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30화
567화
아니나 다를까 마법 결계의 발동 후로 통신은 불가능했다. 이드는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불행히 상대편도 우리를 찾은 모양이네요. 최대한 빠르게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화려하게 난장을 부렸으니, 알아채는 게 당연해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심 혹시라도 모르니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랐지! 하하하.”
만약 진짜 그런 어설픈 상대라면 이후의 일이 얼마나 편해질까.
그러나 그런 요행수는 이미 헛된 바람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아껴 서둘러야 할 때였다.
초인과 융합된 트롤과 마법 결계를 보면 적으로 예상되는 상대편에는 다수의 마법사가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마법사의 영역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마법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빠르기로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것만이 최고의 답이었다.
그리고 달리는 중에 트롤과 융합되어 있던 초인에 대한 라미아의 생각을 들었다.
[제 생각에 아까 봤던 트롤은 초인과 합성을 시도한 초기에 제작된 실험체라고 생각해요. 불사신에 가까운 재생력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으니까요. 진짜 강력한 몬스터를 만들고 싶었다면 강력한 파괴력의 초인기를 가진 초인과 합성했겠죠.]
공격 능력이 없는 트롤은 샌드백일 뿐이었다.
[그보다는 실험체가 된 초인의 초인기가 강력한 재생력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회복이 가능하고, 쉽게 죽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실험적으로 몬스터와 합성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이 실험이 실패했기 때문에 초인은 완전히 몬스터와 합성되지 못하고, 몸의 절반만 몬스터와 융합된 거죠.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합성된 실험체가 살아 있었던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그게 중요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나뭇가지를 뛰어넘으며 이드가 물었다.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중요해요. 우선 실험체가 제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트롤의 특성과 초인기인 재생력의 힘으로 살아 있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실험체를 살려 두고 꾸준히 개조와 실험을 반복해서, 실패한 실험체에서 원하는 성능을 충분히 끌어낼 정도로 실험에 성공한 거라면 제법 문제가 커요. 어쩌면 우리가 목표하는 곳에 단순히 재생력이 높은 트롤이 아니라 에단처럼 간파의 눈을 가진 트롤이라거나 바람의 힘을 가진 트롤, 혹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트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뭐냐, 그 마왕의 정예병력 같은 끔찍한 트롤 시리즈는!”
이드가 질색을 하고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트롤이 십만 정도만 있으면 왕국 한두 개 정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기사단장으로 전쟁에 대해서 지식이 깊은 쉴라는 순식간에 전쟁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 핏기가 가신 얼굴로 물었다.
“혹시 그 외에 다른 것도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죠. 제 이야기는 확인된 것만을 기준으로 한 추측이니까요. 여기에 쉴라 경이 이야기했던 초인의 탄생 초기에 초인을 연구하던 마법사들이 이 안에 있다고 가정하면 가능성은 한없이 커지죠. 만약 제가 그들이었다면 연구 목표는 인간이 가진 초인기를 추출, 가공해서 제가 원하는 형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테니까요.]
“원하는 형태라면…………….”
“아마도 기존의 초인에게서 초인기를 빼앗아 추출한 자가 원하는 대상에게 초인기를 주입하거나 스스로 이용하는 형태겠죠.”
일리나가 대답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이 그만큼 완성된 후의 최종 형태예요. 적어도 아직 그런 정도까지 발전했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어떻게 단언하지?”
[그런 기술이 있으면 저 불사신이 되는 초인기를 그냥 두겠어요? 진작에 빼서 사용하지.]
불로불사에서 불사를 이룰 수 있는 초인기.
쉴라가 생각하기에도 기술만 있으면 가장 먼저 뽑아서 자신이 쓰고 싶은 초인기였다.
‘쉴라 경이 그 초인기를 가진다면…?
순간 이드의 머릿속에 떨어진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드는 듀라한 모습의 쉴라가 떠올랐다.
‘미녀 듀라한이라니……………’
부르르.
이드는 엉뚱하게 흐르는 생각을 재빨리 털어냈다. 그러고는 달리는 발에 힘을 더했다.
“자, 이야기는 그 정도에 그치고 좀 더 속도를 올려요.”
숲을 달리는 세 사람의 발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달릴수록 빽빽하던 수풀도, 나무도 줄어들며 시야가 트였다. 들어오면서 봤던 오크와 트롤은 발뒤꿈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법사가 조종하는 몬스터들이 앞을 막아서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랐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발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지만 들어오라고 열어 준 길, 고맙게 사용해 주마.’
한참을 달린 이드는 마침내 협곡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높은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솟아올라 있었다. 올려다보는 위로는 뿌연 안개가 하늘과 해를 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목적지가 확실한 것 같네요.”
절벽과 주변을 살핀 이드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절벽을 파내고 깎아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입구가 보였다. 단순히 입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기둥도 있고 창도 있어서, 마치 절벽 전체가 하나의 건물처럼 보였다.
쉴라가 얼마 없는 나무에 몸을 숨긴 채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말했다.
“정면에 보이는 입구 이외에 출입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막아서는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더니, 결국 우리가 저 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
이드는 저 문 뒤에 적이 있다는 사실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저희들로서는 외통수로군요.”
쉴라는 말없이 절벽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한순간 살기가 폭발하듯 뿜어지더니 사라지고, 쉴라가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협곡 입구까지 물러나겠습니다.”
“진입하지 않습니까?”
쉴라가 하는 양을 멀뚱히 바라보던 이드가 물었다.
“진입하지 않습니다. 안에 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 돌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처음과 생각이 달라지신 모양이네요.”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그때는 상대측 전력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절벽을 파내고 그 안에 거주 시설을 건설할 정도의 규모라면 도저히 세 사람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닙니다.”
상황을 정확히 보고 판단한 대답이었다.
“그럼 카린 경은 찾지 않으십니까?”
이드는 쉴라의 이야기를 듣고는 불쑥 그녀의 아픈 곳을 찔렀다.
콕!콕!
이드의 눈치 없는 질문에 일리나가 이드의 옆구리를 찌르며 째려보았다.
그러나 이드는 애써 일리나의 시선을 피하며 쉴라를 살폈다.
그녀도 과연 가족 같은 동료 기사의 이름에는 숨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모습도 잠시, 그녀는 빠르게 그녀 특유의 무표정을 되찾았다.
‘과연 미모로 은색 기사단장직에 올라 있는 건 아니라는 거네.’
이드는 쉴라의 빠른 감정 처리에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카린 경에겐 은색 기사단의 영광이 함께할 겁니다.”
이드는 죽은 후의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쉴라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 안에서 저희 존재를 알았으니 입구까지 돌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가 그냥 지나온 몬스터들과 마법 결계가 앞을 막겠죠. 아마 저 안에서도 추적자가 튀어나올 테고요.”
“…..혹시 다른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드를 노려보던 쉴라가 문득 이드의 말 속에 들어 있는 뜻을 읽고는 물었다.
이드는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따로 생각이 있다면 그대로 해 보시겠습니까?”
“정말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트롤을 보셨으니 아실 테지만,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쉴라는 위협하듯 은근히 살기를 흘리며 날카롭게 추궁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쉴라 경은 이번 일을 통해서 제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피고 실력도 확인할 생각으로 저에게 도움을 청하셨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그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 드리지요.”
[으엑! 느끼한 대사.]
이드의 자신 있는 대답에 라미아가 양 볼을 감싸고 몸을 떨었다.
쉴라는 라미아의 이상한 모습을 보지 못한 듯 가만히 이드를 바라보다 말했다.
“어떤 생각인지 먼저 들어 본 후 결정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지금부터는 제가 일행의 대장입니다.”
이드는 곧 일리나와 쉴라를 놀라게 하고, 절벽을 파고 들어앉아 있는 마법사들을 기겁하게 만들 생각에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중과부적.
쉴라가 후퇴를 결정한 이유였다.
아무리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녀의 내공과 체력이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적이 한 번에 달려들면 결국에는 힘이 다해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특히 상대편에 마법사가 있는 상황이라면 도망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편의 숫자를 줄이고 흩어지게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리지지 않겠습니까? 특히 저 문 뒤에 바글바글 모여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들을 처리한다면 말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었으면 후퇴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쉴라는 고개를 적었다.
“혹여 라미아의 마법을 생각하고 있다면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저 안에도 마법사들을 있을 테고, 그들은 그와 같은 상황에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마법은 아닙니다. 라미아, 그거 꺼내줘 봐.”
[정말 쓰실 생각이세요?]
라미아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사람을 향해서 사용하는 게 꺼려지는 물건이지만, 다행히 이 안에 있는 건 인간이 아니니까.”
이드는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미아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공간에서 드럼통을 꺼내 놓았다.
드럼통 위에는 시계 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게……——뭔가요?”
“시한폭탄입니다.”
“시한폭탄?”
처음 보는 물건의 모습에 쉴라는 드럼통 가까이 다가가 여기저기를 만져 보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같이 있던 일리나는 그동안 라미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오히려 한발 물러서더니, 라미아를 보며 조심스럽게 드럼통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두 손을 모았다가 활짝 펴며 터지는 모양을 해 보였다.
그러자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아악~
일리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항상 긍지 높게 솟아 있던 귀가 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쉴라가 호기심에 드럼통을 만질 때마다 심장이 울렁였다.
그동안 라미아를 통해 들었던 폭탄의 위력을 생각하니 두렵기만 했다. 일리나는 살그머니 이드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이드는 일리나의 귀여운 모습에 키킥거리며 웃고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말아요, 일리나. 저건 시한폭탄이라고 해서 드럼통 위에 있는 특별한 장치를 켜지 않으면 터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일리나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서는 앞을 가리켰다.
“지, 지금 쉴라 경이…….”
동시에 이드의 귓가로 날카로운 전자음이 들려왔다.
삐삑-
순간 번개처럼 돌아본 이드의 눈에 시간 장치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쉴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0
59.
58.
그리고 반짝이며 차츰 작아지는 숫자를 본 이드가 크게 소리쳤다.
“아악! 해, 해제, 해제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