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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2화


459화

에단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눈동자가 말을 건다? 그게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인가. 물론 의심스러운 점은 있다. 자신의 눈으로 검은 기운이 날아들면서 시야가 검게 변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그런 원인 따위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자. 에단은 그렇게 결심했다.

[계약, 계약, 계약.]

그렇지 않고서야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신경이 쓰여서 검을 휘두를 수 없다.

“닥쳐 닥치라고!”

부웅! 퍽!

죽어 버린 몬스터의 입안에서 검을 뽑아내던 대장은 속이 탔다.

“무슨 일이냐. 에단!”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 속에서 연속되는 에단의 이상 행동이 대장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많은 수가 전투를 하는 혼전 중에 에단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단은 자신이 익히 알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살기와 두려움 속에 자신을 던진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자신만의 세상에 빠진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소리치고 검을 휘두르는 게 가끔 전장에서 볼 수 있는 정말 정신을 놓아 버린 자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저놈과 같이 일한 시간이 얼마인가. 그의 인생에 저만한 동료가 없었다.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일한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당장 에단의 이상 상황을 걱정하기보다는 생명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게다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에단을 기절시켜 일행의 뒤로 빼놓는다는 시도도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신없는 와중에 에단이 맹수의 입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정신을 놓고 미친 듯이 휘두르는 에단의 검이 대원들이 이루고 있는 진형의 틈을 노리는 적을 정확하게 찔러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순간에도 에단은 상처 입고 위태로운 대원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검이 없었다면 진형이 무너질 위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다.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에단의 실력과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만 하고 있어라. 네 정신은 내가 책임진다!”

대장은 다시 검을 휘둘러 몬스터의 목을 베고는 테일을 불렀다.

“예, 옛!”

에단의 등 뒤에 있다가 어느 사이 대장의 등 뒤로 자리를 옮긴 테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에단의 검을 피해서 움직여 온 것이다. 그는 이런 난전이 처음이었다. 이런 몬스터들의 난동도 처음이었다. 테일은 시온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장이 요청했던 숲의 생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대원이었다. 또한 풋내기 마법사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가지고 있는 공격 마법을 사용해. 그리고 바로 가장 큰 범위 마법을 준비하고!”

“하, 하지만 저, 전 그런 큰 마법들은 아직 사용할 줄 모릅니다.”

역시 풋내기는 풋내기다.

“이런, 멍청한 놈. 누가 너보고 마법을 쓰랬냐. 네가 맨 보급품 가방에 있는 스크롤 말이다.”

“아, 아!”

“아, 좋아하네. 빨리 찾아! 동료들이 피 흘리는 모습이 안 보이나!”

대장이 에단에게 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역시 사람은 급박해져야 바닥이 드러난다. 반나절 전만 해도 제법 빠릿빠릿하니 훈련을 제대로 받은 듯 보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봐도 애송이의 모습이었다.

“예, 옛! 대장!”

대장의 호통 소리에 움찔 놀란 테일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등에서 배낭을 내려 그 안을 뒤졌다. 그가 매고 있는 가방은 트와이스의 모든 보급품이 들어 있는 마법 가방이었다. 대원들이 사용할 예비 포션과 비상용 스크롤 등이 모두 이 가방에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 가방인 만큼 마법사가 다루는 게 가장 나을 거라 생각해서 테일이 가지고 있었다.

“이, 있습니다! 2, 3클래스 공격 마법과 3, 5클래스 범위 마법이 있습니다.”

“공격 마법은 8장, 아니다. 11장 준비하고, 범위 마법은 화염계의 폭발 마법으로 2장 준비해.”

잠시 후 테일의 손에 총 열세 장의 스크롤이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장의 신호와 손짓에 따라 차례차례 스크롤에 봉인되어 있던 마법이 발현되었다.

쾅! 쾅! 쾅! 콰콰쾅!

극히 짧은 시간에 연속된 마법은 그렇지 않아도 해가 져서 어두운 주변 일대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마지막에 사용된 폭탄이 터지듯 사방으로 번져 나간 뜨거운 불길은 모든 공간을 불지옥으로 만들었다.

한편 그 불길의 한중간, 폭풍의 중심지처럼 안전한 곳에 서 있던 대장은 어느새 에단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와 귓가에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네가 미쳤어도 상관없다. 잠시 후 제정신으로 돌려 줄 테니 지금은 길을 찾아. 당장!”

움찔.

에단은 뜨거운 와중에도 짜르르 등골을 타고 흐르는 얼음 속 계곡물 같은 살기를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살짝 놓고 있었던 정신 줄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대, 대장. 저 제정신인데요. 따로 돌려놓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끝없이 속삭이는 눈알의 소리도 이 순간만은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에단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과감히 움직였던 대장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다. 제 놈과 대원들을 위해서 과감히 움직였는데, 뭐? 제정신이라고?

“그럼 방금 그 미친 짓은 뭐냐. 이번에도 시답잖은 장난이면 넌 내 손에 죽는다!”

“그건 제 눈에 뭔가………….”

“닥쳐!”

“헙”

“지금 네 수다 들어 줄 시간 없다. 너도 지금 상황은 알겠지? 길을 찾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정말로 널 미친놈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대장의 말에 에단의 눈이 사방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 안에 담긴 두 개의 별도 최고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장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에단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인지하고 최선을 다했다.

“옙! 이쪽입니다!”

다행히 말을 터득한 눈깔도 아직은 그의 통제하에 있었다. 에단은 대장과 대원들을 이끌고 한 불꽃 속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군까지 피해를 입을 정도로 가깝게 난사된 마법에 시야는 물론이고 후각과 마나의 흐름까지 차단된 몬스터들은 다행히도 대원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는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에단이 그들의 눈을 대신한 덕분에 몬스터와 불길의 위험을 피해서 최대한 안전한 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불길 밖으로 나온 그들은 여전히 에단을 선두에, 에단에 대한 믿음을 찾은 대장을 후미에 두고 지독히도 기척을 죽이며 한참을 움직여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


퍼억!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주먹이었다. 주먹을 맞은 볼이 얼얼하고 입안이 터졌는지 찝찔한 맛이 났다. 하지만 에단은 신음 한 마디 흘리지 않았다. 한참 만에 쉴 곳을 찾았지만 여전히 시온이었다. 자신의 눈에 위험도 그린으로 표시되는 곳이었지만, 소리를 지르고 불을 피우며 신호를 보내면 순식간에 레드로 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에단 스스로도 자신이 맞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양반한테 마지막으로 맞은 게 언제더라?’

에단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대장의 묵묵한 표정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 한 명이 또 죽었다. 이제 열둘밖에 남지 않은 대원들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전투 중 에반의 광증은 익히 겪어 봐서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만히 에단을 바라보던 대장이 말했다.

“말해 봐.”

척하면 착이다.

“전투 중에 뱀 같은 모양을 한 검은 힘을 가진 존재를 봤습니다. 그게 눈으로 들어왔고, 잠시 한쪽 시야가 죽었습니다. 곧 회복되었는데, 그때부터 눈에서 말 소리가 들립니다.”

“진짜냐.”

“대장, 저 에단입니다.”

그 대답에 에단을 바라보던 대장이 테일을 불렀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런 분야라면 풋내기라고는 하지만 마법사인 테일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에단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테일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실력이 낮아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현상은 상위 정신체에 의한 오염인 것 같습니다.”

“그게 뭔데?”

“상위 정신체란 저희가 알고 있는 형체가 없는 존재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정령이나 유령, 요정 등이 이에 속합니다. 천사와 악마도 크게는 상위 정신체에 속하는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존재들이 인간에게 특별한 힘을 행사하면 서로 통하게 되면서 간섭이 가능해지는데, 마법사들은 이것을 오염되었다고 말합니다.”

테일의 대답을 들은 모두의 시선이 에단의 눈을 향해 돌아갔다. 급박하고 암담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에단은 테일의 대답을 들으면서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저 말대로라면 자신의 눈 안에 어떤 빌어먹을 놈이 지 멋대로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 아닌가.

다시 말해 자신은 두 눈 뜨고 집을 빼앗긴 등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눈에 들어와 있는 놈은 뭔데?”

“그게 확실하지가 않아서…………”

에단의 이빨에 가루가 되도록 갈려서 나오는 질문에 테일이 확답을 피했다. 그의 실력이 낮은 탓에 에단의 눈에 담긴 존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또 에단의 눈에는 초인의 힘이 머물고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작업이 배로 힘들다.

“확실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해 봐라. 지금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

에단이 몇 번 재촉하자 테일이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제 생각에는.. 요정이………… 아닌가 싶은데요.”

“요정? 요만한 크기에 날개 달린?”

에단이 엄지와 검지 사이를 충분히 벌리며 이야기했다.

“예, 맞습니다. 하지만 요정이 꼭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록으로는 정령 같은 모습의 요정은 물론이고, 돌이나, 방패, 그리고 에단 선배님이 말씀하신 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인간이 직접 확인을 해서 기록된 경우일 뿐이니 그 외에도 수없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추가로 테일은 요정들의 독특한 습성이나 때로는 악마 같은 잔인함까지 보이는 변덕스러운 성격 등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테일은 에단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악한 존재를 탐지하는 마법으로 에단의 눈을 살폈지만 마의 기운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테일의 머릿속에 맴돌던 마의 존재들은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존재가 정령과 평범한 영혼과 요정인데, 일단 영혼은 아니었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이 시온의 기운은 너무 강했다. 둘째로 정령도 아니었다. 그들은 부르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소환자 없이 중간계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먼저 나서서 계약을 원하는 경우가 드물뿐더러 그들이 타인의 신체에 침입한다는 케이스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요정은 그 형태가 각양각색이라 에단이 말하는 뱀의 형태도 확인된 바 있었다. 또 그들은 선하고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며, 때론 악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그래서 극히 희귀한 케이스로 타인의 신체를 빼앗아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존재들이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일 수도 있고, 정말 에단 선배님이………….”

생각한 바를 있는 대로 나불대는 주둥이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사이, 테일의 머리 위로 에단의 손이 턱하니 올려졌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테일의 머리를 조였다.

“뭐라고?”

“아아………… 아닙니다. 그냥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고요. 선배님, 손 좀!”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해결책은?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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