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34화
투둑… 투둑… 툭…
무너져 내린 벽 쪽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가듯 한순간의 공격이 끝난 방안으로 잠시간의 침묵이 찾아든 덕분에 그 소리가 더욱 크게 사람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기습적인 공격을 가했던 페인과 데스티스를 비롯한 세 사람은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서 성큼 뒤쪽으로 물러나 방의 대부분을 가득 채운 먼지로 가득 쌓인 벽면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묘한 침묵의 순간을 깨고 벌컥 열려진 문 사이로 이드와 라미아를 방으로 안내했던 남자의 얼굴이 들이밀어졌다. 지금의 소동에 빨리 뛰어든 것인지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대장, 무슨 일…”
급히 상황을 묻던 남자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뽀얀 먼지와 조금 전 자신이 안내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미소년, 소녀. 그 두 가지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유추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향해 페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당장 모든 대원들을 동원해서 연무장을 포위하도록. 적… 이다.”
“… 하지만 연무장을 비롯한 본부 주위에 어떤 적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이미 상황이 끝난 걸로 보입니다, 만?”
폭음이 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본부 주위를 확인하고 달려온 그였기에 페인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목표가 연무장 쪽으로 나갈 거다.”
페인은 말과 함께 열려진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타고 옅어져 가는 먼지 사이로 천천히 그 모습을 보이는 은은한 황금빛의 투명한 막을 가리켜 보였다. 페인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남자 역시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두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가 자리를 떠난 뒤로도 그가 열어 놓은 문으로 계속 들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먼지는 점점 더 옅어졌고, 이제는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 황금빛 투명한 막 너머로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으로 막을 유지하며 여유로운 모습의 이드와 그런 이드 곁에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느낌의 라미아의 모습이 말이다.
우우웅…
이드는 나직한 공명음과 함께 금령단강을 거두어들이며 맞은편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쉽게 기세가 드러나 여유 있게 막아 내긴 했지만, 몇 마디 말에 이렇게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번 식당에서의 데스티스의 반응을 봐서 대충은 알고 있지만, 룬에 대한 이들의 신뢰와 충성도는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룬에게 해가 될 듯한 말이 나오려 하자 바로 공격해 들어온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몇 마디 말한 것을 가지고 공격을 당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 기분이 별로네요. 예고도 없이 기습이라니…”
“예고가 없으니까 기습인 거다.”
이드는 자신의 말을 바로 받아치는 페인의 말에 눈을 또로록 굴렸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이드는 자신의 귓가로 들려오는 라미아의 숨죽인 웃음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기습에는 이유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유는 있다.”
페인은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진 검에서 푸른색 검강이 타오르듯 솟아올랐다.
“네가 방금 했던 말들이… 룬 님의 명성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흐아압!!”
페인을 말을 마침과 동시에 큰 동작으로 검강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주위를 파괴시킨다는 목적의 공격이었다. 앞서 페인이 내렸던 명령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자신을 건물 밖, 연무장으로 내몰기 위한 공격일 것이다.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무너져 버린 벽을 넘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페인의 공격에 이드와 라미아가 서 있을 바닥까지 무너져 내린 때문이었다. 과연, 80명 남짓 되어 보이는 인원들이 연무장의 외곽을 빙 둘러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뛰어내리는 이드의 눈에 보였다.
“별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그렇죠? 이 상태라면 저 사람들에게 뭘 더 알아내긴 힘들 것 같아요.”
라미아가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룬에 대해 지극 정성이라면, 목에 칼을 들이대더라도 뭔가를 알아내긴 힘들다.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룬이 있는 곳이라던가, 제로가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게 더욱 쉽고 빠를 것이다. 그때 먼저 뛰어내린 두 사람의 뒤를 따라 페인들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섬과 동시에 연무장을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삼엄한 기세가 일어나며 그 중심에 있는 이드와 라미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세란 것이 드래곤의 피어보다 더 할까. 이드와 라미아는 가볍게 그 압박감을 받아 흘려 버리고서 페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드와 라미아의 모습은 전혀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이 아니어서 오히려 검을 들고서 하나 가득 긴장하고 있는 페인들이 허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앞서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 낸 그 엄청난 위용의 강기신공을 생각하고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런 강기를 사용하는 이라면 언제, 어느 때라도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또 먼저 검을 뽑아 든 것은 자신들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저기, 우린….”
페인은 막 뭐라고 말을 하는 이드의 말을 무시하고 검을 들고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를 신호로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데스티브와 퓨가 각각 염동력과 마법력으로 페인을 보조했다. 첫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 내는 이드의 모습에 당연하다는 듯 합공을 가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죽어랏! 파이어 붐버!!”
데스티스의 염동력으로 화살이 쏘아지듯 앞으로 날아간 페인은 파랗게 물든 검을 이드 앞에다 대고 그대로 휘둘렀다. 아직 한참 앞에 있는 이드가 맞을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노린 수는 아닌 듯 검에서부터 쏟아진 푸른 기운이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며 폭발을 일으키며 이드를 향해 내달렸다. 그 폭발 하나하나가 작은 자동차 하나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드는 그 폭발에도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페인의 지금 공격은 위력은 대단한 듯 했지만, 속도가 떨어지는 때문이었다. 특히…
“분뢰(分雷)!!”
분뢰보라는 극쾌(極快)의 보법을 가진 이드를 상대로는 절대로 격중시키지 못할 그런 공격이었다. 하지만 저쪽도 그걸 계산했던 듯 미리 그곳에 서 있는 것처럼 옆으로 비켜서는 이드를 향해 붉은 핏빛 파도가 밀려들어 온 것이다. 다름 아닌 말없는 마법사 퓨의 공격이었다. 가슴 한쪽을 죄어오는 듯한 사기에 물든 흑마법이었다.
“홀리 위터!”
하지만 그 사기는 곧바로 들려오는 라미아의 맑은 음성과 은은한 은빛을 머금은 작은 물방울에 눈 녹듯 땅속으로 녹아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었다. 붉은 파도가 채 다 녹아들기도 전에 이드의 뱃심으로 파고드는 기이한 역도와 그 역도를 타고, 검을 찔러 들어오는 페인의 공격. 그리고 두 사람의 공격이 끝나는 순간 이드가 피한 곳을 노리고 달려드는 흑마법. 이드는 대기에 느껴지는 기감을 통해 거의 본능적으로 공격을 피해 다니며, 이들 세 사람의 연수 합격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호흡을 맞추려면 오랫동안 행동을 같이 하거나, 정말 피 땀 나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특히 페인과 데스티스의 합공은 절묘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치 페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조해 주는 데스티스의 염동력이라니 말이다. 이드는 바쁘게 발을 놀리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본 전투 상대 중 페인들이 가장 합공이 잘 된다고 쓸데없는 판정을 내리고 있었다.
반면 공격을 하고 있는 페인들은 자신들의 공격을 정묘하게 피해 내는 이드와 라미아에게 처음에는 감탄을 느꼈지만, 서서히 그 감탄이란 감정을 사라지고 짜증만이 남았다. 도대체 잘 피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지금까지 줄기차게 공격하고도 옷깃도 자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크윽…. 젠장. 공격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공격을 피해 다니던 이드는 페인의 신호에 따라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는 80여 명의 제로들을 바라보며 라미아를 슬쩍 돌아보았다. 이렇게 공격을 피하다가 말로써 상황을 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겠지?’
‘그렇죠. 이럴 땐 그냥 힘으로 밀어붙인 후에 말을 꺼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의견 일치를 봤다. 저 인원이 한꺼번에 공격해 온다면 이드로서도 조금 곤란했다. 이드는 라미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다시 한번 들어오는 염력 공격을 빙글 돌아 흘려보내며 팔에 안고 있던 라미아를 허공 높이 던져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르릉거리는 날카롭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일라이져의 아름다운 검신.
“그럼… 실례를 좀 하기로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