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4화
461화
잠시 후 정령수의 아홉 가지가 모였다. 우디는 그들과 이드들을 데리고 그의 집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응접실의 탁자 위에 봉인의 열쇠가 되는 단봉을 올려 두고 말했다.
“결계 상황 리포트.”
부우웅-
약한 마나의 떨림과 함께 검은 탁자 위로 대략적인 마을의 모습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24시간 동안의 결계 출입 기록 보고.”
우디의 명령에 마을의 영상 위로 아홉 줄의 엘프어가 떠올랐다. 우디는 그 기록들을 시간 순서대로 영상으로 출력시켰다.
부우웅-
그러자 마을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결계를 출입하는 그 짧은 순간의 모습들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그중 여덟 개는 오늘 낮 정령수의 가지가 그림자의 조각을 쫓아 결계를 나갔다가 들어오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아홉 번째 영상에 있었다. 그 안에는 커다란 로브를 입은 인형과 그 로브 사이로 나온 작은 팔이 결계를 풀고 있는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 팔은 어떻게 봐도 로브를 입고 있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결계에 작은 출입구가 생기자 작고 흰 팔은 다시 로브 안으로 들어갔고, 결계를 넘는 순간 문제의 인형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은 삼십 대로 보이는 인간 남자의 모습이었다. 우디의 걱정이 맞은 것이다. 영상이 멈췄지만 응접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은 분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꼬맹아.]
안타까운 라미아의 목소리가 조용히 실내에 울렸다.
뿌드득.
악물린 이빨 사이로 분노가 흘러나왔다.
우디가 탁자 위 영상을 다시 조작했다. 그러다가 결계를 넘는 순간 보였던 얼굴이 나오는 순간 영상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그 얼굴에 모였다. 그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를 눈에 새겨 넣었다.
“이 얼굴을 잘 기억해라. 분명 아직 시온 안에 있을 것이다. 이자와 함께 테이를 안전하게 데리고 돌아와라. 반드시 살려서 돌아와야 한다.”
평소 온화하고 고요하던 우디의 목소리가 단단하다. 반드시 살려 오라고 했지만 그것이 테이를 말하는 것인지, 영상 속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둘 다를 말한 게 맞지 않을까.
만약 남자가 잡혀 온다면 그 끝이 절대 좋지는 못할 것이다. 엘프는 진실한 종족이지 선한 종족이 아니다. 그들은 이성적인 종족이지 자비로운 종족이 아니다. 가족이 해를 당하면 그것을 몇 배로 돌려줄 줄 아는 종족이었다. 그런 엘프의 아이를 납치했다. 성인이 되지 못한 가족에 대한 위해는 그들의 금기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일이었다. 그런 상대라면 언제든 악마가 되어 줄 수 있다.
“이자에게는 가족에게 손댄 대가를 포함해서 물어야 할 것이 많다.”
테이를 납치한 대가는 아주 톡톡히 받아낼 것이다. 마을의 어떤 엘프가 나서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은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우디가 물어야 할 부분이었다.
바로 그가 어떻게 결계를 넘어서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다. 우디도 아까 짧은 순간 결계가 사라진 틈이 있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그 찰나의 순간 우연히 결계를 넘어 들어왔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그렇다고 라일로시드가가 보강한 결계를 아무런 흔적도 없이 넘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상에서도 그는 그가 들어온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테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푸른 나무 마을의 장로로서 우디는 그 부분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리낌 없이 아이를 납치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결계를 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위험하다.”
관계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족이었다.
우디의 명령을 받은 이드와 정령수의 아홉 가지는 로브의 인물이 나갔던 위치에서 결계를 열었다. 이드는 일리나를 남겨 두고 나왔다. 앞서 따로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다짐했던 일리나였지만, 지금처럼 화급을 다투는 일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같이하면 이드의 발목을 잡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꼭 테이를 데려와 달라는 말로 이드를 배웅했다.
꾸아아악!
‘하, 아주 난장판이구나.’
이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방에서 무언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앞서 결계 밖으로 나갔다 온 정령수의 가지를 통해서 듣기는 했지만, 시온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아 보였다. 이런 흉흉한 곳에 어린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푸드득.
라미아도 그것이 마음 쓰였는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날아올라 주변을 돌아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운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결계를 넘는 순간 정령수의 아홉 가지 중 가장 정령술이 뛰어난 델프리드가 정령을 소환했지만, 역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로브의 인물이 마을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령의 시선을 피하는 방법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었다.
‘이렇게 되면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야 한다는 건데.’
이드는 이리저리 엮인 가지들이 달빛마저 가려 어둡기만 한 숲속을 둘러봤다. 등 뒤의 결계를 기준으로 전방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수색 범위다. 그렇게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발자국이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재주 많은 엘프 아홉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미세한 단서조차 놓치지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가리켰다. 결계를 나서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흔적이었다.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자신도 모를 마음속의 안도감까지는 어쩌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쪽 방향이야. 저 앞에도 흔적이 있다. 가자.”
밤의 어둠이 장애가 되는 수준인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열 명의 인원은 빠르게 어둠을 가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이드는 군데군데 이어지는 발자국을 확인하는 브레임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발걸음이 멈추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쫓아오던 흔적이 깊게 찍힌 마지막 발자국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때문이었다.
“일반 성인 남자의 무게에 테이를 더한다고 해도 깊다. 뛰었어.”
잠시 발자국과 그 주변을 살피던 브레임이 위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이리저리 꺾인 나뭇가지가 있었다. 그중 어떤 굵은 가지에 흙이 뭍은 신발 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형태를 보면 이쪽 방향으로 뛰었네요. 앞쪽 나무를 밟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단순한 점프로는 멀리 갈 수 없을 텐데. 무슨 생각이지?”
이드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엘프가 아니다. 나무 위보다 땅이 편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나뭇가지 위를 달리는 것이 더 빨랐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달렸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럴 이유가 없다.
[비행 마법은 아닐까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라미아가 생각을 말했지만, 에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지금 시온의 모든 몬스터가 활동 중이라서 낮은 비행으로는 몬스터에게 공격받을 거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날아오는 바위와 돌도끼 같은 것에 머리가 찍힐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귀신처럼 뛰어오른 맹수의 송곳니에 목이 뜯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허공으로 몸을 피한 마법사가 이런 식으로 죽어 나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발자국이나 행동 등을 보면 마법사는 아니야. 아티팩트로는 마법사 같은 자유로운 비행은 불가능해.”
아티팩트로 원하는 비행이 가능했다면 그레센의 하늘이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항로와 관제탑은 물론이고, 교통경찰까지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테이를 쫓을 단서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드가 말한 방향으로 계속 나가 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 그쪽으로 향하는 것도 인원의 낭비니 이곳에서 나눠진다.”
“그래도 무턱대고 주변을 뒤질 순 없죠. 놈도 이곳으로 혼자 들어오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 시온에 들어와 있는 놈들과 한패가 분명할 거예요. 일단 그들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쪽 방향으로 수색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미아, 부탁해.”
[맡겨 두세요.]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푸드득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동체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다 베르디가 말했다.
“그런데 그가 정말 시온에 들어와 있는 자들과 한패일까? 한패라면 따로 움직일 이유가 없잖아.”
“확실히 결계 주변에서도, 또 발자국을 쫓아오는 중에도 다른 패거리가 같이 움직인 흔적은 없었죠.”
끄덕끄덕.
이드도 솔직히 그 부분이 이상하기는 했다. 지금처럼 몬스터가 광분해 있지 않더라도 시온은 혼자서 활동할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 뭔가 일을 꾸민다면 더욱더 혼자 움직이기가 힘든 곳이다. 최소 이인일조가 기본이다. 그런데 그는 혼자였다. 외따로 무인도에 남겨진 것처럼 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간에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채워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때였다.
하늘에서 정찰을 마치고 내려온 라미아가 둥글게 모여선 이들의 중심에 마법 영상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세 개의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셋이 지금 시온에 들어와 있는 전부예요.]
두 개는 가깝고, 하나는 좀 떨어져 있었다.
“이쪽은 하르만과 베르디, 이쪽은 펠과 틸라, 그리고 이쪽은 이드와 델프리드가 맡는다. 나머지는 그 중간 지점과 외곽 지점을 탐색한다. 세 지점을 향하는 팀은 상황에 따라 전투에 나서도 좋지만, 나머지는 일단 연락부터 하고 대기한다. 이의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정령수의 아홉 가지지만 그들 사이에도 나름대로 선후가 있다. 페르디움은 가장 오랫동안 정령수의 가지였던 자로서 리더의 위치에 있었다. 평소 과묵하지만 결정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나설 줄 알았다.
“좋아. 목표가 앞서기는 했지만 빠르게 움직인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사이 시간이 걸릴 만한 일은 최대한 피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런데 연락은 어떻게 하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중에 이드가 조용히 물었다. 모두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봐서 뭔가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과 라미아는 없었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알아 둬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베르디가 깜빡하고 있었다면서 이드의 손에 은색 나뭇잎 조각을 건네주었다.
“풀잎피리야. 필요할 때 전하고 싶은 내용을 떠올려서 불면 돼.”
“듣는 건요?”
“그때는 풀잎피리가 속삭일 거야.”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인다. 테이는 반드시 집으로 데려간다. 움직여!”
타타타탁!
페르디움의 말이 있고, 모두 그에게 지시받은 방향으로 순식간에 흩어졌다. 풀잎피리가 속삭인다는 말의 의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드는 이것에 대해서 물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 이드의 곁에서 델프리드가 서둘러 움직일 것을 재촉했다.
“이드, 우리도 빨리 움직여요.”
“알았어요. 라미아, 이건 네게 부탁할게.”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느긋하게 풀잎피리의 사용법 같은 걸 물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피리를 사용할 줄 아는 델프리드가 옆에 있었다. 이드는 풀잎피리를 라미아의 머리 깃털 사이에 꽂았다. 달리 그녀에게 쥐여 줄 방법이 없어서였다. 다행히 은빛의 풀잎피리는 그녀의 몸과 같은 색이어서 제법 어울리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