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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40화


577화

“근데 이게 거대화라는 말로 끝날 모양새야?”

이드는 트롤버스터에 대한 비올라의 설명이 심하게 생략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살짝만 뛰어도 천장에 머리를 박아 버릴 정도로 커진 트롤은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어난 몸을 따라 전신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살 속에 묻혀 사라지고, 대신 그들이 있던 곳에는 암적색 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점에서 생겨난 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다른 점들과 이어져 기묘한 패턴을 만들어 냈다. 그 패턴은 마법진은 아니지만, 보는 순간 마법진과 같은 특별한 힘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 주듯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또 팔과 등에 도끼날 같은 뿔이 솟아오르고 트롤에게 없는 가시 돋친 꼬리가 생겨났는데, 거기에는 손톱과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생성된 검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트롤이냐?

트롤버스터라는 이름도 트롤이라는 본래 모습을 부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뜻이 아닌가 싶었다. 뭐, 괴물의 이름 따위 뭐가 중요할까.

“끄롸악!”

순식간에 변신을 마친 트롤버스터는 마치 이제 시작해 보자는 양 포효를 터트리고는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웃겼다.

쿵. 텅. 쿵. 텅. 쿵. 텅.

천장에 닿을 것 같은 크기에 한 발 옮길 때마다 머리가 천장에 닿아 움푹 들어가며 돌가루가 떨어졌다.

“코미디냐?”

이드는 옛날 슬랩스틱 코미디가 생각나는 모습에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트롤버스터의 공격은 웃음이 되지 않았다. 다시 휘두르는 손의 속도가 앞서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앞서의 것이 일반인이라면 지금은 절정 고수였다. 극단적일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더구나 그 끝에 달려 있는 장검만큼 커진 손톱에 산산조각 나는 바람이라니.

작은 기사단이 그 앞에 있었다면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전멸했을 위력이었다.

“하지만 너무 직선적이라 읽기 쉬워. 이런 놈으로 날 죽일 생각이라면 비올라 말대로 정말 판단력 딸리는 찌질이들인 모양이네.”

쉬리리릭-

빤히 보이는 공격을 피한 이드 앞으로 조각난 바람이 폭풍같이 회오리쳤다. 이드는 옷자락을 날리는 회오리를 타고 트롤버스터의 오른쪽으로 타고 올라 일라이져를 휘둘렀다.

트롤버스터가 이드를 확인하고 빠르게 움직였지만 거대한 몸이 팔을 까딱이는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이드의 팔을 따라 적색의 검강이 핏빛이 되어 뿜어지며 트롤버스터의 어깨를 잘랐다.

끼기기깅-

강철이 잘려 나갈 때 나는 귀를 찌르는 소리가 났다. 어깨에 있던 도끼날 같은 넓적한 뿔에 어린 마력이 잠시 반발했지만, 정련된 검기도 아닌 마력으로 짜낸 짝퉁 검기로 검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트롤버스터의 팔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하지만 놈은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잘려 나가 가벼워진 어깨를 비틀어 꼬리를 휘둘렀다. 맞았다간 순식간에 잘 갈린 고깃덩이가 될 것 같은 꼬리의 가시에, 이드는 그중 하나를 도약판 삼아 트롤버스터의 왼쪽으로 돌아 남은 팔 하나를 자른 후 처음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은 움직임의 뒤를 따라 커다란 팔이 쿵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에 이드의 뒤에 서 있던 쉴라가 말했다.

“앞의 트롤처럼 사지를 자르고 산산조각 낼 생각이시군요.”

“비올라가 그와 같은 회복력이 있다고 했으니 그렇게 해야죠.”

빠르게 대답한 이드는 기우뚱거린 트롤버스터가 다시 달려들고 있는 모습에 바람처럼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트롤버스터가 크게 포효했다.

“크롸악!”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의 양어깨가 불룩하게 솟아나더니 질척거리는 체액을 흘리며 잘려 나간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어 이드를 향해 뻗어 왔다.

“이런 개사기!”

이드는 자기 상상력의 얄팍함을 비웃는 현상에 황당해하며 바닥을 미끄러졌다. 하지만 당황했다고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이드는 난생처음으로 한번 자른 팔을 다시 자르는 경험을 하고는 트롤버스터와 바꿔 섰다.

그런데 기가 막힌 현상은 계속됐다. 트롤버스터가 돌아서는 순간 잘린 팔이 또 재생된 것이다. 놈은 그대로 이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비올라 이 새끼, 이게 어딜 봐서 앞에 봤던 트롤의 회복력과 같냐고!”

이드는 비올라를 씹으며 트롤버스터를 회치는 데 속도를 더했다. 그때부터 트롤버스터의 사지와 머리, 꼬리의 일부가 사방을 날았다. 처음에는 회복되는 속도가 자르는 속도보다 늦어 몸통만 남은 적도 있었지만, 점점 재생 속도가 올라가면서 재생되는 속도가 마치 트롤버스터의 움직임만큼이나 빨라졌다.

그러자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이드가 공격해 들어오는 팔을 잘라 낸 순간 바로 팔이 회복되면서 공격이 이어졌고,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쪽을 내도 잘린 상태 그대로 붙어 버리는 모습에 어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연 비올라의 말대로 남은 마법사들이 택할 수 있는 최강의 카드라고 할 만했다.

퍼펑!

이드는 트롤버스터의 가슴에 통나무만 한 구멍을 두 개 뚫어 주고는 그것이 재생되는 것을 보며 주변을 살폈다.

‘이대로는 끝이 없는데!’

사실 트롤버스터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의 초인과 융합된 트롤들도 산산이 조각난 상태에서 회복하는 도중에 불에 태워 소멸시킨 것처럼, 트롤버스터 역시 강력한 힘으로 순식간에 지워 버리면 일은 간단하다.

비록 트롤버스터가 괴악한 재생력으로 날뛰고는 있지만, 그래 봤자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키메라였다. 지가 드래곤 통뼈도 아니고, 고작 이 정도 힘으로 무쌍을 찍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이드에게 트롤버스터를 한 방에 날려 버릴 힘은 있지만 지금 장소가 던전의 내부, 땅속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잘못하면 던전 자체가 무너질지도 몰랐다.

이드로서는 던전이 무너져도 일리나와 쉴라를 챙겨서 살아날 자신이 있었지만, 카린과 비올라가 문제였다. 나머지 마법사 놈들이야 애초에 죽일 놈이니 상관이 없었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특히 카린의 경우는 애써 구하러 와서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꼴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에 트롤버스터를 열심히 해체하며 살피던 중 이드는 수상한 점을 하나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무식한 재생력을 가진 트롤버스터의 힘의 근원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놈이 보이는 재생력이 원래 그의 것이건 융합된 초인의 것이건 상관없이, 능력을 발휘하려면 그에 따르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끊어 내고 부숴 가며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놈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는 것이다. 이드가 느끼기에 처음 놈에게서 느껴진 힘은 사지를 한 번 정도 빠르게 재생할 수 있는 정도의 마력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마력이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트롤버스터가 끝없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비올라가 말했던 트롤버스터의 마력 소비가 극심하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용량이 작은데 힘이 달리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겠지.’

이드는 확신을 가지고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찾았다!”

다음 순간 이드의 눈에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들어왔다. 그것은 트롤버스터가 부수고 내려온 4층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그곳에 은은한 푸른빛으로 발광하는 마력 선의 흔적이 이어져 있었다.

“4층에서 내려온 마력 라인이 있어요. 그걸 부수면 트롤버스터도 더 이상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바로 라인을 차단할게요.”

이드의 말에 뒤에 있던 일리나가 바로 반응했다.

가장 뒤에 있던 그녀는 가장 빠르게 마력 라인을 향해 달리며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마력 라인을 베지는 못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쉴라가 급하게 말린 때문이었다.

“잠시만. 잠시만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투둥!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중수법으로 트롤버스터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고 붕격으로 벽 속에 박아 넣은 이드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 그 괴물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마력이 들고, 재생을 할 때마다 또 많은 마력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비올라라는 자가 회복시킨 마력라인으로는 감당이 힘들어 마법사들이 동원되었다고도 했지요. 이 상태로 계속 마력을 소모시킨다면.”

이드는 순간 쉴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마력을 계속 사용하게 만들어서 위층에 있는 마법사들의 마력을 고갈시키자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양한 마법을 가진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 단순한 트롤버스터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 볼 만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죠.”

이드는 그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 쉴라가 들고 있던 검에 검강을 뽑아 올리며 달려들었다.

“그럼 저도 마력 소모 작업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쩌정!

곰처럼 뛰어오른 쉴라가 단번에 트롤버스터의 꼬리를 잘랐다. 검에 적잖은 반발력이 느껴졌다.

“끄롸롸롹!”

트롤버스터는 상대가 둘로 늘어나자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마법사들의 손에서 본능이 거의 죽어 버린 상태였지만, 자신의 불리함은 인식하는 듯했다. 그러자 놈의 입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비올라가 말했던 어둠이었다.

특정한 기운을 띠지도 않은 순수한 어둠은 빛을 삼키며 트롤버스터를 중심으로 주변을 암흑으로 물들였다. 시야를 가리고 어둠으로 감각을 제한하는 목적인 듯했다.

그러나 이드와 쉴라 두 사람 모두 어둠에 제한을 받는 경지는 넘어섰다.

두 사람이 트롤버스터를 잘라 내는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마력선 가까이 있던 일리나가 이상을 알려왔다.

“이드, 독 안개예요.”

일리나는 이상을 알린 후 로이콘을 소환했다. 일반 물질이 아닌 마법에 의해 생성된 안개는 작은 실프가 감당하기 버거운 기운이기 때문이다. 일리나는 로이콘에게 명령해서 독 안개를 다시 4층으로 밀어 올렸다. 일부는 로이콘의 힘에 의해서 4층으로 밀려 올라갔지만, 마력에 의한 압력을 받은 독 안개는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4층 통로를 가득 채웠다.


“하! 결국 이 어둠은 눈속임이구나.”

이드는 일리나의 말에 마법사들의 잔머리를 간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동격서를 간소하게 해석한 공격 방법이었다. 하지만 간단하기 때문에 실로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과연 이 트롤버스터 같은 괴물이 날뛰며 어둠을 뿜어 시야를 가린다면, 다른 곳에 신경 써서 경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서쪽을 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공격이 아니라 은밀하게 바닥을 기는 독을 품은 안개라니.

하지만 불쌍하게도 4층에 마법사들은 이드들에게 통하지 않을 수법만 골라서 사용하고 있었다. 일리나가 없다고 해도 고작 독 안개의 마법으로는 이드는 고사하고 쉴라도 중독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이 공격은 자폭의 성격이 강했다.

일리나가 독 안개를 밀어낸 후 트롤버스터의 재생력이 서서히 떨어진 때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마력을 공급하던 마법사들 중에서도 순식간에 되돌아온 독 안개를 마시고 죽은 마법사가 적지 않은 때문인 듯했다.

트롤버스터의 재생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드는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쉴라 경은 뒤로!”

콰콰콰쾅!

순간 철황십사격(鐵荒十四擊)의 그림자가 하나로 압축되어 쌍권으로 터지며 트롤버스터의 등 뒤로 커다란 구멍 두 개를 만들고 벽까지 날려 버렸다.

이드는 그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놈의 머리를 잡아 돌려 누르고는 몸속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기운을 꺼내 들었다.

“약식 태양정(太陽井)!”

번쩍!

순간 이드의 손에서 작은 태양이 생겨난 듯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트롤버스터의 머리와 바닥을 녹이며 트롤버스터와 이드를 끌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부신 빛이 사라지자 잠깐 동안 주위가 어둡게 느껴졌다.

쉴라는 놀란 얼굴로 이드가 사라진 구멍을 바라보았다.

‘다른 무엇보다 방금 공격은 뭐지? 마인드 마스터만의 무공인가?”

분명 이드와 거대한 덩치의 트롤버스터가 떨어졌는데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이드가 사라진 구멍으로 다가간 쉴라는 훅하고 닥쳐 드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키만큼 두꺼운 돌바닥이 녹아내린 모습과 그 아래 2층의 바닥 역시 녹아내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1층의 바닥을 녹이고 한 층가량은 더 녹여 내서 붉게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만들어 버린 곳에서 솟아올라 오는 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쉴라가 이드에 대해 한 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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