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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41화


“그나저나, 저 녀석 실력이 미숙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미숙한 거 아니야? 지금 말은 완전히 꼬마가 싸움에 지고 자기 엄마 불러 올 테니 기다리라는 거하고 똑 같잖아…… 에이구…. 걱정된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천화는 도플갱어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가디언들을 바라보고는 저 한쪽에 서있는 세이아 등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력도 빵빵한 일곱 명이 두 명의 도플갱어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거기에 자기까지 손을 더해서 뭐하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레이트(great)…. 그 강하다는 마족을 상대로…… 정말 대단해요.”

“맞아, 정말 대단해. 꼭 태영이 형이나 대장님이 싸우는 것 같았어. 근데, 형, 정말 가이디어스의 학생인 거 맞아요? 그 정도 실력이라면 가디언으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실력인데….”

세이아와 강민우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천화의 모습에 눈을 반짝이며 진심 어린 감탄을 표했다. 처음 소녀를 구해 낼 때의 그 엄청난 속도의 경공과 자신들도 처음 보는 마족을 여유 있게 상대하던 검술과 검기, 더우기 천화는 보통의 검이 아니라 몽둥이 모양의 목검을 사용했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쇠로 된 검보다 검기를 사용하기 어렵고 조심스러워 우선 쇠로 된 검으로 검기를 완전히 익힌 후에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목검을 말이다. 그런 실력은 가디언인 세이아와 강민우가 보더라도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교황청에 있던 마족의 모습을 말해 놓은 책에서 마족의 힘이 어떠한가를 대충 알고 있던 세이아의 감탄은 다른 가디언들 보다 더한 것이었다.

“뭘요. 참, 그보다 저 아이는 어때요? 아무 이상 없나요?”

두 사람의 계속되는 칭찬에 조금 쑥스러워진 천화가 슬쩍 다른 곳으로 말을 돌렸다. 그런 천화의 행동에 세이아가 알았다는 듯이 아까 전 소녀를 맡길 때와 같은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네, 외상도 내상도 없고 마력에 당한 흔적도 없이 깨끗해요. 생명력을 흡수하기 위해서인지 도플갱어들이 옮겨올 때 조심스럽게 옮겨온 것 같아요.”

천화는 세이아의 말에 소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행이네요. 마족의 마력에 당하지나 않았나 했는데…”

“헤, 만약 그렇게 됐어도 아무 문제 없어요. 세이아 누나가 가진 신성력이 얼마나 뛰어난데, 그런 마족의 마력 같은 건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거예요.”

“어머? 얘는…..”

“확실히 민우 녀석 말대로 세이아의 신성력이라면, 웬만한 부상은 아무 걱정 없지.”

어느새 그 엄청난 전력 차로 두 명의 도플갱어를 처리해 버리고 다가온 가디언들 중 남손영이 강민우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시선은 세이아나 강민우를 향해 있지 않고, 그들과 마주 서있는 천화를 향해 있었는데, 그 두 눈 한가득 의문을 담고 있어 천화는 그냥 벙긋이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너 정말 굉장한 실력이야. 그 마족이란 놈이 좀 한심하고 엉성해 보이긴 했지만 보통의 실력으로는 힘들어 보였는데, 그런 상대를 여유 만만하게 상대하다니 말이야. 너 정말 가이디어스의 학생이 맞는 거냐? 그 실력이라면 지금 당장 정식 가디언이 돼도 전혀 모자라는 게 없을 텐데….”

“맞아, 도대체 가이디어스에서는 너 정도 실력 되는 녀석을 왜 학생으로 받은 거야? 곧바로 가디언으로 등록해도 괜찮을 걸 말이야…. 어떻게 된 거야?”

남손영의 말에 검은머리의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물음에 따라 기절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제한 모두의 시선이 천화를 향했다. 특히 고염천은 몇 번들을 뻔하다 말았기에 이번엔 꼭 듣고야 말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시선에 천화는 어떻게 말해야 하냐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에….. 그러니까 사실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닐 뿐더러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오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덕분에 여기 상황을 잘 모르죠. ‘잊혀진 존재들이 돌아온 날’에 대해서도 여기 오고 나서야 안 거니까….. 보름 정도 된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그 전엔 중국의 깊은 산중에서 생활했었는데, 어느 날 우리도 모르게 갑자기 날아왔어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신진혁이라는 가디언이었죠. 그 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이곳에 있는 가이디어스에 머물 생각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특별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덕에 별로 돌아갈 필요도 없고 해서 저희는 허락했고, 그 신진혁이란 분 앞에서 잠깐 펼쳐 보였던 검법 때문에 2학년으로 입학했지요. 어차피 한 달에 한 번 시험이 있으니까 그때 정확한 실력을 파악하고 학년을 정하기로요. 그러고 보니 시험이….. 몇 일 안 남았네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아주 간단하게 추려서 말하던 천화는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손바닥을 딱 쳤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염틱하고 여성틱했지만 위화감 같은 것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천화의 이야기를 들은 고염천은 뭔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났다. 대구에 파견되어 있던 가디언에게서 보고가 올라온 내용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아마, 갑작스런 마나에 집중에 의한 강제 텔레포트라고 한 것 같은데, 그때 텔레포트 된 남, 녀 아이 두 명을 가이디어스에 입학시킨다고. 그게 자네였구만….”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라면 저와 라미아에 대한 이야기가 맞는 것 같네요.”

천화가 고염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가이디어스 몇몇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고염천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그 정도라면 시험 같은 건 따로 필요 없지. 이번 임무를 마치고 나가면, 내가 이야기해서 바로 정식 가디언으로 등록시켜 주지.”

“그러면 이왕 등록하는 거 우리 염명대로 등록시키죠.”

천화는 자신의 등록에다 자신이 들어갈 부대까지 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이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직 이 곳, 이 세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라미아의 의견도 물어야 한다. 주인이 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만 만약 혼자 멋대로 했다가 다시 삐치기라도 하면 여간 골치 아파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학교생활이란 게 꽤나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딱 갇혀 있는 곳이라면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가이디어스는 실력만 갖추어지면 바로 졸업이니…… 재미로 다니는 거다.

“저기….. 대장님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 혼자 움직이기는 곤란합니다. 항상 라미아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라미아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고, 또 실력도 확인 받아야 하구요.”

조금 미안한 표정을 내보이며 말하는 천화의 모습에 고염천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하하하하….. 그렇다고 미안해 할 건 뭔가? 자네 실력이 가디언이 될 만하니까 말한 건데,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가디언으로 등록할 거지 않은가. 하하하하…. 참, 그런데 자네 그 라미아라는 아이에게 허락을 물어야 한다니…. 혹시 벌써부터 잡혀사는 거 아닌가?”

장난스런 고염천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 고염천의 말을 들은 천화의 얼굴을 보기 좋게 구겨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째 그런 것도 같았다. 그레센 대륙에서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도 그렇고, 라미아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염천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천화는 즉시 부인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 의견을 물어본다고 말했었지 허락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다구요.”

하지만 그런 천화의 말은 별무 소용이었던 모양이다. 검은머리의 성기사가 천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후후후….. 멀리 떨어지는 일도 아닌 간단히 정식 가디언으로 등록하는 개인적인 일을 의논한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 애써 변명할 필요 없어. 더구나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흐흐…. 깊은 산 속에서 같이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어디까지…. 쿠억!”

퍼억…….

그의 이야기에 한 대 쳐 올릴까 하는 생각으로 주먹을 말아 쥐던 천화는 자신보다 빨리 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는 모습에 만족함을 느끼며 손을 거두었다. 허나 난데없이 뒤통수를 두드려 맞은 검은머리의 성기사는 금발의 성기사를 보며 으르렁 거렸다. 그러나 금발의 성기사는 늘쌍 있는 일인 듯 으르렁거리는 그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천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런 녀석이니까. 그리고 사람이 만났으면 자기소개부터 해야지. 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의 말에 모두들 잊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천화의 처음 등장이 요란했던 지라 그럴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자신들을 소개하기보다 천화가 누구인지 아는 게 더 바빴던 탓에 자신들을 소개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부터 소개할까? 나는 딘 허브스, 그냥 딘이라고 부르면 되. 나이는 이 녀석과 같은 스물 셋으로, 적은 실력이지만 교황청으로 부터 기사 서임을 받아 성기사. 패러딘으로 불리고 있어.”

천화는 딘의 말에 다시 한번 그와 인사를 나누며 딘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인상의 갈색 머리카라과, 잘 다듬어진 얼굴 선, 그리고 차분하고 온화해 보이는 눈. 진짜 얼굴만 보자면 성직자나 학자에 딱 어울릴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 아래로 번쩍이며 팔을 제외한 상체를 완전히 가려주는 두껍지 않은 순백색의 갑옷과 허리에 걸려 있는 백색 바탕에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십자가가 양각되어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화려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얼굴만 볼 때와는 달리 정말 성기사에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그 뒤를 이어 언제 뒤통수를 두드려 맞았냐는 듯 벙긋거리는 표정의 검은머리의 성기사가 자신을 이태영이라고 소개했다. 꽤나 반듯하게 생긴 얼굴이고 딘과 같은 복장의 그였지만 보여주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딘의 성기사가 맞구나 하는 그런 모습과는 달리 이놈은 모습만 성기사고 원래는 용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만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성격답게 아까하다 못한 질문을 다시 하려다 딘에게 한 대 더 얻어 맞았다.

두 사람에 이어 세이아와 강민우가 자신들의 이름을 말했다. 세이아는 열아홉 살로 나이답지 않게 뛰어난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 정식으로 가디언에 등록되어 딘과 같이 한국으로 파견된 사제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아홉 살의 강민우는 스피릿 가디언으로 강력한 염력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여기 있는 아홉 명의 가디언들 중에서도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에 있어서는 수준급이다. 그리고 덧붙인 말에 의하면 둘이 붙어 다니는 이유가 강민우의 누나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진 능력이 있어 어린 나이에 밖으로 나돌아다니니 가족의 정이 그리웠을 것이고, 그것을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에, 집에 있는 누나와 닮은 세이아에게서 찾은 것이다. 그때 이태영이 나서서 “아니야, 둘이 붙어 다니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 민우 녀석이 조숙해서는 벌써부터 미인인 세이아를 꼬시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라고 말해서 옆에 있던 딘에게 두 번이나 두드려 맞은 것은 무시하기로 하자.

다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사람은 캐주얼 복도 아니고 한복도 아닌 특이한 스타일의 옷을 걸친 신우영이란 이름의 여성이었다. 나이는 비밀이라며 말하지 않은 그녀는 스피릿 가디언으로 방술사, 즉 한국의 무당이라고 했다. 옷도 그런 이유에서 파란색과 붉은 색으로 대비되게 입었다고 했다. 모든 무당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수의 무당들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눈에 확 뛰는 옷을 입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영력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었고, 신우영도 그런 화려한 옷을 입는 무당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디언이라 하지만 길거리를 다니며, 또 지금과 같이 눈에 뛰지 않게 근무하는 중에 무당옷을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당의 옷처럼 화려하게 지어놓은 지금의 옷이라고 몸에 주렁주렁 주머니를 매달고 있는 남손영이 설명해 주었다.

그의 나이는 스물 여덟로 연금술 서포터로 염명대의 실질적인 관리자이기도 하다. 꼼꼼하고 이것저것 챙기는 성격이라 호탕한 반면 잔잔한 일에 신경 쓰지 못하는 고염천을 대신해 염명대의 자금문제와 생활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투 때가 아닌 평소 때는 고염천의 말보다 그의 말을 더 잘 듣는다고 하는 소문도 있단다. 이태영이 붙여준 별명이 시어머니라던가……

그리고 좀 뚱뚱한 몸을 가진 팽두숙이란 사람으로 나이는 서른 둘로 아저씨 소리를 들을 때지만, 수련 때문이었는지 아직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그의 펑퍼짐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쇄강결(碎鋼決)이라는 패도적인 외가기공(外家氣功)을 익히고 있다. 때문에 꼬마 아이의 주먹에도 물컹거리는 그의 살을 베기 위해서는 보검소리를 듣는 검이나 검기를 사용해야 할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가부에 나무로라는 입구에서 보고, 숲 앞에서 보고, 여기서 다시 보는 사람으로 스물 둘의 나이라고 했다. 또 연영과 같은 정령을 다루는 스피릿 가디언이라는 것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전투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상당히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렇게 천화와 가디언들 간에 간단한 소개와 인사가 오고 가자 고염천의 시선을 선두로 모두의 시선이 연회장을 한번 누빈 후 다시 중앙으로 모아졌다.

“그럼 간단한 소개도 했으니….. 슬슬 준비를 해야지? 도망친 놈을 찾아 나서든가…. 아니면 그 놈이 자기 윗줄에 있는 놈을 데려오길 기다리던가.”

고염천이 그렇게 말하며 의견을 묻는 듯이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말에서는 천화를 돌려보내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천화를 이번 작전에 동참시키기로 한 모양이었다. 가디언에 전혀 뒤짐이 없는 실력을 확인했으니 도움을 받는다면 몰라도 돌려보낼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마족에 대해서도 여기 있는 가디언들 보다 자세히 알고 있고 말이다.

“제 생각에는 찾아 나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란스러웠는데도 그 마족과 몬스터를 조정하던 마족이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문제가 있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한데요.”

남손영의 말이었다. 지금까지 남손영과 함께 하면서 그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없었기에 모두들 더 들을 것도 물을 것도 없다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옆에서 남손영의 이야기를 듣던 천화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좋아… 그럼 그 보르파라는 마족 녀석이 어디로 날았는지 알아봐야지…”

“그런데 대장. 여기 이 아이는…. 어쩌죠?”

막 고염천이 수색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딘이 아까 전부터 가디언들로부터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고염천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태영을 바라보았다.

“이런, 내가 깜짝하고 있었구만…. 그럼 태영이가 저 애를 데리고 나가서 밖에 있는 연영선생에게 맞기도록 해. 그리고 이곳에선 무전이 안되니까 연영선생이 가진 무전기로 연락해서 롯데월드 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 대피시키게 하고 그런 후에 롯데월드 내의 모든 가디언들을 모아들이라고 해.”

“예, 금방 다녀오죠.”

이태영이 고염천의 지시에 따라 소녀를 안고 연회장을 나서자 고염천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우리도 마족 녀석이 도망쳤을 만한 곳을 찾아 봐야지. 이 근처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우영아, 신안(神眼)을 쓸 수 있겠니?”

“….. 한번 해볼께요. 이 주위에 기운이 이상하게 엉겨 있어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녀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천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족 녀석이 도망쳤을 만한 곳을 찾자면서 갑자기 신안은 뭔가? 그런 생각에 천화는 옆에 서 있는 가부에게 물었다.

“저기…. 가부에….. 누나? 누나라고 부르면 되죠? 저 신안이란 게 뭐예요? 뭐길래 저걸로 마족 녀석이 도망친 곳을 찾는다는 거죠?”

천화의 질문에 가부에는 뭔가 생각하는 듯 대리석 바닥에 가만히 앉는 신우영을 한 번 보고는 천화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음….. 그러니까. 신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신의 눈, 귀신의 눈으로 인간이 볼 수 없는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술법이야. 그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이 될 수도 있고 이런 건물의 벽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건 상황에 따라 언니가 정하는 거야….. 그리고 언니는 여러 가지 무법(巫法) 중에서도 특히 강신술(降神術)과 소환술에 능하기 때문에 신의 힘을 빌리는데 뛰어나. 음….. 그러니까 그 말은 신안의 능력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과도 같은 거야. 하여간 지켜봐. 저번에도 저런 신안으로 도망친 몬스터를 찾아 냈었으니까.”

천화는 가부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손가락을 이리저리 꼬아 잡은 절에 있는 명왕상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수인(手印)을 맺고 있는 신우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신안이란 게…. 단지 쓰는 방법이 다르다 뿐이지 써치(search) 마법과 같은 거란 말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슬그머니 신우영이 맺고 있는 수인을 따라 맺어 보는 천화의 귓가로 나직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확실한 신우영의 주문성이 들렸다.

“일체여래증각부동지변화금강(一切如來證覺不動智變化金剛) 캄(kam)!”

마지막 기합과도 같은 주문성과 함께 담담히 닫혀 있던 신우영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순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천화는 그 모습에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놀랍게도 신우영의 눈이 마치 고양이처럼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며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모양이지 별달리 놀라는 기색 없이 신우영의 주위에서 물러서며 그녀가 이곳저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녀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렇게 잠시간 연회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신우영은 뭐가 잘 풀리지 않는지 슬쩍 아미를 찌푸려 보이더니 다시 정면을 보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뜨여진 그녀의 눈은 술법이 풀린 보통 때와 같은 검은색의 눈이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고염천이 다가가며 물었다.

“어때. 뭔가 알아낸 게 있니?”

신우영은 고염천의 말에 고개를 설래설래 내 저어보고는 정면의 벽, 그러니까 상석이 있는 곳의 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잘 않돼요. 마족의 기운 때문인지 주위의 기운이 엉겨 있어서…. 하지만, 연회장의 네 벽 중에서 저 벽이 좀 이상했어요. 아마 저쪽 벽에 어딘가로 통하는 문이나 길이 있는 것 같아요.”

“좋아, 좋아. 잘했어. 그 정도만 해도 어디야. 자, 모두 들었으면 빨리 가서 찾아봐. 그리고 정 못 찾을 경우 벽 전체를 부셔버리면 되니까. 빨리들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그냥 지금 부셔버리죠?”

고염천의 지시에 따라 나머지 천화와 가디언들은 선우영이 가리킨 벽으로 다가가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발로 툭툭 차보고, 손으로 더듬더듬 더듬어 보고, 귀를 대어 보는 등.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재미있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때마침 소녀를 연영에게 인계하고 돌아온 이태영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물론 그러다가 고염천에게 한 대 맞고 자신도 그 웃기는 행동에 동참해야 했지만 말이다. (완전 동네 북이여….) 열 명의 인원이 벽에 달라붙어 더듬거리는 행동을 하길 잠시. 상석의 단상 바로 옆쪽을 살피던 가부에가 무언가를 찾았는지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대장님, 아무래도 여기 찾은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어디지?”

그녀의 주위로 천화와 가디언들이 모이자 가부에는 아무것도 없는 벽의 한 점을 집어서는 일직선으로 그어내리며 말했다.

“실프를 통해서 안 건데요. 여기 이 부분과 여기 이 부분으로 공기가 흐를 수 있는 미세한 틈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벽 반대편엔 이곳처럼 공기가 풍부하구요.”

“찾았군. 모두들 물어서 있어. 문은 내가 열지. 남명회회(南鳴廻回)!”

서거거걱…….

가만히 가부에의 말을 듣고 있던 고염천은 한번 더 확인하는 것도 없이 주위에 있는 가디언들을 물러서게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목검 남명을 휘둘렀다. 남명은 허공 중에서 수 개의 둥근 원을 만들었고 그 자리를 따라 흐릿한 연홍빛의 기운이 떠돌았다. 순간 서걱하는 살 떨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로 온풍기라 틀어 놓은 것처럼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천화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런 일행들의 맞은편 벽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고염천의 곁으로 강민우가 다가오더니 한쪽 팔을 살짝 들어 올려 고염천의 맞은편 벽을 향해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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