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21화
558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당장 알게 모르게 사방에서 주시하던 눈들이 떨어졌다. 당연히 쫓아온 눈도 있지만 덩굴 담장과 마법진으로 정원을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검궁에서야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 저택 안에서는 누가 뭐라 해도 이드가 주인이었고, 누구도 그 안을 허락 없이 들여다볼 수 없어야 했다.
[어디 남의 신혼집을 훔쳐볼라 그래? 그러다 눈 찔린다.]
라미아가 일리나를 신경 써서 꼼꼼히 신경을 써 주며 말했다. 확실히 아직 두 사람 간에 부부싸움이 없었으니 신혼인 것이 맞다. 그런 신혼집을 몰래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위험한 짓이다. 혼자 보기도 아까운 새신부를 훔쳐보다가는 새신랑 손에 눈이 찔리는 것도 모자라 뽑힐지도 모른다. 검궁에 있을 때도 감히 방 안의 일은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철저히 했지만 검궁을 나와 자신의 집을 가진 지금은 아예 담장조차 넘지 못하게 만들어 둔 것이다.
하지만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당장 클라인 백작과 데일리, 그리고 록이 다니기가 불편해졌다.
아니, 록은 에단과 친분이 깊다는 이유로 넘어가더라도 다른 두 사람은 달랐다. 저택 안을 살필 수 없게 된 눈들이 저택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프리패스다. 두 사람이 이드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빈집 정리는 상인의 장담대로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그 실력을 믿고 집사와 가정부도 상단을 통해 구했다. 단, 가끔 불쑥 찾아오는 밤손님들이 많은 관계로 출퇴근이 가능한 사람들로 구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이사 축하한다면서 케마란과 네리베르, 그리고 록이 찾아와 저녁을 하려던 차에 데일리가 불쑥 찾아왔다. 아무리 외부의 눈을 피해 다닐 수 있는 ‘개구멍’을 만들어 두었다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는데 말이다.
아, ‘개구멍’이라는 이름도 라미아가 만들고 이름 붙였다. 들을수록 정감이 간다나?
“언니!”
앉아 있던 네리베르가 가장 먼저 데일리에게 다가갔다.
이드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어서 와요, 데일리 경. 아무래도 단순히 이사 축하를 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이 있나요?”
이드의 말에 데일리가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과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고는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이 입주 축하 날인지 몰랐습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요. 죄송할 일도 아니고.”
이드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몸만 옮겨 오는 이사여서 이사라기보다는 방을 바꾸는 느낌이다. 특히 주변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니 데일리는 오지 않는 게 도와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일입니까?”
이드는 오늘 자리가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데일리가 급히 달려온 이유를 물었다.
평소의 그녀를 생각하면 화원에서 수정구를 앞에 두고 은색 기사단 기사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급하게 달려왔다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이겠지.’
이드의 생각은 정확했다.
“은색 기사단 쉴라 단장님을 대신해 이드 님께 도움을 요청드리기 위해 급히 찾았습니다.”
은색 기사단장의 이름을 앞세운 데일리의 표정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또한 정중했다.
이드는 신선한 바람이 분다고 느끼며 물었다.
“제가 가능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죠. 나머지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이드가 데일리에게 식탁의 비어 있던 의자를 내밀었다.
이어 네리베르가 건네주는 물로 혀를 적신 데일리가 상황을 설명했다.
“이전 말씀드렸지만 검궁에 남은 저를 제외한 저희 은색 기사단의 모든 기사는 검후님을 찾기 위해서 제국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이 일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수만의 군사가 있어도 힘든 일을 고작 이백이 조금 넘는 기사들이 나서서 하고 있으니 가히 불가능에 대한 도전과 같았다.
그러나 은색 기사단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이게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배운 것 없는 용병이 아니라 소드 팰러스의 자랑스러운 오색 기사단 중 하나인 은색 기사단답게 행동했다.
은색 기사단의 단장 쉴라를 중심으로 우선 수색 전 철저한 기준과 계획을 세웠다. 기사 하나하나가 수색해야 할 영역을 정해 주고 동시에 체계적인 연락망과 함께 비상시 대처할 매뉴얼까지 확실하게 만든 후, 그들은 단장인 쉴라를 선두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밤에 조용히 소드 팰러스를 나섰다. 이야기를 듣던 이드는 박수를 쳤다.
‘그래. 저렇게 준비가 철저해야지. 지혜로운 행동이다.’
당장 일리나를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해 봤기 때문에 사람을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다.
사실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비상시 사용할 연락망과 매뉴얼의 역할이 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후가 납치당했다. 도대체 검후가 어떤 사람인가.
기가 막혀 웃음도 나지 않지만 저 검후를 납치한 실력자가 납치범이다. 그런 납치범을 앞에 두게 된다면 과연 은색 기사단의 기사, 아니 단장인 쉴라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검후를 구해내거나 하다못해 결정적인 단서라도 전할 수 있을까?
이드는 내심 고개를 적었다.
‘하늘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가능할 일이지.’
아마 하늘도 땀을 뻘뻘 흘리고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데일리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매뉴얼에 따라 보고를 하고 의심되는 곳을 찾아갔던 기사에게서 소식이 끊어 졌습니다. 실종된 기사는 은색 기사단 내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이 끊어질 이유가 없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소식이 끊어지고 삼일이 지난 상태로, 단장님께서 직접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쉴라 단장님이 직접 나서십니까?”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닙니다. 이런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 여덟 번째 지요. 그동안 다섯 명의 기사를 잃었습니다.”
“유감입니다.”
이드가 유감을 표하자 데일리가 고개를 저어 보이며 당당히 말했다.
“다릅니다.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 바칠 수 있었으니까요. 원래 매뉴얼에도 있지만, 이런 일이 몇 번 발생한 후부터는 실종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기사가 빠르게 지원을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종 전의 보고 내용과 보고자의 실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보고자보다 실력이 뛰어난 기사를 최소 두 명 이상 뽑아서요.”
괜히 실력 없는 어린 기사를 보냈다가는 쓸데없는 희생만 늘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럼 이번엔 쉴라 단장님이 실종자와 가장 가까웠던 모양이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재 단장님은 실종지와 상당히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으십니다. 대신 앞서 말씀 드렸듯이 실종된 기사가 기사단 내 실력 서열 13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히 눈썰미가 좋았지요.”
“아………….”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네리베르가 어둡게 탄식했다. 실종된 기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지인의 죽음에 덤덤하기에는 아직 그녀는 어렸다.
이드는 그 모습에 작게 혀를 차고는 이어지는 말에 귀 기울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뉴얼에 따라 실종 기사보다 상위 서열이 작전에 투입되어 합니다. 그리고 실종 기사가 올렸던 보고 내용을 다시 살펴본 결과 다섯 단계로 나눈 위험도 중 최소 네 번째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적어도 서열 순위 12위 이상의 기사 5인 이상이 투입되어야 전력 손실이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드는 그렇게 위험한 곳에 어째서 보고를 받을 때 그 기사를 홀로 보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은색 기사단도 나름대로 고충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작 이백오십 명으로 제국을 뒤지고 있으니 얼마나 손이 딸릴까.
이드가 말했다.
“그럼 다른 여러 명의 기사를 빼는 것보다 쉴라 단장님이 직접 나서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이군요.”
“네.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도가 높은 만큼 혼자서는 쉽지 않다고 판단하셨고,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드 님을 만날 시간도 불분명해진 터라 차라리 이드 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데일리의 보고를 받았다면 이드의 실력도 알았을 것이다. 마법진의 도움을 받는 데일리를 쓰러트렸다면 실력 면에서도 확실할 테고, 도움을 받으며 이드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도 지킬 수 있다. 또 위험한 상황 아래에서 이드를 신뢰할 수 있을지도 판단하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제대로 일석삼조네.’
쉴라 단장만 이득을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드도 거부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일단 그들의 행동 목표가 검후의 수색인 만큼 실종된 기사로부터 검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가지요.”
“은색 기사단의 데일리 셰인. 이드 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이드의 대답에 말을 마치고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데일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녀뿐 아니라 한쪽에 서 있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도 노골적으로 다행이란 표정이다.
하지만 이드는 현재 소드 팰러스의 검증 중에 있는 신분이었다.
과연 이드가 원한다고 소드 팰러스 밖으로 내보내 줄까? 에단이 그와 같은 생각에 나섰다.
“마스터.”
그러나 이런 에단의 염려보다 이드의 말이 빨랐다.
“에단, 가서 클라인 백작님께 지금 일을 알리고 모셔 와라.”
에단은 내심 무릎을 쳤다.
“옙.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잠깐만요, 이드. 내가 움직이는 게 더 빨라요. 내가 갔다 올게요.]
에단을 잡아 세운 라미아가 따로 대답도 듣지 않고 날아올랐다. 최강의 전령이 다시 나선 것이다.
잠시 후 라미아는 클라인 백작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현 상황으로 보아 약 십 일 간은 이드 님이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대신 여기 에단은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함께 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에단은 갑자기 나온 자신의 이름에 놀랐다.
“어엇! 백작님, 제가 마스터를 모셔야 합니다.”
“지금은 자네가 소드 팰러스에 있는 게 이드 님을 가장 잘 모시는 일이야.”
“크하・………….”
말문이 막힌 에단이 미묘한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록이 클클거리다 기어이 옆구리를 쥐어 박히고는 조용해졌다.
대신 가만히 상황을 살피던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나섰다.
“그럼 저희들이 선배님 대신 이드 님을 모시겠습니다.”
“너희들은 안 돼!”
그러나 바로 데일리에게 가로막혔다. 그녀는 삼엄한 눈으로 두 사람을 제압하고 말했다.
“아까 내가 이드님께 했던 이야기를 듣고도 헛소리야! 은색 기사단 서열 12위 이상만 허락되는 작전이야. 설마 너희 실력이 그 이상이라는 건 아니겠지. 어리광도 상황을 살펴 가며 부려라! 너희들이 가겠다는 것은 너희들이 스스로이드 님과 단장님께 칼을 겨누는 것과 같은 짓이야.”
추상같은 꾸짖음이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두 사람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시정하겠습니다.”
“오늘 밤 돌아가서 기사규범집을 10번 읽어라!”
기사규범집은 기사가 지켜야 할 일을 적어 놓은 책으로, 한 번 정독하는 데 네 시간이 걸리는 흉기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이 얕았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바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이드와 함께 움직일 사람은 라미아와 일리나로 정해졌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다행히 이드가 허락을 했을 때에 대한 답을 미리 듣고 왔는지, 데일리가 제국의 지도를 펼쳐 소드 팰러스의 동북쪽 한 지역을 짚어 보였다.
“여기가 실종된 지역입니다. 그리고………….”
데일리의 손이 그대로 동남쪽 사선으로 그어졌다.
“단장님은 여기서 오시는 중입니다. 단장님은 이드 님이 허락하신다면 여기 탈탈 자작영지에서 만나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쉴라 단장님과는 거기서 만나도록 하지요.”
일정이 정해졌지만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쉴라 단장이 도착하기 까지 오 일이 걸리고 소드 팰러스에서 육일이 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드는 힘들게 말을 타고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육일 동안 밖에서 노숙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말을 달리며 하는 노숙에는 아무런 낭만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노동일뿐이었다.
이드는 라미아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초행길이라는 생각에 삼 일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 말을 듣고 데일리가 숨넘어가는 표정을 지었지만, 라미아의 마법 실력을 다시 상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육 일 후 이드는 탈탈 자작성에 있는 가장 좋은 아리땀이라는 여관에서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데일리 경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 이상하게 낯설지 않군요. 은색 기사단장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드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