은빛의 칼날이 생겨난 곳에는 은빛이 사라지고 원래의 초원의 초록빛이 감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경(奇景),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져 있을 때, 세레니아와 일리나의 귓가로 커다란 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레니아…. 지금이예요.”
“알았어요.”
이드의 외침에 대답한 세레니아의 몸이 붉은 실드로부터 떠오르더니 붉은빛에 휩싸여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그 빛은 순식간에 거대하게 부풀어올라 하나의 형태를 형성하고 사라졌는데, 그 빛이 사라지고 나서 나타난 것이 바로 드래곤, 레드 드래곤이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만 해도 200m는 될 듯한 홍옥으로 만들어진 듯한 엄청난 거체, 그리고 그런 몸체에 버금가는 크기인 거대한 날개, 레드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듯 반짝이는 거대한 눈동자. 지상 최강의 생물… 그리고 지금 그런 거창한 칭호를 받고 있는 존재인 드래곤의 입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열려지며 붉은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괴성과 폭음, 그리고 방금 전 헬 파이어의 열기를 능가하는 듯한 강렬하다 못해 영혼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 드래곤의 권능 중 가장 대표적인 드래곤의 숨결이었다.
쿠아아아아아………….
쿠콰콰콰쾅…………..
하지만 그런 폭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한순간 브레스의 주인인 드래곤의 몸이 붉은빛으로 뒤덮히는 것과 함께 결계를 향해 뿜어지던 그 가공한 브레스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메르시오와 아시렌 주변에 은빛 광인이 형성된 채 한령빙살마강 안에서 브레스와 결계에서 뿜어지는 열을 피하고 있던 이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흰 바빠서 먼저 실례할 테니, 다음에 보기로 하지요.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참(斬)!! 그리고 이건 덤, 금령원환지(金靈元丸指)!!”
쩌엉…
이드의 외침과 함께 메르시오와 아시렌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광인들이 한꺼번에 그 둘을 향해 덥쳐 들었는데, 그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하나의 공을 보는 듯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휘황한 은빛 사이로 이드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쇳소리와 함께 형성되어 뻗어 나가는 황금빛의 다섯 개의 지강의 모습은 유난히 눈이 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다섯 개의 지강이 은빛 사이로 완전히 사라지고 이드가 분뢰보를 이용해 순식간에 세레니아의 곁으로 다다랐을 즈음, 엄청난 폭음 소리와 함께 메르시오의 거친 함성이 들려왔다.
쿠구구구궁….
“크아아앙…. 큭, 이 자식…. 스칼렛 필드(scarlet field)!! 죽인다.”
하지만 그런 메르시오의 외침에도 이드는 피식 웃어 버릴 뿐이었다. 제법 살벌한 말이긴 하지만 적이기에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특히, 앞에 붙은 비명과도 같은 괴성…
‘지강이나 광인에 한 방 맞은 모양이군…’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던 이드가 세레니아가 열어준 실드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세레니아의 용언이 흘러나왔다.
“이동.”
다음 순간 이드들이 용언으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수도로부터 말을 타고 하루 정도 떨어진 꽤 규모가 큰 숲으로, 세레니아를 타고 수도로 가던 길에 경치가 좋다고 보고 지나갔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의논을 거친 이드들은 라일론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모르카나라는 겪어본 상대가 간 아나크렌보다 상대해보지 못한 페르세르라는 혼돈의 파편이 갔다는 라일론의 일이 더욱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드들은 세레니아의 등에 오르기 전, 통신 마법을 통해 일란들에게 아시렌에게 들었던 사실과 지금부터 라일론으로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라일론을 향해 날아올랐다.
“후~~ 정말 빠른데, 벌써 수도의 그림자가 보일 정도야… 정말 발라파루로 갈 때보다 더 빨라…”
이드는 기웃기웃 넘어가고 있는 햇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대지 위에 흐릿하게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라일론의 수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논에서 출발한 것이 2시쯤이었으니, 거의 4시간 만에 말을 바꿔타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거의 한 달은 걸릴 만한 거리를 와버린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세레니아가 서두른 점도 있긴 하지만, 확실히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비행 도중 이드와 일리나가 날려 가지 않도록 세레니아가 결계까지 쳐야 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이드와 일리나만 편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수도인 가일라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드와 세레니아, 그리고 일리나 순으로 셋의 안색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그 강철 같은 피부에 안색이 있으려나…^^;;) 이유는 간단했다. 세레니아의 빠른 속도 덕에 어느 사이에 흐릿하게 보이던 가일라가 또렷하게 일행들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보인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게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가일라의 삼분의 일이 폐허로 변해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폐허가 된 곳은 검게 타버린 곳도 있었고, 산산히 부셔져 돌산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폐허와 나머지 온전한 수도에는 은색과 검은색의 갑옷을 걸치고 바쁘게 움직이는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무너져버린 폐허 사이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 한 발 늦은 모양인데요. 벌써… 다 끝났네요.”
폐허를 잠시 바라보던 이드는 내력을 끌어 올려 수도 전체를 둘러보고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기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드의 말에 엘프답게 먼 거리를 확실하게 바라본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피해가 너무 큰 것 같아요. 거기다 사람들의 피해까지… 저기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아직 구조작업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드는 일리나의 말을 들으며 세레니아에게 말해 수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의 삼분의 일이 폐허가 된 상황에 드래곤까지 나타난다면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세레니아의 텔레포트로 수도의 성문 앞에 설 수 있었다.
“누구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드 일행들을 향해 성문을 지키던 은빛 갑옷과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과 창을 들어 올렸다. 공격을 받아 수도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서 그런지 그들의 분위기는 꽤나 심각했다. 이드는 은빛 갑옷을 걸친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기사 – 수도가 공격받았기에 경비대가 아닌 기사가 직접 나와 있다. – 의 말에 일리나와 세레니아의 앞으로 나서며 그와 그의 뒤에서 자신들을 잔뜩 경계하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중 검은 갑옷을 보고 언뜻 본 듯하다는 생각에 잠깐 고개를 갸웃하고는 눈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드라고 합니다. 이곳 가일라가 공격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제 신분 증명은 케이사 공작님께서 직접 해주실 것입니다.”
이드는 그들의 경계에 신분을 증명할 사람으로 케이사 공작의 이름을 들었다. 그러자 태도가 조금 정중히 바뀌는 듯했으나 쉽게 뭐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지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은빛 갑옷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기사가 그러는 사이 뒤에 서 있던 검은 갑옷의 무표정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음… 이드님….. 이십니까?”
“에…?”
이드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오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이드의 시선을 받은 남자는 이드의 얼굴을 확인하듯이 한 번 바라보고는 뒤에 있는 일리나와 세레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확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