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38화
그런 천화의 등 뒤로 연영의 다급한 목소리와 그런 연영을 말리는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스스스슥………..
숲 속으로 뛰어든 천화는 구름이 스치는 듯 한 걸음으로 숲의 중앙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숲에 들어서면서 아까 느꼈던 마나 웨이브의 중심지를 대충 확인하고 일직선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숲 속을 질주하기를 잠시, 숲의 반 정도를 지나온 천화는 주위에 흐르는 기운에 급히 몸을 세웠다. 하지만 주위에 특이한 점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있었다. 아침 햇살에 뽀얀 숲 속 안개가 흩어져 가는 것처럼 허공 중에 옅게 사라져 가는 희미한 마나의 흔적.
천화는 어떤 마법이 깨어지면서 주위로 흩어진 마나와 그 마법을 깨기 위해 사용되었다가 목적을 완수하고 주위로 흩어진 마나를 느낀 것이었다. 천화는 그 느낌을 쫓으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까지 왔음에도 아무런 인기척을 들을 수 없었고, 또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나 문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생각한 천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기척을 살피던 것을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허공에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마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길 잠시. 주위를 돌던 천화의 시선에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촛불처럼 약하긴 하지만 주위보다 조금 강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멈추어 섰을 때 천화의 몸은 어느새 나무들 사이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십 미터 정도를 지났을 쯤 이었다. 천화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천화의 눈에 보이는 곳은 20미터가 조금 넘는 넓이의 둥근 공터였다. 하지만 단순한 공터는 아니었다. 따뜻한 햇살과 몸을 폭신하게 받쳐주는 잔디. 향긋한 향기와 분위기를 잡아주는 꽃. 거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주려는 듯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푸른빛 나무 커텐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기에 이곳 ‘작은 숲’을 찾는 연인들에게는 베스트 원의 장소였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듣고 지금 이곳에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찾아드는 연인이 있다면 “하늘의 우리의 사랑을 질투하나 봐”라는 닭살 돋는 말을 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할 것이다. 태풍이라도 지나갔는지 주위를 감싸고 있던 무성한 나뭇잎은 거의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분위기를 더해주던 꽃은 앙상한 줄기만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특히 연인들이 앉아 사랑을 속삭이던 잔디밭은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삼켜 버리는 공룡의 아가리처럼 그 시커먼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어 사랑을 속삭이기보다는 원수와 만나 결투하기 좋은 장소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서 이곳이 바로 자신이 찾던 곳이란 것을 확인한 천화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천화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공터와 거의 같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구멍 가까이 다가가 구멍 안쪽을 바라보았다. 약 3미터 깊이로 수직으로 뚫려 있는 구멍이었는데 그 구멍의 한쪽으로는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 높이의 동굴 입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이곳을 통해 그 도플갱어 녀석들이 들락거렸던 모양인데, 아까 느껴졌던 마나도 이 구멍을 열기 위한 거였겠군.”
천화의 생각대로였다. 숲 속으로 들어선 가디언들은 통제실과 연락하며 세 개의 신호가 사라졌던 장소를 정확히 찾아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법의 흔적을 느낀 그들은 강제적으로 마법을 풀었고 마지막으로 연영에게 연락한 후에 이 안으로 뛰어 든 것이었다.
“그럼…. 들어가 봐야지. 하지만 그 전에……”
구멍 안을 들여다보던 천화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의 가지 중 가장 곧게 뻗은 가지를 수도로 잘라냈다. 이어 파옥수(破玉手)가 운용되어 파랗게 빛나는 손을 들어 가지의 아랫부분에서부터 끝까지 쓸어 나갔다. 그렇게 한두 번 정도 손이 왔다 갔다 왕복하고 나자 천화의 손에 들려 있던 나뭇가지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길쭉한 나무 몽둥이로 변해 있었다.
천화는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몽둥이의 모습에 처음 의도대로 되지 않아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원래 목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쓰다듬는 손 모양을 따라 동그랗게 깎인 이것은 갈 데 없는 몽둥이였던 것이다.
“뭐, 잠깐 쓸 건데 모양이 좀 이상하면 어떠냐. 내려가서 가디언들에게서 검을 빌리기 전까지만 쓰면 되는 거니까.”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지 검을 거꾸로 쥔 채 팔꿈치 쪽으로 기대어 앞에 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연후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멍 속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사 미터 높이에서 뛰어 내렸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가 사뿐히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눈앞의 통로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것과 바닥에 찍혀 있는 여러 개의 발자국들을 확인한 천화는 착지하는 자세에서 바로 부운귀령보를 시전하여 앞으로 달려나갔다.
누가 본다면 적진에 뛰어드는데 조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함정에 걸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할 정도로 천화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가디언들이 지나 간 발자국이 찍혀 있는 곳에 무슨 함정이 따로 있겠나 하는 것이었다. 설사 그런 함정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방어할 자신이 있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부운귀령보를 시전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여유 있게 피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천화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으로는 어쩌지 못 할 정도로 보이는 잘 다듬어진 네모난 돌로 만들어진 통로, 아래쪽으로 뻗어 있는 높이 5미터, 넓이 5미터 정도의 이 커다란 통로는 처음 입구 부분에서 십 미터 가량만이 흙으로 되어 있고 이후의 길은 모두 지금과 같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였다.
통로는 내부를 밝혀주는 아무런 불빛이 없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둠에 싸여 있었다. 물론, 천화 정도가 되면 그런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통로가 깜깜한 대신 천화가 들어왔던 입구 부분과 통로가 끝나는 부분으로부터 빛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직선 통로 안에서도 방향을 읽고 헤맬 수 있는 궁극의 방향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백여 미터의 거리를 지난 천화는 눈앞에 비치는 빛을 보며 자리에 멈추어 섰다.
빛은 통로의 왼쪽으로 꺾인 코너 부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빛이 있는 곳이니 만큼 그곳에 뭐가 버티고 서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천화는 멈추어선 그 자리에서 천시지청술(千視祗聴術)을 시전하여 주위의 기척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성, 일성 내공을 더 해 천시지청술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던 천화는 어느 한순간부터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뭔가가 부셔지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천화는 그 소리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시전 중이던 천시지청술을 거두어 들였다.
“…. 찾았다. 벌써 시작한 모양이네….”
이미 코너 쪽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곧 바로 코너를 돈 천화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잠시 멈칫하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천화의 앞으로는 거의 통로 전체와 같은 크기의 알아보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문양이 새겨진 석문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 석문의 중앙 부분의 중앙 부분이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동그랗게 베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로는 그 베어진 부분을 채우고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각각 다른 크기의 돌덩이 네 개가 도너츠와 같은 모양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 돌들의 두께는 모두 1미터에 달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해치우셨군….. 검기로 깨끗하게 베어냈어, 흔들림도 없고 힘에도 밀리지 않는 깨끗한 솜씨인데…. 세 사람 중 누구 솜씨지?”
천화는 석문의 매끄럽게 베어진 단면을 슬슬 문지르며 검을 가진 세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갑옷과 검을 가진 두 사람, 그리고 남명이라는 이름의 목검을 가진 고염천 대장.
콰광……….
“앗차…. 내가 다른 데 한눈 팔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절단된 단면을 바라보던 천화는 작지만 확실하게 들려오는 폭음 소리에 자신의 머리를 콩콩 두드리고는 석문을 지나 곧게 뻗어 있는 길을 달려나갔다.
그런 길 양쪽으로는 십여 개에 달하는 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 몇 개는 가디언들이 열어본 듯 열려 있거나 산산히 부셔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몇 개의 방 안에는 천정에 박힌 광구의 빛을 받아 새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는 인골들이 뒹굴고 있었다.
고염천의 이야기를 들은 천화였기에 그 시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칫, 실종돼서 찾지 못한 사람들의 시체가 전부 여기 모여 있었구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천화는 달리는 속도를 더 빨리 했다. 덕분에 천화의 귓가로 들리는 폭음과 괴성은 더욱더 커져 갔고 잠시 후 바로 앞에서 들리 듯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을 때, 천화는 백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문은 마치 궁중의 무도장이나 왕의 접견실의 문처럼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쪽 문이 조금 열려 있어 그 안을 내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했던 천화는 잘됐다는 생각에 문이 열린 곳으로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 안쪽에서 여성의 기합 소리와 함께 강력한 바람이 폭발적으로 뻗쳐 나온 것이다. 당연히 그 바람은 조금이지만 열려 있던 문을 힘있게 밀었고 마침 문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밀던 천화의 머리를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려 버렸다.
“큽…..”
갑작스런 충격이라 대비를 하지 못했던 천화는 저절로 튀어나오는 악 소리를 가까스로 줄이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눈물을 찔끔거리며 정신없이 머리를 문질러댔다. 그런 천화의 손으로는 어느새 볼록하게 부어오르는 혹이 느껴졌다.
“쓰으……. 우이씨…. 아파라… 재수 없게스리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대충 아픔을 삭힌 천화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자신의 머리에 부딪혀 아직 빼꼼히 열려있는 문틈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천화의 한 손은 다시 방금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 열려진 문을 붙잡고 있었다.
“…. 휴우~ 이거 완전히 궁중 연회장이잖아….”
문 안쪽의 모습은 그 크기가 조금 적다 뿐이지 천화의 말과 같이 궁중의 연회장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깨끗한 백색의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옅은 푸른색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이 십여 점이 이르는 그림과 조각, 마지막으로 연회장 전체를 밝히는 거대한 광구를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샹들리에는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 꾸며진 연회장은 화려한 무도회가 아니라 치열한 전투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지금 연회장은 양측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연회장의 제일 상석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인형을 등 뒤로 두고 있는 다섯과 그들과 대치하고 선 아홉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작은 숲’ 앞에서 보았던 다섯 명의 가디언들과 도플갱어로 짐작되는 남녀와 두 마리의 은빛 갈기를 휘날리는 두 마리의 라이컨 스롭이 양측의 중간 부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라, 노이드. 윈드 캐논(wind cannon)!!”
여성형 도플갱어와 대치하고 있던 가부에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양손이 대치하고 있던 여성을 향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손 앞으로 정령력이 모이더니 농구공 크기의 푸른 구체가 생겨나 대포의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도플갱어 역시 보통의 실력이 아닌지 공이 튕기듯 옆으로 순식간에 옆으로 덤블링해 바람의 탄환을 피해 버렸다.
푸우학……… 슈아아아……
그녀가 피해 버린 자리로 윈드 캐논이 부딪히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주위로 강력한 바람을 발생시켰다. 그 모습을 보던 천화는 그 바람으로 인해 문이 다시 밀리는 것을 느끼며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도 약간씩 욱씬거리고 있는 혹이 누구 때문에 생겼는지 이번의 공격으로 확실해진 것이다. 비록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나, 이미 머리에 혹을 달아 버린 천화로서는 왠지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 천화의 눈에 윈드 캐논을 피한 도플갱어를 향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투명한 수정과 같은 보석이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몸을 굴리던 도플갱어도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제, 제기랄….. 내가 네 녀석 생명력은 두고두고 괴롭히며 쪽쪽 빨아 줄테닷!”
악을 쓰듯이 고함을 지른 그녀, 아니 도플갱어는 다급한 표정으로 굴리던 몸을 그대로 허공 중에 뛰웠다. 허공에 몸을 뛰우면 공격을 받더라도 피하지 못하는데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동작이었기에 보고 있던 천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과연 천화의 생각대로 허공에 떠있던 도플갱어를 향해 바람의 칼날들이 날아들었고 도플갱어는 그 공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플갱어의 그런 행동도 도플갱어를 향하던 보석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에 이해가 되었다.
콰과과광………….. 후두두둑…..
보석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마치 폭탄이나 마력탄을 터트린 듯한 폭발과 함께 대리석 바닥의 파편이 튀어 오른 것이다.
“후아~ 쪼끄만게 폭발력은 엄청나네…. 저게 아까 들었던 폭음의 원인이구만…… 음? 우, 우아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던 천화는 엄청난 빠르기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늘한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새하얗게 빛나는 검기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는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뒤로 눕혔다.
쿵…..
서거걱…..
급히 몸을 눕혔기 때문일까. 그 자세 그대로 뒷통수를 돌 바닥에 갔다 박은 천화는 순간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별들 사이를 유성이 지나치듯이 새하얀 검기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