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59화
보통 성이 하나 세워지면 그 성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그레센에서 성의 수명을 계산해 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서 알아 두어야 한다.
그 첫째는 누구나 알고, 어느 차원의 어느 세계에서든 똑같은 재료의 중요성이고, 둘째는 그 성을 만드는 데 드워프가 참여했나, 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셋째가 성을 건축할 때 마법사가 참석해서 상태 유지 등의 보조 마법을 걸어 주었느냐, 걸어 주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대개 이 세 가지 요소를 따져 보고 성의 상태를 직접 관찰한 후에야 성의 남은 수명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지의 성주가 머무르는 성의 경우 그 수명은 평균 3백 년 전후가 된다.
그렇게 따져 보며 레크널 영지의 영주성의 경우 그 수명은 상당히 길다고 할 수 있었다.
레크널 영지를 처음 받는 초대 레크널 백작이 성을 지을 때 좋은 재료에 알고 있는 드워프와 마법사에게 부탁해서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드워프가 말하기를 5백 년은 특이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한다. 더구나 지어진 지 이제 딱 3백 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드가 90년 만에 찾은 레크널의 성은 여전히 깨끗한 자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신 내부의 장식들은 여기저기 바뀐 모습이 많아 소영주가 이드 일행을 안내한 접대실의 경우 몇 번 왔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외관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틀린 것은 접대실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소영주의 외모도 90년 전 편안해 보이는 한편 만만해 보이던 토레스와는 달리 단단하고 깔끔한, 그야말로 백작가 소영주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짧게 손질된 갈색의 머리카락이 그 얼굴과 잘 어울리는 소영주의 이름은 길 더 레크널이었다.
그는 병사가 전하는 말을 듣자마자 말을 타고서 달려와 채이나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뒤따른 기사들에게 상황 정리를 명령하고는 일행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온 것이다.
“뭔가 마시겠습니까?”
길이 옆에서 하녀를 가리키며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이드는 그 말에 손을 흔들었고, 채이나는 차가운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
하녀가 주문을 가지고 나가자 채이나가 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릴 왜 성으로 초대했죠? 이야기는 성문 앞에서 다 끝난 거였는데…”
말을 타고 급하게 성문 앞까지 나왔을 때 길을 보자면 병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인데도 거의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한 듯 보였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모두 상황을 해결하였으니 그가 굳이 이드 일행을 성으로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레크널의 주인이신 아버지 대신 제가 영지를 맡고 있는 지금은 모든 일에 소홀할 수 없지요. 더구나 병사들과 기사들이 그렇게 많이 쓰러진 상황이다 보니 그냥 넘길 수가 없군요. 거기다 성문에서의 일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퍼지게 될 소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길의 말이 그다지 틀리지 않았기에 채이나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여황의 길에 들어서고부터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엘프의 이야기인 만큼 그 내용은 모두 의심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조금 주관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는 하녀가 과일 주스를 들고 들어올 때쯤 끝이 났다.
“그랬었군요. 짐작은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저의 영지의 기사들 중에 그런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다시 한 번 세 분께 정중하게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길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평민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일행의 실력이 가공할 정도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드는 그런 길을 향해 채이나가 뭐라 한마디 하기 전에 말을 받았다.
“아니, 일부러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희가 기사단에 피해를 입힌 것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전해 듣기로는 엄청난 실력을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저쪽 분의 실력도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은근히 물어오는 길의 말이었다. 영지를 다스리는 자로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영지의 방어력이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닙니다. 저도 이야기를 듣고 성 앞의 상황을 직접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디까지나 사실만을 말한 겁니다. 정말 젊은 나이에 대단한 실력입니다. 당신과 같은 나이의 실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이드는 연이어지는 칭찬에 그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얼굴을 마주 대한 상태에서 저렇게 말하면 듣기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이드였다.
이드가 고개를 돌리자 얼른 이번엔 마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듣기 좋은 소리만을 꺼내는 걸로 보아 길은 두 사람을 영지에 묶어 놓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두 사람 정도의 실력을 보이는 사람이 흔하지 않으니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
잠시 후 마오에 대한 이야기도 끝나갈 때가 되자 길이 이드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검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마치 붉은 드레스를 입혀 놓은 듯한 검입니다.”
처음부터 세 사람을 관찰하던 길의 눈에 라미아가 눈에 띈 모양이었다.
이드는 길이 그렇게 말하자 기분 좋게 웃으며 라미아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인의 본능이라고 할까? 자신의 무기에 대한 칭찬은 스스로에 대한 칭찬보다 더욱 기분을 좋게 한다.
더구나 이드에게 라미아는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이다. 그런 라미아가 칭찬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인연이 되어 저와 평생을 함께 할 녀석이죠.”
길은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라미아를 기억에 담아 두기라도 하려는 듯 세심하게 바라보았다.
가만히 앉아서 음료 잔을 비운 다음 채이나가 여전히 라미아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길에게 말했다.
“그럼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저희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길이 퍼뜩 정신이 든 듯 채이나를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팔려서. 그런데 저희 영지에 딱히 가실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미 저녁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니 다른 마을로 가시지는 못할 것 같은데, 아직 머무를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저희 성에서 하루 머무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이대로 여관으로 갈 생각이에요. 지금 같은 소영주의 친절은 조금 부담스럽거든요.”
“하하…..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사실 두 분의 실력이 탐이 나서 과한 행동을 한 건 같습니다. 그럼 나가시죠. 제가 세 분을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길은 채이나의 말에 두 번 붙잡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은 영주성의 성문 앞까지 나오는 그의 배웅을 받으며 성을 나섰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도록 하지요.”
영주성을 나선 일행들은 우선 영지 내를 돌아보며 쉴 만한 여관을 찾기 시작했다.
헌데 주위를 살피고 걷는 채이나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요?”
“조금….. 아까 본 길이라는 녀석 때문에.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게…. 네가 보기엔 어때?”
얼굴 가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을 떠올리는 채이나였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확실히 사람 좋아 보이긴 해도 속마음을 내보이진 않고 있었죠. 그래도 눈을 보니 그렇게 심성이 나빠 보이진 않던걸요.”
“글쎄다. 뭐, 어차피 이 영지를 떠나면 그 녀석 볼 일도 없으니 상관없겠지. 그것보다 아들. 모처럼 이런 큰 영지에 왔으니까 이것저것 겪어보고 구경도 해 봐야겠지? 가자! 내가 속지 않고 사람들과 거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채이나는 마치 가까운 친구나 애인처럼 마오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드는 그런 모자의 모습에 느긋하게 팔을 머리 뒤로 넘기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날 밤, 채이나는 그녀가 원하는 경험을 마오에게 시켜 주지 못했다.
이미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영지 전체에 퍼진 덕분이었다. 그들의 무력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애초에 그들 세 사람에게 허튼 짓을 시도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뭐, 덕분에 다음 날 영지를 나서는 이드의 아공간에는 최고의 상품들이 풍성하게 되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레크널 영지를 떠나온 지 5일이 지났다.
이드와 채이나 그리고 마오는 여황의 길 근처에 자리한 작은 마을을 앞에 두고 있었다.
지난 5일 동안 세 일행은 하나의 영지와 일곱 개의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마을이 여덟 번째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찾아온 곳이었다.
또 오늘 이드 일행이 묵어 갈 곳이기도 했다.
작지만 아담한 경관이 귀여워 보이는 마을의 집들과 마을 뒤로 보이는 작은 동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기 좋은 곳이었다.
채이나는 경치를 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좋은데. 소개받을 만한 마을이야.”
“뭐…. 그렇네요.”
채이나의 말에 이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드의 시선은 은근히 그들의 우측 저 뒤쪽을 향해 있었다.
또 마오는 노골적으로 이드의 시선이 향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채이나는 짧게 혀를 찼다.
“아직 쫓아오는 거니?”
“네, 정말 은근히 신경에 거슬린다니까요.”
짜증이 묻어나는 이드의 말에 채이나와 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인 거야? 레크널에서부터 따라붙더니 아직까지 쫓아다니네. 이제 그만 따라와도 되는 거 아냐?”
채이나는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추적자. 그랬다. 현재 세 사람은 추적자, 아니 어쌔신을 뒤에 붙여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추적자처럼 끈질기기보다는 은밀하게 일행들을 쫓아오는 그는 세 사람이 레크널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요하게 따라붙은 자였다.
이드는 그의 존재를 그가 나타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을 바로 채이나와 마오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그 존재가 레크널에서 따라붙었다는 점 때문에 길 소영주가 보낸 자인 줄로 짐작했다. 비록 서로가 담백하게 끝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강한 무력에 기사단과 충돌한 인물이니 만큼 영지를 벗어난 동안 감시하려나 보다 생각하고는 가만히 두었다.
헌데 그 존재가 레크널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영지에 접어들어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덕분에 일행들은 그가 길이 사주해서 보낸 인물이 아니라, 채이나에게 당한 용병들의 사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미 수문장에게 사주한 전적이 있는 자들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였다. 얼마 후 추적자가 짧게 사용하는 메시지 마법을 도청해 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라미아가 확인해 주어서 그런 의심은 빨리 접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어째서 길이 자신들을 쫓고 있는가 하는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증에 세 사람은 일단 저 어쌔신이 거의 분명해 보이는 자를 용납하기로 한 것이다. 헌데 생각 외로 그의 존재가 신경이 쓰였던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어쌔신의 실력이 세 사람을 속일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고 할까?
특히 오늘은 그의 움직임이 더욱더 숨어 있는 자 같지 않게 대놓고 해서 은근히 짜증이 일어나고 있었던 이드였다.
마치 낯선 사람이 무서워 숨어 있었던 아이가 부모가 찾아옴으로 해서 자신만만해지는 것을 넘어 건방을 떠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잠깐만요. 이드, 혹시 정말 생각처럼 그런 거 아니에요?”
짜증에 속을 끓이는 이드의 생각을 읽고 있던 라미아가 갑자기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의 불꽃을 느끼며 이드를 불렀다.
“….. 그럴지도.”
“둘이서 무슨 이야기야?”
“잠깐만요.”
이드는 채이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뒤로 미루고서 주변의 대기와 동화되어 정보를 나누던 기감의 영역을 넓게 확장시켰다. 반경 2백 미터, 4백 미터, 7백 미터……
그렇게 퍼져 가던 기감이 일 킬로미터를 넘어가는 순간 이드는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반짝 뜨며 우습지도 않다는 듯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찾았다. 역시…..”
“뭐야… 매복이니?”
과연, 눈치는 빠르다. 이드는 자신의 행동으로 금세 상황을 알아차린 채이나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꽤나 많은 수가 마을에 숨어 있어요. 거의 대부분이 소드 마스터에 근접했거나, 이미 마스터에 이른 자들이네요. 그 수는 일 백. 저기가 마스터만 모여 사는 마을은 아닐 텐데, 당연히 매복이라고 봐야겠죠?”
“흫, 도대체 뭐야? 우리에게 건질 게 뭐가 있다고, 추적하는 것도 모자라 때거리 매복이야?”
“글쎄요. 그럼 아마 길 소영주에게 물어보면 잘 대답해 주겠죠?”
“…… 그 녀석도 온 거야?”
이드는 채이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소영주인 길의 존재.
이드는 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름 아니라 길의 내부에 흐르는 내공의 흐름. 바로 아나크렌에서 만났던 정보 길드의 비쇼와 같이 변형된 금강선도의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처음 길을 보고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토레스가 자신과의 만남을 인연으로 시르피에게서 심법의 여러 가지 변형 중 한 가지를 전해 받아 집안 대대로 익히나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지금 길이 그 심법의 기운 때문에 이드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들킨 것이다.
“그럼 한번 불러내 볼까요?”
이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마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채이나와 마오가 그 뒤를 따랐다.
마을 입구에 다다른 이드는 입구에서 두 번째 위치에 자리한 낡은 집 한 채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건물 뒤쪽에서 느껴지고 있는 금강선도의 변형된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모여 있는 소드마스터들의 기운을 말이다.
“자, 그만 나오지? 이야기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것이거든. 못 나오겠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이렇게 말이야, 철황유성탄!”
쿠웅
이드는 노성을 발하는 강한 진각과 함께 어느새 검게 물들어 버린 주먹을 앞으로 쭉 뻗어냈다.
그러자 다음 순간 그의 주먹으로부터 수박만한 크기의 작은 유성과 같은 강환(剛丸)이 빠져나와 정확하게 이드의 주먹이 향한 곳으로 날아갔다.
바로 마을 입구의 두 번째 위치한 낡은 나무 집으로 말이다.
발출된 강환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이드가 길을 죽일 목적으로 내뻗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대기를 찍어 누르는 듯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그 강환이 집의 벽에 닿는 순간 그 부분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첫 번째 집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피, 피해! 맞받으면 위험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확한 판단이었다. 평소에도 그의 판단이 바른 때문인지 이드가 노린 집 뒤에 있던 세 개의 그림자가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바로 몸을 피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드가 노린 것은 그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강환은 날아가던 위력 그대로 마을의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집들이 막혀 보이지 않는 마을의 중앙! 또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
그것을 알았는지, 처음 경고를 보냈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젠장! 매복은 포기한다. 그 공격을 피해! 모두 마을에서 벗어나 목표물을 포위하라.”
순간 마을 곳곳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솟아오르며 이드 일행을 넓게 포위해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을의 중앙에 이른 철황유성탄(鐵荒流星彈)의 강기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부풀리더니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콰과과광
며칠 전 있었던 금령단천장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주위에 있던 집들 때문에 오히려 그 파편은 더욱 많았다.
그렇게 파편들이 눈꽃처럼 떨어지는 사이로 이드 일행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이루며, 백 명의 인원이 세 사람을 포위했다.
레크널의 성문 앞에서와 같은 형태의 진형이었지만, 그 기세는 차원이 달랐다.
이드와 채이나가 찾던 길은 그 진형의 중앙에 서 있었다.
“네가 말한 기회란 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걸?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
그렇게 세 사람과 길이 서로를 바라보길 잠시, 채이나의 새침한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걷어냈다.
길은 그의 곁에 서 있는 은백발이 인상적인 노년의 인물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들려 드릴 겁니다. 저희가 이렇게 일찍 여러분을 찾은 이유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길의 눈이 정확하게 이드를 향했다.
“나?”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정확하게 이드,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당신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마인드 마스터의 검을 원합니다.”
“무슨…”
이드는 이해할 수 없는 길의 말에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길이 미행을 붙이고, 매복을 했다는 건 알지만, 지식이라니? 마인드 마스터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도대체 그 동안 그레센에 무슨 일이 이렇게 많았길래…..”
마인드 마스터.
이드는 물론이거니와 채이나와 마오조차도 길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지껄이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들자면, 그가 한 말의 핵심이 되는 마인드 마스터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뭔지 다들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사람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다가 구십 년 만에 돌아왔다. 남은 둘은 그와 비슷한 시간 동안 인간들과의 교류가 없었으니 알 턱이 있겠는가 말이다.
새로 생겨나는 단어나 명칭은 그 나라의 말이라고 해도, 거의 외국어나 다름없어서 배우지 않고 사용해 보지 않는 한 요령부득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드는 지구에서 사전이란 것을 해마다 개정하는 과정에서 늘 새로운 단어가 추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 그 이유를 여기서 절감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몇 분의 차이로 형과 아우로 나뉘는 쌍둥이처럼, 채이나와 마오보다 며칠 더 일찍 그레센의 사람들과 어울린 덕분일까.
이드는 마인드 마스터라는 단어를 듣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저 아나크렌의 정보 길드를 인연으로 만나게 된 라오와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와의 대화 중에서 나왔던 단어 하나가 마인드 마스터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마인드 로드?”
“마인드 로드? 마인드 로드…… 마인드 마스터……. 그러고 보니 발음이나 느낌이 비슷하네? 너, 마인드 마스터가 뭔지 알겠어?”
가만히 흘러나온 이드의 말을 바로 곁에 서 있던 채이나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녀도 나름대로 지금의 이 갑작스럽고, 알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을 것이다. 덩달아 채이나를 보호하는 모양새로 그녀의 뒤를 지키던 마오도 이드를 향해 바짝 귀를 기울였다.
이드는 그런 두 엘프의 반응이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꼭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 탓이다. 이드는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알잖아요. 나도 채이나처럼 지금의 대륙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거. 다만 짐작 가는 건 있어요.”
“짐작?”
이드는 채이나가 말꼬리를 잡자 고개를 끄덕이며, 라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간단하게, 아주 핵심적인 내용만을 집어내서 말이다. “예. 정보 길드를 통해서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인데요, 지금의 기사들은 전과는 달리 특별하면서도 전문적인 마나 수련법을 익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한 마인드 로드가 바로 그 모든 마나 수련법들을 통틀어서 말하는 거예요.”
이드가 말하는 이야기의 골자가 무엇인지 대충 알아들은 채이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주었다. 그녀의 입가로는 어려운 문제의 실마리를 끄집어낸 수학자의 얼굴처럼 만족스러운 미소가 슬며시 떠올랐다.
“흐흥, 네가 대충 뭘 말하는 건지 짐작이 간다. 모르긴 몰라도 마인드 마스터라는 게 마인드 로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마인드 마스터를 말 그대로 풀어보면 마인드 로드를 완벽하게 익힌 자라는 뜻과 마인드 로드의 지배자 또는 주인, 아니 여기서는 주인이라기보다는 시초[始初]라고 해석하는 게 맞겠지? 그럼 저 자식이 말하는 건 어느 쪽이야? 전자야, 후자야”
채이나는 나름대로 추론해 보는 중에도 이쪽을 흥미로운 눈길로 주시하고 있는 길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그리고 이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후자요.”
“후자입니다.”
두 개의 대답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처음의 대답은 채이나와 마오가 추궁이라도 하듯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라보고 있던 이드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대답의 주인은…….
이드를 포함한 세 일행의 시선이 슬며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돌려졌다. 길은 조금 전과 여전히 변함없는 얼굴이었지만 조금은 의외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인드 마스터의 후계자가 마인드 마스터를 모르고 있었다니 놀랍군.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이 갑자기 진리처럼 느껴지는군요. 자신에 대한 소문은 자신이 가장 늦게 안다! 지금이 꼭 그 꼴인 것 같습니다.”
“넌 입 닥쳐.”
서슴없이 이어지는 길의 말을 더는 못 듣겠다는 듯 채이나가 명령하듯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온갖 예우를 다하며 정중하게 대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적으로 나타나서는 저렇게 여유 있게 떠벌리는 말이라니! 뱃속이 다 뒤틀리는 채이나였다.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채이나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재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채이나의 역겨운 감정 같은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길은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날카롭게 쏘아지는 채이나의 박력 어린 모습에 전혀 위축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허기사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 자리에 나타날 생각도 안 했겠지만 말이다.
거기다 채이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도통 없는 건지 당당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여는 길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이긴 하지만 서로 간에 이해를 바로 하려면 자세한 사정 설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할 말은 다 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길의 말이 다시금 술술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길이라 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이어지던 길의 목소리는 채이나의 간단한 손동작 하나에 허공 중의 메아리로 변해 버렸다.
다름 아니라 채이나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 일행들 주변으로 소리의 장벽을 만들어 버린 때문이었다.
길도 채이나가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구는 데는 어쩔 수 없었는지 조용히 입을 닫았다.
듣고만 있다면야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계속 말을 이었을 길이지만 상대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이상엔 별수가 없었던 것이다.
억지로 듣게 하자면 검을 들어 정령을 벨 수밖에 없는데, 그랬다간 바로 목적도 없이 싸우게 되는 소모적인 전투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되도록이면 직접적인 전투는 피해야 하는 게 길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길을 침묵시킨 채이나는 가벼운 욕설을 날려 주고는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마인드 마스터가 뭔지는 알았으니까 이야기 계속하자.”
“뭐, 계속할 것도 없어요. 마인드 마스터가 뭔지 알면 이야기가 자연적으로 이어지잖아요.”
그의 말대로 마인드 마스터가 뭘 뜻하는지만 알면 복잡하게 뭉쳐 있는 듯 보이는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풀린다.
길과 기사들이 원하는 것은 마인드 로드의 창시자인 마인드 마스터의 지식과 그의 검이라고 지목한 라미아다.
헌데 그들이 말하는 마인드 마스터의 검, 라미아는 이드의 곁을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저들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 말은 곧 라미아의 주인인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라는 말과 같은 존재가 되는 셈이었다.
더구나 채이나는 90여 년 전 숲으로 돌아오기 전에 라일론의 황궁에 머무르며 이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오랜 과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자 상황은 더욱 확실해졌다.
“뭐야, 그럼 네가 마인드 마스터가 맞단 말이야?”
아마 사람들이 들었다면 난리가 나도 수백 번은 났을 만한 말이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계자가 아니라 그 마인드 마스터가 본인이라니…….
그러나 다행히 채이나가 세워 놓은 소리의 장벽은 길의 목소리만 막는 게 아니라 이쪽의 목소리 역시 차단해 주고 있어서 걱정은 없었다.
“정확해요. 라미아를 알아본 것도 그렇고……. 마인드 로드라는 이름도 그렇고……. “
기가 막히다는 투로 채이나가 버럭 소리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던 이드는 아차 하는 생각에 급하게 입을 닫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것이다.
거기다 눈치 빠른 채이나가 그런 이드의 반응을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마인드 로드의 이름? 그건 또 뭐야?”
이드는 채이나가 의미심장하게 묻자 자신의 입을 쥐어 패고 싶었다. 정말 다시 생각하기 싫은 말인데…….
하지만 궁금하다 싶은 건 집요하게 아니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채이나를 피할 수도 없는 노릇!
“키킥……. 그냥 말해 주지 그래요.”
이드가 채이나의 시선을 피하며 끙끙거리는 사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라미아가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라미아, 너!”
그 목소리에 이드는 움찔 몸을 떨더니 급하게 라미아의 이름을 불렀다.
다년간 그녀와 함께한 덕분에 라미아의 성격을 훤히 꿰고 있는 이드였다. 그렇기에 이어질 그녀의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미아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항상 한 발 늦는 이드였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요, 좋잖아요. 이드! 마인드 로드! 무언가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이라구요.”
“……자랑은 개뿔.”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끄러지듯 흘러나온 라미아의 음성을 듣자 이드는 나직이 불평을 늘어놓고는 슬그머니 채이나와 마오를 돌아보았다.
처음 그 단어를 접하고 한참 황당해했던 이드였기에 두 엘프가 어떻게 반응할지 은근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드가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눈을 반달로 만들고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채이나가 있었다.
그러다 마침 슬쩍 고개를 돌린 이드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얄궂은 웃음소리를 흘려냈다.
“킥킥…… 아하하…….”
재밌어 죽겠다는 것처럼 이어지는 채이나의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듣고 있는 이드로서는 자신을 놀리는 얄미운 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젠장.”
사실 유무형의 어떠한 업적으로 인한 결과물에 개인의 이름이 붙여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영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한 것과 같아서 어떤 이들이 그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그의 이름이 거론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지금도 기사들의 존경의 대상으로 언제나 거론되어지고 있는 최초의 소드 마스터인 그란 첼시를 들 수 있다. 이미 수천 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기사들뿐만 아니라 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되었다.
흔히 말하기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떤 거대한 제국의 근엄한 황제의 이름보다 더욱 생생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법! 거기다 상황에 따라서 그 이름을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예외적이긴 해도 아주 없다고 볼 수는 또 없는 일이다.
다름 아닌 이드가 그랬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금강선도를 이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점이 이드의 얼굴을 더욱 화끈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곤란해하는 이드의 반응과 그런 이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놀려 대는 라미아의 능글맞은 모습이 채이나를 이토록 신나게 웃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 그만 좀 웃어요. 웃기는 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요란스럽게…….”
이드는 자신을 향해 연신 빙글거리는 채이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쏘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에 평소라면 무시했을 채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바짝 다가왔다.
“그래, 미안, 미안. 네 반응이 재미있어서 말이야. 그런데…… 어쩔 거야? 이건 더 들어볼 것도 없이 네 문제잖아. 네가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저 인간들 쉽게 물러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채이나는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소리의 장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는 이쪽을 향해 긴장한 채로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는 백여 명의 기사들이 보였다. 저들 중에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자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무작정 뛰어드는 전투가 대개 그렇듯이 그들은 그저 명령에 충실하면 될 것이다. 그게 더욱 난감하게 느껴지는 이드였다.
“저도 알아요. 모르긴 몰라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채이나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을걸요?”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채이나의 지극히 올바른 상황 판단에 그렇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이 기사들이 중요한 한 가지를 저버렸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분명 기사였고, 기사가 기사도도 무시한 채 이드 일행의 수십 배가 넘는 인원으로 기습을 준비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무림에서 가장 흔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무보[武寶]를 노리는 쟁탈전이었다. 나름대로 무림의 생리를 익힌 이드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낯설지는 않았던 것이다.
“헤에, 그렇다면 다행이고. 자, 그럼 전문가 이드 씨.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별것 아닌 것처럼 대꾸하는 이드에게 채이나는 어서 해결해 보라는 듯 그의 등을 쿡쿡 찔렀다.
하지만 채이나의 재촉에 복잡한 시선으로 기사들을 바라보던 이드가 내놓은 것은 지금 상황을 풀어낼 해답이 아니라 깊은 한숨이었다.
“하아아아!”
정말 온 세상 걱정거리를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한숨 소리였다.
그 깊은 한숨 소리에 멀뚱히 이드를 바라보던 채이나의 목소리가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왜…… 그래? 저 녀석들 처리하는 게 곤란하기라도 한 거야?”
“아뇨. 그냥 갑자기 왠지 제 인생이 꼬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어이없는 한숨에 이어 이번엔 웬 인생 타령? 뚱딴지같은 말에 채이나는 당황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상황과 전혀 연관성 없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채이나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머리를 거칠게 긁어 넘겼다. 그러고는 또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쩝, 신경 쓰지 마요. 그냥 혼잣말이니까. 그보다 여기 장벽이나 치워 줘요. 빨리 해결 보고 우리도 쉬어야죠.”
별것 아니라기보다는 말하기 싫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투의 말이었다. 또 그게 이드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사실 한숨과 몇 마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아니, 크다면 클지도 모르겠지만, 이드 개인으로서는 정말 골치 아프기만 할 뿐인 그런 일들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갑자기 출현한 적대적인 무리들! 흔히 적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문제였다.
차원을 이동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드와 얽히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싸우게 되는 이들…….
처음 그레센에 왔을 때는 혼돈의 여섯 파편이 그랬고, 또 미래의 지구로 갔을 때는 제로, 그리고 다시 그레센으로 돌아온 지금은 그 정체가 모호한 기사단까지!
정말 그들은 이드가 나타나기만을 목이 빠져라 고대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가는 길에 누군가 고의적으로 미리 이들을 준비해 놓았다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불쑥불쑥 나타났고, 이드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히며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걸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레센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일이 벌써 일어났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거기다 어느 누구보다 이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라미아조차 쯧쯧 혀를 차기만 할 뿐 별달리 위로해 주는 말이 없을 정도이니 그 한숨이 더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눈치가 아무리 빠른 채이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실프, 수고했어.”
다만 수백 년에 이르는 경험으로 이럴 땐 그저 조용히 있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채이나는 그런 소중한 경험을 따라 조용히 이드의 말을 들었다.
다름 아니라 열심히 주변의 목소리를 단속하고 있는 실프를 불러들인 것이다.
채이나의 말에 예쁜 미소와 함께 실프가 만들어 놓았던 장벽이 사라지자 어느 정도 여유로 풀어지는 듯하던 양측 간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나를 느끼고 다룰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기사들인 만큼 서로를 가르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소리의 장벽이 없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때문이었다.
처처척
늘어져 있던 창과 검이 들리고, 날카롭던 눈길들이 서슬 퍼런 칼날처럼 변해서 이드 일행을 향해 번뜩여 댔다.
하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이드와 그 일행은 그들의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태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넘어 그들을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고는 그저 정면에 서 있는 길과 그 옆에 은백발의 노인만을 노려보았다. 이 자리에는 그 두 사람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크흠, 나누시던 이야기는 끝나신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런 이드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느닷없이 바로 앞으로 다가서는 이드의 행동에 경계심이 들었는지 지금까지 여유만만하게 그래서 뺀질거려 보이는 길의 얼굴에 슬그머니 긴장감이 흘렀다.
기사단의 부단장인 호란으로부터 길은 확실하게 이드의 실력을 전해 들은 터였다. 때문에 이렇게 많은 기사들 속에서도 이드의 갑작스런 기습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이야 긴장을 하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드로서는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 덕분에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된 것 같다. 그러니 서둘러서 이 상황을 한꺼번에 정리해 볼까? 그쪽이야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게 귀찮기도 하고, 빨리 느긋하게 쉬고 싶거든.”
길에게 하는 이드의 말투는 어느새 아랫사람을 대하는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상대를 배려해 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길도 이드의 분명한 하대에 대해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남의 것을 빼앗으러 온 상황이다 보니 상대에게 예의를 바란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고위 귀족의 자제로서 여간해서는 듣기 어려운 하대를 그래도 침착하게 웃음으로 넘긴 길이 입을 열었다.
“그러도록 하죠. 저희도 길게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거기까지 또박또박 내뱉던 길은 잠시 자세를 바로 하고는 이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정중히 말을 이었다.
“저 길 더 레크널이 대 라일론 제국을 대신해 정중히 청합니다. 이드, 저희 라일론에서는 당신을 원합니다. 저희는 당신이 원하는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황궁으로 가시죠.”
정중? 어디를 가?
길의 말을 다 듣고 난 이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가 전하는 내용보다 그가 말하는 정중이란 말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걸 정중이라고 한다면 뒤통수를 치듯 기사들을 때로 몰고 와 막아서고 있는 것도 엄청난 예우가 아닌가?
“하! 두 번 정중했다간 아주 목이 날아가겠구나? 내가 아는 정중과 네가 아는 정중은 완전히 다른 말인가 봐. 아니면 세상에 나와 보지 않은 사이에 어느새 뜻이 바뀌었나?”
이드는 좀 매몰차게 대꾸하며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던 백여 명의 기사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날카로운 기세로 검을 겨누고 있었다.
이드의 말대로 정중이란 말의 뜻이 구십 년 사이에 바뀐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정중한’ 장면인 것이다.
채이나와 마오도 이드의 비꼬는 말에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유창하게 지껄이던 길도 순간 말이 막히는지 약간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기사로서의 양심이 그래도 남아 있어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아직 젊은 탓에 경험이 미천한 탓일 가능성이 컸다.
“크흠, 그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이쪽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좀 강경한 태도로 나오게 된 데는 이드 님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싶지 않은 다급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길은 미천한 경험을 커버할 언변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잠시 주춤거리는 것 같더니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미리 준비라도 해 둔 것처럼 유려한 말이 좔좔 흘러나왔다. 모두 듣기에는 그럴싸하고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상황과 연결 지으면 모두 변명밖엔 되지 않는다. 어떻게 둘러대고 치장을 해도 지금의 상황은 적과 적!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치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드가 원한 것은 길의 화려한 말재주가 아니었다.
“그런 능변보다는 그저 죄송하다는 그 말이 먼저 나와야 되는 거 아냐? 그게 바로 예의라구. 그렇지 않습니까?”
조금 한심하다는 투로 말을 건네던 이드는 말꼬리를 늘리며 길의 옆으로 시선을 넘겼다.
그런 이드의 시선에 담긴 것은 길의 곁에 처음부터 서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과는 아무 관계없는 제삼자인 양 덤덤히 지켜보고만 있던 은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노인은 아닌 듯 보기 흔한 평범한 얼굴에는 중년 기사 못지않은 강건함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노기사는 그 강건함 만큼이나 입도 무거운 것인지 이드가 건네는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기보다는 애써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아마 평생 기사도와 기사의 명예를 충실히 지키신 분이겠죠.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의 상황은 눈을 돌려 피하고 싶은 일일 테니까요.]
이드는 마음속을 울리는 라미아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길과 함께 나타나 지금까지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모르긴 몰라도 라미아의 추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상관의 명령과 기사도 사이에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고집스럽게 고민하고 있는 고지식한 노기사가 그의 본모습일 것이다.
이드는 노기사를 괜한 말장난으로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명령에 따르는 기사지만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에는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을 그의 고지식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고,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금강선도로 단련된 정순하고 청명한 느낌을 주는 내력의 흔적 또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저 어르신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우리끼리 지어야겠지? 자, 사과해!”
노기사에게서 시선을 거둔 이드의 눈길이 다시 길을 향했다.
거기에 더해 상황에 맞지 않는 장난 같은 말을 꺼내 들었다. 사과라니, 사과할 것이었으면 이런 상황이 되지도 않았을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사실 이드도 꼭 길에게 사과를 받겠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인연이 있었던 토레스의 후손이란 점을 생각해서 후배를 훈계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라고 봐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기특한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은 라미아뿐이었다.
“더 이상의 말장난은 거절하고 싶군요, 이드.”
이드의 말이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렸던 모양인지 지금까지 그 좋기만 하던 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길로서는 이것도 많이 참은 것이다. 원래 검술이나 전쟁보다는 정치 쪽으로 능숙한 재능을 보여 온 길이었다. 정치적으로 촉망받는 젊은이의 자존심은 무인의 그것과 또 다른 것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미 뱃속에 능글맞은 능구렁이 한 마리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자리를 잡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차가운 피가 흐르는 능구렁이와는 달리 길은 아직까지 혈관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도 할 것이다. 연륜에서 오는 미숙한 점을 그 역시 뛰어넘을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잘못된 점을 잡아 물고 늘어지는 이드와 채이나의 말을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길이 확실히 유리했다. 상대의 현재 심리 상태가 이미 모두 노출된 상태였다. 더 무언가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말로써 이드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으므로 더 이상 저자세로 숙이고 나갈 필요 역시 없다는 결론이 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가장 먼저 그의 말투에서 나타났다. 지금까지 깍듯이 귀족의 예의를 차린 말투가 조금 거칠어진 것이다.
“이제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황궁으로 가시죠.”
의향을 묻는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말이었다. 길은 한 손을 가볍게 휘둘러 보였다.
처저저적
그 한 번의 손짓이 신호가 되었는지 이드 일행을 경계하던 기사들의 자세가 여기서 한번 더 명령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금세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공격적인 동작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거절하면 힘으로 제압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 주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드가 보기에는 그저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하룻강아지보다 못해 보일 뿐이었다. 그들과 이드 사이의 실력 차로 보나, 그들이 하고 있는 강도짓으로 보나 말이다.
이드는 가벼운 콧방귀로 그들의 기세를 깔아뭉개 버리고는 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흥, 가고 안 가고는 내 맘이야.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네 사과야. 거기다 네가 협력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아? 내 머릿속에 든 게 필요하다면서? 그럼 우선은 내 비위를 맞추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
이드는 자신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톡톡 두드리며 길이 요구했던 조건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이드의 지식과 라미아였다.
따로 형태를 가진 검이라면 빼앗을 수 있지만 형태가 없는 기억이라면 그러기가 곤란하다. 강제적으로 정신계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부분적으로 틀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온전한 내용의 지식을 원한다면 이드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정작 길은 전혀 그런 사정을 고려해 보지 않은 것인지 이드의 말에 오히려 검을 빼들어 보였다.
“글쎄요. 그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모르겠군요. 제가 명령받은 일은 당신을 황궁으로 모셔 오란 것뿐이라서 말입니다. 그 후의 일은 잘 모르겠군요.”
“일단 잡아 놓고 보시겠다?”
이드는 앞뒤가 꽉 막힌 반응에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길이 말하는 핵심을 추려 냈다.
“글쎄요.”
길은 이드가 비아냥거리는 말에 부정하지 않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당당하게 나오던 이드에게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서인지 대답하는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돌아와 있었다.
“모든 기사는 제국의 손님을 모셔라.”
“하!”
미소가 가시지 않은 채 튀어나온 길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백 명이 한꺼번에 외친 한마디는 대단히 큰 소리였다. 거기다 백여 명의 기사들이 모두 이드 일행을 노려보고 있어서인지 그 소리는 더욱더 일행의 귓가를 쨍쨍 울렸다.
“꺄악! 귀청 떨어지겠다, 이 무식한 녀석들아. 무슨 자랑스러운 일을 한다고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빌어먹을…….”
특히 귀가 밝은 엘프 채이나는 반사적으로 급히 귀를 틀어막으며 주위의 기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기세를 유지한 채 시선을 이드에게로 돌렸다.
“이런 일 잘 안다며. 빨리 처리해 버려.”
“예, 예. 지금 바로 처리할게요.”
‘나 굉장히 신경질 났어’ 라고 말하는 듯한 채이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이드는 재빨리 대답했다. 괜히 주춤거렸다가는 무슨 막말이 날아올지 모를 서늘한 분위기였다.
사실 기사들이 검을 들고 코앞으로 닥쳐오긴 했으니 채이나의 재촉이 굳이 아니더라도 손을 쓰긴 써야 했다. 잡아가겠다고 다가오는데 가만히 잡혀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내가 말했죠? 이런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기사들을 향해 정면으로 서 있던 이드는 빙글 몸을 돌려 채이나와 마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라미아를 허리에서 풀어 채이나 앞에 꽂아 놓고는 다시 기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방법이란 게 의외로 간단해요. 강한 힘! 바로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면 되거든요. 부탁해, 라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