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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20화


557화

“나무가 많은 집이네요.”

네리베르가 소개한 곳은 하얀색의 아름답고 거대한 저택이었다.

내성 안쪽에 위치한 저택 부지 내에는 건물뿐 아니라 넓은 정원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과연 네리베르가 비싸다고 할 만한 곳이었다.

일리나는 일단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넓은 정원에 가득한 초록색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소드 팰러스에 눌러 살 것도 아닌데 너무 큰 저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이드는 그녀의 모습에 그런 생각을 접었다. 일리나를 생각한다면 작은 집보다는 이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 좋을 것 같다 싶었기 때문이다.

‘뭐,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돈이라면 이런 저택이 아니라 작은 왕국을 사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네. 건강한 나무들이 많고, 건강한 땅의 향기가 좋아요.”

‘다행이다. 마음에 드시나 보구나.’

네리베르는 이드와 일리나의 반응에 내심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자연 그녀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저택도 아름답지만 위치도 좋아요. 검궁과 화원이 모두 보이거든요. 화원과 가까워서 이 정원의 끝은 화원의 숲과도 닿아 있구요.”

이드는 그 말에 주변을 돌아봤다. 과연 네리베르의 말대로였다. 처음부터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화원과 가까워서 나쁠 건 없었다. 

“좋은 집이네. 소개해 줘서 고맙다. 그런데 이런 좋은 집이 왜 비어 있는 거야?”

이런 저택이라면 소드 팰러스에서도 몇 보지 못한 좋은 물건이었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둘 물건이 아니었다.

“많이 비싸거든요. 저희 가문에서도 구매하려고 했지만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라서 구매를 포기했어요.”

이드가 알기로 네리베르는 제국 백작 가문의 딸이다. 웬만한 일로는 돈의 부족함을 느끼며 살 만한 집안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 가문에서 부담스러운 가격이란다.

“뭐가 그렇게 비싸? 바가지 아냐?”

“프리미엄이 조금 과하게 붙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화원과 가까우니까요. 충분히 인정될 수 있는 프리미엄이었죠.”

네리베르는 아쉽다는 듯 저택과 화원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바가지가 아니라 프리미엄이란다. 과연 검후에게 푹 빠져 있는 그녀가 납득한

이유를 다른 사람도 공유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벌써 팔렸겠지!’

이드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언제 매물로 나온 거야?”

“2년 전에요.”

이걸로 분명해졌다. 네리베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저택의 가격을 거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드가 저택의 가격에 대해서 자꾸 묻자 네리베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지 않으신다면 다른 저택을 알아보겠습니다.”

돈이 모자라느냐는 말이다. 이드는 피식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소드 팰러스에서 이 저택보다 더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이 없다면 이 저택을 구매하는 것으로 하자.”

돈이라면 일리나스를 사고도 잔돈이 남을 정도로 많은 이드다. 이런 정도의 바가지는 애교로 웃어넘겨 줄 수 있었다.

저택의 구매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저택의 판매를 위탁받고 있던 상단의 지점이 소드 팰러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서류의 준비와 가격의 조정에만 며칠이 소요되어야 할 일이지만, 상단에서도 2년 만에 나타난 구매자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행동을 빠르게 만든 것은 이드가 꺼내 놓은 금덩이에 있었다.

누런 황금은 며칠의 소요 시간을 하루로 줄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없는 친절도 만들어 냈다. 상단에서 2년간 비어 있던 집을 깨끗이 손질해서 넘겨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뜬금없이 출현한 재신을 자신들의 단골로 확보하려는 수작이었다.

이드는 만족하며 하루의 시간을 주었다.

2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을 손질하는 시간으로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 단골 확보에 나섰던 상인의 입꼬리가 파르르르 떨렸다.

‘길게 보자, 길게. 저택 판매 수수료 모조리 날아가겠지만, 이 재신이 우리 상단에 토해 낼 황금을 생각하자!’

“완벽하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상단 많은 애용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거래였습니다.”

상인이 지점의 문 앞까지 나와서 허리를 숙이며 배웅했다.

“마스터! 영원히 충성하겠습니다.”

저택의 가격을 듣는 순간부터 정신이 나가 있던 케마란이 눈부시다는 듯 이드의 얼굴을 바라보며 충성 맹세를 했다.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충성심이 두 배 이상 깊어진 모습이었다. 황금의 위력은 이토록 위대하다.

이드는 끌끌 웃으며 케마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녀의 생각이 대략 짐작이 갔다.

“그래, 열심히 해! 그럼 충분히 대우해 준다.”

“충성! 감사합니다.”

케마란이 원하던 대답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제국을 떠돌았던 그녀는 돈이 궁하지는 않았지만 풍족하지도 못한 생활을 했다. 무엇보다 용병들과 지내면서 돈의 중요성과 풍족한 자금을 보유한 곳에 소속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피부로 느꼈다.

그런데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케마란에게 이드가 부자란 사실은 부족하고 걱정스럽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우는 마법의 단어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속물!”

옆에서 그 모습을 한심스럽게 보던 네리베르가 눈을 흘겼다.

“뭐가?”

“당신은 이드 님 앞에서 그러고 싶어요? 내가 다 부끄럽다고요.”

“이게 어때서? 내가 틀린 말 했니? 내가 충성하기로 한 주군이 부자면 좋은 일인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 부끄럽단 말이에요. 믿음을 어떻게 돈으로 판단해요!”

“쯧쯧쯧. 네리베르 넌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상한 곳에서 현실에 어둡구나?”

“뭐예요?”

네리베르는 케마란이 혀를 차는 소리가 굉장히 기분 나빴다.

“네 말은 바닥을 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야. 네 말대로 충성을 돈으로 사지는 못하지만 충성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든다고. 그게 세상이야. 믿음만 가지고는 못 살아요. 엉뚱한 곳에서 허당인 네리베르 양~”

케마란은 말문이 막힌 네리베르에게 시니컬한 미소를 남기고는 이드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냉소적이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담긴 말이었다. 

“윽…….”

네리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싸우고 진 것 같아 분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좋은 물건입니다. 잘 사셨습니다.”

저녁에 이드를 찾은 클라인은 이드가 구매한 저택에 대해서 듣고는 말했다. 확실히 좋지만 같은 가격에 팔 수 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드는 클라인이었다.

그는 내심 이드가 이후에도 쭉 소드 팰러스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서 같은 가격에는 팔리지 않는 저택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가지고 있으신 돈에 여유가 없다면 제가 대신 집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저택을 구매하실 정도로 여유가 있으시다니 좋은 일입니다.”

뒤에 있던 네리베르는 케마란보다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를 하는 클라인의 모습에 패배에 대한 판정까지 받은 것처럼 힘이 빠졌다.

“그런데 오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드의 물음에 클라인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드는 듣지 않아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야기 내내 삼검왕에게 끌려다닌 것 같습니다. 검후님께서 계시지 않는 상황과 소드 팰러스 밖에서 돌고 있는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고 나와서 어쩔 수 없더군요.”

현재 소드 팰러스 밖에서 돌고 있는 악의적인 내용들은 확실히 소드 팰러스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그대로 삼검왕의 힘이 되었다. 클라인은 어쩌면 그 소문도 삼검왕이 관여한 일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클라인은 앞으로 소드 팰러스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어 갈 거라고 말했다. 우선 출입자에 대한 통제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아마 당장 사방에서 소드 팰러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검사에게 열려 있던 소드 팰러스였으니까요.”

동시에 정보 관리도 시작했다. 제국과 거리를 두고 타국에 흘러가던 정보를 확실히 통제, 관리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소드 팰러스 출신의 기사들에 대해서도 단순한 유대감이 아닌 확실한 파이프를 만들어 두겠다는 뜻이라고 클라인은 해석하고 있었다.

“제일 문제는 삼검왕 아래 특수작전부가 생긴 일입니다. 만약의 사태에 긴급히, 그리고 신속, 다양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관인데 말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삼검왕파가 명분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삼검왕이 원하던 일이군요.”

“예. 잡스러운 일도 몇 있었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반대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일들이니까요.”

이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클라인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일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럼 철벽의 검왕은 어땠습니까?”

이드는 케마란과 네리베르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클라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오늘은 그분이 삼검왕을 대표로 이야기를 이끌었으니까요. 알고는 있었지만 명분만 확실하다면 말로 이기기는 힘든

양반입니다.”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워스는 이유만 분명하면 철저히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케마란이 망설이다가 나섰다.

“이드 님의 정체도 감춰 주고, 직접 만나겠다면서 어째서 그런 일들을 하는 걸까요?”

클라인은 아직 어린 후배의 말에 물을 마시고 대답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좋으니까. 네 말은 너무 앞서나간 거다. 네 말은 철벽의 검왕 워스가 이드 님의 밑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지. 하지만 그는 아직 이드 님을 만난 적도 없어. 이드 님을 따를 이유가 없는 거지. 오히려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이드 님의 정체를 감추고 그것을 구실로 만남을 원하는 거지. 그 전에 자신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올려두면 이드 님과 이야기할 때도 편할 테니까.”

클라인은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려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 하는 모양을 보면 이드 님을 뵙고자 하는 이유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끄덕끄덕.

클라인이 오기 전에 복귀한 에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워스에게 당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만나고 싶으면 예의를 갖춰야지 협박을 해서야 될 일인가.

‘암, 암. 좋은 일로 보자면 그럴 수가 없지. 내 피부 어쩔 거야.’

그러나 만나 보긴 해야 했다. 피할 이유도 없지만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야 그 속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저택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 만나자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택을 정비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고 했으니 그 이틀 뒤에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검궁을 나가서 저택에 머무는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잘 처리될 것 같습니다.”

이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워스, 백작님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번엔 저는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클라인이 이드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이드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세상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이드가 저택에 입주한 저녁.

데일리가 헐레벌떡 달려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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