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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18화


세레니아의 말과 함께 그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땅속에 그 무거운 머리를 박고 있던 워 해머가 작은 소성과 함께 땅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드는 워 해머가 완전히 땅속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모두 바라보고는 메르시오를 향해 라미아를 곧추세웠다.

그런 이드의 뒤로는 어느새 다가온 크레비츠와 바하잔, 그리고 세레니아가 서 있었다. 쿠쿠도를 소멸시킨 주역들이 모여 메르시오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훗… 오늘 처음 본 분인데… 메르시오나 모르카나들 과는 달리 이젠 못 볼 것 같네요. 뭐, 그게 저한테도 좋긴 하지만. 그럼, 당신과도 작별 인사를 해 볼까요.”

이드의 말이 끝나자 라미아의 검신이 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르시오는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흥분을 했다지만,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지 정도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흥분으로 동료 하나와 팔 하나를 잃은 상태였기에, 더 이상 흥분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있는 모습대로 흥분에 몸을 맡겨 봐도 괜찮겠지만, 그것도 상대를 가려 가며 해야 할 일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될 상대 같았다면, 자신의 한쪽 팔과 쿠쿠도를 잃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진행되자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 방향이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혼돈의 파편 둘을 소멸시켜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공격해 들어가려던 이드는, 메르시오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그의 눈에 일렁이던 흥분과 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라미아를 거두었다.

그런 행동은 이드의 뒤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많은 전투를 경험했기에, 상대가 전투 의사가 없음을 그리고 이 자리를 피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보통의 상대라거나 단순한 그레이트 실버급의 인물이라면 죽자고 따라가서 소멸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런 방법도 어려운 데다 이동 방법까지 특이하기에, 아예 힘 빼는 일 없이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쳇, 오늘은 확실히 끝낼 수 있었는데…”

이드의 말에 메르시오가 피 섞인 침을 뱉아내며 힘없이 말했다.

“크르르르… 크윽… 퉤… 크크큭… 정말 오늘 끝내 버리려고 했는데 말이다…… 퉤…. 끓는 피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군. 아무래도 네 놈과는 한 번 더 만나야 될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래야 되겠죠. 다음이 네 번째 만남인가. 뭐, 다음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꼭 그렇게 될 거다. 나도 네 놈과 더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이번은 내가 찾아왔으니… 다음 만남은 네가 오는 거겠지. 후후훗… 기대하지. 그때는 쿠쿠도와 내 팔의 빛을 확실히 갚도록 하지.”

우우우웅…….

메르시오는 자신의 말을 끝마치자 나타날 때나 돌아갈 때와 같이 기성을 흘리며 그의 뒤쪽 공간이 흔들렸다.

곧 메르시오는 그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잠시 흔들리던 공간이 원상태를 찾자, 이드와 크레비츠, 바하잔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도 않은 전투였고, 흥분한 메르시오와 수적 우세 덕분에 쉽게 이길 수 있었던 전투였다.

덕분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혼돈의 파편 하나를 잠재웠으니 전혀 손해 나는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주위를 돌아본 크레비츠 등은 초반에 메르시오와 쿠쿠도를 수도 밖으로 밀어낸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드와 크레비츠들이 전투를 벌인 일대의 평야가 완전히 뒤집어져 있는가 하면 터지고 파헤쳐진 곳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보기가 꽤나 흉했다.

지금까지는 정신없는 전투 중이라 몰랐지만, 전투가 끝나고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인 지금에서야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후~~ 정말 대단하구만. 만약 수도 내에서 전투를 벌였다면 나머지 삼분의 일이 또 날아갔겠는걸… 참, 세레니아양. 아까 쿠쿠도가 쓰러지고 이드에게 대답할 때 말입니다. 소멸이라고 하지 않고 잠을 잔다고 표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주위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크레비츠의 물음이었다.

세레니아는 그 물음에 이드를 한 번 돌아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호호… 저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요. 아니… 불가능하다기보다는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지금은 오랜 봉인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래의 힘을 쓰지는 못하지만, 저들 역시 신들과 같은 존재. 때문에 태초의 여러 신들 역시 저들을 소멸시키지 못하고 붉은 돌 속에 봉인했을 뿐이죠. 저희들이 쓰러트렸던 쿠쿠도라는 파편 역시 눈앞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소멸된 게 아니죠. 원래 봉인되어 있던 곳에 재봉인되었다고 보는 게 더 확실할 거예요.”

“그… 그럼….”

세레니아의 말에 바하잔이 급히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바하잔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듯이 먼저 말을 꺼내는 세레니아의 말에 바하잔은 입을 다물었다.

“아… 걱정 마세요. 단순히 봉인된 것뿐이라면 저와 이드가 즐거워하지도 않았겠지요. 쿠쿠도가 비록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저희의 공격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어요. 그렇기에 그는 다시 봉인으로 끌려가 그 안에서 상처를 회복하며 잠이 들 거예요. 하지만 앞으로 적어도 1500년 이상 그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누가 봉인을 푼다고 해도 말이죠.”

세레니아의 말 중에 뭔가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 크레비츠가 물었다.

“헌데… 세레니아양 말 중에 봉인에 끌려갔다니… 봉인은 이미 깨진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들의 힘이 온전치 않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움직인 거지?”

“보통의 봉인은 그렇겠죠. 하지만 이들 혼돈의 파편을 봉인한 것은 신들. 아마도 그만큼 특별한 듯싶어요. 저도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봉인이 다시 활동하는 모양인데요. 제 생각에는 저들을 봉인하고 있던 봉인은 부수거나 해체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봉인되었었던 자들이 방금의 쿠쿠도처럼 모든 힘을 잃었을 때 그 흡입력으로 끌어 가버리는 거죠. 아마… 봉인될 때 그들과 봉인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생긴 것 같아요.”

꽤나 쉽게 설명해준 그녀의 말이었지만, 크레비츠와 바하잔은 ‘그런 봉인도 있던가?’ 하는 얼굴로 서로를 돌아볼 뿐이었다.

하지만 세레니아는 그 두 사람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크레비츠가 물었던 나머지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돈의 파편이 힘도 완전하지 않은 지금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것…. 뭐, 제가 그들이 아닌 이상은 전혀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은 할 수 있죠.”

세레니아의 말에 슬쩍 미소를 짓던 크레비츠와 바하잔이 세레니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 혹시… 게르만 때문 아니예요?”

“응?….. 아, 그럼…”

바하잔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다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듯 이드를 바라보았다.

“네. 아무래도 혼돈의 파편들의 봉인을 푼 것이 게르만인 것 같은데… 그가 봉인을 풀어준 대가로 무언가를 바랬다면요. 그래서 저들이 힘이 완전하지도 않은 지금부터 움직이는 것이라면… 뭐, 메르시오 등이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우선 생각나는 게 그것뿐이거든요.”

“호호호… 제 생각도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 자, 그건 다음에 생각하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들 가세나. 벌써 새벽이 다 돼 가는데…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쉬어야지. 특히 이드와 세레니아양은 오늘 도착했는데 잠시도 쉬지 못했지 않은가. 특히 바하잔 자네는 빨리 돌아가서 상처를 치유해야 될 것 아닌가.”

과연 크레비츠의 말대로 바하잔의 오른쪽 팔에 거친 것에 맞아 찧어진 듯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상처가 꽤나 크고 깊어 안쪽의 근육까지 상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바하잔은 자신에게 쏠리는 일행들의 시선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돌아가 신관에게 치료받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세레니아에게 치료받아도 상관은 없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마법보다는 신성력이 더 좋다는 것을 알기에 따로 세레니아에게 치료를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이드가 나서 몇몇 혈도를 점해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았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크레비츠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이드는 그저 미소만 지어주고는 무너져 버린 성벽을 넘어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드를 비롯한 세 명은 성벽을 넘으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거리가 늘어났으니…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인부들이 꽤나 고생하겠구만…’

“그런데 세레니아. 그 붉은 돌이란 게 뭐예요? 보석을 말하는 건가?”

“호홋… 아니예요. 붉은 돌… 있잖아요. 이드, 땅속을 흐르는 뜨거운 돌. 그게 빨간색이잖아요.”

“……… 하하… 기발한 생각이네요.”

“꺄하하하하…”

“까르르르르…..그… 그만해… 까르르르르…… 가렵단 말이야…..”

하얀 백색의 깨끗한 벽으로 둘러싸인 넓고 아름답게 조성된 동그라면서도 길쭉한 달걀 모양의 정원이었다.

정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서는 갖가지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이 심어져 있고, 다른 벽 쪽으로는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달걀 모양의 정원의 오른쪽에는 둥글둥글한 모양의 돌들을 모아 만들어놓은 작고 깨끗한 연못이 또 그와 대칭을 이루듯 정반대쪽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는 그 크기에 알맞게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의 영역 안엔 잔디와 같은 짙은 초록색의 양탄자 위에서 뒹굴고 있는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귀엽게 머리를 땋은 여자아이와 그보다 어린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함께 뒹굴며 깔깔대고 있었다.

한쪽, 이곳 정원으로 들어서는 입구 부분에 놓인 벽과 같은 유백색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아이들의 천진함은 누구에게나 미소를 가져다주는 것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드는 미소 지으며 손을 내려 자신의 무릎에 앉아 몸을 부비고 있는 하얀 털의 트라칸트 레티를 들어 옆에 앉아 있는 메이라에게 건네주었다.

“간지럽잖아. 임마. 그런데 꽤 길어지네요. 몇 시간째죠? 사람들이 크레움에 들어간 게… 얼마나 지났죠?”

“음… 거의 다섯 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메이라의 반대편, 이드의 옆에 앉아 있던 일리나가 이드의 말에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이드에게 건네받은 레티를 무릎에 놓고 쓰다듬던 메이라가 이드와 그 옆으로 앉아 있는 일리나와 세레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한 회의잖아요. 그렇게 궁금해하며 기다릴 거라면 크레비츠님과 같이 들어가지 그랬어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들어가 봐도 되잖아요.”

그 말에 이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깍지 껴 머리 뒤로 돌리며 폭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후훗… 싫어요. 그 지겨운 곳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머리 싸매고 앉아 있느니 재들하고 같이 노는 게 편하죠. 저나 세레니아가 생각해보고 내린 계획은 한 가지뿐이죠.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상황에 알맞은 국가 단위의 계획은 전혀 떠오르지도 않는다구요. 으~읏~차!!”

이드는 메이라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며 팔을 쭉 펴며 저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건축물인 크레움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는 아마 아나크렌과 연결된 마법으로 열띤 회의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이드들이 쿠쿠도를 잠재운 다음 날, 새벽에 잠들어 태양이 뜨고 나서도 한참 후에서야 일어났었다.

케이사 공작은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와서 아나크렌으로부터 들어온 소식들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간단히 말하면 피해를 입긴 했지만 어제 이드들과 같이 혼돈의 파편 하나를 잠재웠다는 것이었다.

혼돈의 파편이 또 하나 잠들었다는 말에 일행들은 식사를 잠시 중단하고 케이사 공작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틀 전, 그러니까 라일론이 공격받던 그날 오전, 식사를 끝내고 며칠 전 어렵게 구한 무커라는 고급 담배를 입에 문 채 느긋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병사가 양군의 진영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르카나를 발견하고는 입에서 담배가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크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에 놀란 병사들과 기사들이 튀어나왔고 곧 모르카나를 보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한 번 겪었다시피 그녀의 품에 안긴 곰인형의 팔이 흔들릴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튀어 올랐다. 하지만 수가 워낙에 많았던 탓에 병사들과 기사들을 밀어내진 못하고 평형을 유지하는데 차레브 공작과 프로카스가 나타났고, 곧바로 한차례 부딪힘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르카나가 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강렬하게 부딪히고 양측으로 갈라서는데 모르카나가

“저번에 그 이쁘고 착한 오빠는 어딨어… 잉…”

하는 어린아이 같은 소리와 함께 허공 중으로 도망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케이사가 모르카나의 말을 전할 때, 마침 물을 마시고 있던 이드는 사레가 들어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한참 동안 기침을 해댔어야 했다.

그렇게 모르카나가 돌아가고 나서도 차레브와 프로카스는 모르카나가 또다시 올지도 모르기에 그곳의 임시 사령관저에서 묵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모르카나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헌데 그녀의 곁에는 그녀보다 키가 좀 더 큰 청은발의 아가씨도 같이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드는 그 대목에서 나직한 한숨과 함께 쯧쯧거리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두 존재와 전투를 치렀을 차레브와 프로카스 두 사람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 두 존재를 따라 따로 겪었는데… 쯧쯧….

그런 생각에 혀를 차던 이드는 케이사가 가지고 온 소식에 혼돈의 파편 중 하나를 잠재웠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케이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레브와 프로카스, 두 사람이 합공을 한다면 두 명 중 하나를 상대할 수는 있지만 둘 다 상대하는 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모르카나와 아시렌, 두 혼돈의 파편 중 하나를 잠재웠다니.

그런데 그것에 대해 케이사 공작에게 묻던 이드는 모르카나와 아시렌 둘 중 누가 잠들었는지 걱정하는 자신을 알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전투가 있긴 했지만… 그 둘에게는 전혀 적이라는 인식이 들어맞지가 않는 것이었다.

이드가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케이사 공작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는데, 이드의 생각대로 차레브와 프로카스는 아시렌과 모르카나를 상대로 전혀 승기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시렌과 모르카나의 성격 탓이랄 수 있을 것이었다. 실제로 이드와의 전투에서도 조심하라느니,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기를 예쁘다고 말한 존재들이지 않는가. 긴장감이라고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는 존재들.

어쨌든 그런 사실은 차레브가 나서기 전에 마법사에게 말했던 대로 아나크렌의 황궁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 부분쯤에서 케이사가 다시 말을 끊고 당시 아나크렌 황궁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당시 마법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황궁이 상당히 시끄러워졌다고 한다.

전날 차레브와 프로카스가 쫓아버리긴 했지만 모르카나의 출현으로 아마타 쪽으로 알게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라는 말에 황궁에 모인 귀족들과 장군들은 뭐라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회의실 밖이 잠시 소란스러워지더니 곧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의외의 인물이 들어선 것이었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청수해 보이는 깨끗한 얼굴에 갈색의 짧은 머리카락, 그리고 20대의 젊음의 느낌을 내는 남자. 그는 가출한 딸을 찾아 며칠 전 이곳 황궁에 들어온, 지금은 궁의 시녀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서는 가는 선의 주인공들은 은색의 아름답게 꾸며진 레이피어를 허리에 차고 있는 시피르 공주와 앞서 들어선 남자가 찾아 헤매던 가출한 딸인 이쉬하일즈와 그 동료들이었다.

그 여섯 명은 이드가 사라진 후부터 같이 놀기 시작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거의 매일같이 붙어 다니고 있었다.

갑작스레 회의실에 들어선 그와 그녀들의 모습에 크라인이 조금 언짢은 시선으로 그와 그녀들을 돌아보며 회의실로 들어선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시르피 등은 그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이쉬하일즈의 아버지인 클린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시선에 그녀들을 바라보던 대부분의 시선이 클린튼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클린튼은 이쉬하일즈를 슬쩍 바라보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고는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크라인과 아프르 등이 의아해했으나 곧 그의 팔에 청색의 전기와도 같은 스파크가 일어나는 모습과 그것들이 뭉쳤다 풀어졌다 하는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아프르는 곧바로 마법진을 준비하겠다고 말하고는 뛰쳐나갔다.

크라인 역시 그에게 다가가 감사를 표했고, 잠시 후 황궁의 한쪽에서 잠깐 빛이 반짝이며 클린튼과 아프르의 모습이 황궁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클린튼과 아프르가 사라질 때의 빛과 함께 다시 나타난 곳은 아까 전까지 차레브와 프로카스가 머물고 있던 임시 사령관저의 뒤편에 급히 그려진 유도 마법진 위였다.

그렇게 클린튼과 아프르가 도착할 때쯤에는 잘 버티고 있던 차레브와 프로카스가 서서히 뒤로 밀리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린튼은 자신이 뛰어든다고 해서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비겁하긴 하지만 기습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곤 자신의 생각을 아프르에게 전하고 기척을 죽인 채 빙~ 둘러서 아시렌과 모르카나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상대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클린튼이 공격하기 전에 들켜 버렸다.

그렇지만 그냥 물러날 수도 없어 아무렇게나 공격을 날렸는데…

아시렌과 모르카나가 관련된 전투라서 그런지 조금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면 클린튼의 주먹으로부터 뻗어나오는 강기를 모르카나가 이드 때와 비슷하게 땅을 일으켜 막았단다.

뭐…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 폭발로 꽤나 큰 흙 한 덩이가 날아 모르카나가 미처 방어하기 전에 그녀의 등과 머리 부분에 부딪쳤고, 모르카나는 곧바로 기절해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이 갑작스런 일에 공격 당사자인 클린튼도 멍해 있는 사이 다시 황당한 일이 일어났는데, 앞으로 쓰러진 모르카나의 몸이 들썩이더니 그 아래에서 곰 인형이 걸어 나오더라는 것이다.

황당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든 클린튼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곰 인형을 향해 아까와 같은 강력한 강기를 날렸고, 옆에 있던 아시렌이

“어.. 어…”

하는 사이에 강기에 맞은 곰 인형 칸타는 그대로 반대편에 대치하고 있던 차레브와 프로카스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공격을 퍼부었고, 그 공격에 맞아 뒤로 밀리는 칸타를 향해 멀리서 보고 있던 아프르도 공격을 퍼부었고…

모든 공격이 끝나고 나니 그 자리에는 곰 인형의 것으로 추측되는 솜 몇 조각만이 남더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케이사 공작에게 들은 이드와 크레비츠 들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바보 같은 얼굴로 케이사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공격 당사자들도 멍해 있는 사이 아시렌이 큰 소리로

“아아아아앙…… 칸타…. 아앙…….”

하고 울더니 허공 중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때가 하늘이 붉게 물들 저녁 때였다고 한다.

그렇게 케이사의 말이 끝나자 크레비츠가 새삼 이드를 보며 수고했다고 말을 건넸다.

이드는 그런 크레비츠의 말에 툴툴 웃어버리고는 케이사 공작에게 모르카나의 행방을 물었고, 모르카나가 혼돈의 파편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아나크렌의 황궁에 무사히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다음 날, 카논의 귀족들에게 전했던 편지와 문서들이 거의 다 전해졌을 거라는 생각에 아나크렌과 라일론, 그리고 카논의 두 공작과 후작이 참여한 회의에 들어간 것이었다.

회의의 제목은 카논의 수도 되찾기 및 사악한 마법사 게르만의 응징과 남아 있는 혼돈의 파편 잠재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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