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28화
565화
확인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잘린 머리는 새로 자라났고, 바닥에는 이빨을 딱딱거리는 트롤의 머리가 두 개로 늘었다.
바닥을 구르는 머리는 순식간에 늘어나 일곱 개가 되었다. 트롤과 싸우는 넓지 않은 공간에 이빨만 딱딱거리는 트롤의 머리가 일곱 개. 트롤과 싸우며 쉴라가 다가가면 쉴라를 물기 위해서 이빨을 딱딱거리는 게 지뢰가 따로 없다. 게다가 정신 위생적인 면에선 이쪽이 더 질이 나빴다.
[꺄악~ 기분 나빠!]
라미아가 질색을 했다.
이드도 동감이었다. 하지만 이드는 좀 더 심각한 얼굴로 트롤을 보고 있었다.
“목이 벌써 일곱 번이나 잘렸어. 저 트롤이 진짜 불사신이 된 건 아니겠지?”
“땅에 굴러다니는 머리를 보면 불사신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아 보이는걸요. 더구나 계속 쉴라 경을 노리는 걸로 봐서는 떨어져 새로 생겨난 머리에는 기억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리나의 말대로 트롤은 일관성 있게 쉴라만 노리고 있었다.
[그건 어차피 저 트롤이 제정신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어쩌면 지금도 어느 음침한 동굴에 숨은 흑마법사의 명령을 받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보다 전 계속 새로 생기는 머리의 재료가 뭔지 모르겠어요. 몸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머리의 뼈와 단백질은 어디서 가져오는 거냐구요! 지금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해요?]
이드는 그 말에 속으로 웃었다.
‘네가 화낼 일은 아니지!’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일은 라미아가 사용하는 마법을 통해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문제는 트롤이다.
“내가 처리를 해?”
비록 저 단두대의 가치를 비웃고 있는 트롤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마법으로 재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면 깔끔하게 처리가 가능할 듯 보였다.
쉴라가 그런 이드의 표정을 읽었다.
“이쯤해야겠군.”
잘라도, 잘라도 계속 새로 머리가 생겨나는 트롤의 모습에 생각 같아서는 얼마나 목을 자르면 더 이상 머리가 자라지 않는지 그 끝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녀도 이드와 마찬가지로 트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가 계속 자라서 그렇지, 트롤을 상대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재생력을 제외하고 그 힘과 속도는 일반적인 트롤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잘게 잘라 주마.”
쉴라의 생각이 바뀌자 그녀의 검에 달빛을 닮은 하얀 검강이 너울거리며 일어났다. 마음과 정신의 상태와 직결되는 검강이 가장 먼저 그녀의 마음을 받아 거칠게 일어난 것이다.
“크롸락?”
아홉 번째 단말마와 함께 트롤의 목을 날린 쉴라는 이어서 팔과 다리를 잘라 냈다. 순간 강철에 싸인 트롤의 거대한 몸뚱이만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자 쉴라의 방패가 날아들어 트롤의 몸을 쳐 올렸다.
쾅!
트럭이 들이받는 듯한 굉음에 이어 트롤의 몸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아무리 내공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날씬한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힘이었다.
번쩍.
트롤의 몸이 눈높이까지 떠오르자 쉴라의 눈에 안광이 번뜩였다. 검강이 배로 길어지며 타올랐다. 다음 순간 쉴라의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트롤의 반대편까지 주욱 늘어나듯이 이동했다.
쩌억!
쉴라의 등 뒤로 트롤이 절반으로 잘려 떨어졌다. 쿠웅 하는 무거운 소리를 따라 갑옷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와 팔다리가 잘리는 능지처참에 몸뚱이까지 반으로 잘라 놨다.
“자아, 이번에도 살아날 수 있을까?”
반으로 나뉜 트롤의 몸에서는 녹색 피가 울컥거리고, 물컹한 내장이 흘러나와 있었다.
쉴라만큼이나 트롤의 능력이 궁금했던 이드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트롤을 살폈다. 그리고 이번엔 죽었나 싶은 순간, 죽어 늘어져 있던 내장 조각이 꾸물거리며 잘려진 반대쪽 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원래 모습 그대로 살아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헐~”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혀를 내두르던 이드는 트롤의 몸 한 부분에서 눈이 멈추었다.
“허, 진짜 불사신이란 말인가. 그럼 좀 더 잘게 나누어 주마!”
“쉴라 경, 잠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이드는 다시 검을 들려는 쉴라를 멈춰 세웠다.
“음? 무슨 특이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드는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트롤의 몸을 들어 올려 손짓과 함께 몸체를 반대로 뒤집었다.
“정말…….”
울퉁불퉁한 트롤의 등은 초록색 피로 흥건했다. 이드는 하급 물의 정령을 소환, 등에 물을 부어 피를 씻어냈다. 그러자 드러나는 모습에 이드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우묵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가 이 안쪽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가 씻겨진 트롤의 등.
거기에는 팔다리가 사라지고 머리와 몸만 남은 인간이 트롤의 몸에 반쯤 녹아들어 있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의 반은 트롤의 몸 안으로 녹아 있고, 나머지 한쪽 눈과 코와 입의 일부만이 드러나 있었는데, 온전한 정신은 아닌 듯 눈이 게게 풀려 있었다.
‘이런 몰골을 하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너무 끔찍한 모습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바닥으로 늘어졌던 트롤의 내장이 잘려진 반쪽을 향해 꿈틀거리자, 쉴라가 가차 없이 검을 휘둘러 꿈틀거리는 내장을 태워 버리고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체 실험이라니요. 제국의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이건 마법으로 몬스터를 부리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이것은 은색 기사단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이었다.
순간 쉴라가 갈등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린을 찾고자 뛰어든 곳에서 금지된 마법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를 크게 알리고 보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일단 카린의 수색을 이어갈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드는 그 사이 라미아를 불렀다.
“이런 짓을 한 이유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한번 해 볼게요.]
라미아가 트롤 위로 내려앉았다.
슈르르륵-
그와 동시에 은빛 발톱에서부터 마나가 풀려 나가며 은은한 황금색의 복잡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마법진은 곧 트롤과 그 속으로 녹아들어 있는 사람을 감싸고는 분석을 시작했다.
“이 사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일리나가 이름 모를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분리에 대한 문제는 둘째예요. 정신이 깨어지고, 마음이 완전히 죽었어요. 저런 상태라면 온전한 몸을 가진다 해도 결국 죽고 말 거예요.”
“역시, 그렇군요.”
일리나는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분석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라미아의 곁으로 다가가 쉼 없이 사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사내의 눈을 감겨 손으로 누르고는 작고 평온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허밍 같은 엘프의 언어로 된 노래였다.
이드는 그 노래를 일리나의 무릎을 베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휴식의 노래’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할 때, 숲의 친구가 병들거나 아플 때, 그리고 이 세상과의 인연을 다하고 떠나갈 때 불러 주는 노래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엘프들은 이 노래가 지친 영혼을 위로한다고 믿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마음의 안정이지.’
몬스터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분석을 마친 라미아가 센스를 발휘해 날갯짓소리 없이 떠올라 이드에게 다가왔다. 일리나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뭐 좀 나왔어?”
이드의 질문에 고민 중이던 쉴라가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이런 독특한 형태는 저도 처음 보기 때문에 표면적인 부분만 확인했어요. 대부분 짐작하고 있던 일이요.]
“괜찮아. 어차피 지금은 자세히 들을 시간도 없고,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을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드는 적도 아닌 사람의 몸을 이익을 위해서 자기 멋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혐오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당장 지구에 있는 제로의 일도 그랬다.
[우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 사람과 트롤이 원래 한 몸인 건 아니에요. 정확히 어떤 마법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과 트롤의 융합을 시도한 것 같아요. 물론, 보는 바와 같이 절반의 성공이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건 여기에 사용된 마법인데, 흑마법이 아니에요.]
“흑마법사가 아냐?”
[네. 흑마력의 잔재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요. 완전 판독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흔적이 남은 마법의 패턴은 오히려 일반 마법에 가까워요.]
“흠. 흑마법사는 아니란 말이지.”
“사도(邪道)를 걷기 시작한 마법사는 사악한 흑마법사보다 위험하고, 폭군보다 잔혹하다.”
이드의 시선이 쉴라를 향했다.
“옛 현자가 남긴 말씀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악한 짓을 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지요.”
[제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남았어요.]
“말해 줘.”
[확신할 수는 없어요. 아무래도 몬스터와 섞이면서 변질이 일어난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제 추측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 초인일 거예요. 트롤의 재생력이 터무니없어진 이유도 어쩌면 저 초인의 초인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실험의 목적은 초인과 몬스터의 융합 그 자체이거나, 초인기를 가진 사람을 몬스터에게 먹여 몬스터가 초인기를 사용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생각돼요.]
“아마, 네 말이 맞을 거야. 평범한 사람과 트롤을 융합할 이유가 없잖아?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저런 또라이짓을 할 수 있지 않겠어. 쉴라 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드는 라미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주고는 쉴라를 불렀다.
쉴라는 복잡한 얼굴로 망설이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길 바랍니다만, 어쩌면 이 안쪽에 있는 자는 초인들의 탄생 초기에 활동하던 마법사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초인이 발견된 초기에 있었던 그들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이드는 에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초인이 발견된 초기에 있었던 그들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조금 어두운 실내에 음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음성이 웅웅 울리며 말소리가 되어 나왔다.
잡음이 많았지만 충분히 들을 만했다.
“이야~! 우리 이야기 나온다!”
“클클! 잠깐 봤는데 금발에 이쁘게 생긴 년이 머리도 좋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이후 말이 안 들리잖습니까.”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에 누군가 정숙을 요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티긱-
뭔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렇지 않아도 흐릿하게 하늘을 비추던 영상과 소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영상과 소리를 전달하는 카메라 역할을 하고 있던 트롤의 머리가 이제야 생명을 다한 때문이었다.
“아~ 끝나 버렸다!”
누군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살짝 어둡던 공간이 환하게 밝아지며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이 차가 있고, 성별이 다르지만 모두 로브를 걸치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집중해서 보던 영상이 사라지자 마법사들이 서로 돌아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설마 MC-11의 성능이 저렇게 좋을 줄이야.”
“역시 탑주님의 실력은 대단하다니까.”
“에이, 탑주님 실력은 인정하지만, 저건 마지막 성능 테스트 후에 지금까지 정비를 잘해서 최적화를 확실히 한 덕분이라고.”
“아, 아쉽다. 두 여자 다 이뻐서 좀 더 보고 싶었는데.”
“클클. 걱정마라. 곧 우리가 보러 가지 않겠냐? 저놈들이 어디에 들어왔는지 알려줘야지 않겠어? 참, 참고로 금발은 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